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54화
유령성의 전투.
그때의 전투를 잊어 본 적은 없다.
게다가 유령성의 정체를 알게 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귀에는 아직도 기사들의 노랫소리가 생생했고, 마지막으로 본 엘리사 메이의 얼굴도 기억에 남아 있었으며, 가면을 쓴 채 높은 첨탑에서 홀로 죽어 가던 성주의 푸른 눈동자 또한 그랬다.
그리고, 떠오르는 햇빛을 받으며 경례를 했던 기사와 병사들의 모습도.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성에는 전투의 흔적도, 성벽 위의 기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활기찼고, 드넓게 펼쳐진 벌판에는 적군 대신 곡물이 자라고 있었다.
여러모로 심정이 복잡했다.
내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자 일리아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레나, 왜 그래?”
“저 성…….”
파지직!
- 경고! 해당 던전에서 플레이어의 모든 발언은 차단되지 않습니다.
- 단, 주변 인물에게는 대화가 제한되어 들립니다. 정체를 의심받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하지만,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또다시 지겨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리아스는 내가 말을 멈춘 것을 보고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아, 시스템 제한이 걸릴 말을 했구나.”
“이거 너무 답답한데…… 저번에 썼던 그 시스템 제한을 푸는 마법진, 다시 쓸 순 없어?”
“그건 얼음 협곡에서만 나는 꽃의 특수한 마력을 이용한 거라 아무 데서나 만들기는 힘들어.”
이런 젠장.
하기야 그 정도의 마법진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
일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대충은 알겠어. 저 성이 네가 겪은 타르토스의 미래와 관련이 있나 보네.”
그래도 일리아스의 눈치가 빠른 편이라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그때의 유령 성이 설마 대륙의 북부, 마지막 마을 근처에 있었을 줄이야.
“일리아스, 나도 북부에 몇 번 왔었는데 이 성은 처음 와 봐. 왜지?”
물론 현대 한국처럼 GPS가 있는 것도, 상세한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만, 이렇게 근처에 큰 도시가 있었다면 북부에 의뢰를 수행하러 갔을 때 물자를 보충하러 들렀을 법도 한데…… 어째서 내가 이 성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거지?
진작 알았더라면 유령성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질문에 일리아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이곳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시라서. 옵타티오 처치 이후로 인구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거든. 저 성도 본래는 버려진 수도원 중 하나였어. 저기 첨탑 보이지?”
그러고 보니 첨탑은 본래 종교적인 의미에서 자주 세우는 건물이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세워진 첨탑을 바라보았다. 저 첨탑 위에서 홀로 죽어 가던 모습을 기억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 성주는 누구야?”
“누구일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의 시선이 기사들을 이끄는 선두의 왕자에게로 향했다.
“옵타티오를 처치한 공을 인정받아 하사받은 거라던가. 그렇지만 이런 변방의 영지나 줘 놓고 생색내기라니…… 좀 우습긴 해.”
“……그래도 네가 있는 곳과는 가깝네.”
“영지를 수여받긴 했어도 루카스 전하가 딱히 여기에 머무르는 건 아냐. 수도 근처에 유폐되다시피 하고 있었을걸. 솔직히 나 때문에 뛰어나온 게 신기해.”
“…….”
상이랍시고 황폐한 영지를 받고, 수도 근처에 유폐나 당하고.
대체 저 자식은 왕자쯤 되면서 왜 저렇게 삶이 기구한 거냐.
아니, 왕자라서 오히려 기구해진 건가?
“의무라…… 겨우 그깟 것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것을 얽매었구나.”
가면을 쓴 채 홀로 첨탑에서 죽어 가던 성주는, 루카스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의무에 가장 얽매여 있었던 것은 루카스 본인이었다.
거대한 백마를 탄 채 망토를 두른 왕자의 뒷모습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그런 내게 일리아스가 말했다.
“아, 레나. 성에 들어가기 전에 얼굴을 가리는 게 좋겠다. 무슨 가면 아이템 있다면서?”
“어? 왜?”
“페트라는 아직 정식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페트라 얼굴로 네 맘대로 행동하다간 페트라의 평판이 좀 걱정되는데.”
“아니, 내가 그렇게 제멋대로야?”
약간 울컥하는 마음에 그렇게 반문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렇긴 했다.
아직 아이였던 페트라의 몸에 빙의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페트라에게는 사회적 위치라는 게 존재하니까.
게다가 지금부터 내가 할 일, 그러니까 신전을 때려잡을 것을 생각하면 페트라의 평판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잠시 기사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몰래 은의 장막을 착용했다.
일리아스 곁에 바싹 붙어 이동하느라 대열 최후미에 있었기에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페트라 경, 성에 들어가면…… 어라? 페트라 경은 어디에 가셨습니까?”
마침 성에 들어가기 직전 무언가 전언을 전달하러 달려왔던 데이먼이 갑자기 사라진 페트라의 행방에 고개를 갸웃했다.
일리아스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전 전하께서 은밀히 내린 지시가 있다며 자리를 떠나셨네. 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고.”
“어, 그렇군요……?”
데이먼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지만 하늘같은 주군의 친우가 루카스의 이름을 들먹여서인지 당장 따지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시길래 페트라 경의 말에 타신 건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지나가던 용사.”
“예?”
“신경 끄란 얘기야. 아, 아니다. 하나만 물어보자.”
“예, 예?!”
“엘리사 메이 경의 모습이 안 보이는데, 메이 경은 같이 오지 않았나?”
지금 루카스를 보아하니 본인이 동원 가능한 인력은 대부분 데리고 온 듯한데 엘리사 메이가 보이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용사님, 그거 저 주세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나섰던 아이. 본래부터 보통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메이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엘리사 메이 경이 얼마나 훌륭하게 자랐는지는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역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페트라의 기억을 빌려 메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아서 더욱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견습 기사 데이먼 경이 맹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엘리사 경은 전하의 명으로 수색 작업을 떠난 지 반년은 되었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 기사를 그렇게 오래 외부에 돌리다니, 보통은 그러지 않는데…….
“수색 작업? 무슨 수색인데?”
“아, 그건 물론 알리시아 님의 유해 수색이죠. 전하께서 이걸 최우선으로 두라고 하셔서…… 헙!”
말하던 데이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도 그랬다.
눈앞에 그 알리시아의 친족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말을 잃었다.
이제껏 간접적으로만 짐작하고 있었던 알리시아의 죽음을 이런 형태로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 저기…….”
잠시 침묵하던 일리아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여전하시군, 전하도.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그 대꾸에 아직 앳된 견습 기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민망함과 미안함이 혼재된 얼굴이었다.
결국 데이먼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본대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일리아스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리아스 또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성문에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한번 성을 올려다보았다.
이 성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평화로운 모습은 다시 주어진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만.
기회가 다시 주어졌음에도 이미 잃어버려 손을 쓸 수 없어진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만큼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전하.”
외성을 지나 내성으로 진입하자 익숙한 내부가 보였다.
더불어 낯이 익은 집사 할아버지도.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름이…… 세바스찬 아니었나?’
너무 집사다운 이름이라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세바스찬, 건강히 지냈나?”
내 기억이 맞았다.
세바스찬 집사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는 역시 좀 더 젊은 모습이었다. 사실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게, 당시 완전히 희게 세었던 머리카락은 아직 색소가 짙었다.
루카스가 집사에게 벗은 망토를 건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전하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 그랬지요. 알겠습니다, 성주님. 아, 일리아스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리아스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마도 일리아스는 이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던 듯했다.
이어 집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저분은?”
“내 손님이야. 극진히 모셔 주게.”
루카스는 그 외에 따로 나의 신분이 어떤지 시시콜콜히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집사도 주인의 암묵적인 함구에 더 이상 추궁하진 않았다.
“그렇군요. 귀한 손님이시라니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모두들 먼 길을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먼저 목욕물을…….”
“아니, 휴식은 나중에 취하고 바로 응접실로 가겠다. 차를 준비해 주게. 그리고 대화하는 동안에는 안으로 아무도 들이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집사는 잠시 놀라는 듯했지만 곧장 수긍했다.
그리고 곧장 안내된 응접실 테이블에 따끈한 차와 간단한 음식이 놓였다.
응접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안에는 이제 정말 나와 루카스, 그리고 일리아스뿐이었다.
“레나 너 대체 그간 어떻게 지냈……!”
“페트라가 네 편지를 전달하다 독을 먹은 것 같…….”
“전하, 알리시아의 유해를 찾고 계신다고요.”
루카스와 내가 동시에 할 말을 꺼내어 맞물렸지만, 말을 마친 것은 일리아스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루카스는 당혹한 얼굴로 일리아스를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전하의 견습 기사가 말해 주더군요. 엘리사 경이 수색에 나선 지 이미 반년째라고요.”
“…….”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고, 일리아스는 그런 루카스를 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시선에는 체념이 깔려 있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쓸데없는 짓입니다.”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유해 수습이 아니야. 알리시아의 행방을 찾고 있는 거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알리시아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그럼 실종 상태라는 거야?”
이제껏 일리아스는 알리시아의 죽음을 암시하면서도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루카스의 말을 들으니 희망이 샘솟았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리아스가 얘기해 주지 않았나? 알리시아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은 걸까요, 전하.”
일리아스가 냉소가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
“내 동생은 대륙 공적으로 낙인 찍혀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고아들이 실험체로 잡혀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도와주다, 결국 구해 준 아이들의 밀고로 괴한들에게 잡혀 간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소식이 끊긴 지 몇 년이 되었어도 유해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니 아직 죽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 말하면 됩니까?”
탁!
일리아스가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의 낱낱에서 고통이 진물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체념과 냉소로 가리고 있었던 분노가 저 심연 밑에서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가 분출구를 찾아 터져 나온 것 같았다.
“……그래.”
그러나 루카스는 그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깐의 침묵 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레나 또한 알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내게도 알리시아를 포기하지 않고 찾을 권리가 있고.”
“아니오.”
일리아스가 단칼에 잘랐다.
“헛된 희망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희망은 때로는 무엇보다 큰 고문이랍니다, 전하.”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난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루카스는 일리아스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말했다.
“자네한테 포기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어. 그렇지만 나한테까지 포기하란 소리는 하지 말게.”
“그러나 전하께 다가올 운명이 무엇보다 비참하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일리아스가 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레나가 멸망하는 타르토스의 운명을 보았다더군요. 저도 알리시아도 물론이고, 전하도 이 성을 지켜 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을 겁니다. 전하의 형님이 황제가 되어 신전과 손을 잡고 쓸어버릴 작정이라더군요. 그러니 모쪼록 전하 자신의 안부에나 신경 쓰십시오.”
“야, 일리아스! 그만해!”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야 루카스에게도 상황은 설명해 주어야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너 말이 너무……!”
“그리고 저처럼 은혜도 모르는 천한 이는 이제 잊으셔야 합니다.”
격앙된 어조로 말을 마친 일리아스가 내 제지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자리를 비켜 드릴 테니 말씀 나누십시오.”
쾅!
그리고 일리아스는 문을 크게 닫고 응접실을 걸어 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아니, 일리아스가 일방적으로 쏟아 내는 동안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나는 눈만 껌벅였다.
“아니, 이게 뭔…….”
일리아스가 이 세상에 강한 분노를 품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알리시아가 어쩌다 행방불명이 되었는지도 충격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루카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됐건 루카스는 지금 알리시아의 생존을 믿고 온 힘을 다해 찾고 있지 않나.
“……아니, 레나. 그를 탓하지 마. 일리아스의 분노는 정당하니.”
그런데 루카스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
“알리시아는 자신이 구한 아이들의 밀고로 함정에 빠졌다…… 무지한 아이들에게 밀고하면 너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며 함정을 판 자는 대체 누구일 것 같나?”
그 말에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리시아의 명예를 모욕하고 죽여서 이득을 보는 자 말이다.”
알리시아가 대륙의 공적이 된 것은 신전의 여론 공작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전이 직접 나서서 알리시아를 죽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와 달리 신전이 나설 여지가 적으니까.
하지만, 신전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던전을 공략한 자들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
그렇다면…….
루카스가 얼굴을 감싼 채 말했다.
“알리시아를 잡아간 것은 내 형님이었다.”
* * *
쾅!
조한율은 피로에 지쳐 책상에 머리를 찧었다.
근 일주일 간 제대로 잔 시간이 손에 꼽다 보니 시야가 가물가물했다. 식사도 영양제 드링크로 대체하기가 일쑤였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네가 자연사하면 다음 운영자는 누가 되는 거야?”
이우연이 그런 조한율 옆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얄밉게 말했다.
조한율은 뺨을 책상에 댄 채 중얼거렸다.
“이우연 죽었으면…….”
“나랑 너 둘 다 죽으면 당분간 한국 꼴이 볼만하긴 하겠네.”
그렇게 말하는 이우연의 얼굴에도 조한율과 마찬가지로 다크서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게, 운명의 씨앗을 획득할 수 있는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조한율 곁에 있는 이유는…….
“그래서 강예나랑은 아직도 연락이 불통이야?”
그랬다.
현재 조한율이 며칠간 거의 밤을 새 가면서 시스템 작업에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던전에 들어가 있는 강예나 쪽과 대화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채팅방에 소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운영자 권한을 활용하면 현재 행동이라도 관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예 시야 자체가 차단된 상태.
마치 누군가가 고의로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역시 저쪽 운영자가 무슨 짓을 하는 것 같단 말이지…….”
계속해서 이렇게 방해하는 것을 보면 저쪽 운영자가 강예나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애쓰고 있는 건데…….
“근데 이거 아무래도 이상해. 예나 씨 우선권은 일단 나한테 있단 말이지. 한국 서버 소속이니까.”
“우선권이라니, 말이 좀 불쾌하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너보단 나한테 있지 않을까? 내가 더 친하잖아.”
“그래 봤자 차인 주제에 시끄럽네. 그러니까, 내 말은 저쪽이 아무리 리스크를 감수하고 난리를 쳐도 한계가 있단 말이야. 어쨌든 내 권한이 더 크니까. 그런데 내 시야까지 차단했다는 건…….”
조한율이 으스스하게 중얼거렸다.
“저쪽 운영자가 현재 물리적으로 예나 씨 가까이에 있거나, 혹은 이전에 예나 씨를 소속 플레이어로 다뤄 본 적이 있어서 익숙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처음에는 애매한 의심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미친놈과의 접촉이 거듭되다 보니 점점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 말에 이우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예나는 거의 십 년간 저쪽 세계에 있었으니까 그때 우연히 접촉했던 거 아닐까? 거기서도 유명했다며.”
“운영자가 뭐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아무나 접촉해서 직접 시스템을 조작하진 않아. 그것도 플레이어에게 익숙해질 정도라면 더더욱.”
“그래서 결론은?”
“저쪽의 또라이 운영자 자식.”
조한율은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예나 씨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