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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8화 (24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48화

“우와아아악!”

양태원은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화룡이 뿜어낸 불이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바닥에 그을린 자국을 남겼다.

“대형을 정렬해!”

양태원과 함께 지상에서 화룡을 공략 중인 다른 헌터가 외쳤다.

영 체력이 달리는 양태원과는 다르게 S급 몬스터 상대로도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었다.

하기야 그것도 그럴 것이, 현재 여기에 있는 헌터들은 이제껏 몇 번이나 S급 혹은 SS급의 몬스터를 공략해 본 몸이었다.

더불어 강예나의 특급 훈련도.

영원 길드의 검사가 대형 앞에서 달려 나가며 외쳤다.

“으하하하하! 도마뱀 꼬리가 거세 봤자 검보다 날카롭겠어?!”

‘아니, 날카롭지 않나?’

“그럼! 강예나보다 덜 무서운 것 같은데!”

도대체 저 검사들은 무슨 지옥을 보고 온 걸까?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던 간에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검사들이 대형을 갖추어 화룡을 상대하는 사이 마법사들은 원거리에서 딜을 넣는다는, 지극히 정석적인 플레이.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소와 달리 검사들 사이에 김성연이나 이선 같은 탑급의 헌터가 없어도 공략이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제껏 쌓아 온 공략 경험이 드디어 빛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양태원은 눈물 콧물을 빼고 있었다.

“급급여율…… 으아아악!”

평소에 자랑하던 부적도 화룡이 발광하며 날뛰는 불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부적이 불타며 재가 되어 흩날렸다.

청룡이 안타깝다는 듯 양태원의 주위를 빙빙 돌았지만 이번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게 눈앞의 몬스터는 선도 악도 아닌 그저 생물.

무당의 힘이 먹히지 않는 한 양태원 자신의 힘으로만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이런 던전에 굳이 따라오지는 않았지만…….

“이우연 개자시이이이익!”

형이고 뭐고 존칭 따윈 집어 던진 양태원은 악을 쓰며, 휘둘러지는 용의 꼬리를 피해 검사들과 함께 후방으로 달렸다.

본래대로라면 히든 클래스인 만큼 후방에서 보조해야 했지만, 지금 이렇게 전방에 나서게 된 것은 모두 이우연 탓이었기 때문이다.

이우연의 지론은 이랬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고는 해도, 아니, 히든 클래스일수록 기본적으로 몸을 단련해야 한다는 것.

말이야 옳은 말이긴 했다.

특히 무당 클래스의 경우 상대할 수 있는 적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스파르타 아니냐고오!!”

검사들의 공격 페이즈에 맞추어 부채에 마력을 불어넣어 화룡의 비늘을 내리쳐 보았지만 부족한 근력으로는 턱도 없었다.

양태원은 화룡의 비늘이 머금고 있는 열기 때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콧물을 삼켰다.

“이우연 이 나쁜 자식!”

그리고, 그 모습을 공중에 떠올라 지켜보고 있던 이우연은 무심하게 화룡에게로 마력구를 던지며 말했다.

“제대로 힘을 써라.”

“으아아악! 못 하겠다니까!”

저 웬수 같은 놈 같으니라고.

이우연은 혀를 찼다.

‘저 자식은 좀 더 굴러야 해.’

타고난 근골은 나쁘지 않은데 그놈의 신력만 믿고 하라는 단련은 하지 않으며 뺀질대기만 한다.

그나마 좀 굴리고 있었던 걸, 저를 예뻐하는 강예나를 믿고 뻗대면서 은근히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강예나 없는 사이에 좀 단단히 굴려 놔야지.

물론 죽지는 않게 배려는 하고 있다.

쿠콰과과광!!

이우연이 던진 마력구에 땅이 깊숙이 파였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양태원이 밑에서 왁왁댔다.

“그렇게 딴청 피우지 말고 힘 남아돌면 와서 도…… 우와악!”

그렇지만, 사실 이우연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우연은 불퉁한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빌어먹을 운영자의 재촉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조한율 : 아, 빨리 공략 좀 끝내고 여기로 와 봐.

“그렇게 보채지 마. 나도 떨거지들 데리고 S급 몬스터 공략 중이거든? 이게 뭐 쉬운 일인 줄 알아?”

조한율 : 그래서 언제 끝나냐고!

이우연은 가볍게 혀를 찼다.

사실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이우연도 평온한 심정은 아니었다.

조한율에게 이미 상황은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각해?”

조한율 : 연락이 끊긴 채 하루가 지났어. 완전히 소통 불가 상태라고. 어쩌면…….

현재 조한율 시점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연락이 닿았나 했는데 강예나는 돕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연락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운영자 모드에서도 강예나라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현재 의식을 잃은 상태거나, 혹은…….

이우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죽었을 수도 있다?”

조한율 : 그래!

이우연은 대충 양태원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근처로 마력구를 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근데 나는 여기서 그 운명의 씨앗인지 뭔지를 얻으려고 던전을 공략 중인데 뭘 어쩌라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다소 냉정하기도 했다.

조한율이 분개했다.

조한율 : 이 매정한 놈이?! 너 지금 예나 씨가 저쪽에 돌아간다니까 삐져서 그런 거지?

“……새벽에 잠은 안 자고 쥐새끼처럼 남의 이야기나 엿들었냐? 잠 부족하다더니 이거 완전 거짓말쟁이 아냐?”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건 귀엽게 삐진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운한 거였다.

솔직히 누가 봐도 서운할 상황이지 않나? 동료로서든 이성적으로든 호감을 쌓아 나가고 있던 상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겠다는데.

하지만 지금의 이 말은 그런 감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지극히 이성적인 머리로, 이우연은 말했다.

“조한율, 너 정신 똑바로 차려. 네가 우선해야 할 곳은 한국이야.”

당장 눈앞에서도 거대한 화룡이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화염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공략 끝나더라도 난 저쪽 던전에는 오래 못 들어가 있어. 강예나가 없다면 나라도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그건 가감 없는 사실이었다.

현재 한국 선두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겨우 30대에 들어서는 것에 비해 이우연의 레벨은 이미 40을 넘어섰다. 게다가 광역 딜도 가능한 마검사인 만큼 이우연이라는 패는 무척 유용했다.

만일 한국에 무슨 재난이라도 벌어진다면 이우연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했다.

조한율 : 야,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하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매정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했다.

조한율은 자신의 화면에 로그로 표시되는 이우연의 말을 보며 아연해졌다.

‘아니, 본인 목숨 걸고 예나 씨 구하러 갈 때는 언제고?’

설마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돕지 않겠다고 할 줄이야.

물론 머리로는 이우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리고 조한율 자신도 이 이상 나서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이우연의 말은 그대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내가 그쪽 던전에 가 봤자 강예나한테 도움도 안 돼. 성향이 비슷한 사람한테 빙의하는 형식으로 들어간다면서?”

지난번 유령성에서 이우연은 하필 성주에게 빙의했었고, 그 덕에 당시 왜인지는 몰라도 공략에 필요한 기억조차 이어받지 못해 조금 애를 먹었다.

‘만일 그게 내가 바이러스라 그런 일이 생긴 거라면…….’

저쪽 던전에 진입하는 것이 오히려 공략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강예나의 상황을 들어 보면 던전 공략에 마검사의 화력보다는 정보가 더 필요한 듯했다.

이우연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남은 운명의 씨앗을 대신 모아 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야.”

강예나가 도와 달라고 한 것도 그 부분이다.

그렇기에 이우연은 지금 여기에 있다.

“차라리 다른 방면으로 도울 방법을 알아 봐. 아이템만 전해 준다든지…….”

‘그야 물론 서운하긴 해도.’

영영 헤어진다면 슬플 것이다.

어쩌면 함께한 순간을 평생 기억하면서, 흉터처럼 그 기억을 지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상을 구하는 것이 강예나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역시 도와주고 싶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니만큼 더욱더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잘하면 강예나가 두 번째 공략을 끝내기도 전에 씨앗을 두개는 더 모을 수도 있었다. 이선 또한 다른 던전 공략에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조한율. 네가 0과 1로만 세상을 보다 보니 놓치는 게 있는데.”

이우연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용사는 그런 걸로는 안 죽어.”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강예나가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신뢰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조한율 : ……너 저번 던전에서 예나 씨 한 번 죽었을 때 질질 짜지 않았냐?

“닥쳐, 좀.”

*   *   *

마지막 마을을 지나친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길던 설원도 거의 끝이 보이던 지점.

일리아스는 해골 말 위에 올라탄 채 설원이 끝나는 곳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곳을 넘어서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영역이다.

서서히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보이고 있었다. 아마 조금 더 지나면 성이 보일 것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괴물 자식.”

일리아스는 고개를 들었다.

설원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추살대와 마주한 것이다.

규모는 듣던 것보다는 적었다.

기껏해야 백여 명 정도일까.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인 데다, 대륙 또한 혼돈의 시기이니 병력을 모으기 힘들 거란 계산을 하기는 했다.

병력 또한 돈이니까.

그러나 그 잡다한 병졸들 사이, 백마를 탄 한 기사가 있었다.

어두운 새벽 속에서도 횃불의 빛을 받아 흰 투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몸에 두른 풀 플레이트는 수정처럼 맑았다.

성기사였다.

고귀한 할버드를 든 은발의 기사.

“은의 기사, 당신까지 오다니.”

그것도,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성기사 중 하나였다.

옵타티오를 잡기 위해 돌아다닐 때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기사가 일리아스를 보고 고개를 까닥였다.

“새벽을 걷는 방랑자여.”

오랜만에 듣는 이명에 일리아스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저 플레이어명을 정한 것은 젊은 날의 치기였다.

네크로맨서인 자신에게는 빛이 들 날이 없겠지만, 그래도 어둠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낮도 밤도 아닌 새벽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기사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그대가 타락한 종자임을 이미 알아보고 성녀님께 고했거늘, 기어이 일을 치는구나.”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따위 헛소리를 잘도 하는군.”

그의 시선이 일리아스가 뒤에 끌고 있는 해골 군단을 보았다.

“족히 천 구는 되어 보이는군. 저렇게 많은 이들의 영혼을 모독해야 했나.”

그의 혐오는 당연한 일이었다.

성기사에게 네크로맨서란 죽은 자를 모독하는 악당이었다. 당연히 처결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 신념에는 한 치의 의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오히려 일리아스가 네크로맨서임을 알면서도 행동을 같이했던 성녀, 아리아드네가 특이 케이스였다.

“어리던 일리아스 님은 그저 살아남고자 행동하신 것뿐. 게다가 그 힘은 세상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리 찬란하지도 사악하지도 않다.

일리아스의 삶 또한 그랬다.

일리아스는 재해에 휩쓸려 부모에게 버려졌고, 그 재해를 막으려던 어른들에게 이용당했으며, 또다시 버려졌다.

세상은 언제나 불합리했고 약자에게 유독 잔혹했다. 살아남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손가락질뿐이었다.

“네크로맨서, 그대를 처단하겠다.”

그래, 마치 지금처럼.

자신을 향해 전투를 선언하는 성기사를 보며 일리아스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때는 이러한 삶에 관심을 기울여 줬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찬란하던 빛 또한 이 북부의 황량한 눈밭에는 찾아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별수 있나.

그들이 그렇게 바라는 괴물이 되어 주는 수밖에.

여전히 어두운 새벽이었다.

일리아스는 마력을 일으켰다. 발치에 거대한 회오리처럼 마력이 요동쳤다.

“앞으로 나아가라.”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뒤에 늘어선 언데드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진군했다. 언데드들이 지나가는 길이 사기로 검게 물들었다.

천 구쯤 되는 언데드가 진군하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상대 또한 쉽게 굴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마라! 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할지니.”

성기사가 거대한 할버드를 쥐고 휘둘렀다.

“이곳은 신성한 영역이다!”

화아아악!

그 말과 함께 땅에 거대한 금빛의 진이 떠올랐다.

이미 예상했던 바라 일리아스는 놀라지 않았다.

‘성기사의 절대 영역 선포로군.’

성기사 클래스의 고유 스킬.

모든 부정한 것을 멸하는 지역을 설정하는 스킬이다.

임의로 설정된 해당 영역 안의 아군에게는 버프를 주며, 마법사 중에서도 음의 기운을 다루는 네크로맨서가 다가가면 치명적인 디버프를 입게 된다.

일리아스의 언데드 군대를 상대로 방어진을 친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스 골렘.”

얼음꽃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인 두 체가 앞으로 나섰다.

성역에 있음에도 그 위용에 질린 몇 사람이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골렘까지……?”

“저건 성역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 않나?!”

성기사 또한 이를 갈았다.

“진짜 작정을 했군!”

일리아스는 조용히 웃었다.

“저 하나 죽이자고 백여 명을 데려온 이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만?”

“이놈이!”

성기사의 입에서 노호가 터져 나왔다.

“내가, 네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그런데, 그때였다.

콰콰콰쾅!

멀리서 무언가가 날아와, 일리아스를 스쳐 지나가 병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피해!”

마력구가 터졌다.

갑작스러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성기사마저 당황했다.

“대체 어떻게?”

그것도 그럴 것이,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인 일리아스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간교한 수작이냐!”

“…….”

하지만, 일리아스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정말로 몰랐던가?

일리아스는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언데드 군단을 뚫고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아니, 언데드들이 일리아스의 명령 없이도 알아서 길을 내 주고 있었다.

소환수를 만들 때 일리아스가 걸어 놓은 금제 때문이었다.

그들의 주인이 설정한 ‘절대 공격하지 말라’는 대상이 존재하기에.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달려올 이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그 애가.

내가 그렇게 버려두고 왔는데.

휙!

질풍이 일었다.

그리고 익숙한 모습이, 일리아스를 스쳐 지나갔다.

손에는 역시 낯익은 검이 들려 있다.

“……레나! 그만둬!”

일리아스는 성기사를 향해 달려드는 레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것도 그럴 것이, 레나의 클래스는 용사.

성력과 비슷한 힘을 다루니만큼, 저 영역에 디버프를 받지는 않아도 깨부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성역 안에 있는 성기사가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성기사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할버드를 쥔 팔을 휘두르려 했다.

“감히, 어딜!”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와장창!

“커헉!”

유리가 깨져 나가듯 절대 성역의 힘이 공중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빠아아아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주먹에 맞은 성기사가 거대한 할버드를 놓치며 단번에 낙마했다.

“커헉!”

절대 영역이 일부 파괴되어 충격을 받은 데다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기사가 바닥을 굴렀다.

병사들이 경악했다.

“기, 기사님!”

“은의 기사가 낙마했다!”

“아니, 성역을 어떻게……?!”

그리고 그 혼돈 속에서 레나가 외쳤다.

“야, 일리아스!”

그 부름에 일리아스는 상황도 잊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으, 응?”

어설프고 얼빠진 대답에 만족한 듯 레나가 일리아스를 돌아보며 웃었다.

비록 페트라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분명 레나의 것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씩 웃는 모습.

불안해하는 누군가를 달랠 때 용사가 으레 짓는 미소다.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은 얼굴로, 레나가 사람 셋을 한꺼번에 더 낙마시키며 외쳤다.

원망도, 실망도 없는 목소리로.

“나 드디어 레벨 업 했다!!”

하잘것없는 말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 다 부숴 버릴 수 있다, 이거야!”

뻐어억!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레나가 휘두른 검풍에 달려들던 병사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졌다.

그 위용은 일리아스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거의 뭐, 양 떼 사이에 풀어 놓은 늑대 같았다.

“어, 어떻게 이런 강자가!”

“어찌하여 네크로맨서 따위의 편을 든다는 말인가!”

성역 안에서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는 레나를 향해 겨우 정신을 차린 성기사 또한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성검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마도 레나의 검이 성스러운 빛을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찌하여 네크로맨서에게 맞서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공격하는 건가! 우리는 악에 맞서 싸우는……!”

“X까라 진짜!”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

“너희들 같은 게 뭐가 선이야. 왜 일리아스가 악이야!”

도저히 용사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저 아이가 용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다.

저런 사람이 아직 이 세상에 있다면.

비록 내게 유독 잔혹했던 세상일지라도, 어딘가에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일 테니까.

“일리아스는 살아남으려고 했을 뿐이야. 그런 인간을 외면한 건,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지한 건 네놈들이다!”

그 희망이 지금 피를 토하는 것처럼 외치고 있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그게 레나가 선택한 길이었다.

세상이 정의한 선악에 불의를 느꼈다면.

만일, 세상이 잘못되었다면.

“이 녀석은 너와 같은 인간이라는 걸!”

세상 쪽을 때려 부순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힘들다고 할지라도.

타인에게서 이해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세상 모두가 적이 되더라도.

그것이 옳은 길이라면 나아갈 뿐이다.

와장창!

결코 부러지지 않는 용사의 검이 찬란한 광휘와 함께 성역을 완전하게 깨부수었다.

그렇게 새벽이 걷히고 날이 밝았다.

방랑의 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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