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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8화 (23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8화

루카스의 필체로 일리아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그 편지를 품속에 넣어 가지고 있었던 페트라.

홀로 독에 당해 눈밭에 쓰러져 있었던…….

“……하.”

내뱉은 숨이 하얗게 부스러졌다.

솔직히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각오는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지난번 던전에서 내가 만난 아이가 메이이고, 내가 몸을 빌린 아이가 페트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야 그것도 그럴 것이, 그렇다면 내가 겪었던 ‘유령성 던전’ 이 바로 타르토스의 미래였다는 것이니까.

내가 알고 있던 타르토스의 상황과 확연히 달라졌던 모습.

‘그때 페트라와 메이 둘 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였지.’

그리고 지금 페트라의 모습을 보면, 이제 20대 초입쯤 되었으려나.

그나마 유령성 시점보다 이전으로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소현 때도 바뀌었던 과거가 그대로 미래에 적용되었지.’

내가 지금 여기서 페트라의 몸을 빌려 운명을 바꾼다면 유령성의 그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그 페트라는 이 눈밭에 홀로 쓰러져 죽어 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게다가 루카스가 이 편지를 페트라를 통해 보냈다는 건…….’

이걸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첫 번째.

루카스가 전서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타르토스에서는 왕족쯤 되는 인물이라면 대개 잘 훈련되고 마법적 처리가 된 전서구를 사용해 편지를 보낸다. 특히 친우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더욱.

물론 그쯤 되는 전서구라면 거의 최상위 아이템급으로 비싸지만, 루카스 또한 한 왕국의 2왕자로서 대개 전서구를 이용해 편지를 보내곤 했다.

물론 정말 극비 문서일 경우 전서구가 아니라 사람을 쓰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현재의 페트라처럼 스무 살 언저리의, 겨우 견습 기사가 되었을 법한 애한테 그런 편지를 맡길 리가 없다.

즉, 뭔가 동티가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자금줄이든, 혹은 사람이든 간에.

게다가 그렇게 편지를 보낸 인선인 페트라가 이렇게 홀로 독을 먹고 쓰러져 있다는 것은…… 적이 있다는 것.

루카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다. 그런 녀석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페트라를 보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즉,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라도 편지를 보내야 할 상황이라는 거지.’

전서구를 사용하지 못할 형편이거나.

혹은 주위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

어느 쪽이든 간에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닐 듯싶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페트라가 기사단장이었던 그 유령성…… 성주는 루카스야.’

지난번 메이와 페트라를 구출한 후 생각했다.

감옥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아이들의 신병을 누가 인수하게 되었을지.

아마도 당시 알리시아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루카스가 맡았을 확률이 컸다.

이건 아마 내가 과거를 바꾸지 않았더라도 비슷했을 것이다.

루카스가 알리시아에게 보낸 편지대로라면 이미 감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테고, 만일 알리시아가 본래 운명대로 죽었다고 한들 루카스 성격에 겨우 탈출한 어린애들을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

그렇다면 그때 구출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루카스를 따르게 되었을 테고, 페트라나 메이처럼 배짱이 있고 혹여 검술에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그대로 루카스 밑에서 성장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런 성으로 쫓겨나 결국 황제에게 토벌당한다…… 는 거지.’

그때까지 10년 정도 남은 셈이다.

슬슬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긴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 편지의 수신인은 일리아스인데…… 일리아스 또한 그리 상황이 좋은 것 같진 않았다.

‘페트라가 이런 설원에 있다는 건 일리아스도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 망망대해 같은 설원.

이 정도로 넓은 설원이라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대강 짐작은 갔다.

타르토스 대륙 북쪽에 위치한 넓은 설원.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사해(死海)의 설원이다.

봄이 되면 초원에 풀이 돋기에 유목민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나타난 이후 몬스터며 온갖 날짐승들이 상주하고 있어 인접한 국가에서도 딱히 손을 대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살긴 어려운 지역이었지만…….

‘일리아스가 여기까지 숨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없진 않아.’

그렇지 않아도 알리시아에게 수배령이 내려졌다, 어쨌다 하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신경 쓰이던 부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알리시아에게 수배령이 내려졌냐, 이거다.

‘솔직히 처음에는 또 어디 배부른 돼지 같은 귀족의 목이라도 땄나, 싶었지만…….’

알리시아는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의뢰를 수행해 주는 용병.

용병들 사이에서는 용병왕이라고 불리고 있고, 상당히 비싼 의뢰금을 받고 의뢰를 수행하고 있지만, 귀족들 눈에는 돈을 받고 더러운 일을 처리해 주는 하수인쯤으로 취급했다.

타르토스 대륙의 상황이 워낙 여기저기 몬스터가 들끓어 혼란하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거지같은 신분제가 남아 있는 상태라 귀족들 상대로 평민은 억울한 일이 많았다.

특히 알리시아처럼 한쪽 팔이 몬스터로 되어 있어 일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기 힘든 경우라면 더더욱.

덕분에 그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의뢰 수행 후 의뢰금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는데…… 그 경우 보통 평민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넘어가겠지만 알리시아는 달랐다.

“의뢰금을 못 주겠다고? 그럼 네놈 목이라도 받아가겠다.”

그리고 진짜로 목을 꺾는 경우가 과거에도 두세 번쯤 있었다.

덕분에 뭐, 수배령이 내려진 영지가 몇 군데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전 대륙적으로 수배령이 내려졌다면 그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긴 하지.’

그리고 알리시아가 수배령을 받았다면 일리아스 또한 숨어야 했을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일리아스는 대륙인들에게 추적당할 만한 몇 가지 약점이 있기도 하고.

또 그 녀석은 이런 설원에 홀로 숨더라도 제 몸 하나 건사할 정도의 능력은 있으니 몸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어지간하면 이렇게까지 깊숙이 숨어들진 않았을 텐데.’

무슨 사정이 있는 것임은 분명했다.

지난번 알리시아를 만났을 때 워낙 사정이 급해서 물어보지 못한 게 한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시점이니만큼 사정이 거기서 더 나빠졌을 확률도 있고…… 여러모로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이런저런 의문은 다, 이 편지를 뜯어보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뜯어볼 수가 없다는 게 문제네.’

루카스가 일리아스에게 보낸 편지.

굳이 사람을 써 가며 보낸 편지인 만큼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는 힌트가 적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편지는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뜯으면 어쩔 수 없이 개봉했다는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지금 ‘레나’라면 편지를 뜯어보든 말든 일리아스도 별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현재의 나는 페트라였다.

나는 페트라와 일리아스의 관계가 어떤지 모른다.

‘하지만 딱히 친할 것 같진 않군.’

일리아스는 타인과 친해질 생각이 전혀 없는 놈이니까. 아마 단순히 견습 기사로 취급할 확률이 컸다.

그런데 심지어 편지에 뜯긴 흔적이 있다?

일리아스 성격에 그걸 발견하는 순간 당장 완드를 치켜들고 공격 마법을 흩뿌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물론 내 정체를 눈치채 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눈치라곤 약에 쓰려도 없는 알리시아와 달리 일리아스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그리고 만일 알리시아와 루카스에게서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었다면, 내가 또 이런 형태로 빙의했을 거란 추측을 해 볼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어찌 됐든 평범하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역시 편지 뜯는 건 보류하자.’

나는 다시 편지를 품에 집어넣었다.

정보가 부족하니 오히려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어쨌든 현재 이 던전이 일리아스나 혹은 루카스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었다.

‘하지만 왜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세계의 운명을 뒤집는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건지 모르겠네.’

내가 지난번에 구한 것은 알리시아와 몇몇 아이들의 목숨.

그것이 어떻게 멸망한 타르토스의 운명을 뒤집는다는 거창한 일로 이어지는 걸까?

‘여전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의문이다만…….’

그나마 다행인 건 기억은 이어받지 못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대충 감이 왔다.

가슴속에 가장 강렬하게 차오르는 내 것이 아닌 의지.

마치 유령성 때 성주와 백성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불타올랐고, 지난번 감옥에서도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듯이…… 주군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이 불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 편지를 죽어도 전해야 한다는.

‘너도 참 대단하다.’

지금은 내가 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도 그걸 뛰어넘어 이렇게 의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심지어 방금 전까지 설원에 쓰러져 홀로 죽어 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나도 목숨은 소중하고, 아픈 것도 싫고, 당장에라도 다 내던지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때로는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죽게 되더라도.

- 아이템,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파팟!

나는 빠르게 땅을 박찼다. 바람에 쌓인 눈이 사방으로 튀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내가 당장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일단 마을로 가자.’

아직 시간제한도 없으니 지금은 정보를 모을 때다.

*   *   *

그렇게 님페의 바람을 이용해 3시간 정도 눈밭을 헤치며 달린 결과.

나는 설원의 호수 근처에 인접하고 있는 ‘마지막 마을’을 발견했다.

말 그대로 여기를 넘어가면 인가가 없기에 사람들이 대강 마지막 마을 정도로 부르는 곳이다.

‘그나마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라 다행이다.’

마을 근처로 가기 전에 나는 일단 ‘은의 장막’을 착용했다. 장비 또한 페트라가 착용하고 있던 것을 벗고 내 것을 착용했고.

‘이런 곳에서 괜히 기사인 티를 내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이 마지막 마을은 타르토스 대륙 어딘가에서 쫓겨난 자들이, 나라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에 몰려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곳이었다.

정말로 범죄를 저지른 자도 있고, 영주가 매기는 과도한 세금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자들도 있다.

그 정도 사정이 아니라면 이렇게 살기 척박한 마을에 굳이 몰려 살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한 특수성 때문에 ‘기사’쯤 되는 높은 나으리가 오면 오히려 경계를 살 경우가 있으니, 나 또한 평범한 용병으로 행세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척박한 마을임에도 장점은 있었다.

사해라고 불리는 설원이라고는 해도 희귀한 동식물들이나 몬스터가 있기 때문에, 수집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 여기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이야 눈 돌아가게 비싸지만, 그거야 부르는 게 값인 지역이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나마 여관이라고 불릴 법한 건물은 하나지만.

‘오,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별다를 바 없는 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 지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회색빛의 돌로 단단히 지어진 낮은 건물들.

그중 내가 기억하고 있던 여관으로 가 삐걱거리는 무거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 소, 손님인가?”

술에 취해 주먹코가 붉게 물든 주인이 흰 수염을 문지르며 식탁에서 일어섰다.

여관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나무를 잘라 만든 투박한 식탁 몇 개에 의자, 그리고 늙수그레한 모습의 주인까지.

다만…….

‘손님이 아무도 없다고……?’

그야 사람들이 자주 찾는 여행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집 의뢰를 받은 용병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이 여관에도 항상 사람이 들끓곤 했는데…….

“숙박? 식사? 매일 계산해야 돼.”

주인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 알코올에 취한 탓일 것이다.

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둘 다. 하룻밤만 있을 거야.”

겨우 하룻밤 묵기에는 거스름돈이 남긴 하겠지만, 여관 주인의 호감을 사기에는 적당한 금액이었다.

용병이 여관 주인에게 정보를 듣고자 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기에, 주인 또한 익숙하게 은화를 받아 챙겼다.

“씀씀이가 후하시구만. 그래, 뭐가 궁금하신가?”

보통이라면 자신이 맡은 의뢰와 관련된 정보를 캐묻곤 한다. 희귀한 동물이나 몬스터가 어디서 발견된다든가, 하는.

하지만 내가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없었던 최근 10년…… 아니, 옵타티오가 사라진 이후의 대륙 근황이다.

이런 건 다짜고짜 물어보았자 경계심만 살 뿐이다.

게다가 페트라는 이미 한 번 설원에서 쓰러져 있던 상황.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짜고짜 캐묻는 건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외지인에 경계심이 강한 마을이기도 하고.

‘게다가 손님이 너무 없는 것도 이상해.’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들을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주인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식탁에 널브러져 있었던 주인의 술병에 손을 뻗어 잔에 따랐다.

“이봐!”

“내가 준 게 술 한 병 값은 되잖아. 같이 대작이나 하자고. 계속 혼자 다녔더니 입이 심심해서.”

술꾼끼리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취하면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법이고.

그리고 술안주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대작? 대작 조오치! 이거 술친구가 오셨구만!”

아니나 다를까, 이미 얼굴이 불콰해진 주인이 반쯤 빈 병을 다시 낚아채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콸콸, 노란빛의 액체가 넘어가는데 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도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야! 그럼 같이 마시자고. 아, 안주라도 내 드릴까? 내 수프랑 치즈라도 좀 잘라 오지!”

주인이 비틀대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동안 잠시 여관을 둘러보았다.

귀를 기울여 기척을 살펴보았지만 2층의 숙박 시설에도 아무도 묵지 않는 듯,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다.

‘용병들의 발걸음이 끊긴 건가……?’

여러모로 들을 말이 많아 보였다.

“자, 자! 식사네.”

곧이어 주인이 접시에 치즈와 수프, 그리고 거친 빵 몇 조각과 육포를 내왔다.

나는 육포 하나를 집어 들고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절로 기침이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독한 술이었다.

내가 콜록거리자 주인이 그제야 만족한 것처럼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게 북부 술의 맛이지!”

“……그렇지.”

저렇게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꼭 다른 지역 사람들이 술이 독해서 컥컥거리길 기다리더라니까.

한국인들의 맵부심과 비슷하다.

술에 취해 풀린 노인의 눈길이 나를 훑었다.

“하는 걸 보면 경력이 꽤 긴 용병인데 말이야. 여기는 처음 온 겐가? 모르는 얼굴인데.”

“북쪽에는 처음이야. 뭐, 사람 없는 곳에 와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흠…… 하기야 이런 곳에 사정도 없다면 왜 오겠는가. 그래, 진짜 이 늙은이랑 술이나 마시자고 은화를 준 건 아닐 테고. 뭘 듣고 싶은 겐가?”

“노인장 성질이 급하네.”

나는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이 마을에 사람이 없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내가 있을 때와는 여러모로 사정이 다르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원래는 용병들과 대작하면서 충고랍시고 꼰대질을 하던 걸 취미로 삼던 양반이었는데.

“술이 부족한가, 아니면 돈이 부족한 건가? 그래도 노인이랑 술 마시는 데 더 낼 생각은 없어.”

“하하하하. 이 사람 입담이 좀 거칠구만!”

주인장이 낄낄대며 입에 술을 부었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나 좀 해 줘. 이 몇 년 사람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이야기도 못 들었거든.”

“호오, 사람을 피해 다닐 만한 일이라도 저지른 모양이지? 그럼 정말 내일은 떠나는 게 좋겠군.”

“왜?”

“곧 이 마을에 토벌대가 온다고 하거든.”

“……토벌대? 몬스터 토벌대라도 보내는 건가?”

“몬스터는 무슨. 더 심하지!”

주인장이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저 사해의 협곡에 사는 네크로맨서를 추살하러 오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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