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56화
“이건 너무도 부당하신 처사입니다, 왕자 전하!”
피가 맺힐 것처럼 갈라지는 목소리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어찌 성기사가 백성들을 위해 한 일에 이리 가혹하게 대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은 흰 사제복을 입은 신관이었다.
그 앞에서 성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일반 신관이어도 다루기 힘들 판에 지금 이렇게 억울하다며 호소하고 있는 것은 신관 중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추기경이었기 때문이다.
희끗한 머리에 중후한 위엄이 있는 추기경 뒤로도 열댓 명의 신관들이 늘어서서 함께 외치고 있었다.
“부디 공정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성기사를 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직이라는 이유로 졸지에 이 신관들을 상대하게 된 기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걸 어쩐다?’
‘데이먼을 보냈으니 일단 기다려 보자고.’
하지만, 기사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냥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성주님께서 성기사를 잡아갔다는 게 그럼 진짜였어?”
“그런가 봐. 세상에, 성기사를 잡아갈 일이 뭐가 있지?”
신관들이 단체로 성 앞에서 몇 시간째 버티며 읍소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성민들이 우글우글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딱히 오락거리도 변변치 않은 성이니만큼 이런 일이 생기면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게다가 몇 시간 전, 루카스 왕자가 실제로 성기사 중에서도 유명한 은의 기사를 포승줄에 묶어 포로로 성안으로 데려가는 것을 목격한 이들도 많았다.
모두들 성기사가 어쩌다가 저렇게 왕자에게 잡혀 끌려가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추기경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은의 기사는 백성을 위하여 네크로맨서를 잡으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벌을 주시다니요!”
추기경이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는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모든 이들이 그 내용에 깜짝 놀랐다.
“네크로맨서라고? 그, 시체를 다루는 사악한 마법사를 말하는 거야?”
“아니, 성기사가 네크로맨서를 처단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왕자 전하께서 정말로 그런 이유로 성기사를 잡아갔다고……?”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네크로맨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무척이나 나빴으니까.
아무래도 신전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추기경, 요하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의 저런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외친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여론이 나빠지면 아무리 왕자의 친우라고 한들 감싸기 힘들겠지.’
신전에서도 추기경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만큼, 요하임은 은의 기사가 저 얼음 협곡에 자리를 잡은 네크로맨서를 추살하러 떠났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런 명령이 떨어진 이유가 루카스 왕자를 견제하려는 1왕자와 신전이 손을 잡은 결과라는 것도 역시 잘 알고 있었고.
애초에 자신이 이 변방까지 내려온 것도 1왕자와 신전의 연합을 지원할 생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2왕자는 어차피 백성들의 인기 빼곤 딱히 볼 것도 없으니, 여론마저 나빠지면 그걸로 끝장이지.’
물론, 그런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요하임은 정말로 네크로맨서를 처단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그 네크로맨서가 십여 년 전 대륙을 공포에 떨게 하던 옵타티오를 처치하는 공을 세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네크로맨서는 삶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타르토스 대륙의 신관들은 종교가 으레 그렇듯 운명에 순응하는 자들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신이 내린 시련이고, 시스템이라는 신의 의지하에 그 종복인 신관들은 사람을 구원한다.
그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신관의 성력과 가장 반대되는 것이 바로 네크로맨서의 사기(邪氣)였다.
게다가 사자(死者)의 영혼을 모독하는 언데드를 부리는 만큼, 신관은 네크로맨서의 마력이 더럽고 불결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요하임은 자신의 말이 진실이며, 루카스 왕자가 친분에 눈이 어두워 네크로맨서를 감싸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에 서는 자일수록 공사를 구분해야 하는 법.
그러니 자신의 행동에 망설일 것이 없었다.
논리 또한 명확했다.
“아무리 왕자 전하라고 하셔도 성기사를 재판하실 수는 없습니다. 만일 죄가 있다고 해도 신전에서 묻겠습니다.”
성기사의 신변은 온전히 신전의 것.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한들 재판 또한 신전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권리는 아무리 속세의 권력을 가진 왕자라고 해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그나저나 왕자 전하는 네크로맨서를 왜 감싸시는 거야?”
“설마 네크로맨서가 친구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그래도 신분이 높거나 혹은 용병처럼 자주 여행을 다니는 몇몇은 옵타티오를 처치한 공략대의 일원 중 하나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양민은 그렇지도 않았다.
게다가 옵타티오가 존재한 것도 이미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니 과거는 쉽게 잊혔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신력을 가지고 있는 신관들이니까.
‘좀 더 밀어붙이면 왕자 본인이 나올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되면 일은 일사천리였다.
성기사의 신변을 돌려받고, 네크로맨서의 처단을 요구한다.
요하임이 좀 더 목소리를 키워 항의하려던 순간이었다.
댕댕댕댕-!
성에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침입자다!”
“침입자를 잡아라!”
동시에 성안에서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문 앞에서 추기경을 상대하고 있던 기사와 종자들이 그 소리에 일제히 동요했다.
기사 중 하나가 추기경에게 다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성안에 소란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왕자 전하께 추기경님의 말을 전달할 테니, 일단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아니, 이런 평화로운 성에서 갑자기 침입자라뇨?”
요하임이 끌고 온 신관 하나가 젊은 혈기에 나섰다.
“지금 성안에 네크로맨서가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그자가 사고를 친 것은 아닙니까?”
“그럴 리…….”
없다, 고 대답하려던 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은 네크로맨서가 주군의 친우인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성민이 알아보았자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입을 다문 것이다.
그만큼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신관들이 끼어들었다.
“만일 네크로맨서가 폭주하는 것이라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성력이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성기사들 뿐만이 아니라 저희는 왕자 전하 또한 걱정입니다. 네크로맨서를 성안에 들이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들 순수한 걱정에서 말하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순수하게 네크로맨서란 처단해야 할 악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에 나오는 정의감의 발로였다.
신관들은 그 정의를 의심해 본 적 없는 순진한 양들이었다.
요하임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희는 더더욱 이곳에 있어야…….”
콰콰쾅!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무언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신관들과 대치하던 기사와 병사들의 주의가 일제히 쏠렸다.
그중 가장 높은 기사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고 오겠습니다. 다들 위험할 수 있으니 성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와 함께 기사들은 최소 인원을 남겨 둔 후 큰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뭐, 뭐지?”
“진짜 네크로맨서가……?”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였다.
탁!
누군가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며 땅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갑자기 나타난 인기척에 요하임은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곧이어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눈에 띄게 사람이 등장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누군가 등장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무슨……?’
게다가 아무리 유심히 지켜보아도 그 누군가의 이목구비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기묘한 일이었으되, 요하임 또한 허투루 추기경이란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는 건가?’
신분을 숨길 생각으로 얼굴을 가리는 아이템을 착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정도 수준의 아이템은 보기 드물뿐더러, 저자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앞에 나선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성안에 침입했다는 건 저자인가?’
요하임은 찬찬히 인영을 훑어보았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대강의 실루엣은 파악할 수 있었기에, 아마도 젊은 여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요하임이 성력을 사용해 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쪽이 추기경 맞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
이 타르토스 대륙에서 추기경쯤 되는 인물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자는 흔하지 않았다.
덕분에 요하임은 대답도 잊고 잠시 넋을 잃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너 같은 녀석이 추기경을 해? 요새 추기경들 수준이 좀 떨어졌나?”
“뭐, 뭐라고!”
인생에서 별로 들어 본 적 없는 모욕에 요하임이 반사적으로 노호하자,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사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실수했다!’
신관은 언제나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법.
그것도 사람들 앞이라면 더욱 그랬다.
요하임은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자네는 누구인데 갑자기 이 늙은이를 모욕하는가?”
“모욕은 그쪽이 했지. 성안에 네크로맨서를 뭐 어쩐다고?”
그 말에 요하임은 의문을 느꼈다. 이 여자의 목적이 대체 뭐길래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굳이 피할 이유는 없기에 요하임은 곧장 대답했다.
“네크로맨서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는 게 신관으로서의 내 소임이니, 그 소임을 다할 생각이네.”
“허어…….”
여자가 비웃음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즉, 그쪽이 사악한 악당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는 정의의 용사이자 절대 선이다, 그거야?”
“……적어도 그러고자 노력은 하고 있소.”
낯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신관은 신을 섬기며 긍휼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존재.
네크로맨서 처단도, 정치적인 개입도, 심지어 최후의 던전과 관련된 거짓말 또한 그 일환이다.
결국은 더 큰 선을 위한 걸음이라면, 직접 손을 더럽히더라도 그 또한 짊어져야 하는 업이리라.
그런데 여자가 픽 웃었다.
“네크로맨서 처단이라. 그런 걸 정말 할 수는 있고?”
“부족하나마 추기경을 맡고 있는 몸. 정화의 힘은 이 몸에 깃들어 있지요.”
“그거 거짓말 아니야?”
뜬금없는 말에 요하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라?”
“내 검이 말하길, 그쪽은 정의의 사도 따위가 아니라 그냥 위선자에 사이비라는데.”
그 목소리는 이제까지 존재감이 없었던 것과 별개로, 기묘하게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잘 들렸다.
“그래서 내 검이 그쪽의 처단을 바라는군.”
아마도 그것은, 여자가 갑자기 검을 뽑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뽑히며 시선을 모았다.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검이 드러나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일반 신관들조차 그랬다.
“헉, 저 검은……!”
그도 그럴 것이, 아이템으로 존재감을 가리고 있는 여자와는 다르게 그 검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보통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은은한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검.
요하임의 입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왔다.
“저건…… 성검?”
수군거림이 일시에 커졌다.
“성검의 소유자라고?”
“용사? 용사인가?”
다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옵타티오 처치의 주역으로 알려진 것은 루카스 왕자와 성녀 아리아드네, 그리고 용사 레나라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용사 레나가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진 성검.
그것은 예전 용사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이 대륙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나지 않았다.
그조차 사람들의 구미에 잘 맞는 이야기이니만큼, 용사 레나의 일화는 여러모로 인기가 많았다.
신전의 여론 개입마저 먹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유명세에 비해 성검의 모양새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그 검은 용사의 손에 들리면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모든 것을 가를 수 있을 만큼 날카롭다는 것뿐.
그리고 지금 저 검의 모습을 본 요하임은 왜 이제껏 성검의 상세한 모습이 알려져 있지 않은지 깨달았다.
그야, 보는 순간 누구라도 그것이 성검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으니까.
굳이 자세하게 알릴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하임은 경악했다.
“대, 대체 어째서 저런 자의 손에 성검이!”
하지만 이래서야 물러설 수 없다.
그저 지나가는 괴한이라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려 성검의 소유자가 신전의 추기경인 요하임을 이단이라고 말하며,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그러니 만일 요하임이 여기서 물러나면 사람들은 저 여자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요하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미심쩍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성검의 임팩트가 컸던 것이다.
“진짜 신관들 쪽이 사이빈가? 사칭이라든가.”
“아니야, 설마 신관을 사칭할 리가. 그건 엄청나게 중죄라고!”
“그렇지만 저 여자 손에 들린 검은 누가 봐도 성검인데?”
“근데 뭐하는 사람이길래 저런 걸 손에 넣은 거지?”
“요사한 사술을 쓰는 자로구나!”
결국 요하임 또한 호통을 치며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주변에 지켜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기사들이라도 있다면 중재를 해 줄 텐데, 성의 침입자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별 권한이 없는 병사들뿐이었다.
‘하필이면!’
어쨌든 일이 이렇게 공교로워진 이상 요하임은 무조건 저 성검 쪽이 가짜라는 것, 그리고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감히 가짜 성검을 들고 신관을 모욕하다니!”
그러나 정체불명의 여자는 추기경의 위엄 서린 호통에도 기가 죽기는커녕 어딘가 건들대는 태도로 말했다.
“누가 가짜인지는 보면 알겠지.”
여자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네놈들의 신력이 가짜라는 걸 증명해 주지. 덤벼.”
“덤……?!”
“이런 말도 안 되는!”
젊은 신관 하나가 참다못해 시뻘게진 얼굴로 나섰다.
“추기경님을 모욕하다니, 제가 저자에게 쓴맛을 보여 주겠습니다!”
“가짜 성검을 가지고 있다니 사기꾼이 분명합니다! 종교 재판에 회부해야 합니다!”
요하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성력으로 포박해 신전으로 끌고 가라!”
물론 성검을 들고 있는 데다 여자의 태도가 워낙 자신만만하기는 했지만 요하임 또한 자신이 있었다.
같이 온 신관들의 숫자는 십수 명. 그런데 상대는 한 명이었다. 그들이 성력으로 그물망을 만들어 포박한다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으리라.
다만, 상대가 검사이니만큼 그물망을 만드는 동안 이 자리에서 피한다면 소용이 없지만 그건 그것대로 호재였다.
‘성력의 그물을 피한다면 저쪽이 사기꾼이라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일단 이 자리만 피하면 저 여자의 신원에 대해서도, 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신관들이 주문을 외우며 그물망을 만드는 동안 여자는 피하지도, 그렇다고 먼저 공격을 해 오지도 않았다.
마치 오히려 그물망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설마……?’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불안감에 요하임이 신관들에게 잠시 멈추라고 외치려는 찰나.
“하늘의 그물망은 성글어도 그 무엇도 놓치지 아니하니……!”
성력으로 만들어진 그물망이 완성되었다.
휘릭!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물이 여자의 머리 위로 던져졌다.
그리고 신관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파장창!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여자의 머리 위로 던져진 그물망은, 성검에 닿는 순간 완전히 깨지고 부서져 나갔다.
남은 것은 성력보다도 더욱 희게 빛나는 성검 한 자루뿐이었다.
“허억……!”
“서, 성검이다! 진짜 성검이야!”
모두가 그 모습에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
그러나, 충격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휙!
뻐억!
멍하니 그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고 있던 요하임은 갑자기 휘둘러진 주먹에 뺨을 맞고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
“으억!”
굉장한 아픔이었다.
심지어 한 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자가 다가와 요하임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번 더 뺨을 갈겼다.
아니, 몇 번이고.
이번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퍽! 퍼퍽! 퍼퍼퍽!
순식간에 뺨이 돌아가고, 입안이 터져 나가며, 피가 고였다.
“추, 추기경님!”
“추기경님을 놓아라!”
물론 요하임을 따르던 신관들이 경악하며 달려왔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딜!”
여러 명이 함께 달려들었지만 하나같이 여자가 휘두르는 검집에 맞아 날아가거나 발로 걷어차여 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관이라고 해도 전투에 특화된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전투에 특화된 성기사를 데리고 왔어도 결과는 비슷했을지 모른다.
다른 신관들을 패는 와중에도 여자는 착실하게 요하임의 뺨을 주먹으로 계속해서 두들겼다.
“네까짓 놈들이 감히 누굴……!”
어딘가 원한마저 느껴지는 주먹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없이 얻어맞는 와중에도 요하임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퍽!
강렬한 고통에 요하임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기묘하게도 그 정도로 맞았으면 기절할 법도 한데 힘 조절을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을 놓을 수도 없었다.
덕분에 신나게 처맞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진짜로 신관들 쪽이 이단인가 본데? 성력이 안 먹혔잖아.”
“성검에 파훼되다니…… 진짜 추기경이면 저럴 리가 없잖아. 사칭인 건가?”
“아, 그래서 성주님이 성기사도 잡아 온 건가? 사실 그쪽도 가짜인 거 아냐?”
“그게 더 말이 되는군! 진짜라면 저렇게 허무하게 당할 리가 없잖나!”
사람들의 말을 들은 요하임은 처맞는 와중에도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요하임 본인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령 저게 진짜 성검이라고 한들 본래대로라면 자신의 성력과 같은 성질이라 이렇게 파훼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성검에 닿자마자 신력이 이리도 쉽게 깨져 버리라니.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더 미치고 환장하겠는 건, 자신이라도 이 장면을 제삼자 입장에서 봤다면 신관을 이단으로 여길 거라는 거였다.
‘맙소사, 신이시여!’
퍽!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주먹으로 따귀를 날린 후, 여자가 요하임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요하임은 거세게 기침을 했다.
“끄억, 쿠어억! 켈록켈록!”
“꼴에 추기경이라 그런가, 이렇게 팼는데도 기절을 안 하네.”
여자의 말에 요하임은 나이도 지위도 잊고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 자신을 패고 있는 저 괴이한 여자만큼은 요하임이 진짜 추기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대체 너, 아니, 자네는…… 당신은 누구십…….”
하지만 그런 어울리지 않는 감정도 잠시.
“그럼 너 정도라면 알고 있겠군.”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요하임은 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너희 교황이 시스템 현 운영자,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