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5화
설마 이우연 입에서 저렇게 서운하다는 말이 돌직구로 나올 줄은 몰라서, 나는 약간 굳어 버렸다.
평소에는 본론을 바로 이야기하지도 않고 빙빙 돌리면서.
이우연이 제 볼을 긁적였다.
“겨우 친해졌는데 갑자기 전학이나 유학 간다는 말 들은 것 같아. 심지어 장거리로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세계쯤 되면.”
난놈은 난놈이네. 어떻게 이런 이질적인 상황에서 익숙한 단어로 본질을 딱 집어내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나라라면 오갈 수라도 있지, 세계 차원이라면 그럴 수도 없을 테고.”
“……아마도 그렇겠지.”
나도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만일 타르토스로 완전히 돌아가게 된다면 쉽게 한국으로 돌아오진 못할 것이라고.
지금도 타르토스에 한 번 가려면 운명의 씨앗이 필요하고, 그 씨앗을 사용하는 것에는 운영자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이것 또한 시스템이 나라는 이레귤러와 일종의 거래를 하며 만들어진 특수한 아이템이고.
‘그야 양쪽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세계가 멸망했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던전을 통해 오가고 있는 것이라,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고민할 만한 단계도 아니었다.
지금은 타르토스로 돌아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멸망한 세계를 복구시키는 것, 그리고 다가올 위기에 앞서 한국을 준비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이니까.
……아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변명인가.
문제는 가능한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만일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느 세계에 머물 것을 선택할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역시 정해져 있다.
그리고, 새벽 내내 이야기를 들은 이우연도 그 답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서운하다는 한마디.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더러 도와 달라, 이 말이지? 도와주면 다시는 못 보게 되는 건데도.”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한 채 묻는 말.
우습게도 그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잠시나마 거짓말로 답을 회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치 빠른 녀석이라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응.”
하지만, 혀끝까지 나온 거짓말을 도로 삼켰다.
이우연 또한 내게 이제껏 숨겨 오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던가.
내게 모든 것을 밝히는 것에는 분명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정도는 감당해야 공평할 것이다.
이우연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구나…….”
그러고도, 우리 둘 사이에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흐르던 정적이 깨진 것은 베란다 너머, 어디선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젯밤 이 집에서 홀로 수면을 취했던 조한율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우연이 낮게 미소했다.
“역시 조한율이야. 산통 깨는 데는 딱이지.”
“산통?”
“덕분에 정신은 차렸다.”
그렇게 말한 이우연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운명의 씨앗’이 보상인 던전 공략, 내가 할게.”
“……!”
솔직히 놀랐다.
섭섭하다고 하기에 내 부탁을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사실 아무리 레벨을 올려야 한다고 한들, 굳이 ‘운명의 씨앗’ 이 보상으로 나오는 던전에 도전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말을 더듬었다.
“괘…… 괜찮겠어?”
“괜찮지는 않은데…… 이제껏 당신한테 도움을 얼마나 받았는데. 나도 양심이란 게 있거든. 도와주지 않으면 평생 내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서.”
양심이라.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꿈자리가 사나울 길을 택하고 만다.
애초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뇌는 어차피 주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마련이고, 기억 또한 제 편한 대로 조작할 수도 있다.
당장은 마음이 괴로울지라도 그냥 눈을 딱 감고 외면하면 앞으로 꿈자리가 사나울 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이우연에게 도움을 준 만큼, 이우연도 나를 도왔다. 이우연이 내게 마음의 빚을 질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우연처럼 눈치 빠른 녀석이 그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런데도 굳이 저렇게 말한다.
“……섭섭하다면서.”
“그건 그렇지. 하지만 섭섭하다고 친구 사이에 발목 잡는 건 할 짓이 아니지 않아?”
이우연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달리 말하자면 아직 친구라 다행인가.”
“…….”
“그리고 뭐, 내가 돕지 않는다고 당신이 하지 않을 사람이야? 또 혼자 피 토하며 죽어 가는 꼴을 보는 것보단 돕는 게 낫지.”
그 말에 일전의 던전에서 내가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보았던 이우연의 얼굴이 생각났다.
언제나 여유 있게 웃고 있던 얼굴이 일그러져 눈물을 뚝뚝 흘리던 모습.
이우연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 거 또 보고 싶지는 않아.”
태연한 척 위장했지만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새삼스럽게 내가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와닿았다.
“그래도 이선 헌터랑 양태원은 따로 설득해. 거기까진 안 도와줄 거야.”
못 도와준다, 가 아니라 안 도와준다는 점에서 약간의 심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만한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
결국, 이우연은 도와준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본래 없는 말재주가 이럴 때 발휘될 리도 없었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흔하디흔한 한마디였다.
“고맙다.”
“암, 엄청나게 고마워해야지.”
꼭 이렇게 얄밉게 한마디 덧붙이는 게 이우연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차마 옆구리를 쥐어박을 수는 없었다. 그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해 준 건지 아니까.
“그럼 이걸로 이야기는 끝난 거지? 그럼 나 먼저 씻는다~ 아침은 뭐 먹지? 밥? 빵?”
“난 아무거나.”
“그게 제일 어렵다니까. 그럼 씻고 나서 내가 내키는 대로 해야지~.”
일부러 꾸며 낸 것이 분명한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하며 이우연이 먼저 발코니를 나섰다.
그러다 거실의 통창으로, 마침 부엌에서 커피를 타 가지고 나온 조한율과 마주쳤다.
조한율이 머그컵을 쥔 채 이우연을 향해 씩,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얼굴 꼴이 말이 아니네, 이 세X맨아. 심란한 이야기라도 들었나 봐?”
“그래 봤자 넌 호빵도 못 돼. 호빵은 맛이라도 있지.”
“……야, 나도 예쁜 아바타 있거든!”
“인공적으로 아무리 건드려 봤자 이런 얼굴은 안 나와.”
“아, X나 짜증 나네 이 새끼…….”
아침부터 사이가 참 좋다.
나는 둘의 말다툼을 귓등으로 흘리며 다시 한강을 바라보았다.
인간 따위의 번뇌라곤 모른다는 듯, 직선의 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 감정도 저렇게 흘려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후우.”
차라리 릴리스를 한 번 더 상대하는 게 낫겠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건 왜 이렇게 복잡한 걸까.
이우연은 그저 서운하다, 한마디로 끝냈지만 결코 그렇게 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감정이 아님을 안다.
피차간에 그러했다.
‘아직 친구 사이라…….’
뭐, 그래.
시간이 흐르고, 여유가 있다면…… 어쩌면 여기서 더 발전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 얼굴이 보통 얼굴이어야 말이지.
게다가 성격도 잘 맞고.
‘아니, 이건 오히려 독이 된 건가?’
차라리 둘 중 누군가가 떼를 쓸 만한 성격이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이우연은 근본적으로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 두 사람 다, 당장의 감상적인 무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이우연이 제 감정은 눌러 두고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것도…… 그런 거겠지.
설령 나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게 내가 죽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러니까 빨리 당신의 길을 찾아요, 레나.”
“우리는 괜찮을 거야.”
지금도 눈을 감으면 피투성이가 된 아리아드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뒤에 쌓인 무수한 시체의 산.
지난 던전에서 만났던 알리시아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지금 나는 전 대륙에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니까.”
실제로도 내가 운명의 씨앗으로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알리시아는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때 만난 것은 분명 엘리사 메이의 어린 시절이었으며…… 내게 몸을 빌려준 사람은 유령성의 기사단장이었던 페트라였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 유령성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던 성주는 루카스일 확률이 높으며…….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던 성주의 군사들은 왕의 군대에 몰살당했다.
그리고 그 원통함이 저주가 되어, 다른 세계에 있는 나에게까지 닿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계속해서 악몽을 꾼다.
악몽 속에서 친구들이 죽는 장면을 수도 없이 보고, 막으려 시도하고, 그리고 실패한 후 식은땀에 젖은 채 잠에서 깬다.
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속이 타는 것 같다.’
답답해 수없이 내리친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내가 떠난 후 그 애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 세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정해져 흘러가는 운명의 궤도를 비틀어 놓고야 말겠다.
그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이상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걷기로 결정한 길이니까.
* * *
영원 길드의 신입 헌터, 신우영은 출근할 때부터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신입 사원의 기본은 모름지기 인사다.
누구든 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못하는 법이고, 인사를 받으면 어찌 되었든 한 번은 더 돌아보게 되는 법.
눈도장을 찍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아무리 그 랭킹 1위의 헌터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같을 터.
‘일단 들어가자마자 인사부터 한다!’
게다가 오늘의 신우영에게는 필살 아이템도 있었다.
그건 바로 맛있기로 유명한 가게에서 사 온 앙금 절편과 근처에서 공수한 차가운 딸기 프라푸치노였다. 참고로 앙금 절편을 파는 곳은 아침 8시에 오픈하는 가게라 오픈 런까지 했다는 말씀!
‘후후. 비서실 동기한테서 강예나 헌터가 달달한 간식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더불어 쫄깃한 식감을 좋아한다는 귀띔도 들었다.
신입 사원의 필살 스킬.
출근할 때 선임의 간식 사 오기!
간식이라고 쓰고 뇌물이라고 읽는다.
물론 강예나 헌터는 신우영의 선임도 아니고, 출근을 하는 게 아니라 영원 길드의 검사들을 두들겨 패…… 아니, 교육을 하러 오는 것이지만, 어쨌든 일을 하면 누구나 단 것이 당기는 법.
또 어제 마력 구슬을 흔쾌히 고쳐 준 보답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고.
받은 것에 비해 약소한 보답이기는 하지만, 신입 사원의 지갑으로는 더 이상 괜찮은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보았던 강예나 헌터의 쿨함으로 보았을 때는, 굳이 다짜고짜 과한 선물을 들고 가 보았자 됐다며 뿌리칠 것도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이종 신기를 손에 쥔 신우영은, 정시보다 약 30분 일찍 연무장에 들어서면서 활기차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
신우영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쿠콰콰쾅!
연무장 문을 열자마자 고개 옆으로 휙, 하고 광풍이 일며 무언가가 벽으로 깊숙이 처박힌 것이다.
한 치라도 어긋났더라면 신우영도 함께 말려들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진 것은 어제 함께 굴렀던 선배 검사였다.
“끄으으…….”
얼마나 맞았는지 입에는 거품이 물려 있다.
“어, 어……?”
신우영은 혼란에 빠졌다.
분명 출근 시간을 맞춰 왔는데, 왜……?
“아, 출근 시간 아직 안 된 거 맞아요. 저쪽은 저한테 일대일로 미리 강습받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거고.”
터벅, 터벅.
사신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으면 친절한 목소리였지만, 어제의 경험 때문일까? 신우영은 자신의 신체가 공포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손에 뭘 들고 있는 거예요?”
“따, 딸기 프라푸치노입니다!”
하, 하지만 오늘 나에게는 사신에게 바칠 공물이 있다!
신우영은 연무장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고고한 얼굴의 랭킹 1위를 향해 급히 딸기와 크림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바쳤다.
검을 든 강예나가 잠깐 놀란 듯하더니, 신우영의 얼굴을 확인하고 곧 받아 들었다.
아마 어제의 답례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겠지.
“아…… 감사합니다. 딱히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앙금 절편인데 맛있어서 사 왔어요…….”
“뭐 이런 것까지…….”
그렇게 말하며 떡을 건네려 했지만, 그걸 가로채는 손이 있었다.
“오, 여기 진짜 맛있기로 유명한 곳인데. 고생 좀 하셨겠어요?”
어제도 연무장 구석에서 홀로 여유를 즐기던 이우연이었다.
“여기에 독이라도 넣었으면 합격인데. 그치?”
“예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신우영이 펄쩍 뛰려던 찰나, 강예나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던전 공략 방법 중에 몬스터가 사용하는 수원(水原)에 독을 푸는 방법도 있긴 해요. 일종의 편법이긴 한데…….”
“살아남으려면 편법이라도 써먹어야지. 신입 헌터는 이런 꼼수는 잘 모르니까~.”
이우연이 싱글벙글하며 봉투에서 앙금 절편을 꺼냈다.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철철 흐르는 떡은 보기에 참 좋았다.
“여기에 배탈약이라도 넣었으면 오늘 하루 다 같이 쉬었을 텐데.”
‘배탈약을 넣으라는 말인가?’
신입 사원은 헷갈렸다.
“……너 심술 좀 그만 부려.”
어제 하루 종일 헌터들을 그렇게 패고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강예나 헌터가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치, 친한 거 맞나?’
어쩐지 어제부터 서로 펀치를 주고받고 있는 것 같은데.
“하여간에 일찍 오셨네요. 아, 성함이……?”
“신우영입니다!”
“신우영 헌터. 잘 마실게요.”
어찌 되었든, 앙금 절편도 딸기 프라푸치노도 결국 강예나의 입에 들어갔다.
선배 검사가 미리 혼자 강습을 받았던 탓에 연무장 내에 먼지가 뿌옇게 일어난 상태였지만, 딱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던전에 들어가면 흙바닥에서 노숙하는 게 일상이니까.
‘뭔가 멋있다.’
야생의 달인 같은 느낌?
따져 보면 별것 아닌데도 어쩐지 노련한 헌터의 느낌이 물씬 났다.
앙금 절편 하나를 우물우물 씹으며 강예나가 말했다.
“그래도 둘 다 대단하네요. 어제 그렇게 맞아 놓고 일찍 출근하기 쉽지 않을 텐데.”
“아, 물론 좀 무섭긴 한데요……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어요.”
그야 어제의 퇴근길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장장 반나절을 랭킹 1위에게 손수 처맞고 나서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에 실려 가는 기분이란.
그래도 집 앞 가게에서 닭강정을 사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자취방에 들어가 전화로 친구에게 그 방랑하는 구도자를 만났다고 자랑도 하고, 욕도 좀 하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살 것 같았다.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니 ‘오늘도 한번 힘내 보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일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퇴근 후 치맥과 친구와의 수다로 충전할 수 있는 법.
그것이 살아가는 지혜였다.
그리고 그렇게 충전이 되고 나니, 결국은 언제 또 랭킹 1위 검사에게 교습을 받아 보겠냐는 세속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했다.
물론 신우영은 이것이 신입 사원 특유의 의욕 과다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일종의 기간 한정 버프인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았는데 포션 하나 마시니까 멍도 싹 빠졌어요! 오히려 마사지 받은 것처럼 개운합니다! 아하하하!”
실제로도 상태창을 확인하니 체근민 수치가 상당히 올랐다.
어지간한 C급 던전에 들어가서, 이틀 정도 몬스터만 주야장천 잡으며 업적치 노가다를 해야 오를 만한 폭으로.
겨우 대련 정도로 이렇게 능력치가 오른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검이 꿈에서도 나오더라.’
영상에 찍혔던 것처럼 검이 빛을 뿜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강예나의 검을 겪는 것 자체가 훌륭한 교습이 되었다.
시스템을 개방하고 검사 클래스로 개화한 이상, 기본적인 검술의 튜토리얼은 시스템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고 고렙의 검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제 강예나가 보여 준 것은 그런 배움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실전 검술이었다.
강예나 본인이 마치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된 것처럼 검사들이 합동하여 공격하는 것을 유도하는 동시에, 강예나가 그 합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는 것 또한 훌륭한 연습이었다.
헌터인 이상 던전에 들어갔을 때 공략대에서 홀로 떨어져 몬스터 무리에 둘러싸이는 경우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이길 수 있는지, 그 표본을 강제로 교육받은 셈이다.
물론 기본적인 능력치 차이가 있는 만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평생의 목표가 생긴 기분.
아직 감도 잡히지 않는 까마득한 목표라고 할지언정 구체적인 롤 모델이 눈앞에 있으니 의욕이 더욱 폭포수처럼 샘솟았다.
그러자 가만히 신우영의 말을 듣고 있던 강예나가 문득 웃었다.
웃으니 그렇지 않아도 앳된 얼굴이 더욱 어려 보였다.
“오, 제법 근성 있네요. 이거 나도 의욕 생기네.”
그러나 검을 휘두르는 동작도, 격려하는 말도 숙련된 검사 그 자체.
그래서 더 멋지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 내 롤 모델……!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만은 자신 있어요!”
콩깍지가 단단히 씐 신우영은 검사 뽕에 차올라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려 보았다.
“그러니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예나도 더 환하게 웃었다.
“네, 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런 강예나와 신우영을 바라보며, 이우연이 혀를 찼다.
“또 한 사람 보냈구나…….”
‘뭐라는 거야?’
의욕에 찬 신우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그리고 정확히 9시간이 더 흘러.
오후 6시.
어제보다는 약간 피곤한 얼굴이 된 강예나가 손뼉을 쳤다.
짝!
“자, 퇴근 시간입니다. 다들 수고했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시각에 나오도록.”
지난번 이우연의 노동법 강습 덕분에 귀신같이 9시간 노동 규칙을 지켜 칼퇴근만은 지켜 주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달리 아무도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걸 며칠이나 계속한다고?’
‘그냥 퇴사할까?’
‘남은 대출금이 얼마더라…….’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니까.
아침에는 의욕이 넘쳤던 신우영도 넝마가 된 채 눈물과 콧물을 삼켰다.
‘오늘은 피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