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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62화 (26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2화

그렇게 물으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옵타티오…….

이 타르토스 대륙을 장장 20여 년 동안이나 괴롭힌 최후의 용.

최후의 용에게 죽은 사람은 셀 수도 없고, 옵타티오 인근 지역은 몬스터들이 들끓었다. 그놈이 자리 잡은 던전을 아무도 클리어할 수 없었기에 포화도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옵타티오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몬스터였다면…….

물어보면서도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설마, 아니지?”

최후의 던전이 거짓말이라는 건, 그래.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해는 됐다.

목표가 제시되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후의 던전만 클리어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때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옵타티오가 너희들이 만들어 낸 몬스터였다면……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추기경의 얼굴을 살폈다.

몬스터로 변이를 마쳤기 때문인지 얼굴에 사람의 피부 대신 비늘이 돋은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차가운 파충류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겉보기엔 사람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사람 꼴을 갖춘 얼굴에서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죄책감을 발견했다.

동시에 공포 또한.

그것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이미 긍정이었다.

찾아낸 진실에 아찔해져 잠시 눈을 감았다.

“아, X발…… 진짜 골 때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최후의 던전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돌았나!”

우우웅!

손에 잡힌 성검 또한 분노하듯 검신을 떨었다.

치가 떨렸다.

나는…… 아니, 이 대륙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걸까.

대륙 최초의 SSS급 몬스터, 옵타티오조차 운영자가, 인간이 만들어 낸 몬스터였다니.

“릴리스보다 못한 새끼들.”

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관이다.

아니, 신관이 문제가 아니지. 애초에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옵타티오한테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이거 그냥 대량 학살범들 아니야?”

“레나, 잠시만.”

루카스가 욕설을 내뱉는 나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루카스는 도저히 믿지 못할 진실이 사실로 확인되었는데도 아직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왕자의 준엄한 눈빛이 추기경을 향했다.

“이게 사실인가?”

“……루카스 왕자 전하.”

“최후의 용, 옵타티오가 정말로 자연 발생한 몬스터가 아니라 그대들이 만들어 낸 몬스터냐고 물었다.”

“야, 이 멍청한 왕자님아. 네가 그렇게 점잖게 묻는다고 저 새끼가 대답을 할 것 같……!”

“……사실입니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저 새끼 대가리에 총을…… 아니, 검이라도 맞았나……?”

“굳이 대답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겠나.”

루카스는 그런 추기경의 모습이 놀랍지도 않은 듯했다.

“어차피 저자는 우리를 죽여 입을 봉할 생각이니 말이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것뿐이겠지.”

“그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알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추기경의 눈이 기괴하게 빛났다.

“루카스 왕자 전하께서는 이 대륙에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타났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마치 죄를 고백하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몬스터가 나타났던 때의 절망을 아십니까? 아무도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당장 먹을 빵 한 조각을 구하려 이웃을 죽였고, 도덕은 가식에 불과했으며, 법전은 헛소리가 되었지요. 그야 그 모든 것은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니, 모두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는 무용할 수밖에요. 그저 멸망만이 남았습니다.”

아니, 고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추기경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그저 다가오는 멸망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선택입니다.”

추기경의 감고 있는 눈에서는 실핏줄이 불거져 끈적한 피가 꼬리처럼 떨어졌다.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희망이 필요했습니다.”

기괴한 몰골의 몬스터가 황금빛 성력에 감싸인 채 토혈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세우는 것에는 희생이 필요했지요.”

참담한 몰골이었다.

하고 있는 모양새도, 하는 말도.

“그러니 이 죄는 저희들의 몫입니다.”

그 꼴만 보아서는 남의 죄를 떠안고 순교하는 이처럼 보일 지경이다.

“개소리하고 있네.”

그렇지만 사실을 알게 되니 그냥 가증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것들이 진짜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어디서 합리화를 하려고 들어?”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 당시 신관들이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치자.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바람에 다들 눈깔이 홱 돌아서, 서로 죽고 죽이는 난장판이 되어서 눈물을 머금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고 치자고.

최후의 던전이라는 게 있다, 그것만 해결하면 해피엔딩이 온다, 그런 거짓말까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옵타티오를 만들어 낸 건 선 넘었지!”

그만큼 최후의 용이 가져온 비극은 깊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옵타티오를 처치할 때까지 20년.

그간 옵타티오에게 직간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아니, 목숨뿐인가.

알리시아와 일리아스는 더 강한 인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명목하에 실험체로 쓰이고 버려졌다.

그나마 그 둘은 살아남기라도 했다.

이름도 없이 죽어 간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나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 그리도 뻔뻔하게 지껄이는 거지?”

성검이 아까부터 울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너희들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지금 살아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거냐?”

죄를 이고 가겠다고 했다.

만일 그 말을 지키려면 저 작자는 여기서 몬스터가 되어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옵타티오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하다못해 이 대륙의 희망이자 불행이었던 그 최후의 용에게 달려들었다가 뒈졌어야 했다.

그러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양이었다.

추기경은 열받게도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듯 두 손을 모았다.

“용서해 달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이해하시겠지요, 우리의 선택을. 무릇 위에 선 자들에게는 선택의 때가 오기 마련이니까요.”

“선택?”

루카스가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무슨 선택을 말함이냐?”

그 물음에 추기경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기괴한 웃음이었다.

“백만 명을 살리기 위해 십만 명을 죽여야만 하는 때가요.”

우습기 짝이 없게도.

추기경의 시선은 광신에 더 가까웠다.

“우습지도 않군.”

그러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음에도 대답하는 루카스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나는 누군가를 죽이는 선택 따위는 하지 않겠다. 다수를 위한다는 핑계로 소수를 죽이지도 않을 거고.”

물론 그 냉정함 밑에는 푸른 불 같은 분노가 깔려 있었지만.

푸른 눈동자가 추기경을 경멸하듯 훑었다.

“변명하지 마라. 그런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다른 길이 있었을 터. 아니, 찾아냈어야만 했다. 인간이라면. 위에 선 자라면. 그것조차도 안 되면 앞장서 대신 죽어 주기라도 해야 했다.”

“전하는……!”

“불가능하다고 하진 마라. 나는 이미 그런 이를 알고 있으니.”

추상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루카스가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굳은 신뢰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렇지?”

우습게도.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이자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그 신뢰에 보답해야 할 텐데 말이야.”

“하던 대로만 하면 되겠지.”

“압박 주지 말아 줄래?”

“농담이다.”

“……결국 왕자 전하께선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추기경이 안타깝다는 듯 눈을 감았다.

“역시 루카스 전하는 위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헛소리하고 있네. 이제 됐다. 정보는 들을 만큼 들었으니…….”

나는 그대로 추기경을 향해 검을 들려다가, 순간적으로 어떤 충동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묻지 않는 게 더 좋을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기묘하게도, 불가항력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입이 열렸다.

“……방금 말한 정보. 그 애도 알아?”

“그 애?”

“레나.”

루카스가 만류하듯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다정하고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번 터진 의문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전부터 이 기묘한 의심의 싹이 마음속 어디선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의심을 언어로 내뱉었다.

“아리아드네도 알고 있었냐고.”

아리아드네는 신전의 성녀였다.

그렇지만 아리아드네는 신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신전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신전의 정치적 위치나 미묘한 알력 싸움 따위는 언제나 무시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

청탁을 받고 귀족을 치료하느니 당장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을 돌보았다. 사령술사인 일리아스도, 몬스터를 몸에 이어붙인 알리시아도 책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처음 아리아드네를 만났을 때 나는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급 용병이었고, 하는 일은 몬스터 처치라기보다는 도둑질이 더 많았다.

하루아침에 세계가 달라진 스무 살짜리 애가 살아남기란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러니까, 성녀와 함께 다닐 만한 인간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지만 아리아드네는 어쩐 일인지 그런 나한테도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처음 신전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아리아드네를 한 터럭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몰랐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으니까.

누군가 내 등을 던전 출구 밖으로 밀었을 때도 나는 아리아드네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가 교황 선출전에 참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교황이 운영자의 자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또 지금도…….

“그러게, 모른 체 살라고 했잖아.”

여전히 믿고 싶다.

순간 스치듯이 보였던 녹색 빛의 눈동자를.

어쩌면 환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진실을 모른 척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기만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추기경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기에 더 가득 차 대꾸했다.

“감히 사기꾼 주제에 성녀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되게 쩨쩨하게 구네. 어차피 여기서 죽일 거라며? 그 정도는 말해 줘도 되잖아?”

좀 더 도발해 보았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루카스가 고개를 저어 나를 말렸다.

“레나, 이만하면 됐다.”

“루카스, 나는…….”

“어차피 저자가 무어라 하든 너는 그걸 믿을 수 있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러니 대답은 아리아드네를 만나 직접 들어라.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행방을 찾아 줄 테니.”

“……응.”

이번 돌발성 던브가 끝나면, 나는 다시 여기서 쫓겨날 운명이지만.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성급했다.

결국 아리아드네 본인에게 물어볼 문제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럼 이걸로 됐나?”

“그래, 저 자식한테서 뽑을 수 있는 정보는 다 뽑은 것 같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언의 합의를 본 후.

루카스가 마력을 모아 하늘 위로 거대한 불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것이 신호였다.

쿵!

지면이 거대한 울림을 가지고 흔들렸다.

“이제껏 시간을 끄신 겁니까?”

우리가 명백하게 수작을 부린 것을 눈치챘는데도 추기경의 얼굴은 태평했다.

“하지만 뭐든 간에 소용없을 겁니다.”

추기경이 저렇게 자신에 넘칠 만도 했다.

현재 추기경은 SS급 몬스터로 본래부터 강했던 성력이 더욱 강화된 상태였다. 그 강대해진 성력은 지금 추기경 주변을 보호하듯 반원의 막을 그리며 감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파지직!

덩굴 채찍처럼 뻗어 나온 성력을 검으로 쳐 보았지만 성력이 파훼되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밀려났다. 스파크가 피부를 태우며 화상을 남겼다.

나는 혀를 찼다.

“역시 파훼는 불가능하네.”

내가 혼돈의 용사 클래스를 열면서 같은 성력도 파훼 가능해졌다지만 어쨌거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계열의 힘이다. 힘겨루기에서 이겨야만 파훼가 가능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추기경이 두르고 있는 성력은 나보다 강하기에 파훼할 수가 없었다.

추기경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당연하지! 그 가짜 성검이 언제까지 먹힐 거라고 생각했느냐!”

“가짜 성검?”

본인 안에서 괴상한 논리가 또 성립된 모양이다.

내가 어이없어하는 동안 성력의 줄기가 무슨 채찍처럼 위협적으로 줄기줄기 뻗어 왔다.

말이 성력이지 사실상 공격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쾅! 콰쾅!

루카스가 성력의 채찍을 향해 마법을 속속들이 날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파훼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해를 받은 사이 성력이 덮쳐 오는 속도가 느려진 틈을 타 나는 뒤로 크게 물러났다.

“성력 쓰는 몬스터가 되니까 진짜 귀찮네. 있잖아, 루카스. 혹시…….”

“성 전체를 무너트려서 그대로 파묻자는 말을 하려면 관둬라.”

쳇.

나는 혀를 찼다. 눈치가 빠르기도 하지.

“근데 그게 더 깔끔할 텐데.”

보아하니 성력이 강해 상대하기 귀찮기는 한데, 솔직히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좀 도발한다고 알려 줄 필요 없는 정보를 나불댄 것도 그렇고, 불리할 것이 뻔한 반파된 지하 감옥에서 똬리 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전투 자체에 익숙한 인간이 아니다.

하기야 추기경쯤 되는 인간이 실전에 얼마나 나서 봤겠는가.

아리아드네가 특이한 거다.

루카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몬스터로 변이시켜서 그런가, 일반적인 몬스터처럼 본능에 의지하지도 못하는 것 같군. 지성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거야.”

“그러니까 성째로 파묻어 버리면 손도 제대로 못 쓰고 압사할 것 같은데.”

“그 뒤처리는 누가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럼 진짜 아까 이야기한 대로 가는 거야? 그건 그것대로 뒤처리가 힘들걸?”

“허세가 지나치시군!”

성력 배리어에 감싸인 추기경이 크게 외쳤다.

우리가 대놓고 대화하는 것에 아마도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대로 버티고 있기만 해도 몬스터는 계속 늘어날 텐데!”

“그건 그렇지.”

보스 몹과는 별개로 던전 중앙에서는 여전히 몬스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스 몹을 처치하지 않는 이상 몬스터 웨이브는 끝나지 않으니 추기경의 판단도 틀린 건 아니었다.

현재 나나 루카스로는 저 성력 배리어를 뚫을 수 없고, 저렇게 버티고만 있어도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치게 되겠지.

……그러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냉정하게 추기경을 내려다보았다.

“SS급 몬스터랍시고 어떻게 될 줄 알았나 본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들이다.

성력 배리어가 파훼되지 않으면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그만이지!”

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쿠쿵!

거대한 땅울림이 한 번 더 울렸다.

동시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네, 레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다니.”

집채만 한 몸의 아이스 골렘이었다. 그 뒤로는 수많은 언데드 병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골렘 위에 타고 있는 것은 일리아스였다.

추기경이 이를 갈았다.

“저, 저 사악한 네크로맨서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가 어디지? 지하 감옥?”

파지직!

그러나 여유로운 말과는 달리 성력의 근원 가까이 접근한 일리아스의 몸 근처에서는 계속해서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일리아스의 마력이 성력과 상극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성력이 미친 듯이 날뛰며 일리아스의 피부를 태우고 있었다.

그걸 본 추기경이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나를 너무 얕보았구나! 이대로 악을 정화해 주마!”

“그래, 정화 좋지.”

광인처럼 보이는 추기경과는 달리 그를 바라보는 일리아스의 얼굴은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했다.

실시간으로 성력에 타들어 가고 있는데도 그랬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저럴 걸 알아서, 멀리 가 있으라고 한 건데.

“난 도망가지 않아.”

그렇지만 일리아스는 거절했다.

그리고 내게 말릴 권리도 없었다.

일리아스에게 신전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상대인지 알고 있었으니.

“성력은 분명 언데드에게 치명적이긴 하지. 그렇지만, 그게 뭐?”

일리아스의 날이 선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에는 증오와 광기가 서려 있었다.

“성력은 무한하지 않아. 언데드를 정화할 때마다 소진되기 마련이지.”

“……뭐, 뭣?”

“한번 두고 보자고. 네 성력과 내 마력 중 어느 쪽이 먼저 소진될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의 내게 언데드 몇백 구쯤은 아무것도……!”

“누가 겨우 몇백 구라고 했지?”

일리아스가 코웃음을 쳤다.

“쓸 만한 시체들이 중앙에서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는데?”

“……!!”

추기경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설마 일리아스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물량 공세를 해 상대방의 성력을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소진시킨다는 방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특히나 추기경은 보스 몹인 자신이 퇴치당하지 않도록 버티며 몬스터 웨이브를 지속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리아스는 그걸 역으로 이용했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족족 제 언데드로 만들어 성력 배리어에 박치기를 할 생각인 것이다.

“자, 가거라.”

일리아스가 손을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쿵!

언데드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진군했다.

자신들의 몸을 태울 것이 뻔한 성력 배리어로,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성력에 다가갈 때마다 언데드들이 사라져 갔다.

성스러운 불에 타죽어 가는 자신의 권속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집요한 복수를 시작한 네크로맨서가 웃었다.

“편하게 죽지는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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