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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9화 (24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9화

아, 이거 X됐다.

다른 생각 안 들고, 솔직히 그 생각부터 들었다.

네크로맨서를 추살하러 토벌대를 보냈다고?

‘……테이블 엎을 뻔했네.’

하지만 그래 봤자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밖에 더 되나.

루카스가 그랬다.

쫄릴수록 일단 뻔뻔하게 웃고 보라고.

그래서 나는 일단 떨리는 입가를 가리기 위해 술잔을 들어 한꺼번에 들이켰다.

“켈록!”

독주라는 걸 깜박했다.

내가 계속 기침을 하자 주인이 엄청나게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허, 천천히 마시라고.”

어딜 봐도 타지인이 북부의 술에 놀란 걸 즐기는 표정이다. 의도치 않게 남의 자부심을 채워 줬군.

자존심은 조금 상했지만 그런 알량한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나는 주인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흥미로워하는 척 물었다.

“그나저나 네크로맨서라니…… 사해의 설원에 그런 녀석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네크로맨서.

마법사 중에서도 흑마술을 쓰는 사령술사를 뜻하는 말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는 시체를 다루는 마법사, 에 가깝고.

보통 마법사는 쓸모가 많기에 어딜 가도 대우가 좋은 편이지만,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래도 시체를 개조하고 다루는 만큼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보통 꺼리는 편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흑마법사의 기운이 생자(生者)에게 좋지 않은 건 사실이기도 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고 동물도 시름시름 앓는다나.

또 시체를 다루는지라 사자(死者)의 영혼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타르토스의 왕족이나 귀족 계층은,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토벌대를 보낼 정도로 공적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만일 네크로맨서로 각성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그 사실을 숨기곤 한다.

“자네, 정말 북쪽에는 처음인가 보군? 나름 유명한 일인데 말이야.”

주인이 표정을 찡그리며 술병을 찰랑였다.

“한 5년쯤 전인가. 처음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 건 용병들 때문이었어. 자네도 알겠지만 사해의 협곡에는 그 유명한 얼음 수정의 꽃이 피니까 말이야.”

“그래, 알지.”

얼음 수정의 꽃.

이 설원의 협곡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귀한 보석이다. 대지에 피어난 꽃 같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몬스터들의 몸에 품고 있는 마력이 얼음 지대가 품고 있는 광물과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일종의 아이템인데…… 다른 아이템의 원재료로도 쓰일뿐더러, 모양새 자체가 투명하고 아름다운 보석 같은지라 사치품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북부에 오는 용병들이 가장 많이 받는 의뢰가 이 얼음 수정 꽃을 수집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귀족 놈들이 돈을 많이 내니까.

“그런데 웬 덜떨어진 놈들이 실수를 해 협곡 지대에서 잠자던 몬스터 무리를 건드린 모양이야. 그것도 S급 몬스터를 말이야.”

“저런, 안 죽었나?”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사실 협곡에서 몬스터 무리를 만나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 얼음 수정의 꽃을 채취하려면 사해의 협곡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협곡 지대 자체가 강한 몬스터들이 우글대는 데다가, 지반이 온통 얼음으로 된 지역이라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용병들 사이에는 몬스터 서식지를 피해 아이템을 채취할 수 있는 지도가 공유되긴 하지만, 어찌 됐든 위험은 존재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죽었어야 정상인데!”

술에 취한 주인장이 신나서 이야기를 이었다.

“죽을 뻔한 찰나에 딱!”

“딱?”

“한 마법사가 나타나서 구해 주었다지?”

나는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술잔을 든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어떤 마법사가 그런 짓을?”

“그야말로 대마법사였다고 하더군. 하늘에서 벼락이 쾅! 하고 내리칠 때마다 몬스터들이 죽어 나가고,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면 그 얼음 협곡에서 요란하게 불덩이가 나타났다고 하더군!”

손짓, 발짓으로 과장을 섞어 가며 동작을 묘사하는 것이 한두 번 이 이야기를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래서 용병들도 처음에는 그 대마법사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하더군. 그야 당연하지.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만 들으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감동스러운 이야기야.”

“……그런데?”

으레 반전이 있기 마련인 구성이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몬스터를 처리한 그 대마법사가, 살아남은 용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주인장이 술병을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제부터 이곳은 내 영역이다. 타자(他者)의 침입을 불허한다…… 라고 말이야!”

“허어…….”

주인 없는 땅에서 당당히 내 구역 선언을 하셨다, 이건가.

어이가 없어서 내뱉은 한숨을 주인장은 맞장구라고 생각했는지 더욱 흥분해 소리쳤다.

“당연히 용병들은 수긍하질 못했지. 여기는 나라의 손길도 닿지 않는 구역이고, 여기에만 나는 광물도 아이템도 있는데, 그걸 당신만 독차지할 셈이냐! 하고.”

‘목숨을 구해 준 은인한테 바로 저렇게 따졌다고?’

처음부터 삐딱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주인장이 하는 이야기야 용병들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일 텐데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구해 준 마법사를 도로 털어 가려고 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일단은 듣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더니, 세상에! 마법사가 완드를 휘둘렀는데……!”

“휘둘렀는데?”

이제 슬슬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인가 보다.

주인장이 불콰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테이블을 크게 내리쳤다.

쾅!

“몬스터 시체들이 두 발로 일어서선 게야!”

홀로 그 광경을 상상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보여 주기 식인지 주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뭐, 확실히…… 대단한 광경이긴 했겠다.

눈과 얼음밖에 없는 협곡 안에서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가 부활해 일어난다면.

“놀랍게도…… 그 대마법사는 네크로맨서였던 것이지.”

마치 괴담이라도 말하듯 으스스한 어조와, 내 반응을 살피는 눈치.

무슨 반응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장은 흥이 깨진 듯했다.

“반응이 심심하구만. 하여간에, 시체를 제 종처럼 부리는 흑마법사 나으리 아닌가. 당연히 용병들은 날 살려라, 하고 맨발로 도망쳤다고 하더군.”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서 왔네.’

협곡에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갔다가 몬스터를 만난 주제에 살아서 돌아오다니, 운도 좋지.

나는 삐딱한 심정으로 어느새 비어 버린 잔에 술을 더 따르며 물었다.

“그래서, 그 후로 어떻게 된 거지?”

“그 후로도 몇몇 용병들이 협곡에 접근했지만 모두 본전도 못 건지고 물러났지. 그러기를 벌써 5년이네.”

주인이 제 수염을 잡아당기며 술병을 들고 남은 술을 목에 털어 넣었다.

“덕분에 용병들 발길도 드물어지고, 우리 마을도 장사해 먹기가 힘들어졌지. 젠장, 망할 흑마법사 놈!”

어쩐지, 그래서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던 건가.

주인장의 말대로 몇몇 용병이 협곡에 접근하긴 했겠지만, 어지간한 용병 수준으로는 흑마법사를 이기지 못한다.

용병은 어디까지나 의뢰를 수행하고 돈을 받는 직업. 몸이 재산인 직업이다. 얼음 수정 채취 의뢰가 보수가 좋긴 해도 흑마법사를 처치하는 위험을 무릅쓸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발걸음 자체가 적어진 것이다.

“……그럼 추살대는 뭐지? 마을 사람이 네크로맨서를 근처 왕국에 신고라도 한 건가?”

추살대라고 할 정도면 보통 토벌령을 받은 기사와 병사를 뜻하는 것일 텐데.

어지간한 권력자가 아니면 그런 권한도, 재력도 없다.

주인장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설마. 아무리 네크로맨서가 싫어도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나라에 신고를 하는 건 더 손해지. 그러다 우리도 끌려가게?”

이 마을의 특수성을 생각해 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초에 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모인 마을인데, 이제 와서 나라의 도움 따위를 받을 리도 없고.

“그럼 어쩌다 추살대가 만들어진 건데?”

“뭐, 글쎄…… 거기까진 아무도 몰라. 네크로맨서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라도 건드린 거 아닐까? 사실은 그 네크로맨서가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거든.”

“……대단한 인물?”

주인장의 목소리가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아졌다.

“처음 네크로맨서를 봤던 용병 중 하나가 그러는데, 지금 얼음 협곡에 있는 흑마법사가 바로 그, 뭐냐. 십여 년 전쯤 대륙을 호령하던 SSS급 몬스터였던 드래곤…… 이름이 뭐였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주 오랜만에 입 밖으로 뱉었다.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던 이름을.

“……옵타티오.”

“그래! 옵타티오를 처치한 토벌대의 일원이었다고 하더구만!”

놀라는 대신, 나는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얼음 협곡에서 홀로 살아가며 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흑마법사.

‘일리아스…… 너구나.’

내 동료이자, 전 대륙에서 기피하는 네크로맨서다.

*   *   *

알리시아와 일리아스.

둘 다 어릴 때 고아로 떠돌다가 실험체로 잡혀간 케이스였다.

알리시아의 경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복되는 실험에서도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지만, 일리아스의 경우에는 도중에 실험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일리아스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던전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몬스터 시체 더미 안에 파묻혀 있었다고 한다.

실험자들이 일리아스가 죽었다고 생각해 버리고 간 것이다. 혹은 알고서도 그 자리에 두고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리아스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거대한 거미들이 서식하는 던전이었어. 아마 먹이를 저장해 둔 창고가 아니었을까? 주변에 온통 시체가 즐비했지.”

그러나 그런 충격적인 경험은 때로는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재능을 개화시켜 주기도 하는 법. 삼일 밤낮을 시체와 함께 지낸 일리아스는 그때 흑마법을 각성했다.

진작 마법사로 개화는 했지만 일반적인 마법은 맞지 않아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흑마법에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일리아스는 던전 공략에 성공해 탈출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흑마법사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성인이 되어 알리시아와 다시 재회하기 전까지 쭉.

일리아스는 뒷골목에서 온갖 더러운 의뢰를 처리하며 흑마법사로 겨우 빌어먹고 살았다.

사실상 다른 선택지도 없었을 것이다.

의탁할 곳 없는 고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한두 푼 얻어 생활하다가 혹시라도 네크로맨서라는 것이 들키면 맞아 죽기 전에 도망을 다니고…… 뭐, 그런 식의 반복.

그렇지만 그래도 일리아스는 그때 네크로맨서의 재능을 각성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덕분에 살아남았잖아. 나도, 알리시아도.”

그런 점은 남매가 꼭 닮았다.

알리시아도 한쪽 팔이 몬스터로 개조되어 정기적으로 교체해 주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삶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살아남으면 이기는 거였다.

살아남으면 어떻게든 된다. 살아 있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고.

“나중에 알리시아가 여행을 다니자고 하던데, 그것도 좋지만 나는 한 지방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일리아스는 네크로맨서인 것이 들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하니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무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속물이야, 레나.”

어느 날, 일리아스가 네크로맨서인 게 들켜서 마을에서 쫓겨났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그날 그 마을을 위해 하루 종일 근처의 몬스터 무리를 토벌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눈총에 쫓기듯 마을을 나가야만 했다.

덕분에 일리아스는 그날 밤 속절없이 취했다.

“루카스 님이나 성녀님은 사명감에 옵타티오를 해치우려고 하는 거겠지만 나는 아니야. 옵타티오를 처리하면 나를 대륙의 영웅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사연 있는 사람 정도로는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하는 거지. 그래서 이 개 같은 공략을 계속하는 거라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나 봐, 일리아스.’

나는 여관방의 침대로 돌아와 그 위로 털썩 쓰러졌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방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냥 엄청나게 피곤했다.

눈밭을 몇 시간이나 헤쳐 왔던 몸보다도 정신이 더욱.

‘이야기를 더 들었어야 했는데.’

내친 김에 알리시아나 루카스, 그리고 아리아드네에 대한 이야기도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장이 얼마나 술에 취한 건지, 혀가 워낙 꼬여서 무어라고 하는지 알아듣는 것조차 못 하는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어.’

어쨌든 얼음 협곡에 있다는 네크로맨서의 정체는 일리아스가 확실한 듯했다.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일리아스의 존재와 추살대라는 키워드.

운명의 씨앗을 사용해 만들어진 던전인 만큼 이 키워드들은 클리어 조건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번 던전을 참고해 추측해 보자면 추살대에게서 일리아스를 죽지 않게 지켜라, 뭐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머리를 잡아 뜯었다.

“아, 짜증 나…….”

그냥 다 뒤집어엎고 싶었다.

무엇보다, 처음 소문을 낸 용병부터 잡아서 쥐어 패고 싶다!

기껏 일리아스가 살려 줬더니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냉큼 흑마법사가 여기 있다며 소문이나 내?

게다가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오지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데 추살대까지 편성하다니.

대체 왜?

심지어 내 추측이 맞다면 본래의 운명에서는 일리아스가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거 아닌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일리아스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뭔가 돌아가는 꼴이 영 이상했다.

아무리 흑마법사라고는 해도 옵타티오 정도의 몬스터를 처치한 공이 쉽게 없어지진 않을 터.

옵타티오에 관련된 신탁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런데 토벌령이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

그리고 또, 오빠가 이 지경인데 알리시아는 어디서 뭘 하고 있고?

물론 알리시아가 어디 한 군데 정착할 성격은 아니지만, 제 오빠가 저렇게 협곡 하나를 점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추살대가 편성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면 당연히 찾아왔을 것이다.

알리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 이상은…….

또 루카스나 아리아드네도 그렇고…….

홀로 침대에 누워 있자니 좋지 않은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불길함이 꼬리를 끌고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라.

이럴 거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낫지 않아?”

파지직!

눈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튕겨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한율 : 우유 빛깔 예나 씨, 잘하고 있어요? (;•͈́༚•͈̀)(•͈́༚•͈̀;)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익숙한 흰빛의 글씨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방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니, 내가 한 생각이 아니라…… 다른 뭔가가…….’

조한율 : (._.) ( l: ) ( .-. ) ( :l ) (._.) 읽씹인가요? 너무해ㅠㅠ

잠깐 상황을 정리하느라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또다시 조한율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뒹구는 이모티콘과 함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메시지에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이 들며 정신이 차분해졌다.

가상 키보드를 띄우고 답장을 보냈다.

강예나 :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고, 멘붕이긴 하다.

조한율 : 오?

조한율 : 멘붕이란 단어는 언제 배우셨죠? ( •᷄⌓•᷅ )੨੨

그 장난스러운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러게.

얼마나 지냈다고, 언제 이렇게 현대 한국 문물에 익숙해졌나 모르겠다.

강예나 :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했어?

조한율 : 아, 그냥 중간 체크요. 예나 씨 혼자 공략 중에 쓸쓸할 것 같기두 하고?

조한율 : 던전에서 제 메시지 보니까 엄청 반갑지 않아여? 대박이죠(˵•́ ᴗ •̀˵)(˵•́ ᴗ •̀˵)

진짜 어이없는데 반박은 못 하겠다.

‘설마 그래서 개입한 건가?’

조한율 쪽에서는 내 상황이 보이니까.

어쩌면 내 기분이 우울해 보여서 도와주려고 메시지를 보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술이 깼군.”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후 포션 하나를 꺼내 들이켰다.

피곤했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조한율 : 어? 예나 씨, 벌써 이동하시게요? 거기도 밤 시간 아니에요?

강예나 : 시간이 별로 없어.

원래도 정보만 얻을 셈이었지, 하룻밤을 다 묵을 생각은 아니었다.

추살대가 꾸려졌다는 판에 여기서 쉬어 봤자 제대로 쉬는 것 같지도 않을 것이다.

또 페트라가 독에 당해 쓰러져 있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여기서 들을 정보는 이미 다 들었으니, 지금 당장 얼음 협곡으로 가는 게 낫다.

조한율 : 아니, 몸 좀 챙겨 가면서 공략하라고 말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이게 무슨 일이죠?!

그러게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강예나 : 내 걱정은 됐고, 그쪽이나 밥 제대로 챙겨 먹고 있어. 나 그럼 키보드 넣는다.

조한율 : 에엥〣( ºΔº )〣

그러고도 메시지가 이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우연을 본받아 메시지창을 한구석으로 치웠다.

그래도 혼자 방구석에 누워서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던 차에 조한율의 메시지를 보니까,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한결 밝아졌다.

현실감이 들어서 그런가.

아주 약간이지만 기분도 밝아졌고.

‘웃기네.’

그저 타르토스로 돌아가기 전 중간 지대로만 여기고 있었던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타르토스에 돌아온 나를 다시금 북돋아 주다니.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골치 아픈 생각은 관두자.’

일이 어떻게 꼬였든 내가 할 일은 어차피 한 가지다.

일리아스를 구해 낸다.

그러니 추살대란 것들은 싹 다 박살 내면 되는 거고.

간단하고 좋군.

나는 창문을 열고 가볍게 이 층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기다려, 일리아스.’

내가 지금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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