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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60화 (26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0화

알리시아와는 오랜만에 맞추는 합이었지만, 하루 전에도 함께 싸운 것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알리시아의 대검은 벤다기보다는 거의 으깨는 것처럼 몬스터 수십 마리의 머리를 박살 냈고, 나는 대검이 미처 쫓아가지 못한 날렵한 몬스터들을 위주로 검을 휘둘렀다.

다만…….

‘아무래도 성안이다 보니 검기를 마음대로 쓰기는 힘드네.’

레벨도 원상 복구되었겠다, 만일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 낼 수 있다면 이보다도 더 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성안이다 보니 건물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성주인 루카스가 외쳤다.

“건물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않게 주의해라!”

“야, 너는 날 걱정하지는 못할망정 집이나 걱정하냐?”

“맞아!”

“집 무너지면 너희들한테 재건을 도우라고 할 거다. 예산도 내놔.”

“…….”

책임질 영지가 생긴 왕자님은 가차 없었다. 조심해야지.

나와 알리시아는 입을 다물고 되도록 주위 환경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신경 쓰며 몬스터를 처리해 나갔다.

어쨌든 나름대로 2차 웨이브여서 그런 건지, 1차와 달리 마법을 쓰는 몬스터들이 곧잘 튀어나왔다.

몸에 희미하게나마 마력을 두른 고블린 몇 놈이 빠져나갈 틈을 노리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고블린 중에서도 이런 녀석들은 지능이 높아 순식간에 적의 수준을 가늠한다.

나를 비롯한 강한 플레이어들이 있는 걸 보자마자 은신 마법으로 자취를 감추려 들었다.

파장창!

- 에이펙스의 성검이 ‘은신’을 파훼하였습니다.

물론 딱히 효과는 없었다만.

“아, 진짜 저런 검 나도 가지고 싶어!”

알리시아가 부럽다는 듯 외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칭찬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에이펙스의 광검이 자랑스러운 듯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뒤통수가 어마어마하게 뜨겁다.

몬스터 수십 마리를 베어 넘기는 와중에도 그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다.

알리시아가 소리 내며 웃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사한테는 언제 인사할 거야?”

알리시아는 메이를 엘리사라고 부르는구나.

내가 본 페트라의 기억 속에서 메이는 알리시아의 이름을 따 제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알리시아가 입에 올리는 엘리사라는 이름에 어쩐지 감회가 깊었다.

“날 알아보긴 할까?”

솔직히 인사하고 싶긴 했지만 내가 뭐라고, 하는 마음이 컸다. 심지어 지금은 페트라의 몸을 빌린 상태라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데.

“알아보겠지. 그 성검이 이 대륙에 두 자루 있는 건 아니니까.”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박이다 물었다.

“근데 알리시아 넌 못 알아보지 않았냐?”

“음, 난 돌대가리니까?”

“알면 머리를 좀 써라.”

“애초에 능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써?”

……산뜻하게까지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일체의 두뇌 노동을 아예 포기하겠다는 의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너 잘났다, 너 잘났어.”

“나 멍청하단 얘기하고 있지 않았어? 뭐가 잘나?”

“……너 이리 와. 한 대 맞자.”

고장 난 가전을 고치는 요령으로 때려 보면 뭐가 좀 나아질지도.

그렇게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알리시아의 대검은 정확하게 몬스터의 대가리를 콱, 찍어 눌렀다.

콰득!

피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그 위로 덩치가 작고 날쌘 고블린 한 마리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피 냄새에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고블린의 이빨이 알리시아의 몸에 닿을 일은 없었던 것이, 루카스가 때맞춰 날린 불화살에 맞고 순식간에 허공에서 타 죽더니만 회색의 재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리시아가 그걸 보고 외쳤다.

“내 경험치 뺏어 가지 마라, 이 뺀질아!”

루카스는 감히 일국의 왕자를 뺀질이라고 부른 알리시아를 책하는 대신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저따위 C급 몬스터 몇백 마리 잡는다고 한들 1레벨이라도 오를 것 같나? 쓸데없는 것에 정신 팔지 말고 전투에나 집중하도록. 토벌이 문제가 아니라, 한 마리라도 흘리면 안 돼! 내 영지민들의 생업을 방해할 셈이냐!”

“……쟤는 맞는 말만 하는데 그게 더 사람 속을 긁더라. 그치?”

나는 바람에 실려 오는 고블린의 재를 고개를 돌려 피하며 알리시아의 말에 긍정했다.

“그건 맞지.”

내 말을 들은 루카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리는 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리시아 나름대로 루카스에게 말을 걸면서 분위기를 쇄신해 보려고 하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리아스가 자기 때문에 루카스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걸 들은 데다, 루카스 성격이라면 제 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할 것도 뻔히 알고 있으니 일부러 더 격의 없이 친하게 구는 것이겠지.

알리시아 성격에는 저게 최선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둘의 대화를 듣는 일리아스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이 던브가 끝나면 루카스와 일리아스, 둘이서 제대로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지.

……비록 그때 나는 없겠지만.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린 게 무슨 애늙은이처럼 말하네…… 아, 이제 레나가 우리 중에 제일 어린 건가? 저쪽에 돌아간 후로 몇 년이나 흘렀어?”

나는 감상은 접어 두고 애써 밝게 대답했다.

“몇 년은 무슨. 저번에 널 보고 반년도 안 됐어.”

“저런. 야, 루카스! 네 장점이 하나 사라졌네! 너 이제 레나보다 나이 한참 많대! 꼴좋~ 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지!”

콰지직!

루카스가 쏘아 낸 불화살이, 기사들의 말발굽을 피해 산만하게 바닥을 돌아다니던 도마뱀 한 무더기를 통째로 불태워 버렸다.

저건 아무리 봐도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저 자식, 왜 저렇게 나이에 과민 반응이야?’

“조심해!”

그때였다.

아이스 골렘을 조종해 덩치가 큰 트롤 한 마리를 완전히 박살 내고 있던 일리아스가 외쳤다.

“뭔가 큰 게 온다!”

“큰 거?”

나는 검을 쥐고 몬스터가 기어 나오고 있는 입구를 주시했다. 빛나는 입구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몬스터의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 A급 몬스터, 날개 없는 용이 출현합니다.

콰과과곽!

순식간에 입구가 찢어지듯 벌어지며 전체적으로 악어처럼 생긴 거대한 몬스터가 그 몸을 현세에 드러냈다.

성인 남성 몇 명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크기였다.

길쭉한 주둥이를 흔들며 입구를 헤쳐 나온 몬스터가 미친 듯이 앞으로 질주했다.

“피, 피해!”

“뭐 저렇게 거대한 놈이 튀어나와!”

기사들과 병사들은 다행히도 몬스터가 질주하는 궤도를 빠르게 피할 수 있었지만, 움직임이 느린 언데드 병사들은 달랐다.

폭주한 몬스터의 몸이 언데드 병사들 무리를 정면으로 덮쳤다.

와르르!

뼈로 된 병사들이 악어의 단단한 몸체에 부딪혀 속절없이 무너졌다. 마치 레고로 된 장난감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놀라운 일이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일리아스가 직접 부리는 언데드 병사들을 부수기는커녕 그 사기에 짓눌려 도망칠 텐데.

알리시아도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거 A급 맞아?”

“S급에 가까울 것 같은데.”

체감상으로는 몇 개월 전, 홍대 입구에 나타났던 이무기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A급 판정이라, 이거지…….

조한율 : 에이, 저건 너무했다! 판정 다시 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조한율도 나와 비슷한 의견인 모양이었다.

메시지가 거의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조한율 : 운영자 나쁜 새끼! 이거 경치 적게 주려고 수작 부린 게 뻔해요! 나중에 리스크나 처먹어라!

“그러게.”

조한율: 그러게, 가 아니라고요! 예나 씨는 화도 안 나요?!

글쎄, 조한율이 저렇게 욕을 해 주니까 막상 나는 딱히 화를 낼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게다가 사실 그렇게 열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2차 몬스터 웨이브에서 S급에 가까운 몬스터가 나왔다면 한국에서는 정말 큰일이지.

하지만, 한국의 플레이어들도 5년 차치고는 수준이 높긴 해도 타르토스 대륙은 수준이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크아아아아악!

악어처럼 생긴 거대한 몬스터가 당황하며 몸을 흔들었다.

와르르르!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저 몬스터의 몸뚱어리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던 언데드들이 다시 복구되어 악어 몬스터의 온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사이한 기운을 두른 흰 손가락뼈들이 달그락대며 몬스터의 단단한 표피를 잡고 늘어졌다.

몬스터는 거대한 몸집을 이리저리 굴려 대며 어떻게든 뼈들을 떨쳐 내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설령 저 뼈가 다시 가루가 되더라도 일리아스의 마력이 있는 이상 언데드 병사들은 무한히 복구될 테니까.

“붙잡아라.”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뼛조각들은 어느새 부활해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몬스터의 네 다리와 몸통, 꼬리를 단단히 붙잡아 대지에 뿌리내린 듯 박혔다.

크어어엉!

그리고 몬스터가 당황해 울부짖으려 주둥이를 연 순간.

펑!

퍼퍼펑!

악어의 주둥이 사이로 마력으로 된 화살 몇십 개가 순식간에 처박혔다. 성민들의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몬스터의 표피에 흠집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계산된 타격이었다.

물론, 루카스의 작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무리뿐이다.

콰지직!

나는 고통을 호소하느라 벌어진 몬스터 주둥이 사이로 검을 꽂아 넣었다.

스겅!

보통의 롱소드라면 기껏해야 목젖을 잘라 내는 정도였겠지만 내 파트너는 달랐다.

의지를 현실에 구현하는 검.

성스러운 광휘를 두른 검날이 길어지며 거대한 몬스터의 몸뚱어리를 단번에 꿰뚫었다.

연약한 내장을 통째로 관통당한 몬스터는 제대로 된 이름값도 하지 못한 채 곧장 절명했다. 아무리 외피가 단단하고 완력이 강하더라도 입안은 부드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한창 트롤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던 알리시아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뭐야. 나도 끼워 줘!”

그리고 기사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와, 와아……!”

“저렇게 한 방에…….”

“역시 성검이다!”

하지만 다들 더 감탄할 새도 없이 루카스가 엄한 어조로 외쳤다.

“지금 한눈팔 새가 있나? 다들 움직여!”

“네, 넵!”

“명을 받듭니다!”

루카스가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솔직히 감탄받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싱거울 따름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봐봐. 참 쉽지?”

조한율 : 저 예나 씨한테 이런 말하긴 싫은데…….

조한율 : 좀 재수 없네용ㅇㅅㅇ

“저런.”

처음부터 딱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솔직히 여기에 있는 4명 모두 적어도 레벨 80은 넘겼을 텐데, 이 정도 수준의 돌발성 던브에 쩔쩔매서야 되겠는가. 우리에게 처치당한 SSS급 옵타티오가 서러워서 울 거다.

그리고 남은 시간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맨 앞에서 나와 알리시아가 몬스터들을 대강 처리하고, 우리 둘이 처리하지 못하고 흘린 녀석들은 일리아스와 루카스가 마법으로 숨통을 끊었다.

그 외 기타 등등은 루카스 휘하의 기사와 병사들이 처리했고.

아무래도 명색이 몬스터 웨이브다 보니 숫자가 워낙 많았고, 특히 몸집이 작은 흡혈 벼룩 같은 녀석들이 땅바닥을 기어 다녀 다들 제법 고생을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성내 건물 몇 채가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거의 피해가 없는 수준이었다.

-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 최대 업적자 : 강예나

- 3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때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00:20:00

최대 업적자 메시지를 본 친구들이 의아하게 물었다.

“레나, 플레이어명을 바꾼 건가?”

“그러게. 우리 다 같이 맞춘 건데 이러기니?”

“근데 저거 뭐라고 읽는 거야?”

“어, 음…… 딱히 고의는 아니었어.”

어쨌든, 2차 던전 브레이크도 그렇게 아주 쉽게 끝나 버렸다.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와, 와아아아아!”

“완승입니다!”

“부상자도 없습니다!”

“들뜨지 마라.”

물론 찬물을 끼얹는 것은 지휘관의 역할이다.

단숨에 분위기를 가라앉힌 루카스가 말했다.

“2차에서 이 정도 몬스터가 나온 걸 보면 3차 보스 몬스터는 더한 녀석이 나올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성내 건물에 손상이 클 수도 있으니, 다들 방어막을 단단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2차에서 A급 몬스터가 수십 마리는 튀어나왔는데도 딱히 3차를 걱정하진 않는구나.

그나마 하는 걱정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성안 건물 파손 위기라니…….

‘요새 한국에 있어서 그랬나?’

몬스터 웨이브가 쉽다고 생각한 내가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새삼스럽게 그런 자신감이 광오하게 느껴졌다.

조한율도 비슷한 것을 느낀 모양이다.

조한율 : 그래도 그렇지, 좀 안전 불감증 아니에요?

“꼭 그렇지도 않아. 솔직히 이 멤버면 SS급 몬스터가 나와도 1시간 안에 잡을걸.”

조한율 : 그래도 적이 운영자인 만큼 레나 씨를 꼭 집어서 가장 유리한 몬스터를 내보낼 확률이 커요. 조심은 하시는 게 좋아요.

확실히, 그건 그랬다.

들어 둘 만한 충고에 나는 감사를 표했다.

알리시아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보스 몹은 뭐가 나올 것 같아? 좀 센 놈이면 좋겠다. 나 레벨 업 하고 싶어.”

“허튼소리 하지 마라.”

“다 됐고 난 릴리스만 아니면 돼…… 이미 릴리스는 충분히 겪었어.”

“갑자기 그 악마 새끼 이름이 왜 나와?”

“레나 너 릴리스랑 또 만났니?”

“대체 어쩌다가 마계에 또 가게 된 건가!”

다들 릴리스를 아는 만큼 반응이 아주 격렬해서 나는 그냥 손을 내저어 대화를 중단했다.

사실 운영자 입장에서 릴리스는 그리 좋은 패가 아니었다.

용사 클래스는 악마의 천적이니까.

어쨌든 결과로만 보자면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더욱 강해졌다.

그러니 만일 정말 운영자가 나를 죽이고 싶다면…….

“…….”

운영자.

그 단어를 떠올리자 기분이 다시 저조해졌다.

그런 낌새를 느꼈는지 알리시아가 옆에서 은근히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알리시아에게 물어본 질문이 워낙에 의미심장했으니까.

누가 내 등을 밀었는가?

솔직히 말해, 최근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였다. 왜냐하면 고의로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마 던전 출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장난삼아 등을 떠밀었다든가 하는…… 친구라면 할 법한 장난이라고, 설마 그게 한국과 연결된 출구였으리라고는 아무도 추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제껏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굳이 묻지도,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등을 밀리는 게 약간 트라우마가 되긴 했다만.’

하지만 이제 그냥 넘길 수만도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조한율 : 분명히 예나 씨 주변 인물 중에 운영자가 있어요.

조한율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단서를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내 친구들 중 누군가가 정말로 타르토스의 운영자라면…….

이제껏 내 일을 방해하고, 죽이려 했고, 나와 내기를 한 사람이 내 동료 중 하나라면.

그때 내 등을 민 건, 고의였을 가능성이 컸다.

운영자라면 그 출구가 타르토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향하는 출구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운영자가 제시한 내기 조건도 성립하지.’

내가 타르토스 대륙을 영원히 떠나길 바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알리시아에게 누가 내 등을 밀었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알리시아는 첫 번째 메인 퀘스트의 주인공이었으니까 운영자가 아닐 가능성이 커.’

당시 운영자의 개입으로 알버트가 몬스터화되며 알리시아 본인도 죽을 뻔했다.

그렇다면 알리시아한테 물어야 가장 정확한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누가 널 출구로 밀었다고? 난 못 봤는데.”

알리시아는 아예 그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한 번은 의심해 보겠지만, 알리시아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라 진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하긴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럴 만도 했다.

옵타티오를 쓰러트린 다음이라 다들 거의 만신창이였으니까.

나와 루카스는 그나마 제 두 발로 걸을 수 있었지만 일리아스나 알리시아, 아리아드네는 반쯤 실신한 상태였으니.

게다가 다들 내 뒤를 따라오던 상태였으니 누가 밀었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그러니까,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

‘……은 것도 아니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가장 큰 가능성, 확연한 사실 하나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몇 년간 온갖 위기를 헤쳐 온 머리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 어차피 진실이란 아무리 외면해 보았자 언젠가는 맞닥트릴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신관들 중에서 운영자를 뽑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 주변 인물 중, 운영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하지만 그렇다면…… 왜?’

만약, 네가 날 죽이고 싶었다면.

나는 얼마든지…….

“레나.”

루카스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작한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3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1:00:00

- 3차 몬스터 웨이브에는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 보스 몬스터가 해당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메시지와 동시에.

쾅!

내성 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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