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4화
“하하하…….”
홀로 남겨지니 그저 망연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말이 되나.
“일리아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게다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더라.
일리아스가 내게 건넨 말.
넌 내 유일한 동생, 이라고 했다.
그럼, 알리시아가 죽었다는 말인가?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았다. 절망이 사고를 잠식하려 들었다.
지난 던전에서 나는 분명히 알리시아를 살렸다. 하지만 현재 던전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건 이상해.’
나는 필사적으로 지난 던전에서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렸다.
- 운명의 씨앗이 성공적으로 싹을 틔웠습니다. 정해진 운명이 변화의 조짐을 보입니다.
그때는 여유가 없어 일단 클리어 조건을 수행하긴 했지만, 왜 알리시아의 생존이 메인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었는지는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생존이 한 세계의 멸망을 좌우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번 던전에서 일리아스를 만나니 이해가 되었다.
알리시아가 죽으면, 일리아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다.
그건 즉 반대로 말하자면, 알리시아가 생존한다면 일리아스는 그런 생각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클리어 조건이 알리시아의 생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알리시아가 죽었을 리 없다.
나는 분명히 운명을 바꾸었으니까.
이건 시스템상으로 보장된 보상이 아니었던가.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야.’
타르토스 대륙은 넓다. 일리아스도 내게 대체 어쩌다 알리시아가 죽었다는 것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알리시아는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초라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짜증 나…….”
억지로라도 알리시아의 생존을 믿지 않으면 여기서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정말로 모두 끝이다.
이대로라면 이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그것도 일리아스의 손에…….
그리고 그렇게 되면 죽는 건 이 대륙만이 아니다.
‘일리아스도 죽겠지.’
물론 일리아스는 내가 아는 한 대륙 최고의 흑마법사다.
그리고 시체를 부리는 사령술사의 특성상 마력만 받쳐 준다면 끊임없이 언데드를 부릴 수 있기에, 만일 적이 된다면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인물 중 하나였다.
당장 협곡 위에서 보았던 그 숱한 해골 병사들과 아이스 골렘만 보더라도 그랬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마법진의 수준을 보아하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일리아스보다도 훨씬 강해진 것이 분명했다.
B루트의 강예나가 만렙을 찍었듯이 일리아스도 만렙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만한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내 다른 동료 두 사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 두 사람이 대륙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일리아스를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들도 일리아스를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은 하겠지만 각자 신분이 있으니만큼 아무래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까.
그나마 루카스야 마검사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리아드네를 이길 순 없어.’
일리아스는 분명 이 대륙 최고의 흑마법사지만 그렇다고 해도 플레이어 간의 상성, 정확히 말하자면 클래스간의 상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가위바위보의 규칙이 존재하듯 흑마법사는 신관에게 이길 수 없다.
아리아드네의 스킬도 스킬이지만, 그 애의 신력은 흑마법사에게는 치명적이다.
또 일리아스는 혼자였다.
흑마법사의 마력이 받쳐 주는 한 언데드를 끊임없이 부릴 수 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한 이야기.
실제 현실 속에서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혼자 힘으로 십만의 군대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
사실 루카스든 아리아드네든 누군가 등판하기 전에 일리아스가 먼저 쓰러질 확률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일리아스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은 완만한 자살에 불과하다.
대륙 스케일의 동반 자살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클리어 조건은 일리아스를 설득하는 것.
그러나 내가 대체 어떻게 일리아스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언젠가 이 대륙으로 돌아올까 싶어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을 미루었다는 내 가족에게.
지금의 내가 이 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72시간인데.
“하…….”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무참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일리아스에게 남은 시간을 의미했다.
이건 일리아스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애도할 시간조차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사지를 묶고 있는 뼛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이것부터 풀어야 하는데.’
달그락거리며 나를 묶어 두고 있는 일리아스의 소환수들이 문제였다. 흰 뼈마디들이 사지를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들러붙었다.
“야, 너희들 이러고 있으면 네 주인이 죽어.”
일단 말을 걸어 보았지만 딱히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았다.
아까 보았던 모자 쓴 해골처럼 지능이 있는 고위의 소환수는 아닌 듯했다.
하기야 이 공간에서 시스템 자체를 차단시킨 것이라면 마력이 많이 소모되는 고위의 언데드를 부릴 수는 없겠지. 아마 아주 미약하고 간단한 명령으로 움직이는 놈들일 것이다.
본래라면 손가락 하나로도 떨구어 내 버릴 정도로 약한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일리아스가 바닥에 깔아 놓은 마법진이 힘을 빼앗아 가고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아이템창은 물론이고 각종 스킬도 사용 불가.
“머리 하나는 진짜 좋다니까…….”
역시 일리아스는 일리아스라고 할까.
아마 시스템의 힘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갑자기 무력해진 것에 당황해서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랐다.
‘어쩐지 익숙해졌단 말이지.’
한국에서 강제로 1렙으로 돌아갔던 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는 말을 나처럼 잘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다.
쿵!
나는 일단 머리를 의자의 등받이에 부딪혀 보았다.
달그락!
내 돌발 행동에 놀란 뼛조각들이 움직였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구속하는 부분은 손목과 발목뿐인가.’
즉 머리와 몸통 정도는 힘을 주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방금 머리를 부딪혀 본 결과 별로 아프지 않았다.
아마 사지에 들어가는 힘을 약화시키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강화한 육체는 그대로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해 볼 만하지.’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무엇 하나 대단한 것은 없는 소박한 집이었다.
장작 없이 타오르는 난로와 아직 홍차가 담겨 있던 테이블.
그걸 확인한 나는 전력으로 몸을 굴렸다.
콰당!
앉아 있던 의자가 옆으로 넘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덕분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다행히 기절하진 않았다.
손목과 발목에 수갑처럼 감겨 있는 뼈들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일리아스가 내린 명령은 의자에 나를 묶어 두라는 것 정도였겠지.’
그렇다면 이 의자를 부수면 소환수들도 구속력을 잃게 된다는 거다.
나는 몸을 들썩이며 바닥에 부딪혀 의자를 부수려고 해 보았다.
하지만 의자가 생각보다 단단한 것인지 혹은 내 힘이 약해서인지, 약간 나무 부스러기가 일어나긴 해도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몇 번 더 몸부림을 치던 나는 결국 이 방법으로는 의자를 부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반인의 근력이란 무력하군.
‘이렇게 되면 의자를 부술 방법이…….’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난로가 있었다.
나를 배려해서인지 일리아스가 켜 두고 간 난로에는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아무리 육체가 강화되었다고는 해도 불로 의자를 태우는 짓은 미친 것 같은데.
어쨌든 불에 데면 아프니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 눈을 굴리는데, 아까 일리아스가 내 무릎에 덮어 주었던 담요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웃긴 놈이다.
대륙을 멸망시키네 어쩌네 하면서 내 무릎에는 담요를 덮어 주고 난로에는 불을 피우고 떠나다니.
불특정 다수의 죽음을 바라면서 그래도 내게는 행복하라고 했다.
스스로 죽으러 떠나면서, 내게는 살라고 했다.
“…….”
나는 결국 결심했다.
‘이 나이 먹고 불장난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 어디 해 보자고.
* * *
일리아스는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눈이 멀 것 같은 흰빛의 지평선 위로 천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 오래되었으나 언제 보아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죽, 죽여라…….”
그러나, 그 풍경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일리아스는 제 앞에 무릎이 꿇린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마나 분한지 눈밭 위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일리아스와 시선이 마주친 기사가 이를 갈았다.
“이 비겁한 네크로맨서 놈이…… 나를 모욕할 생각이라면……!”
“모욕이라.”
일리아스는 다시 지평선으로 눈을 돌렸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하던 설원은 지금, 더러워져 있었다.
기사가 이끌던 병사들 수십 명은 이미 절명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네크로맨서를 죽이고자 꾸려진 추살대였다.
그들은 언데드 병사들에게 죽는 그 순간까지도 꼿꼿했다.
아마도 그들이 정의롭고 당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이 세상의 부정한 것, 악을 징벌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정의한 악(悪)은 일리아스였다.
설원에 홀로 꼿꼿이 선 악의 형상을 향해 기사가 침을 뱉었다.
“사악한 흑마법사여, 너를 죽이러 왕자님께서 곧 출병할 것…… 크억!”
해골 병사의 검날에 기사의 목이 날았다.
설원 위에 새로운 피가 흩뿌려졌다.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화를 내기에는 너무 오래 들은 말이었다.
그저 피로할 뿐이었다.
‘사악한 흑마법사.’
그야말로 그 단어에 어울리는 작자가 아닌가. 일리아스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정의감으로 일어선 누군가를 죽였고.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들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희망이라…….’
일리아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때는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절망이 아무리 어둡다고는 해도 밝지 않는 새벽은 없듯이, 언젠가는 이 어둠이 걷힐 날이 올 것이라고.
악이 단죄되고 선이 승리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러나, 일리아스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것이 어둠이었다면 희망이 빛이 되어 밝힐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악도 아니었다.
이건 그저 인간의 욕망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 살아가려는 욕망.
그저 제 한 몸 살아가는 것에 벅차 다른 것을 외면하고, 합리라는 미명하에 타인을 짓밟는 이기적인 욕망.
그렇기에, 인간에게 외면당해 시체 속에서 살아남은 사령술사에게는 이제 한 가지 길밖에 남지 않았다.
악의와 한없이 닮은, 타인을 짓밟고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그 순수한 욕망, 인간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
죽음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옵타티오를 공략하지 않을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던 일리아스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옵타티오를 공략하러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어릴 때 헤어진 여동생을 만났고, 자신을 경멸하지 않는 친구들을 만났다.
신분의 차이가 있는데도 왕자와 성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동료로서 받아들여 주었고, 그뿐만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 용사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들 옆에 있으면 자신 또한 평범한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 부질없는 꿈이 되었지만.
일리아스는 마력이 휘감긴 완드를 든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협곡에서는 상당히 멀어진 후였다.
그리고 협곡에서부터 이곳, 일리아스가 서 있는 곳까지.
쿵!
설원을 꽉 채울 만큼 끝없이 늘어선 언데드들이 발을 굴렀다.
그들에게서 죽음을 빼앗은 주인을 바라보는 텅 빈 눈동자 속에서는 끝없는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짓밟기에는 충분한 숫자였다.
“레나가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이 많은 애니까 불가능하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빨리 잊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용서해 주기를.
“그건 너무 무리한 부탁이려나?”
그 애는 인간의 용사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리아스는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설원에 홀로 선 일리아스를 감시하듯 내려다보는 시선.
아마도, 시스템의 힘을 이용한 운영자의 시선이리라.
일리아스는 태양이 떠올라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당신은 부디 나를 용서하시길.”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결말이기도 할 테니까.
* * *
한편, 그 시각.
“이게 대체 뭐지?”
조한율도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시야가 차단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이렇게 되면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더라도 강예나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게다가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이거 공략 가능하긴 한 거야?”
강예나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차단되기는 했지만 운영자 권한은 여전했기에 던전의 상세 사항은 조회가 가능했다.
앞으로 강예나가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규모와 보스 몬스터를 보니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강예나가 역전의 용사라고 할지언정 이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다.
적어도, 혼자서는.
‘도와주고 싶은데…….’
하지만 조한율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운영자.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던전에 들어간 강예나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리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타르타른지 뭔지, 상관도 없는 다른 세계를 이쯤 도운 것도 이미 과한 선의였다.
조한율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건 이 대한민국의 안위다.
그러니 여기서 멈춰야 했다.
그게 어딜 보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예나 씨는 도왔지.’
돕지 않는 게 더 유리했을 순간들이 한없이 많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무리지만.’
운영자인 만큼 직접 저 던전에 뛰어 들어갈 수도 없다.
여기서 저 던전에 간섭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국 서버에 무리가 오니까.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조한율은 시스템 메시지창을 띄웠다.
메시지를 보낼 상대는 정해져 있었다.
- 야, 이우연. 너 지금 들어가 있는 던전, 공략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