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6화
마지막 길드원이 터덜터덜, 연무장 문을 나서는 것을 보며 나는 뻐근한 어깨를 한 번 풀었다.
“다들 근성이 괜찮네.”
“장장 9시간을 두들겨 패고 하는 말이 그거야?”
“8시간이야. 점심은 먹였으니까.”
“…….”
마침 시간을 딱 맞춰 온 이우연이 이온 음료를 건네며 어이없어했다.
한구석에 죽치고 앉아 대련을 구경하던 어제와 달리, 잠 좀 자고 오겠다며 길드 내 수면실에서 9시간을 자고 온 덕인지 피곤하던 뺨에는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이쪽은 9시간 내내 흙먼지 속에서 굴렀는데 좀 짜증 나는군. 그렇지만 어쩔 수 없나. 이것도 다 내가 자처한 짓이었다.
‘하여간에 팔자가 사나운 것 같아.’
나는 왜 자꾸 알아서 팔자를 꼬는 걸까?
가끔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럼 이대로 퇴근?”
“응, 어차피 더 이상 일을 시킬 수도 없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 길드원들이 모두 퇴근했는데 내가 여기에 있어 봤자 할 일도 없다.
나와 이우연은 곧장 연무장을 나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마주치는 길드원들이 움찔하며 90도로 인사를 하는 걸 보면 소문이 이상하게 퍼진 모양이다.
혹시 인사 안 하면 패 버린다는 말이라도 돌았나? 그건 루머인데.
차에 올라타며 이우연이 물었다.
“그런데 남은 며칠 동안 영원 길드 검사들만 보고 있을 거야? 한국 헌터들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린다고 하지 않았어? 결국 이대로면 영원 길드 좋은 일만 하게 될 텐데.”
“맞아.”
장래를 생각하면, 겨우 스무 명 남짓한 검사들을 단련시켜 봤자 한국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기에는 한없이 모자라다.
게다가 여기는 영원 길드가 아닌가.
김성연 길드장이 지금은 내게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한들, 그건 자신의 길드원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니 저렇게 나오는 것일 뿐, 앞으로 제 이득에 해가 되는 일이라도 있다면 또다시 대립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영원 길드 소속 검사들만을 단련시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지.
조한율 : 걱정도 팔자다! 내가 알아서 잘할 거거든!
“뭐야? 저건.”
이우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시스템 한구석에 떠오른 조한율의 메시지를 무슨 파리 쫓듯이 없애 버리며 시동을 걸었다.
“어쩐지, 조한율이랑 짜고 뭘 하고 있었구나?”
“뭐, 그렇지.”
현 시스템에서 보자면, 아무런 생각 없이 C~D급 정도의 몬스터들을 잡는 노가다만 뛰어도 레벨 10대 후반까지는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조한율이 하급 포션과 장비구들을 싸게 풀었기 때문에 접근성 또한 좋았다.
덕분에 한국 헌터들의 전체적인 분포도를 따져 보자면, 레벨 10대 언저리에서 머무는 하급 정도의 헌터들이 가장 많았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다 한들 일반인들이 목숨을 건지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현 운영자인 조한율의 방침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상태에 머물 수도 없는 법.
특히나 향후 5년 내에 시스템이 전체 통합된다면 더더욱.
그에 대비해 전체적인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렙 헌터들이야 내 운명의 씨앗이 보상으로 걸린 던전에서 레벨을 올린다고 치고, 중위에서 하위권 헌터들에게는 또 다른 방식을 적용해야 했다.
이번에 영원 길드 헌터들에게 그렇게 했듯이.
물론 내가 영원히 중위권 이하 헌터들을 단련시켜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와 조한율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번에 여기 검사들을 단련시키는 걸 참고해서 검사 커리큘럼을 다시 짜기로 했어.”
내가 직접 할 수 없다면, 교육 과정을 만들어 버리면 된다.
즉, 정부가 세운 헌터 아카데미의 검사 클래스 커리큘럼 자체를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과 교류가 있으며, 국가가 운영하는 헌터 아카데미의 가장 큰 후원자인 조한율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조한율 : 안 그래도 검사들 커리큘럼을 새로 짜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으니까요.
어느 시점부터는 수준을 올리려면 반드시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한 때가 온다.
천재라면 혼자서도 벽을 뚫고 올라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법.
그래도 마법사 클래스 같은 경우는, 이우연이나 김숙자 같은 마법사들이 커리큘럼에 상당히 도움을 주었기에 이미 어느 정도 개발이 된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헌터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검사 커리큘럼의 경우,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위권 헌터들이 드물었다고.
그도 그럴 게, 나 이전에는 김성연 길드장이 헌터 업계의 검사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었고, 그 입장에서는 자신 외의 유능한 검사 헌터가 나오는 게 그리 달갑지도 않았을 테니.
그 덕에 검사를 지향하는 헌터들 자체도 적지만, 있다고 한들 제대로 단계를 밟아 실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커리큘럼 따위는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교육에 특출하게 재능이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눈동냥, 귀동냥한 게 있긴 하니까.’
그간 타르토스 대륙을 돌아다니며 의도치 않게 각종 기사단부터 용병단까지 접해 본 경험이 있고, 저쪽은 몇십 년 차의 경험이 누적되어 있는 서버이다 보니, 검사 플레이어들의 수련도 어느 정도까지는 단계적으로 정립되어 공유되고 있는 상황.
거를 팁도 많긴 하지만, 덕분에 나도 초반에는 덕을 많이 보았다.
물론 수준이 올라갈수록 각 집단마다 수련 방법도 세부적으로 달라지고, 외인에게는 전하지 않는 수련 방식도 존재하지만…….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갈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어차피 중급에서 고급으로 넘어갈 정도의 실력이 되면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할 때가 온다.
다인용 커리큘럼으로 공유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조한율 : 그리고 예나 씨 움직임을 토대로 훈련용 VR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거죠.
그래.
이게 이번 훈련의 골자였다.
앞으로 이틀 정도만 더 이렇게 영원 길드의 검사들을 상대로 움직이다 보면, 훈련용 VR을 만들 수 있을 만한 데이터 수집이 완료될 것이다.
그래서 일명 ‘벼락치기’ 작전인 것이다.
검사들의 레벨 20대쯤 되었을 때 무조건 이 VR에 집어넣고 몇 달 정도 탈탈 털다 보면, 어느새 그간 높아졌던 코가 납작해지는 건 물론이고 겸사겸사 벽도 넘어갈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이우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런데 괜찮겠어? 그렇게 되면 당신 움직임이 다 수집되는 거잖아. 그러다 약점도 간파될 수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움직임을 교본 삼아 적을 상대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만큼 내 동작에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많이 본다는 것은 곧 간파가 가능해진다는 뜻도 되니까.
보통이라면 기피할 짓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성장해 주면 오히려 고맙지.”
“와…… 배포 좀 봐.”
배포고 뭐고, 겨우 초보 티를 벗은 헌터들이 아무리 나를 본딴 VR로 연습한다고 한들 진짜 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있나.
게다가 상대가 레벨 20대의 중하급 검사들이 대부분인 만큼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고.
또 내 헌터로서의 무기는 검술뿐만 아니라 용사 클래스로서 마법을 파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사회생과 멸혼의 불꽃 같은 스킬의 활용도, 이외 다수의 경험이 만들어 낸 순간 판단력이다.
레시피를 공유한다고 한들 그걸 매일매일 꾸준히,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이길 수 있으면 어디 해 보라고 해.’
고렙 플레이어로서의 여유라면 여유지만…… 뭐, 그리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이우연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나저나 그 훈련용 시뮬레이션, 완성되면 나도 좀 시험해 봐도 되나?”
“……너 나 패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그래 봤자 완성될 시뮬레이션에는 내 모습으로 나오진 않을 텐데.
이우연은 손사래를 쳤지만 눈이 빛나고 있었다.
“에이,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라도 있냐, 라고 물어보려다 참았다.
있긴 하지.
“그래도 뭐, 네가 시험해 보면 그건 그것대로 도움이 되겠지. 조한율! 훈련용 VR이 완성되면 이우연으로 테스트해 보고, 그것도 다 데이터에 끼워 넣어.”
조한율 : 넵!˚✧₊⁎( ˘ω˘ )⁎⁺˳✧༚
“우우, 개인 정보 유출 반대합니다.”
“공익을 위해 참아. 너도 너 없이 한국 서버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면 좋잖아.”
“그거야 그렇지…….”
어찌 됐든 장기적인 검사 클래스 육성은 필요한 법이다. 다양한 클래스가 있어야 다각도에서 던전 공략을 시도할 수 있으니까.
또 이우연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 녀석의 경우는 서버의 안정성 또한 본인의 목숨과 직결되는 과제 아니던가.
‘생각해 보니 B루트의 이우연은 그래서 죽었을 수도 있겠네.’
서버가 불안정하다 못해 아예 궤멸되어 버렸으니, 이우연 또한 그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제거되었을 확률이 크지 않나.
……영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상상이었다.
“그래도 애초에 검사 지망생이 적은 건 여전히 문젠데. 조한율, 이건 어떻게 할 거야? 대책 내놓는다며.”
뭐, 여기의 이우연은 조한율이랑 티격태격하면서 잘 살고 있으니 굳이 나쁜 상상은 하지 말도록 하자.
조한율 : 안 그래도 생각해 둔 게 있어! 일단 생각한 방안은…….
“뭐야?”
주먹을 쥐는 걸 보니 들어 보고 제 마음에 차지 않으면 또 가차 없이 메시지창을 무슨 쿠션처럼 때릴 생각인가 보다.
그나저나 언제 운영자 메시지가 단톡방이 된 거냐. 대화의 주체 중 조한율은 여기에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메시지창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조한율 : 예나 씨 영상을 계속해서 알고리즘으로 노출시키는 거야. 그러다 보면 검사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안 그래도 내년 입학생은 좀 기대해 볼 만한데!
어이가 없었다.
“……그걸 지금 대책이라고…….”
그런데 우습게도 이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롤 모델이 생기는 건 중요하지.”
“……야, 지금 저게 말이 되는 거냐?”
“응, 말 되는 것 같아서. 당장 우리 길드 검사들만 해도 난리였잖아? 누구 팬레터 주고 가는 사람은 없디?”
“…….”
있긴 했다.
뭐, 하기야 같은 클래스에 고렙이 있으면 뭔가 든든하긴 하지. 내가 가는 길에 장래성이 있을 것 같고 말이다.
“하긴, 오늘만 해도 아침에 누가 간식까지 갖다 바쳤지. 이러다 팬클럽 생기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아, 그래. 너랑 김숙자 교수님 보고 마법사가 늘었던 것처럼 말이지. 너도 팬클럽 있냐?”
“…….”
실실 웃던 이우연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 남은 길은 좀 조용히 가겠군.
나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차로 꽉 들이찬 도로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길어야 사흘인가…….’
조한율의 던전 세팅이 완료되기까지.
그래도 이만하면 현시점에서 내가 한국 측에 줄 수 있는 도움은 다 줬다고 봐야겠지.
‘남은 시간 동안 영원 길드 검사들 굴리면서 능력치 좀 올려 주고, 데이터도 좀 뽑고…… 아, 그리고 VIP 스토어 들러서 아이템도 좀 보충해야지. 지난번에 폭발형 아이템은 다 썼어. 포션도 보충해야 하고.’
사실 그리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직 이선 헌터와 양태원에게 협조 요청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럭저럭 서로에게 숨겨진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우연만 해도 내 사정을 이야기하는 데 반나절은 걸렸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 둘에게 사정을 이해시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태원이는…… 도와주겠지만 시키기는 싫고.’
아무래도 이선 헌터에게만 사정을 말하고 도와 달라고 할까, 싶은데…….
“있잖아. 안 도와준다고 말해 놓고 이러기엔 뭐하지만.”
“응?”
한동안 얌전히 운전을 하고 있던 이우연이 말을 걸었다.
“이선 헌터한테는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게 더 나을걸?”
……이 자식, 독심술하나?
“미간에 주름 좀 펴. 어차피 지금 당신이 고민할 게 그거밖에 더 있나?”
이제 남은 길은 좀 조용히 가나 싶었는데.
이우연이 얄밉게 고개를 까닥였다.
“나야 내 목숨이 우선이니까 그런대로 받아들였지만, 이선 헌터는 어디까지나 정부 소속이란 말이지. 친분과는 별개로 어찌 됐든 자기가 소속된 기관의 입장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고.”
“그 말은……?”
“정부 입장에서 현 랭킹 1위인 당신이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하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 외의 입장이 나올 것 같아?”
“…….”
그건……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었지만, 이우연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설령 이선 헌터가 당신과의 친분을 생각해 정부에는 비밀로 한들, 그건 그것대로 부담을 지게 되는 거야. 나중에 책임 소재라도 물면 어쩌려고. 알면서도 방지하지 못했으니 책임을 져라, 적어도 좌천이고 그 외에도 불이익을 줄 만한 건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그렇게까지 흘러갈 문제인가?”
“그럴 만한 일이야. 인간 사회의 조직이라는 건 그렇다고요~ 용사님.”
이우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소 짓고 있기는 했지만, 뭔가 고충이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지난번에 김숙자 교수가 내게 해 주었던 충고가 생각났다.
정부에 굳이 말하지 말고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뽑아 먹으라고 했었지. 심지어 본인이 정부에게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둘 다 어지간히 조직에 데인 것이 많은 걸까.
‘……이 건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걸지도.’
진실을 말하는 게 언제나 능사는 아니지.
내 마음만 따지자면 솔직히 말해 주고 싶지만, 그건 그저 내 마음일 뿐이고, 그 진실이 만일 해가 된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선을 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굴러다니며 인간의 어지간한 꼬락서니는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오랜만에 ‘멸혼의 불꽃’ 대상자가 추가된 것에 사고방식이 약간 유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 본 나는, 역시 이우연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좋아. 그럼 이선 헌터에게는 말 안 하고, 태원이한테도 이야기 안 한다.”
운전을 하던 이우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양태원은 왜?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그래, 한 3년 후라면 모를까…….”
이번 던전에도 같이 다녀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너무 어리다. 다른 헌터들과의 관계를 조율하기도 힘들고.
게다가 내 눈에는 여전히 그 5살 때의 모습이 너무 눈에 박혀 있단 말이지.
이우연이 낄낄댔다.
“오, 본인에게 전해 주면 아주 대성통곡하겠는걸.”
“그리고 3분 있으면 잊어먹고 게임하러 가겠지. 세상 멸망하기 전에 엔딩은 봐야 한다면서.”
어린 녀석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런 세상이라지만, 되도록 그 ‘어려도 괜찮은’ 시절을 좀 더 즐기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봤자 양태원의 성격상, 정말로 본인의 힘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말려도 그 청동검을 들고 나설 게 뻔하기는 하지만.
‘결국 이선 헌터든, 양태원에게든 말은 못 하겠군.’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나만 일하는 거야? 앞으로 남은 던전, 3개랬잖아.”
내게 충고할 때는 언제고 이우연이 뾰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 됐든 본인만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나 보다.
“너만 일시키는 거 아니야. 어차피 이선 헌터는 던전 공략을 하게 되어 있긴 하거든.”
“그건 또 왜?”
“정부에서 시킬 테니까.”
어차피 서버 통합에 관한 정보는 정부 고위층에도 전달이 된 상황.
당장 언론에 발표하기에는 혼란이 극심할 터라 극비가 되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이라면 최상위 랭커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라고 했다.
덕분에 조한율이 새로운 던전을 설계한다면, 고렙 헌터들의 참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조한율 : 새로운 던전 공략 자체가 한국 고렙 헌터들에게 좋은 기회인 건 사실이니까요. 이선 헌터가 빠질 수는 없죠.
이선은 정부 소속의 플레이어 중 가장 뛰어난 헌터 중 하나다. 이런 기회가 온다면 빠질 수 없을 터.
‘오히려 내가 없을 때보다 수월할 수도 있지.’
타르토스의 운영자만 개입하지 않는다면 저번처럼 심하게 난도가 올라갈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없는 동안 이 두 사람이 몇 개나 던전 공략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이번 던전 공략이 끝난 후 곧바로 이어서 다음 던전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내가 죽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그로부터 사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영원 길드의 헌터들을 단련시킨 후에는 틈틈이 VIP 스토어에 들러 부족한 아이템을 보충했고, 이선 헌터와 양태원에게는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또 그 외에도 내가 영원 길드의 헌터들을 단련시킨다는 소문을 들은 김숙자 교수님께도 한 번 전화가 왔고, 슬슬 존재를 잊어 가고 있던 정부 측 담당인 최민혁 씨에게도 던전 공략 일정을 전달했으며, 부모님에게서 각자 온 부재중 전화 몇 통도 발견했다.
남긴 문자 내용을 보아하니 아마도 내 신상이 어딘가에서 털린 모양인데,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저번 던전에서 나온 지 딱 10일째가 되는 아침.
띵!
토스트를 굽는 기계에서 빵이 튀어나오는 소리와 함께 조한율이 말했다.
“던전 세팅, 오늘로 완성될 것 같아요.”
그 말에 옆에서 이우연이 잼을 바르던 나이프를 탕, 내려놓았다.
“너는 무슨 그런 소리를 빵 먹다가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