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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6화 (24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6화

깊은 새벽녘.

늦은 시간에 술에 반쯤 취한 채 꾸벅꾸벅 졸던 여관의 주인장은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한 남자가 싸늘한 새벽의 한기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지 위압적인 분위기에 주인이 긴장하려는 찰나, 남자가 테이블 위에 조용하지만 우아한 동작으로 은화 한 닢을 내려놓았다.

“술 한 잔 주겠나?”

주인은 은화를 소매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나 숙박은?”

“둘 다 필요 없어. 술만 한 잔 받지.”

“그럼 거스름돈이 남는데. 어디 보자 …….”

“괜찮아. 넣어 두라고.”

처음의 위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후한 손님이었다.

주인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배포 큰 손님이구만! 이거 최고로 좋은 술을 대접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물자 수급이 별로 좋지 않아서 말이야.”

본래대로라면 몬스터 퇴치나 아이템 수집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 오가며 물자를 나르는 의뢰도 같이 수행해 주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한 네크로맨서가 얼음 협곡에 자리 잡은 이후로는 용병들의 발걸음이 끊기며 자연히 물자 수급도 어려워졌다.

물론 여관 주인 본인이 근처 영지에서 물자를 사 올 수도 있겠지만, 이 마지막 마을에 사는 이들은 보통 영주의 과도한 세금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온 이들이었다.

괜히 도시로 들어갔다가 트집이라도 잡히면 그대로 감옥, 재수 없으면 사형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물자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틀만 일찍 왔으면 여기 이 술이 반 병 정도는 남아 있었는데. 크, 아쉽게 됐구먼.”

아직 치우지 않아 테이블 위에 구르고 있는 빈 술병을 가리키며 주인은 입맛을 다셨다.

“이틀 전에 왔던 손님이랑 대작을 하다가 다 비워 버렸거든. 아, 그래도 두 번째로 좋은 술을 가져오지. 좀 기다리게.”

그렇게 말하자 어쩐지 후드를 쓴 남자의 시선이 잠시 빈 술병에 머문 듯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거두어졌다.

남자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

주인이 창고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왔을 때, 남자는 어느새 후드를 벗고 여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마 나이는 40대 즈음 되었을까. 고생한 티는 나지만 젊었을 때는 꽤 인기 많았을 법한 얼굴이었다.

“자, 자. 마시자고!”

최근 손님이 별로 없어 이렇게 술 상대 겸 말 상대가 생기면 제법 즐거웠다.

무엇보다 후한 손님 상대라면 더더욱.

마침 말할 거리도 많았다.

“그거 아나? 하루 전쯤에 기사 양반들이 이 마을을 들러서 저 협곡으로 갔다네. 기사 나으리들 얼굴을 보니 얼마나 간이 콩알 만해지든지.”

힘도 뭣도 없는 일반 평민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저 눈 딱 감고 지나가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사들의 목적이 마을 주민은 아니었기에 식량을 약간 바치는 정도에서 끝나기는 했다.

물론 그것만 해도 손해가 크기는 했지만, 죽지 않은 것이 어딘가. 법을 피해 도망 온 자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니만큼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하여간 높으신 나으리들이란.”

주인의 투덜거림에 후드를 벗은 남자가 입꼬리를 미묘하게 끌어올렸다.

“그래도 별일 없었다면 다행이군. 그나저나 이런 오지에 용병도 아니고 기사단이라니, 무슨 몬스터라도 잡으러 간다던가?”

“몬스터가 아니라 네크로맨서를 잡으러 간다더구만.”

네크로맨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었다.

시체를 제 수족으로 부리는 것만 해도 꺼림칙한데, 곁에 있으면 멀쩡한 장정도 병이 들어 죽는다고 했다.

그야말로 불온함의 상징이었다.

술을 한 모금 마신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호오…… 나도 그 소문은 들었지. 퇴치에 성공하면 좋겠군.”

만일 주인이 술에 취해 있지 않았더라면 맞장구를 치는 그 목소리에 열기가 없음을 알아차렸겠지만, 불행하게도 북부의 술은 독했다.

불콰하게 취한 주인이 술병을 흔들었다.

“뭐, 솔직히 성공하든 어찌 됐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야.”

“왜? 네크로맨서가 죽으면 이 마을에도 다시 활기가 돌 텐데.”

그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네크로맨서가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에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들었던 삶이 좀 더 팍팍해졌으니까.

“하지만 말이지, 그 네크로맨서가 십 년 전쯤 옵타티오, 그 망할 용 새낄 잡은 용사 일행이라는 소문이 있더라고.”

그 말에 평온하던 남자의 얼굴에 일순 금이 갔다.

그러나 역시 술에 취한 주인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살던 곳은 애초에 그 도마뱀 새끼가 둥지를 틀어서 망해 버렸거든. 그러다가 이 마을까지 흘러든 건데…… 하여간, 그래서 아무리 사령술사라도 약간은 고마운 마음도 없지는 않다, 이거야. 내 원수를 갚아 준 셈이니.”

물론 그래 보았자 상대는 불온한 네크로맨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재앙을 불러오는 불길한 까마귀.

그렇기에 그 까마귀를 누가 잡아 죽인다고 하면 구태여 말릴 정도의 온기도, 힘도, 여유도 없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중에 그래도 그 불길한 까마귀에게 약간의 은혜가 있으니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떠올리다가, 역시 삶에 지쳐 그런 생각조차 저 멀리 쓸려 떠내려간다.

이렇게 술에 취해 지나가는 한탄으로 지껄일 정도의, 딱 그 정도의 마음이다.

결국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높으신 분들의 뜻이란 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만한 공을 세웠는데 굳이 죽여야 하나?”

그런,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

그럼에도 그것을 듣는 이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되었다.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주인을 보며 일리아스는 눈을 감았다.

하잘것없고, 볼품없고, 성의도 없는 감사였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완드에 박혀 있는 붉은 마력석이 번쩍였다.

지금 일리아스의 언데드 소환수들은 여관 밖에서 조용히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깊은 어둠이 깔린 새벽.

만일 지금이라도 여관 주인이 문밖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빼곡히 늘어선 언데드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무것도 모르는, 알 생각도 없는 이의 목숨 따위는 손쉽게 앗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게다가 기사 양반들 말로는 곧 삼백 명이 추가로 올 거라고 하더군. 듣자 하니 성기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던데, 아마 아무리 대단한 네크로맨서도 살아남기 힘들 게야.”

“……그렇군.”

일리아스는 남은 술을 털어놓고 빈 잔을 내려놓고서, 검은 망토를 휘감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이 멍한 눈으로 일리아스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벌써 가는 겐가? 술이 남았는데.”

“그건 답례야.”

“답례?”

“언젠가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준 답례.”

비록 이제는 한참 늦었을지라도.

일리아스는 발걸음을 돌려 여관을 나섰다.

여관 주인은, 방금 전 자신이 잡은 기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술에 취해 사신의 등에 대고 인사를 했다.

“잘 가게!”

*   *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설원이나 드높은 하늘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은 잿빛의 성벽.

“단장님.”

그리고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니, 누군가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나는 숨을 들이켰다.

이미 한 번 본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사 메이.”

푸른 녹음의 눈동자를 가진 기사가 가벼운 정복 차림으로 꼿꼿한 나무처럼 서 있었다.

그 어엿한 기사다운 모습에 나는 상황도 잊고 잠시 감회에 휩싸였다.

“용사님, 그거 저한테 주세요.”

그 당돌한 꼬마가, 정말로 20년 후에 이렇게 자랐단 말이지.

‘아니, 잠깐만. 메이가 저런 모습으로 여기 있다는 건…….’

나는 그제야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여기도 한 번 와 보았던 곳이다.

유령만이 가득했던, 저주에 걸린 오래된 성의 모습. 그러나 지금은 그 성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이렇게, 페트라와 엘리사 메이처럼.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건…….’

지난번 던전 클리어 후 페트라의 기억을 보상으로 받았을 때와 같았다.

나는 문득 시야 한구석에서 뿌옇게 흐려진 시스템 메시지를 발견했다.

- 클래스 재적합 심사 중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 클래스 재적합 심사가 이루어지 않습니다.

아, 그렇군.

클래스 부적합으로 판정되어 죽을 뻔했다고는 해도, 현재 나는 내 본신이 아니라 페트라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 상태였다. 영혼과 육체가 다른 상태이다 보니 오류가 생긴 모양이었다.

덕분에 페트라의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된 거고.

‘그래봤자 아주 잠깐의 유예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그렇다면 이건…… 내가 운명을 바꾸기 전의 기억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멸망한 세계의 기억.

내가, 아니, 페트라가 다시 성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군대가 빽빽하게 주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또한 익숙한 광경이었다.

이 성을 함락하고자 몰려온 병사들 앞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기사.

전투를 준비하는 성안 주민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은 모두, 페트라라고 하는 한 기사단장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그 기사에게 엘리사 메이가 물었다.

“점점 기사들 사이에서도 항복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단테 경을 중심으로요. 적어도 일반 백성들의 피해를 줄일 수는 있을 테니, 이해 가지 않는 의견은 아닙니다.”

“…….”

“물론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은 기사로서는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수치이자 오명입니다만…… 단장님, 어쩌실 겁니까?”

“투항할 거다.”

대답은 망설이지 않고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메이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그래. 투항하면 일반 백성의 안전과, 주군의 목숨만은 살려 준다고 하더군.”

페트라가 말하는 보장에는 자신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말을 믿으십니까?”

“그래도 일국의 황제다. 봉신 앞에서 한 약속은 어기기 힘들어. 게다가…….”

그렇게 말한 페트라의 시선이 잠시 첨탑을 향했다.

그 첨탑에 누가 잠들어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주군의 몸은 이제 한계야. 이런 결정을 모두 내게 일임하실 정도로. 한시라도 빨리 신전과 접촉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해. 그러려면…….”

“그러나 교황 선출을 한답시고 신전이 봉문을 선언한 지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지금 투항하든 아니든, 어차피…….”

“그래도 희망은 가져 볼 수 있겠지. 또, 일반 백성들의 희생도 줄일 수 있을 테고.”

“……페트라.”

엘리사 메이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황제가 성주님을 살려 둘 리 없어. 너도 알잖아.”

“그럼 이대로 싸우다가 전멸하는 길이 명예로운 건가?”

“페트라!”

“그래, 엘리사 메이 경.”

페트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메이를 마주 보는 시선은 단호했다.

“내가 우리 기사단의 단장이다.”

상급자로서 명령하는 눈길에 엘리사 메이의 몸이 굳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온전히 내 책임이다. 오명 또한 내 몫이고.”

“그런, 건…….”

페트라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은 듣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내일 아침 성문을 개방한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고 있다.

황제의 군대는 페트라의 항복 후 무혈로 입성하였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기사의 팔은 검을 휘두르기 전에 잘려 나갔고.

“아무 죄도 없는 백성들을 이렇게 무참하게 살해하다니!”

적의 검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 갔으며.

“헤이든 단테!”

기사들은 배신자의 검에 차례로 꿰뚫렸다.

고결한 희생 따위 없는 무참한 학살만이 이어졌다.

그것이 페트라가 마주한 삶이었다.

성안이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화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 번의 판단 착오가 불러 온 쓰디쓴 결말.

검을 들어 저항했으나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소꿉친구이자 가장 신뢰하는 기사가 페트라의 등을 지켰다.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내가 여기서 죽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대신 도망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페트라의 등에는 첨탑에서 겨우 구출해 낸 성주의 몸이 들려 있었다.

반쯤 몸이 썩어 가는 환자를 업고서, 페트라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피눈물이 나는 고통과 함께.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추적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숨이 점점 흐려지는 주군을 업은 채 페트라는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주세요.

그렇게 빌고, 또 빌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마침내 지키던 주군의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고, 페트라는 그때까지 휘두르던 검을 놓았다.

이제는 지킬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린 손이었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죽어라!”

적의 검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기사 페트라의 삶이 막 끝나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편한 종말은 찾아오지 않았다.

의아함에 눈을 떴을 때였다.

“제가…… 너무 늦었군요.”

흰 신관복을 입은 여자가 페트라를 돌아보았다.

아리아드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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