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57화
이 여자가 대체 ‘운영자’를 어떻게 알고 있지?
분명 평범한 협잡꾼은 아니었다.
성검은 물론이고 성력을 파훼하다니, 이제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모르고 있을 시스템 운영자의 존재는 물론이고 정체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설마 교단의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건가? 하지만 금제가 걸려 있을 텐데!’
교단의 고위 성직자들은 운영자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당대의 교황이 운영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고, 금제까지 걸려 있어 발설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금제가 발동했다면 모를 리가 없었고.
‘아니면…… 설마?’
교단 외의 인물 중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현재로서는 2왕자 루카스를 배제하기로 마음먹고 신전과 손을 잡은 1왕자뿐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1왕자가 배신한 것일까?
신전과 손을 잡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운영자라는 자리까지 욕심내 암살자를 보내기라도 한 건가?
요하임은 떨리는 눈동자로 여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바로 여자의 말을 부정해야 했다!
“그, 그게 무슨…….”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요하임의 멱살을 틀어쥔 여자는 침묵에서 이미 답을 확신한 듯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호오…….”
“무, 무슨 말이냐!”
“여기서 이렇게 대어를 낚을 줄은 몰랐는데…… 기절할 때까지 패지 않아서 다행인가.”
그거야말로 무슨 소리냐!
요하임은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이렇게 죽도록 패 놓고 의도한 것처럼 말해 보았자 누가 속을 줄 알고!
그렇지만 겨우 그런 걸로 억울해할 때가 아니었다.
요하임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머릿속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였다.
내성에서 한바탕 소란이 들려왔다.
“침입자는 정문 쪽으로 갔습니다!”
“인원을 보내 쫓아라!”
“이런, 생각보다 빠른데? 평소에 빡세게 굴렸나?”
“커헉!”
혀를 찬 여자가 요하임의 멱살을 잡고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목이 졸린 요하임은 숨을 들이켰다.
“추기경님!”
“추기경님을 놓…… 어억!”
“꺼져, 이 사기꾼들아.”
퍽!
여자는 달려드는 신관들을 가볍게 발로 차 버린 후, 요하임을 무슨 짐짝처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휙!
거센 바람이 요하임의 몸을 마구 뒤흔들었다.
“우아아아아악!”
요하임은 허공에 들린 채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 요하임을 보며 사람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짝!
요하임은 격렬한 아픔에 눈을 떴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것조차 그때 알았다.
“오, 정신이 들었군.”
“무, 무슨…… 히이익!”
하지만 차라리 정신을 잃은 채 있는 게 나을 뻔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의 발밑을 지탱해야 할 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 살려 줘! 내려놓으라고!”
높은 성벽 위.
요하임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몸을 지면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고 있는 것은 여자가 잡고 있는 멱살뿐이었다. 이대로 여자가 손을 놓기라도 하면 높은 성벽 위에서 떨어져 곤죽이 될 것이다.
요하임의 목숨 줄을 잡고 있는 여자가 태평하게 말했다.
“계속 발버둥 치면 옷 찢어진다.”
“……으윽!”
말도 안 되는 굴욕감.
하지만 그 전에 생리적인 두려움이 몸을 감쌌다.
여기서 떨어지면 성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여자가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묻는다. 현재 교황의 소재는?”
“내가 대답할 것 같…… 허어어억!”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여자가 손가락 하나를 떼어 냈다.
요하임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제 요하임의 멱살을, 아니, 신관복을 잡고 있는 것은 손가락 네 개뿐이었다.
허공에 매달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한 번만 묻는다고 했는데 모양 빠지게…… 그래도 그건 너무 정 없나? 앞으로 네 번 더 묻겠다. 운영자는 어디에 있지?”
“웃기지 마라! 어차피 날 죽이면 딱히 정보를 물어볼 곳도 없을 것 아닌가!”
요하임은 입술을 깨물고 외쳤다.
그리고 막상 외치고 보니 그게 사실이었다.
일반 신관들은 운영자는커녕, 그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다른 추기경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추기경은 성기사의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신전 깊숙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번의 요하임 같은 사례가 아주 특수한 것이지, 평소라면 추기경급 인사에게는 접근조차 힘들었을 터.
그러니 어디서 ‘운영자’라는 단어를 주워들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여기서 자신 같은 고위 인사를 죽이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지.”
“……?”
이상할 정도로 빠른 긍정에 요하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근데, 이 성에 네크로맨서가 있는 건 알지?”
“그거야…….”
“그쪽이 그렇게 퇴치해야 한다고 악을 썼으니까 당연히 알겠지.”
“…….”
“네크로맨서의 장점이 뭔지 알아?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면 시체에서도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거야.
요하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런 무도한 소리를 하다니! 나를 언데드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왜?”
“그건……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만일 네크로맨서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다면 진작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정보를 뜯어내려는 협박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하임의 눈동자가 불안에 흔들렸다.
‘진짠가?’
이 타르토스 대륙에 네크로맨서가 어떠하니 등등의 악명은 많이 퍼져 있었지만, 정작 그 클래스를 심도 있게 연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성했다는 소문만 퍼지면 곧장 신전에서 처리했으니까.
덕분에 지금 요하임의 머리에는 미지의 영역에서 오는 공포가 가득했다
“아, 그러셔?”
심지어 그 와중에 여자는 손가락 하나를 더 떼어 냈다.
요하임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제 남은 손가락, 아니 목숨 줄은 세 개였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교황은 지금 어디에 있지?”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협박하는 솜씨가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니었다.
요하임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역시 네크로맨서 운운하는 것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손을 놓는다고 하는 건 단순히 협박이 아니었다.
이 여자라면 진짜 할 것 같았다.
“이래도 대답을 안 한다, 그거지.”
여자는 손가락 하나를 더 떼어 냈다.
찌지직!
심지어 여자의 손가락에 잡혀 있는 요하임의 옷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불길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자의 손가락에 걸린 섬유는 아슬아슬하게 요하임을 지탱하고 있었다.
“히, 히익!”
“그래서, 대답은?”
“마, 말하고 싶어도 정말로 성하의 소재는 모른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요하임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사실이었다.
‘최후의 던전’ 거짓말이 밝혀진 후, 교황은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운영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음 운영자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추기경쯤 되면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성하께서는…… 차기 교황 선출이 끝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행적을 알리지 않고 잠적하신 상태다.”
그렇게 말하며 요하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믿어 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교황쯤 되는 고위 인사가 은거하면서 소재를 숨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임기응변처럼 들렸다. 자신도 제삼자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추기경을 잡아 와서 막무가내로 추궁하는 불한당이라면 더욱 믿을 리가 없었다.
“흠, 사실이군.”
그런데, 뜻밖에도 여자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소재를 알렸다가 애먼 놈한테 죽으면 그 녀석이 다음 운영자가 되어 버릴 테니까.”
요하임은 깜짝 놀랐다.
‘운영자를 죽인 사람이 다음 운영자가 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이 여자 말대로 교황이 은거를 결정한 것은, 신전의 선출 작업이 끝나기 전 교황이 살해당하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신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이 운영자가 될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내밀한 사정마저 이미 알고 있다니. 사실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진정한 공포로 요하임의 이빨이 덜덜 떨렸다.
“당신은, 대체…….”
* * *
나는 일단 추기경이라는 놈을 성벽 위에 내려 주었다.
‘교황의 소재를 모른다니, 쓸모가 없구만.’
그나저나 바닥에 내려 주었는데도 저렇게 떠는 걸 보니, 죽더라도 언데드로 만들어서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거짓말이 너무 잘 먹힌 모양이다.
사실 그거 거짓말인데.
‘그래도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네.’
어쨌든 덕분에 현 교황이 시스템 운영자라는 게 사실이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할 때는 본인이 교황은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건 그냥 나를 속이려고 했던 걸까.
하지만 그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 운영자, ‘운명을 거스르는 자’와 플레이어, ‘강예나’와의 내기가 진행 중입니다.
- 승리 조건 : 세계를 멸망시킨 자를 죽이시오.
어쨌든 이 운영자와의 내기는 내가 그 정체를 알아낸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 세계를 멸망시킨 자를 죽이라니.
새삼스럽지만 운영자에게 이런 내기가 대체 무슨 의미라서 나에게 제안을 할 걸까?
마치 이 세상에는 살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내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파지직!
“……뭐야?”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눈앞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심지어 그것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파직!
파지지직!
그 스파크는 눈앞에 쓰러져 있는 추기경의 몸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대체 지금 뭘……!”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다음 순간, 추기경의 전신이 스파크에 감싸이더니……
“으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며, 추기경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것과 동시에…….
- 경고! 비정상적인 접속이 발생하였습니다.
붉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경고!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납니다.
- 운영자 권한이 발동되어 특정된 플레이어는 이 구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플레이어, ‘강예나’가 지정되었습니다.
- 비정상적인 경로 접근으로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의 발생이 지연됩니다.
-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발생까지 12:00:00
“……허어어어어어?”
이건 또 뭐야?
내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추기경이 갑작스러운 광소를 내뱉었다.
“흐, 흐하하하하! 꼴좋구나!”
바닥에 엎어진 그 모습은 정말이지 볼 만한 꼴이 못 되었다.
갑자기 발생한 스파크에 피부가 튀겨지기라도 했는지 전신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거의 산 채로 화형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통도 상당할 텐데, 그런데도 저렇게 웃고 있다니.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시스템 메시지와 추기경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설마 지금 이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운운하는 메시지……?”
“그래, 성하께서 하신 일이다!”
그렇게 외치는 추기경의 눈알에 핏발이 서 있었다.
“내게 걸린 금제가 발동한 것이다! 나를 그렇게 협박하더니, 꼴좋구나!”
“금제라면……?”
“누군가 성하의 존재에 대해 물었을 때, 그 사실을 흘리면 성하께서는 바로 그걸 알게 된다! 그래서 곧장 손을 쓰신 게지.”
그렇게 말한 추기경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지금 이 새끼, 그냥 지금 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성을 한 것 같은데…….
“이런 미친 새끼가. 너 지금 상황은 알고 있는 거냐?”
나는 실실 웃고 있는 추기경의 어깨를 발로 밟았다.
그러니까 이 자식이 내게 정보를 말한 걸로 금제가 발동되었고, 그래서 운영자가 그걸 알아차려서…… 이렇게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도 다 말려들 거라고. 너희가 그러고도 신관이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교황 성하의 정체도, 존재도,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대륙에 알려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혼란이 벌어질 테니까!”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 눈으로, 추기경은 외쳤다.
“만일 사악한 자가 운영자의 권력을 쥐게 된다면, 이 세계는 분명 겁화에 휩싸이게 될 터! 이 정보를 허락받지 않은 자가 알게 되느니,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만…… 커헉!”
더 이상 들어 줄 수가 없었다.
뻐억!
빠드득!
발로 밟은 허벅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추기경이 기절했다.
나는 그 기절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미친 새끼들.”
설마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입막음을 해 왔다는 건가?
물론 신관들이 금제라는 수단으로 얽매여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페트라의 기억 속에서 아리아드네 또한 그런 금제에 묶여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금제라는 것이 이런 식일 줄이야.
정보가 누설되면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켜서라도 입을 막는다고?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죽었을까.
나는 가만히 눈을 까뒤집고 쓰러진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잘 먹어서 그런지 윤기가 돌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시꺼멓게 탄 피부에 침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기절한 얼굴.
추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이 녀석을 살려 둘 가치는 없었다.
‘죽이자.’
용사 클래스 유지고 뭐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스릉!
추기경의 목을 향해 검을 들이밀고, 시퍼런 날이 피부를 파고들려던 순간.
조한율 : 와, 다행이다!
조한율 : 드디어 연결됐다ㅠㅠㅠㅠ 예나 씨, 제 메시지 보여요? 보이죠?! 제발 봐 주세여ㅠㅠㅠ
“……조한율?”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제껏 연락이 없었던 한국의 운영자가 대체 왜 이 타이밍에 연락을 해 온 거지?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조한율의 메시지가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 대답에 또 한동안 미친 듯한 기세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한율 : 네, 저예요! 아니, 그동안 그쪽 운영자 놈이 방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연락이 안 됐던 게 갑자기 뚫려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혹시 운영자를 해치우셨나요?!
나는 멍하니 대답했다.
“……아니?”
운영자를 해치우기는커녕 그 수하인 추기경 놈과의 합작으로 보기 좋게 당해서 함정에 빠진 상황이다.
조한율 : 어? 그럼 뭔가 이상하네요. 이제까지 계속 방해를 받았던 게 갑자기 백신이라도 돌린 것처럼 깔끔해져서요. 그래서 예나 씨가 뭔가 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하긴 했지.”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메시지들을 본 탓일까.
잠시 열이 올라 있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기절한 추기경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사실 지금 이자를 죽일 가치는 없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 죽인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것도 없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용사 클래스를 잃을 위험성은 감수하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그래도 추기경이라는 신분이니 정보를 더 뽑아낼 것도 있을 테고.
그러니 이대로 성 깊은 곳에 감금해 뒀다가, 이후에 루카스더러 정보를 뽑아내라고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래, 그게 낫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더 한 후 메시지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잠깐 사이에 조한율은 혼자서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듯했다.
조한율 : 아니, 예나 씨. 레벨은 어떻게 올렸어요? 거기다 그쪽 운영자와 내기를 한 데다…… 메인 퀘스트 제한 시간은 없어졌네요? 그런 와중에 갑자기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까지 터졌어요?
조한율 : ;;;; 대체 무슨 짓을……?
“그러게 말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렇게 보니 내가 바쁘게 살긴 했군.
“그래도 마침 잘됐다. 조한율, 그쪽 도움이 좀 필요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있고…….”
-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까지 11:57:12
“내가 친 사고를 좀 수습해야 해서.”
그나저나 나는 루카스한테 죽었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