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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65화 (26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5화

다음 날 아침.

“근데 뭘 하고 놀지?”

“그러게.”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난 나와 이우연은 식탁에 앉아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일주일 동안 놀기로 한 건 좋은데, 막상 작정하고 놀려니 할 게 없었다.

이우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이 생긴 이후부터는 던전 공략 말고 취미로 해 본 게 없네.”

하기야 이우연은 바이러스 취급을 당해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려 있었더랬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존이 걸린 마당에 취미 생활 같은 걸 즐길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타르토스…… 그러니까 이세계에 간 이후로 놀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초기에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바빴고, 조금 안정된 후로도 대(對)옵타티오 전용 테크트리를 짜느라 바빴다.

노는 거야 최종 던전을 공략한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을뿐더러 심지어 그 옵타티오는…….

‘아, 생각 금지.’

나는 내 뺨을 한 번 찰싹 쳤다.

이번 던전에서 얻어 온 정보도 그렇고, 조한율이 말한 상당히 신빙성 높은 가설도 그렇고, 아리아드네도 그렇고.

깊이 생각하다간 우울함의 구렁텅이로 빠져 버릴 것만 같은 내용이다.

이럴 땐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게 답이다.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라면 모를까.

‘언젠 내 생각대로 흘러간 적이 있기는 했냐고.’

시간이 흐를수록 던전을 공략하는 실력은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세상만사가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도면 족하지,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에 매달려서 심력을 소모하다가 정작 문제가 닥쳤을 때 힘 빠져 있는 건 사양하고 싶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왕 놀기로 작정했으면 놀아야지. 그게 맞다.

오늘 할 일을 한참 고민하던 이우연이 결국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음, 적당히 검색이라도 해 볼까…… 추천 데이트 코스…….”

“검색해 봤자 광고만 나오지 않아?”

“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미 데이트 코스로 검색을 해 보셨나 봐요? 응?”

“나도 예나 씨랑 데이트 가고 싶다…….”

마침 일어난 조한율이 반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며 식탁에 끼어들었다.

“정말 타이밍 한번 좋네.”

이우연이 짜증을 내며 수저 한 벌을 더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그 짜증 내는 대상이 이 집 주인이라는 걸 잊은 눈치다.

어젯밤에 나름대로 수면을 취했는데도 여전히 피로해 보이는 조한율을 향해 나는 걱정의 말을 건넸다.

“좀 더 자야 하는 거 아니야?”

“우, 그래도 할 수 있으면 식사는 같이하고 싶어요. 예나 씨랑 밥을 먹다니,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기횐데!”

언제 긴급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운영자라는 자리를 랜덤 뽑기로 뽑아 버린 만큼 조한율은 매우 괴로워 보였다.

사실 일주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로 한 이유 중에는 조한율이 차지하는 비중도 컸다.

아무리 운영자라고는 해도 항상 모든 던전을 수동으로 지켜보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자동 전투’ 모드도 가능한 것이다.

다만,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는 나나 이우연이 던전에 들어가는 순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봐야 하고, 그것이 곧 업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이우연이 휴식을 취하는 것은 곧 조한율도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한율도 그간 엄청나게 고생한 데다, 또 어차피 일주일이 지나면 또 내 운명의 씨앗 던전을 세팅해야 하니 조금쯤은 쉬게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조한율은 밥을 먹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쉬기는요. 낮잠만 좀 자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출근해야 해요.”

“출근?”

“네, 저 없이도 돌아가도록 시스템은 짜 놓았지만 그래도 종종 얼굴은 내비쳐야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조한율은 아이템 제작자들을 모아서 길드도 운영하고 있더랬다.

이름은 선율 공방.

조한율이라는 시스템 운영자가 직접 모은 만큼 제작계 헌터들 중에서도 알짜배기만 모아 놓은 곳이며, 정부에 포션을 공급하는 곳이기도 했다.

운영자란 자리가 노동법 따위는 적용되지 않는 프리랜서라 그런 걸까. 정말 열심히 산다.

“제가 가끔 얼굴을 보여 주지 않으면 연구비를 이상한 곳에 쓰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횡령이라도 하는 건가?”

“아뇨, 연구비를 전적으로 지원해 주니까 쓸데없고 기괴한 발명품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면 예술혼을 불태운다든가. 물론 그런 시도도 새로운 아이디어의 기원이 되곤 하니까, 사실 별로 막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암.”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조한율이 하품을 했다. 아무리 봐도 아침을 먹느니 그 시간에 잠을 더 자야 할 것 같은데.

“예의 없긴. 밥 먹을 때 하품하지 마.”

오늘 아침 식사 담당이었던 이우연이 잔소리를 했다. 물론 된장찌개의 두부를 밥 위에 으깨던 조한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근데 두 사람이 놀러 나가면 이우연은 얼굴을 가리는 게 좋을걸요? 예나 씨야 아직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우연은 워낙에 유명한 얼굴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우연을 알아보는 거야 지난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쟤한테 내 가면 씌우려고.”

“아, 싫은데.”

이우연이 제 얼굴을 어루만지며 혀를 찼다.

“내 얼굴이 안 보이면 효과가 없잖아. 나는 얼굴이 생명인데.”

“하긴 이우연은 얼굴 빼면 시체죠. 얼굴이 안 보이면 같이 놀러가 봤자 완전 재미없을지도.”

“그 정도는 아냐…… 아닐걸?”

“와.”

이우연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 성격이 얼굴보다 좋다고 말해 준 건 당신이 처음이야……!”

“그렇게까진 말 안 했다.”

“그럼 얼굴이 취향인가? 역시 그렇지?”

“어휴, 진짜 꼴불견이다.”

조한율은 숟가락을 던지려다 참는 기색이었다.

히죽대는 꼴이 어지간히 얄밉긴 했다.

“아, 얼마 전에 접대받은 한우 집이 맛있었는데 추천이라도 해 드릴까요?”

“난 날고기류는 별로.”

“나도. 피랑 살점과는 좀 떨어져 있고 싶어.”

“으, 전투계 플레이어한테 제가 너무 무심했군요…… 그럼 파스타 집?”

“미안. 느끼한 것도 별로.”

“당신 진짜 한정식만 찾더라.”

“너희들이 10년 내내 한식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 살아 봐.”

“나는 의외로 괜찮을 것 같은데? 딱히 식사에는 집착하지 않는 타입이라서.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이 자식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

“……조한율, 저 자식 언제 한번 이세계 던전에 집어넣어 줘. 한 십 년, 아니, 오십 년짜리로. 그래야 한식의 귀중함을 느끼지.”

“그거는 제 권한으로도 만들 수 없는 던전인데요…… 하아암.”

배가 꽤 많이 고팠는지 조한율이 어느새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한 번 더 하품을 했다.

“으…… 그럼, 여튼, 잘 다녀오세요. 나중에 후기 들려주시고 모레 즈음에는 저랑도 놀러 가요. 꼭이에요.”

“그, 그래.”

내가 문제가 아니라 조한율이 피곤해서 안 될 것 같지만 어차피 놀기로 한 거 못 할 약속도 아니었다.

저 녀석과 어딜 놀러 가도 무슨 사건사고가 터질 것 같다는 걸 제외하면.

* * *

“그래서, 여기가 검색에 걸려 나온 곳이란 말이지.”

“광고였을까?”

“재밌어 보이긴 하는데.”

점심 식사는 접대받을 일이 많았던 이우연이 맛집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덕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그다음에 뭘 하느냐였다.

영화라도 한 편 보느냐, 아니면 쇼핑을 할까. 둘 다 별다른 계획도 없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한참을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사실 던전이니 뭐니 하는 것과 떨어져 있으니 뭘 해도 즐겁기는 했다.

특히 이우연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꽤 만족해했다. 그간 유명세 때문에 꽤 고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사람들의 무관심을 즐기다, 이우연이 검색하며 보았던 핫플이 이 근처였다며 걸음을 옮긴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각성자도 즐길 수 있는 오락실

번쩍이는 네온사인 때문에 눈이 아팠다.

나는 의아하게 간판의 글씨를 바라보았다.

“각성자도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이 무슨 뜻이야?”

오락실이면 오락실이지, 각성자 전용 오락실은 또 뭔가.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우연이 설명을 해 주었다.

“오락 기계에 던전 부산물을 섞어서 강화시켰다는 것 같은데. 체근민 수치 올라가면 아무래도 오락 기계 정도는 손쉽게 부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봤자 우리 같은 고렙은 조심해야겠지만.”

아하, 나는 납득했다.

하기야 인형 뽑기 기계를 움직이다가 홧김에 주먹으로 치기라도 하면 금방 박살 나겠구나.

아니, 차라리 인형 뽑기 기계면 낫지. 격투 게임이라도 하게 되면 대참사다. 외워 놓은 콤보 기술을 하나 쓰기도 전에 기계가 박살 날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이우연이 놀랐다.

“아니,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했어? 의외네.”

“응, 학원 땡땡이치고 가기에 딱이라서.”

나는 고등학교 때쯤 반항기가 와서, 학원 땡땡이치고 오락실이나 피시방에 붙어 살았다. 그때 아르바이트하겠답시고 오토바이 타는 법도 배웠고.

물론 게임에 정신을 팔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차피 부모님 두 분 다 나한테 별 관심이 없었고, 공부를 안 해 봤자 내 손해라는 것만 깨달은 다음에는 그냥 부모님 돈 쓰면서 학원에 가 얌전히 공부를 했지만.

그땐 한국이 너무 지겨워서 어떻게든 멀리 떠나고만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세계로 차원 이동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 그럼 나 저 다람쥐 인형 뽑아 줘.”

이우연이 인형 뽑기 기계 중 하나를 가리켰다. 갈색 줄무늬에 풍성한 꼬리, 눈이 총명해 보이는 다람쥐 인형이 가득 찬 기계였다.

“다람쥐 좋아해?”

“응, 당신이랑 닮았잖아.”

“아주 콩깍지가 제대로 꼈네.”

나는 다람쥐보다는 곰에 가까운데.

다람쥐 대신 다른 인형을 찾던 나는 곧 여우 인형이 들어 있는 기계를 발견했다.

“야, 저거 너 닮았다.”

“아닌데? 내가 더 귀여운데?”

“웃기지 말고 돈이나 줘 봐. 저거 뽑을래.”

“요새 인형 뽑기 기계는 카드로도 되는데…….”

“어, 누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오락실 한구석에서 분홍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라이더 재킷을 입고, 목에는 굵은 체인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양태원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뜻밖의 만남이었다.

양태원을 발견한 이우연이 대놓고 질색했다.

“아, 진짜 눈치 없는 새끼. 알아서 모른 척 사라질 것이지.”

“애한테 새끼가 뭐야, 새끼가. 그리고 네가 내 가면 쓰고 있어서 못 알아본 거 아니야?”

“그리고 나 저 자식이랑 같이 걷기 싫은데.”

“개인의 패션 취향을 존중해.”

“당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양태원 패션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전제가 깔린 거 알지?”

“이우연 또 제 욕했어요?”

그새 나한테로 뛰어 온 양태원이 이우연을 노려보았다.

그 뒤에서 여느 때처럼 양태원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청룡이 눈짓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비록 오락실에 있긴 했지만 그 위용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욕은 안 했……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우연이란 걸 알아봤어?”

“사람마다 두르고 있는 기(氣)가 다 다르거든요. 이우연은 워낙 독특해서 얼굴 가려도 그게 다 보이는…… 아야!”

“그럼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한 거야? 넌 대체 언제 눈치 키울래?”

“알고 방해했다. 왜!”

양태원이 혀를 비죽 내밀었다.

나는 보통 양태원 편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얘가 매를 버는 일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걸 겸허히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누나랑 안 만난 지 오래됐어! 보고 싶었어요, 예나 누나!”

하지만 그래도 이우연의 시선을 피해서 내 뒤로 숨는 걸 보니 역시 태원이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패션 센스가 좀 괴상해서 그렇지, 어쨌든 이런 걸 보면 아직도 애였다.

이우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넌 다음에 두고 보자.”

“근데 누나 무슨 게임하려고 했어요? 인형 뽑기? 저 이거 되게 잘하는데. 제가 뽑아 줄까요?”

“나도 잘해.”

나는 소매를 걷었다.

이렇게 된 거 여우 인형에 추가로 약간 멍청해 보이는 저 곰 인형도 뽑아야지.

* * *

“이게 절 닮았어요?”

졸지에 큼지막한 곰 인형을 안고 걷게 된 불량 청소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곰 인형을 들여다보았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아주 부자연스러운 광경에 지나치던 사람들이 한 번씩 웃고 지나갔다.

“귀엽게 보인다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이우연이 양태원에게 핀잔을 주며 여우 인형 발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인형 발은 아주 몰랑했다.

“멋지거나 예쁜 건 객관적 평가지만 귀여운 건 주관이거든. 즉,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귀엽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 인형을 뽑은 건 아닌데…….”

“무의식이지, 무의식.

그런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먹고 놀기만 해서 그런지, 그간 쌓였던 정신적 피로가 어느 정도 해소된 기분이었다.

의외로 제법 즐거웠다. 맛있는 밥 먹고 수다 떨며 인형 뽑기나 한 소박한 하루였는데도.

만일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곧 그 생각을 치워 버렸다. 타르토스의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사양이다.

“게임 열심히 했더니 배고프다. 저녁은 뭐 먹지?”

“보자, 이 근처에 맛집이…….”

“어? 예나 씨!”

인형을 든 두 사람과 함께 수다를 떨며 길거리를 걸을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옆에서 이우연이 혀를 찼다.

“뭔 방해꾼이 이렇게…….”

이상하다, 이제 더 만날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어, 그, 그……!”

어쩐지 낯익은 얼굴인데 쉽게 이름이 떠오르질 않았다.

옅은 갈색 머리칼에 순하게 생긴 남자가 쓴웃음을 띄웠다.

“하하. 제 이름이 기억하기 어렵지는 않은데. 오랜만이라 그러신가 봐요. 이 솔방울이에요.”

특이한 이름을 듣자마자 곧바로 기억이 났다.

솔방울 간호사.

내가 한국에서 5년간 누워 있을 때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간호사이자.

최초로 시스템이 열린 일산 호수 공원 던전에 함께 휘말려든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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