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2화
푸른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동안 우리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일리아스 입장에서는 미래의 정보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금방 집어치웠다.
그도 그럴 게 내가 계속 타르토스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괜히 내 기준으로 정보를 선별해서 주었다가 그사이에 일리아스가 죽기라도 하면?
이번만 해도 지난 던전과 10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다음 던전은 또 얼마나 시간 차이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꼴은 절대로 못 본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는 이제껏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모두 해 주었다.
그렇게 내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일리아스가 소파에 깊이 몸을 파묻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겪었구나, 레나.”
“그렇지?”
나답지도 않게 어리광부리듯 말이 나온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칭찬을 들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옵타티오의 환상을 본 이후의 나는 정말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까.
하지만 일리아스는 가차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하루도 제대로 안 쉬었겠군. 사람은 그렇게 살면 죽어.”
“……이럴 땐 장하다고 칭찬부터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레나,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 우릴 구하겠답시고 제 목숨을 무슨 쓰레기처럼 수시로 내버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칭찬을 하니.”
“…….”
이런 젠장.
팩트로 사람을 패는 버릇은 변하지 않았군.
친구들을 구하겠다고 몸을 갈아 넣었는데 칭찬은커녕 욕이나 먹다니, 영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그래도 이대로 나만 혼나는 것은 왠지 억울했기에 한마디 반론해 보았다.
“그러는 너도 십 년을 수소문하고 마법진 연구에 매달렸다며.”
운영자가 아무리 같은 인간이라고 한들 시스템의 힘을 제한적으로나마 이용할 수 있으니만큼, 그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진을 만들어 낸다는 건 일반적인 인간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것도 내가 알리시아와 대화하다가 고통을 받았다는 단편적인 정보 하나만 가지고 여기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얼음 수정의 꽃을 갈아 넣었다고 하는 걸 보면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사해의 협곡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일리아스도 도통 제정신으로 한 짓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난 정보 하나 얻겠답시고 맨몸으로 마계에 가진 않았어. 그것도 릴리스가 유독 너한테 집착하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런 짓을?”
그러나 기껏 한 반론도 소용없이 나는 곧 침몰했다.
이거 자칫하다간 뼈도 못 추리겠군. 이래서 오래 사귄 친구와 싸우는 건 불리하구나.
그나마 다행히도 일리아스의 잔소리는 길지 않았다.
“곧 세계가 멸망한다. 아니, 이미 세계가 멸망했다라…… 그리고 그 운명을 바꿀 씨앗이 레나 네 손에 들어갔고…… 씨앗을 사용할 때마다 페트라의 몸에 빙의해서 운명을 바꾸게 된다, 이거지.”
정보를 나열하던 일리아스가 표정을 찡그렸다.
“그런데 왜 하필 페트라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맨 처음 유령성 던전에 들어갔을 때부터 페트라의 몸을 빌렸었다. 그때는 그저 성향이 비슷한 인물에게 빙의한다기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동일 인물에게만 빙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슨 연유가 있을 듯싶었다.
그리고 의문이 하나 더 있다.
‘애초에 나는 어떻게 유령성 던전에 들어가게 된 걸까.’
유령성 던전의 경우 운명의 씨앗을 사용해 생성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들어간 던전이었다.
그런데 그 던전이 바로 타르토스였다.
이런 우연이 존재할 수가 있나?
“흠…….”
일리아스의 눈에 현기가 감돌았다.
따로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는데 홀로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흑마법의 정점을 찍은 녀석이다.
마법사로서의 자질은 물론이고, 한번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집요하게 파고들 뿐 아니라, 머리 자체도 특출하게 좋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또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내가 놓친 것까지 알아차렸을 것이 틀림없다.
“결론 나왔군.”
“뭐? 무슨 결론?”
설마 벌써 세계의 멸망을 막을 방책이라도 나온 건가.
내가 기대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일리아스가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레나, 너 괜히 삽질하지 말고 거기에서 평화롭게 살아. 아무리 봐도 한국이라는 곳이 더 안전해 보인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
그렇게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표정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리아스가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렇게 주먹 쥐지 말고. 나 이제 중년이거든? 네가 한 대 치면 진짜 허리 나가.”
“그러게 왜 헛소리를 하고 X랄이야.”
“아리아드네 님이 없다고 그새 욕이 늘었구나? 뭐…… 그냥 내 바람을 이야기해 봤어.”
“바람이라고?”
“응, 내 바람.”
영원히 떨어져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람이라는 말을 하는 주제에 나를 바라보는 일리아스의 눈길은 따뜻했다.
“나는 말이야, 레나. 네가 평온하게, 다치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어디든 간에 말이야.”
나를 위해 십 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으면서.
그랬으면서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한다.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난다.
“……그걸 나도 너희들에게 바란다는 생각은 안 해?”
그렇기 때문에 일리아스의 말마따나 목숨을 걸어 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런 나더러 안전한 곳에서 타르토스는 신경 쓰지 말고 살라니.
“그렇게 생각해.”
일리아스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그래서 골치가 아픈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일리아스의 표정은 어딘지 오묘했다.
저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원래도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기는 했다만…….
‘답답하네.’
나는 일리아스가 타 준 홍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래도 우유와 설탕을 탄 홍차는 달고 맛있었다.
“그럼 이제 내가 이야기를 들을 차례야.”
일리아스의 심경이 어쨌든 내게도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일리아스 덕에 드디어 필터링 없이 들을 수 있게 된 타르토스의 정보.
“일전에 듣기로는 알리시아가 전 대륙적으로 수배령을 받았다는데, 그거 어떻게 된 거야?”
궁금한 거야 수도 없이 많았다.
가령 지금 다른 애들은 어디에 있는지, 다들 무사한 건지, 왜 너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고 있는지.
하지만 제일 처음 입에서 튀어나온 의문은 지난 던전 이후 가장 마음에 걸리던 일이었다.
알리시아는 당시 부상을 입었는데도 마을로 들어가기를 꺼려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지경이 된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걔가 별소리를 다 했구나.”
일리아스가 묘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가 귀찮은 일을 회피하고 싶어 할 때 자주 보이는 습관이었다.
나도 따라서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나한테 말해 주기 싫은 일?”
알리시아나 일리아스나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삶의 자취를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저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나를 만나기 전까지 숱한 난장판을 겪어야 했다.
그 난장판은 사람의 악의와 경멸, 그리고 목숨으로 피 칠갑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둘 다 내 앞에서 그리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였다.
그래서 나도 두 사람이 과거와 관련된 사건을 맞닥트리게 되면 굳이 깊게 따져 묻지는 않은 편이었다만…….
‘이번에는 그렇게 넘어갈 순 없지.’
지난번 운명의 씨앗은 분명 알리시아의 생존에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알리시아의 생존이 결국 이 타르토스 대륙을 구하는 길로 연결되는 셈.
뭐든 정보를 들어 둬야 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떠나서 순수하게 걱정이 되기도 했고.
한참이 지나 일리아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레나. 너에게도 알 권리가 있긴 하겠지.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길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 시선에 새삼스럽게 내가 타르토스를 떠나 있던 세월이 실감되었다.
“네가 사라진 직후부터 이야기해 볼까.”
일리아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일리아스가 밟아 온 지난 세월의 흔적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최후의 던전을 공략한 후, 친구들은 내가 사라진 것에 당황했지만 일단 부상이 너무 극심했기에 근처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최후의 용인 옵타티오를 공략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일행이 공략에 성공했다는 말을 믿지 않은 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전 대륙에서 20년도 넘게, 총력을 다해 공략에 매진해 왔던 던전이다.
그런 던전을 겨우 다섯 명의 인원으로 공략하다니.
누가 보아도 사기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일행 중 명망이 높은 성녀 아리아드네와 왕자인 루카스가 끼어 있었기에 신빙성이 있었을 뿐, 소위 높으신 분들은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공략 완료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그러다 보니 애초에 던전 공략을 사실로 확인받는 과정 자체가 길게 걸렸다.
하지만 진정한 지옥은 공략이 정말로 성공했음을 깨달았을 때부터 시작이었다.
그야, 당연한 진리라고 여기던 ‘최후의 던전’ 그 자체가 거짓말이었으니까.
옵타티오가 공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던전, 몬스터, 시스템, 그 무엇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 혼란은 곧이어 대륙 전역을 덮쳤다.
그리고 그제야 신전이 나섰다.
최후의 용에 관련된 신탁은 거짓말이었다, 고 밝힌 것이다.
‘이미 저번 던전에서 들은 이야기긴 하지만…….’
알리시아를 만나기 전, 이름 모를 용병 하나를 붙잡았다가 들었던 이야기기는 했다.
그렇지만 일리아스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스럽게 충격적이었다.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예언이 실은 날조된 거짓이었다니.
“시스템이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어.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이제껏 세워 왔던 인간의 법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어졌지.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자 목표가 필요했다…… 그게 교황이 내세운 이유였어.”
“…….”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
일리아스가 내 얼굴을 보며 픽 웃었다.
“거짓은 위선(僞善)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의도가 악은 아니었으니.”
“…….”
솔직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최후의 용, 옵타티오.
그 벽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그것만 정복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이다.
그 희망은 사람에게 내일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일을 꿈꾸는 것은 필연적으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게 만든다.
신전이 내린 예언이 시스템이 나타난 이후의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일종의 목표였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딴 거짓말에 내가 10년 정도 놀아났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일리아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왜 알리시아의 수배령과 연관된 건데?”
그렇게 묻자 일리아스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너는 네 10년이 헛수고에 쓰였다는 데 분노하기보다 알리시아의 일을 먼저 묻는구나.”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물론 거짓말을 한 신전에 분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그 거짓말로 잠시나마 포기했던 삶을 부여잡고 다시 내일을 살고자 일어선 이들도 있었겠지.
게다가, 따져 보면 어쨌든 옵타티오는 SSS급 보스 몬스터로 자생지를 구축해 점점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해 점점 살 곳을 잃어 가고 있었고.
“신전의 거짓말 따위가 없었더라도 옵타티오는 어차피 공략해야 할 몬스터였어.”
“왜?”
“왜냐니…… 위험하잖아.”
“클래스가 용사인 사람다운 발상이네.”
순간적으로 비꼬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쳐다본 일리아스의 표정은 그저 무감했다.
아니, 어쩌면 무척이나 지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장작도 없이 타오르는 푸른 불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갈 곳 잃은 사람들의 원망이 향할 곳을 찾은 거지.”
“……뭐?”
“레나, 사람은 그리 이성적이지도 똑똑하지도 않아.”
인간의 광기에 휩쓸려 시체 속에 버려져, 유년 시절을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남자가 말했다.
“단 하나뿐이었던 목표이자 희망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순순히 납득하고 다음 희망을 찾아갈까? 대답은 ‘아니오’야.”
게다가 타르토스 대륙에서 신전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들이었다.
신전의 위선과 부패를 욕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굶주린 자들에게 구휼미를 베풀고 병든 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신관들은 항상 존재했다.
사실상 빈민 구제 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던 셈이다.
또 일반적인 백성뿐 아니라 귀족이나 왕족에게도 신력을 가진 신관이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그런 신전의 수장인 교황이 거짓말을 했음을 밝혔다.
등을 돌리고 침을 뱉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해하는 자들도 있었다.
혹은 이해해야만 하는 자들도 있었고.
왜냐하면 신전에 등을 돌리는 순간 당장 먹고살 길이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신전은 잘못을 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잘못한, 잘못된 대상을 찾아냈다.
“그런데 마침 그 희망을 부순 것이 하자 있는, 그것도 반신이 괴물인 자라면?”
일리아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반쯤 넋을 놓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화를 냈다.
“야!”
“화를 내도 그게 사실인걸. 심지어 그 혈육은 시체를 부리는 사령술사지.”
일리아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덕분에 여전히 대륙의 절반은 용병왕이 최후의 던전에 수작질을 부렸다고 생각해. 그래서 몬스터도 재앙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고 있지.”
어이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나온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게 말이 돼? 알리시아는 그냥 인간이라고. 걔가 그런 짓을 왜 해? 그럴 능력도 없다고!”
“이런 건 논리나 이성이 아니니까. 이미 믿음의 영역이지.”
현대 한국이라면 단번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을 법한 일이다.
타르토스 대륙에는 통신 수단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탓에 소식이 전파되는 경로는 기본적으로 입소문뿐이다.
한번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부풀려지기 마련.
‘……아니, 그것도 아닌가.’
통신 수단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이나 거짓의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귀를 막은 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요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가.
무엇이 더 자신에게 유리하느냐다.
“희망을 빼앗긴 인간은 그리 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새삼스럽게 배웠어. 그뿐이야.”
어째서 일리아스가 저렇게 무감하게 말하는지 알겠다.
저건 환멸이고, 뿌리 깊은 피로였다.
일리아스는 옵타티오를 해치우면 그 공을 인정받아 자신도, 동생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도저히,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신전이 나서서 자신들의 예언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사람들의 원망이 그 옵타티오를 공략한 사람에게 향했다는 건가?
그것도 알리시아와 일리아스에게.
그렇게 믿는 게 편하니까?
“무슨…… 그딴 게…….”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 가지 말고 나랑 있어.”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꽉 껴안아 줄걸.
“나는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너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알리시아는 어디 있어? 무사한 거야? 아니, 그리고 루카스랑 아리아드네는 뭘 했길래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때였다.
달칵!
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하며 일어섰지만 일리아스는 고개만 돌렸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것은 아까 그 어설픈 모자를 쓴 해골이었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은 듯, 턱뼈가 달그락거렸다.
그것을 본 일리아스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이 온 모양이야.”
꿈틀.
일리아스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손님이라니…….”
내가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나에게도 손님이 찾아왔다.
- 던전 클리어를 위한 선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선행 조건 : ‘일리아스’와의 대화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숨죽이듯, 찬바람과 함께 쳐들어온 황금빛의 글씨.
그리고 떠오른 메인 퀘스트의 내용에 나는 기함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일리아스’를 설득하시오.
- 남은 시간 7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