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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63화 (26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3화

쿠콰콰콰쾅!

일리아스의 손짓에 따라 수백 구의 언데드가 성력 배리어로 돌진해 또다시 빛나는 먼지로 화했다.

일반적인 마력 사용자는 자신의 권속이 저렇게 허무하게 사라졌을 때면 상실된 마력 소모나, 권속을 만들 때 들어간 재료의 낭비 따위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일리아스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라.”

그저 계속해서 새로운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오히려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성력 배리어의 근원인 추기경 쪽이었다.

“네, 네 노오오오옴!”

간혹 발작처럼 분노에 찬 소리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

지금은 그런 발작적인 외침도 멎은 지 오래였다.

그것도 그럴 게, 일리아스가 저러고 있는 것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지만 진짜 지독하긴 하다.’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편하게 죽이진 않겠다더니 진짜 그 말 그대로였다.

이 몇 시간 동안 성력 배리어에 부딪혀 정화된 언데드들의 숫자는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그런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들이 그저 추기경의 성력을 소진시키는 것에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효과도 확실했다.

덕분에 추기경의 정화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몇천 구나 되는 시체를 정화해야 했으니, 제아무리 SS급 몬스터라고 해도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성력 배리어는 초반에 비하면 빛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무서운 점은 아직도 끝이 아니라는 점.

콰콰쾅!

언데드 수십 기가 또다시 진군했다.

이번의 언데드들은 일리아스가 예전부터 거느리고 있던 것이 아닌, 몬스터가 생성되는 던전 중앙에서 보낸 따끈따끈한 시체들이었다.

중앙에 두고 온 루카스의 기사들과 알리시아가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 몹을 찾으러 이쪽으로 오기 전 일리아스가 자신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건넨 덕이었다.

그 마석의 영향권 안에서 죽으면 곧장 언데드가 되는 식이다.

물론 꼼수는 꼼수라서 어느 정도 복잡한 명령까지 이해 가능한 고위급 언데드까지는 당연히 무리지만, 성력 배리어로 돌진하라는 명령 정도는 잘 알아들으니 그 정도만으로도 매우 쓸 만했다

덕분에 일리아스는 본인의 선언대로 몇 시간 내내 몆천 구나 되는 언데드들을 배리어에 원한처럼 쏟아부을 수 있었다.

차라리 그냥 죽이는 거였으면 빨리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일리아스는 보스 몬스터를 죽이는 대신 그간의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추기경의 성력을 마지막 한 톨까지 탈탈 털고 있었다.

“이 비겁한 놈!”

몇 시간의 고전 끝에 바싹 말라 버린 추기경이 울부짖었다.

하기야 SS급 몬스터쯤 되었는데 현란한 전투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가만히 말려 죽이는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력 배리어를 풀 수도 없다. 성력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언데드 병사들이 저 녀석을 잘근잘근 밟아 버릴 테니까.

사실상 강제 정화 기계가 된 셈이다.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어.”

일리아스가 산뜻하게 웃었다.

몇 시간 내내 추기경이 성력 배리어 내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한결 속이 시원해 보였다.

하기야 일리아스가 이제껏 신전에게 당한 게 좀 많았어야지.

이렇게라도 속을 풀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조한율 : 이게 바로 만렙 네크로맨서…….

그리고 이제 5년 차 서버를 운영 중인 운영자는 직관 중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조한율 : 몬스터 시체를 이렇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진짜 대박이네요. 던전 안에서 무한 수급이 가능하다니.

“아니, 본래대로라면 한참 전에 마력이 고갈되었을 거야. 이 정도로 오래 버티는 건 루카스급의 마법사가 있어서 가능한 거고.”

일리아스 혼자라면 아무리 그래도 마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루카스라는, 전무후무한 대마검사가 있었다. 검사로서는 나보다 한참 아래지만 마법사로서 마력 보유량은 제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루카스는 계속 일리아스에게 마력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몇 시간씩 대량의 언데드 군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루카스도 이게 무슨 마력 낭비냐고 하면서 도와주지 않았겠지만…….’

루카스는 지금 일리아스에게 여러모로 미안해하고 있으니까.

조한율 : 그야 그렇지만 네크로맨서라는 클래스 자체가 꽤 유용한 것 같아요. 물론 처치 후 얻을 수 있는 마석이나 재료가 오염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우리는 인재 없나…….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닌 것 같더라.”

네크로맨서는 마법사 중에서도 히든 클래스였다.

일리아스 본인도 왜 네크로맨서로 각성했는지 조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저 어릴 때 시체 사이에서 며칠 밤낮을 보냈던 것이 계기이지 않을까, 했을 뿐.

그렇다고 그런 짓을 인위적으로 할 수도 없는 법이고.

조한율 : 그것도 그러네요. 유용한 거랑 별개로 우리 서버에선 없었으면 좋겠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네.”

사람으로서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답변이지만, 조한율이 운영자인 만큼 그런 답변은 소중했다. 운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이번 기회를 빌어 충분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루카스와 일리아스가 저러고 있는 동안 난 뭘 하고 있었냐면.

퍽!

“으아악!”

추기경에게로 짱돌을 주워 던지고 있었다.

내가 던진 짱돌은 별일 없이 성력 배리어를 통과해 정확히 추기경의 머리에 직격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아싸, 명중!”

마력 배터리 노릇을 하던 루카스가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이게 왜 쓸데없는 짓이야? 너도 할래?”

물론 일리아스의 원한이 더욱 깊은지라 양보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대로 구경만 하기에는 속이 풀리질 않았다.

일리아스 못지않게 나도 신전에 당한 게 좀 많아야지. 용사치고 찌질해 보인다고 욕하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다.

“어디 보자. 더 큰 짱돌은 없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 대가리를 깨 버려야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은데.

내가 큰 돌을 찾아 눈알을 굴릴 때였다.

“크아아아아악!”

계속해서 강제로 언데드를 정화하고 있던 추기경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비명이 이제까지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일리아스가 표정을 굳혔다.

“음? 성력이 폭주할 것 같은데.”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죽기 전의 발악인가 봐. 마력의 흐름이 막히고 있어.”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일이야?”

일리아스의 말 그대로였다.

이제껏 수천 구의 언데드를 정화하고 있었던 성력 배리어가 일순간 꺼질 것처럼 약해지나 싶더니…….

파아아앗!

갑자기 빛이 폭발했다.

동시에 성력에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언데드 병사들이 먼지처럼 공중으로 산화되었다.

동시에 숨이 답답해져 왔다.

밀도 높은 성력이 갑자기 몰려들었기 때문인 듯했다.

“커헉!”

“일리아스!”

비슷한 계열의 직업을 가진 내가 이 정도이니 일리아스는 더했다.

단박에 언데드들이 녹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성력의 영향권에 있던 일리아스의 입가에 핏줄기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라.”

루카스가 일리아스를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마무리는 나와 레나가 하지.”

“…….”

일리아스가 흐르는 핏줄기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성력 배리어 안의 추기경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일리아스가 나서는 건 정말로 위험했다.

일리아스도 그걸 아는 듯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합니다.”

그래도 목소리는 한결 풀려 있었다.

루카스를 향한 눈빛 또한 그랬다. 알리시아가 돌아온 데다 그 루카스가 이렇게 몇 시간이나 아무 말 없이 마력을 공급해 준 만큼 마음이 좀 가라앉은 듯했다.

다행이다.

“걱정 마.”

나도 일리아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앞으로 나섰다.

“편하게 죽이지는 않을게.”

성력이 폭주한다면, 해답은 간단했다.

성력은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힘과 상극이다. 그래서 마법은 쓸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힘.

그러니까 순수 물리적인 공격에는 사실상 쥐약인 것이다.

즉 모든 장비를 해제하고 성력 배리어 안으로 들어가 직접 저 추기경 놈을 쥐어패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 장비를 모두 해제합니다.

소지창으로 들어가기 전 파트너가 아쉽다는 듯 울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굳은 어깨를 풀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쿵!

반쯤 벽이 무너진 지하 감옥 안으로 뛰어내리자 발에 부하가 그대로 느껴졌다.

님페의 바람까지 해제한 건 오랜만이다.

“으아아아아아!”

그나저나 추기경의 비명이 더욱 처절해져 가고 있었다.

배리어를 뚫고 감옥까지 내려온 나와 루카스를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였다.

나와 루카스는 시선을 교환했다.

“왜 저러지?”

“글쎄…… 음? 이건 뭐지.”

루카스가 바닥에서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추기경 몸에서 떨어진 비늘이었다.

루카스가 탄식했다.

“몬스터로 변하면서 자신의 성력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군.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는 거야.”

나는 루카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변이가 진행되고 있던 추기경의 몸은 이제 인간이라기보다는 다리가 달린 한 마리의 뱀 같았다.

피부에 돋아난 비늘은 인간이었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매끄럽고 강해 보였으며, 희끄무레했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은 따로 생명이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아니,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정말로 생명이 있는 뱀이었다.

그리고 그 숱한 뱀들은 제 성력에 못 이겨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쳤네. 이거 우리가 딱히 손볼 것도 없이 죽겠는데.”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부정한 모든 것을 멸하는 힘이 자신에게 오히려 독이 되다니.

하기야 추기경이란 작자가 스스로 몬스터가 되어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는 했다.

“적당한 벌인 것 같군.”

루카스가 손에 쥔 비늘을 부스러트리며 말했다.

“성직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잊은 자, 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의 삶을 짓밟은 자가 결국에는 자멸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력이 독이 되다니, 이보다 더 적절한 형벌은 없겠지.”

나랑 비슷한 생각인데 어째 왕자가 말해서 그런지 좀 더 품위 있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그냥 저대로 놔두…….”

“아니, 안 돼.”

내 말에 대답한 것은 루카스가 아니었다.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

그건 바로 알리시아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지하 감옥 속으로 뛰어 들어온 알리시아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고 있었다.

“그럼 너무 편하게 죽잖아.”

나는 알리시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야, 너 팔!”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알리시아 또한 성력과 접촉하면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루카스의 기사들과 남겨 두고 온 건데……!

“이 정도는 괜찮아.”

하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폭주하고 있는 성력 안으로 들어온 만큼 알리시아가 사용하고 있던 몬스터 팔 한 쪽은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덕분에 알리시아는 외팔이인 데다 피까지 철철 흘리고 있었다.

오히려 죽어 가고 있는 몬스터보다도 더 처절한 모습.

팔이 떨어져 나간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균형이 맞지 않아서인지 알리시아가 비틀대며 추기경을 향해 걸어갔다.

“알리시……!”

뻐억!

“으아아아악!”

알리시아가 추기경의 뺨을 남은 한 팔로 힘차게 갈겨 버렸다.

아무리 몬스터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기본적인 근력 수치는 변하지 않은 만큼, 알리시아의 주먹에 맞은 추기경은 피를 흩뿌리며 지하 감옥 벽면으로 처박혔다.

“이 개자식아!”

그리고 추기경을 향해 알리시아가 피처럼 울분을 토했다.

“내가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알리시아는 벽에 처박힌 추기경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울분을 토했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추기경은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무슨 성직자야!”

알리시아의 발길질 한 번에 몸에 돋아 있던 비늘이 우수수 떨어지고, 짓밟힌 실뱀들이 피 대신 푸른 독을 토했다.

알리시아의 울분은 그대로 몬스터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나도, 루카스도 말리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처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런 알리시아를 지켜보았다.

그 분노를 감히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운명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알리시아도, 일리아스도 이렇게 제 손으로 직접 복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그렇게 계속했을까.

알리시아의 손에 곤죽이 된 몬스터가 어느 순간 맥없이 고개를 떨궜다.

뚝.

뱀이 된 몬스터의 몸에서 금빛의 성력이 꺼지고.

두 갈래가 된 혓바닥이 축 늘어지며 울컥하는 푸른 독이 바닥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허무하고 초라한 마지막이었다.

- 보스 몬스터, ‘성스러운 수호자’를 처치하였습니다.

- 구역 제한이 해제됩니다.

- 최대 업적자 : 새벽을 걷는 방랑자

-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종료됩니다.

“최대 업적자는 일리아스가 먹었네.”

“아쉽군.”

루카스가 마음에도 없는 농담을 하는 것을 듣고 나는 씩 웃었다.

뭐, 이번 던전에서 썩 마음에 드는 일만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이걸로 일리아스와 알리시아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렸다면 다행인 일이었다.

조한율 : 예나 씨, 이제 곧…….

……다만.

조한율의 말대로, 갑자기 돌발성 던브가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유예되었던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리시아가 남은 한 팔로 땀을 닦아 내며 내게로 걸어왔다.

“휴, 속이 다 시원하네.”

“응, 네 속이 풀렸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런 알리시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더 이상의 말은 보탤 것도 없었다.

“끝났어?”

잠시 몸을 피했던 일리아스도 고개를 내밀었다. 그 역시 입가에 피가 흐른 자국은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였다.

이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단 훨씬 나은 얼굴이었다.

“응, 끝났어.”

나는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일리아스, 알리시아, 그리고 루카스까지.

한국에 있을 때 꿈에서도 그리워하고, 또 걱정했던 녀석들이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게다가…….

“전하!”

저 멀리서 기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메이의 목소리도 아주 잘 들렸다.

나는 씩 웃었다.

“다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 시스템 오류가 정상화됩니다.

- 던전 클리어까지 00:00:30

파지직!

온몸에서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그걸 본 일리아스가 낯빛을 어둡게 했다.

“역시, 한계가 왔구나.”

“알고 있었어?”

“물론이지. 지금 이 세계에서 운영자를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건 나일걸. 게다가 지금은 페트라의 몸을 빌리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내게 손을 뻗더니 꽉 껴안았다. 마치 붙잡는 것처럼.

“언제는 돌아가서 오지 말라더니.”

“그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야, 레나.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렇지만…….”

일리아스가 약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도와주러 와 줘서.”

내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일리아스의 등을 토닥였다.

“응, 언제든지.”

너희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려올 것이다.

일리아스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알리시아와, 반쯤 체념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루카스도 보였다.

그리고…….

“용사님, 잠깐만요!”

달려오고 있는 엘리사 메이도.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일 수 있었다.

“금방 또 보자, 얘들아.”

“레나!”

“다음에는 이렇게 늦지 않을 거야.”

“그 말.”

마지막으로 루카스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지켜야 할 거야.”

그리고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또 병실이었다.

병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보이는 것은 흰 천장이라 나는 멍하니 눈을 껌벅였다.

어째 정부에서 집도 받아 놓고, 조한율네 펜트하우스에도 내 방이 있는데 더 익숙한 건 흰 천장이라니.

‘약간 현타가…….’

그런데 그때였다.

불쑥, 하고 한국에서 가장 익숙한 얼굴이 내밀어졌다.

이우연이었다.

“잘 잤어?”

나는 가까운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저 자식은 왜 또 여기에 있어?

“공략하고 왔는데 잘 잤겠냐?”

“그렇구나. 참고로 나는 잘 못 잤어.”

“왜?”

“당신한테 부탁받은 던전 공략하고, 그 다음으로는 당신이 돌아온 후 날뛰는 던전들을 싹 다 공략하느라고.”

“뭐? 내가 돌아왔을 때 던전들이 날뛰었어?”

“응, 상태창 확인해 봐.”

이우연이 웃으며 손짓했다.

나는 일단 이우연 말대로 상태창을 켜 보았다.

그리고 상태창 레벨이 그대로 80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어라? 왜 레벨이 그대로지?”

“그건 나중에 조한율한테 들으면 될 것 같고, 하여간.”

이우연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뭐 할 말 없어, 강예나 씨?”

그러고 보니 진짜 고생한 티가 나기는 했다.

항상 빛이 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어딘가 퍼석해 보이는 데다, 눈 밑에는 조한율 뺨치는 다크서클이 만개해 있었으니.

음, 정확한 사정은 아직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왜 의문형이야?”

“안 그래도 고맙다고 하려고 했는데 굳이 옆구리 찔러 절 받는 심보가 좀 고약해 보여서 말하기 싫어졌어.”

“힝.”

힝?!

“……너 열나는 거 아냐? 아프지?”

저게 미쳤나 싶어 손을 이우연의 이마에 대 보았지만 열은 없었다.

아니, 그럼 더 문젠데.

어이없어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이우연이 낄낄대며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장난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 웃음에 어딘가 안도의 기색이 서려 있는 것쯤은 진작 눈치챘다.

그리고 그런 이우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모처럼 커다란 메인 퀘스트 하나를 끝냈는데, 이렇게 웃고 있는 이우연을 보고 나니 하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앞으로 남은 운명의 씨앗은 셋.

벌써부터 이별이 걱정된다니.

진짜로,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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