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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1화 (24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1화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곧바로 나를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내가 잘못 들었겠지. 내 염원이 빚어 낸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리아스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일리아스의 시선은 확신으로 바뀌고, 눈동자가 투명하게 부풀어 올랐다. 흘러내린 눈물이 턱 끝에 맺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일리아스…….”

“응?”

“나이 먹더니 눈물이 많아졌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튀어나온 말에 일리아스가 눈물을 훔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말에 더욱 확신이 섰다.

일리아스는 지금의 내가 페트라가 아니라 레나라는 것을 정말로 알아차린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에 기쁜 것과 별개로 나는 황당해졌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알았어?”

알리시아 때처럼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눈에 내가 레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행동도, 표정도 페트라와는 완전히 다른걸.”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내게로 다가와 팔을 벌렸다.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 앞섰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일리아스를 마주 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일리아스가 나를 조심스럽게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보고 싶었어, 레나.”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그 말에 울컥하는 감정이 차올랐다.

여기에 와서 나이가 든 일리아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시간이 나만 두고 흘러가 외톨이가 된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일리아스는 나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사실 만일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사라진 지 벌써 1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삶은 지난하고 세월은 모든 것을 무디게 하는 마법이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나를 잊지 않았다.

내 가족은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   *   *

일리아스가 나를 금세 알아본 이유. 그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일리아스는 알리시아의 말을 믿었다.

솔직히 황당했다.

“그걸 믿었다고?”

타르토스의 친구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옵타티오 처치 후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몇 년 후 갑작스레 연고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알리시아의 위기를 구해 준 후 또다시 사라진 것이다.

이곳이 아무리 시스템이 있는 세계라고는 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일리아스처럼 의심이 많고 꼼꼼한 성격이라면 아무리 알리시아의 말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데…….

“내 동생이 그렇게 정교한 환상을 볼 정도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

“음…….”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군. 내 절친한 친구가 돌대가리이기에 오히려 신빙성이 생기다니.

참으로 남매다운 말을 하며 일리아스가 싱긋 웃었다.

“게다가 알버트를 그 호수 속에 가라앉히고, 감옥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모두 구해 내는 것도 알리시아 혼자라면 못해 낼 일이었지.”

신랄한 평가였지만, 그건 그랬다.

실제로도 알리시아는 내가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페트라의 기억으로는 본래의 운명대로라면 살아남은 아이도 기껏해야 둘.

운명은 확실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리시아에게 주었던 해골 말의 기억도 살펴보았어. 물론 단편적인 기억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 일반적인 아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인 데다……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게 너밖에 더 있겠어.”

그러고 보니 그때 알리시아가 가져왔던 해골 말들, 그건 분명 일리아스의 소환수였다.

정보의 신빙성 체크까지 빠트리지 않은 점이 일리아스다웠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해서 기다렸어. 언젠가 또다시 페트라의 몸을 빌려 네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랬구나.”

일리아스가 설마 곧바로 나를 알아볼 줄이야.

‘장기전을 각오했는데.’

나는 약간 탈력감을 느끼며 일리아스가 난로 근처에 놓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된 일이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진이 빠졌다. 내내 일리아스를 걱정하면서 밤의 눈길을 헤치고 달려온 것도 있었고.

타닥거리며 불꽃이 타는 소리가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내 무릎 위에 일리아스가 직접 뜬 것 같은 담요를 얹어 주고, 손에는 난로 위에 얹어 둔 컵을 쥐여 주었다.

안을 보자 따뜻한 홍차가 담겨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마셔.”

“……일리아스, 너 성격이 좀 변했네.”

옵타티오를 공략하러 대륙 이곳저곳을 떠돌 때만 해도 일리아스는 상당히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성인이 되어 알리시아와 재회할 때까지 일리아스에게 믿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설령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리아스가 네크로맨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에 돌변하며 영주에게 그 사실을 밀고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경원시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나마 나는 평민이라 일리아스 입장에선 빨리 친해진 편이지만, 왕족인 루카스나 성직자 중에서도 높은 신분인 아리아드네와는 같이 여행하는 사이가 된 후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의 일리아스에게는 남을 챙길 줄 아는 여유가 보였다.

이전의 일리아스도 나를 동생처럼 여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섬세하게 살펴 주지는 않았으니까.

좋은 변화라면 좋은 변화였지만…….

“그런가? 원래 페트라가 온다는 말에 준비했던 거라.”

일리아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페트라는 어릴 때부터 몇 번이나 본 애라서.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애한테 까탈스럽게 대할 수는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런가.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내가 한 번 페트라의 몸을 빌려 나타난 것 때문에 보살피기 시작한 건 맞지만, 어린아이일 때부터 오래 봐 온 탓인지 정이 붙기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양태원을 애 취급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홍차를 휘휘 저으며 물었다.

“어릴 때부터 봤다니…… 역시 페트라는 루카스가 맡은 거야?”

“응, 네가 구했던 페트라와 엘리사…… 아, 너는 메이라고 불렀다던가? 둘 다 기사 수행을 받고 있어. 재능 있는 아이들이야.”

“그런가…….”

복잡한 심정이었다.

루카스라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맡아 줄 거라고 생각했던 신뢰가 보답받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페트라와 엘리사 메이, 그 두 사람이 루카스의 기사가 되었다는 자랑스러움.

동시에…… 내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절망감.

유령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수많은 군대 앞에 의연하게 맞섰던 기사단장과 기사단, 그리고 백성들.

그리고 첨탑 꼭대기에서 홀로 썩어 죽어 가던, 가면을 쓴 성주.

그들의 최후가 뒤늦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바꾸면 돼.’

이렇게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기껏 페트라가 몸을 빌려준 덕에 기회를 잡지 않았나.

“아, 맞다. 이 애가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있던데.”

나는 품속에 가지고 있던 편지를 꺼내어 일리아스에게 건넸다. 하지만 정작 일리아스는 편지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 마당에 편지가 문제야?”

“편지도 문제긴 한데. 그리고 마을에서 불쾌한 소식도 들었어.”

“무슨 소식?”

“너를 쫓는 추살대가 만들어졌다던가.”

그렇게 말하는데 살짝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리아스가 네크로맨서로서 대륙적으로 핍박받아 온 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아, 그래?”

그런데 일리아스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자신을 쫓는 추살대가 만들어졌다는데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절의 일리아스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일렁이는 푸른 불꽃이 일리아스의 얼굴에 기괴한 그림자를 던졌다.

일리아스가 속눈썹을 내리깔고 조용히 미소했다.

어쩐지 지쳐 보이는 미소였다.

“뭐, 한두 번 일도 아니고. 그리고 아까 진입하면서 내 소환수들 봤잖아. 어지간한 놈들은 상대도 안 돼.”

하긴 그것도 그랬다. 해골 병사뿐 아니라 아이스 골렘까지 부리고 있으니.

“그런 놈들은 레나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는 무려 왕자님의 편지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일리아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리아스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니 그건 다행이긴 한데…….

‘왜 클리어 조건이 뜨지 않는 거지?’

나는 일리아스를 만났을 때 선행 조건이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클리어 조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루카스의 편지까지 건넸는데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번 던전에서는 일리아스와 클리어 조건은 관계가 없는 건가?

나는 추살대가 온다기에 그들에게서 일리아스를 지키는 게 클리어 조건이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세계의 멸망과 내 친구들이 계속해서 엮이는 것 같아 찜찜했는데, 일리아스가 내 클리어 여부와 상관없이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다.

클리어 조건이야 다시 찾아보면 그만이고.

“그러니까 이제 이야기 좀 해 봐.”

일리아스가 나를 재촉했다.

“어쩌다 옵타티오를 처치하고 갑자기 사라진 거야? 게다가 왜 이런 형태로 여기에 오게 된 거고?”

“그게…….”

파지직!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동시에 손끝까지 저릿한 고통이 달렸다.

- 경고! 해당 던전에서 플레이어의 모든 발언은 차단되지 않습니다.

- 단, 주변 인물에게는 대화가 제한되어 들립니다. 정체를 의심받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역시.’

내게 경고하듯 붉게 떠오른 메시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닌지라 나는 눈을 감았다.

미래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 는 것이겠지.

괜히 이 메시지를 어기려고 했다간 이 던전 자체가 규칙 위반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해 줄 수 있는 말이…….”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나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바라보던 일리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게 그 ‘운영자’의 의지인가…….”

“뭐?”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동시에…….

조한율 : 어라?

이제까지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을 조한율도 메시지를 보냈다.

조한율 : 그쪽 세계는 보통 운영자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아니, 그럴 리가.

“네가 운영자에 대해 어떻게 알아?”

내가 타르토스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영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일리아스 또한 다르지는 않을 터.

그런데 어떻게 저 입에서 운영자라는 말이 나온 거지?

그러자 일리아스가 가당치도 않은 질문을 들었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레나, 나라고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야. 네가 그렇게 됐는데 내가 손 놓고 있었겠어?”

“으응?”

“네가 알리시아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가 일시적으로 숨이 끊어질 정도로 고통받았다는 걸 들었어.”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알리시아에게 정보를 털어놓으려고 했을 때의 일을 말하는 건가.

일리아스가 이야기를 이었다.

“게다가 사라질 때도 네 의지가 아니라, 시간이 다 되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면서.”

“……응, 그렇지.”

“그럼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너를 강제하고 있고…… 그 힘의 정체는 시스템이다. 내가 이 결론에 다다르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 물론 우리 멍청한 동생은 그런 생각까진 못했지만…….”

이 와중에 굳이 동생 욕을 한마디 끼워 넣는 것이 오빠다웠다.

“게다가 알버트가 몬스터가 되어 나타난 것도…… 아무래도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개입했다고 추측할 근거로는 충분했지. 그래서 그 후로 대륙 각지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꾸준히 수소문했어. 루카스 님의 도움도 있었고. 덕분에 운영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본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기는 했지만 무엇 하나 쉽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내가 사라진 후 꾸준히 조사를 했다니…….

‘거의 10년이잖아.’

심지어 근거가 될 만한 것이라고는 애매한 내 행동밖에 없지 않았나.

그런데 겨우 그 정도의 근거를 가지고 10년을 꼬박 매달렸다니.

“…….”

여기 오기 전까지 애들이 나를 잊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만큼 솔직히 감동했고, 그만큼 안쓰럽기도 했다.

불확실한 단서 몇 개에 기대어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나도 아니까.

나는 잠기는 목소리를 헛기침으로 감추고 물었다.

“그래서 운영자라는 게 존재한다는 결론을 낸 거야?”

“사실…… 예전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어.”

시스템에 의해 개화한 흑마법사가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

“너는 시스템에게 악의가 엿보인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라. 자연에게는 의도가 없어. 의도가 있는 건 언제나 인간이지. 둑을 짓고 물을 가두듯이, 두려운 것은 이름을 짓고 깔보듯이.”

푸른 불빛을 바라보는 일리아스의 눈동자에 잠시 날카로운 경멸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일리아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옵타티오가 최후의 몬스터라는 게 거짓말이었다는 건 들었어.”

지난 던전에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내가, 전 대륙인이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거짓된 희망.

최종 보스를 쓰러트리면 낙원이 펼쳐질 것이라는 헛된 믿음.

“그래, 그야말로 인간이나 할 법한 짓이지.”

그렇게 대답한 일리아스의 얼굴에 해묵은 피로가 드리웠다.

우리가 매달려 노력했던 일이 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리아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옵타티오를 처치하고 인간 속에 섞여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던 사령술사는, 지금 이렇게 죽음의 바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설원 속 협곡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대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났다.

내가 반사적으로 따라 일어서려고 하자 일리아스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앉아 있어.”

“어디 가려고?”

“가는 게 아니라, 바닥에 깔아 놓은 카펫 좀 치우려고.”

일리아스가 바닥에 깔아 놓은 카펫을 치웠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타난 것은 검붉은 액체로 바닥에 그린 마법진이었다.

그 액체의 정체를 알아차린 내가 일리아스를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 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어딜 봐서 걱정하지 말란 거지……?”

“이거, 내가 장장 5년 동안 매달렸던 마법진이야.”

“내 말 무시하냐?”

“얼음 수정의 꽃을 백 송이 넘게 갈아 넣어서 완성했지. 정말 쓸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때였다.

조한율 : 아니, 잠깐 잠깐!!

조한율 : 이게 뭐야? 재밍?

파지직!

다시 한번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 ‘고요한 암흑’ 이 발동합니다.

조한율 : ㅁn

그것을 마지막으로 조한율의 메시지가 끊겼다.

그리고…… 나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한율이 메시지 전송을 중단해서가 아니라, 운영자인 그 녀석과 연결되어 있었던 무언가가 끊겨 나갔다는 것을.

“이게 무슨……?”

내 감각을 뒷받침하듯 일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시적으로 운영자의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진이야.”

“이게…… 어떻게 가능해?”

“운영자라고 해도 어차피 인간이니까.”

“그게…….”

그냥 저런 말로 가능한 일이던가.

어이가 없었지만, 일리아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제 방해꾼은 없어졌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랬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을 때마다 스파크가 튀고 필터링이 걸리는 등, 각종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일리아스의 마법진 덕분에 운영자의 간섭이 차단되었다면…….

“그간 어떻게 지냈어?”

나는 떨리는 눈으로 일리아스를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집요한 네크로맨서, 나의 가족이 이제껏 내게 묶여 있던 강대한 족쇄를 풀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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