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68화
“신소재 개발부는 뭐 하는 곳이야?”
“말 그대로, 장비나 아이템으로 적합한 소재를 새로 개발하는 부서예요.”
조한율의 설명에 따르면 던전 부산물 중에는 강력하지만 곧장 장비로 개발하기에는 무리인 금속이 간간이 있는데, 기존에 존재하던 금속과 섞어 주거나 하는 식으로 손을 좀 보면 좋은 원료가 되는 경우가 있단다.
“때때로 인체에 유해한 독성이 들어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녹주석이라든가 석류석, 아쿠아마린 같은 걸 섞어서 속성을 누를 수도 있어요. 신기하죠?”
“그거 과학적인 건지 미신을 믿는 건지 모르겠네.”
“실제로 도움이 되니까 과학적인 미신인 걸로. 아, 여기예요!”
조한율이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그 안의 풍경은, 뭐랄까.
타르토스에서의 공방은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나 대장장이들이 일하는 곳, 이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그대로였는데, 이곳은…….
“저게 뭐야?”
정말로 일반적인 사무실 같았다.
다만 한 가지 특이했던 건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공간마다 각각 거대한 컴퓨터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컴퓨터가 돌아갈 때 배출되는 열기로 제법 후끈후끈했다
“아, 3D 프린터예요. 저희는 본격적으로 장비 제작 들어가기 전에 모델링하고 3D 프린터로 뽑아서 모형 제작한 다음 괜찮으면 직접 제작에 들어가는데…… 음.”
내 표정을 본 조한율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작 전에 미리 컴퓨터로 샘플 제작하거든요. 던전 부산물이 워낙 비싸다 보니 이렇게 하면 낭비도 적고 효율이 좋아요.”
과연.
현대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시스템이 적절히 융합된 결과인 듯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고, 길드장님!”
조한율 못지않게 자유로운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남자가 한창 작업하던 컴퓨터를 제쳐 두고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어제도 출근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로……!”
“제가 못 올 곳에 온 건 아니죠, 정 팀장님.”
“아이고, 설마요. 제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고요. 워낙에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이틀 연속으로 오시니 너무 놀라서…….”
길드장을 보고도 가볍게 인사하던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신소재 개발부라는 곳이 유독 빡빡한 곳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 정 팀장이라는 남자 뒤로 보이는 다른 팀원들은 길드장을 보고도 긴장하지 않고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정 팀장만 유독 이렇게 기합이 들어가 있는지는 금방 밝혀졌다.
“그, 사유서는 분명 이번 주 금요일까지만 제출하라고 하셔서 지금 쓰는 중인데.”
“사유서?”
“네.”
조한율이 팔짱을 낀 채 약간의 한숨을 섞어 말했다.
“원가로는 50억, 상품화 가치를 생각하면 몇백 억은 가볍게 넘기는 소재들로 쓸 수도 없는 아이템들을 만든 사유를 제출하라고 했죠.”
“……얼마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숫자에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이게 바로 그…… 조한율이 없으면 연구비를 아무렇게나 쓴다는 사례인 건가
물론 나도 던전 부산물을 팔아치우면서 남부럽지 않은 숫자가 통장에 찍히기는 했는데, 역시 한 나라에 물품을 공급하는 길드쯤 되니 숫자의 자릿수가 완전히 달랐다.
하기야 던전 부산물은 제작자 클래스가 가공했을 때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백 배쯤 가치가 뛰는 재료기도 했고.
“에이, 길드장님. 쓸데없는 건 아닙니다!”
면전에서 면박을 당한 정 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길드장님도 저렙보다는 고렙용 아이템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인정하셨으면서!”
그건 맞는 말이다.
조한율의 운영 방침은 다수의 유저들에게 가성비 있는 장비를 최대한 제공해 생존율을 높이는 쪽에 가깝다. 덕분에 현재 고렙 유저들의 장비 개발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조한율도 신소재 개발부에 고렙용 장비를 개발하란 지시를 내린 것일 테다.
하지만, 조한율은 냉정하게 정 팀장의 말을 잘랐다.
“쓸모없다가 아니라 쓸 수 없다고 했죠. 팀장님이 이번에 개발한 상품은 하나같이 마력 소모량이 너무 커요. 현재 평균 레벨로는 아이템 쓰다가 플레이어가 죽을 수도 있다고요.”
현 시스템상으로는 총 수치만 보여 줄 뿐, 아이템을 사용했을 때나 부상당했을 때 떨어지는 체력이나 마력 수치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감으로 때려 맞춰야 한다.
그러니 마력을 너무 많이 갉아먹는 아이템을 착용하게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대로 말라 죽어 버리는 수가 있다. 혹은 마력이 바닥난 것도 모르고 마법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틈에 몬스터한테 죽을 수도 있고.
사실 경험이 좀 쌓이면 어느 정도에서 멈춰야 할지 감이 오긴 하는데, 경험이란 게 아무래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거니 조한율은 아직 한국 서버에 그 정도까지는 이르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정 팀장이 우물쭈물 말했다.
“그렇지만 제 계산상으로는 레벨 50대에 접어든 플레이어라면 클래스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게 문제죠. 최소 5년은 기다려야 쓸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었으니.”
“그, 그렇지만! 만들 수 있는 게 보이는데 도전도 하지 않기는 좀…… 그, 한 5년만 창고에 두고…… 죄송합니다.”
본인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걸 알았는지 도중에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팀장에게는 다행히도, 오늘 조한율은 나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근데, 팀장님. 상황이 조금 바뀌었네요. 진짜 운 좋으신 거예요 자, 예나 씨! 이쪽으로 와서 한번 둘러보세요.”
“예?”
“나한테 준다는 게 저 아이템들이었어?”
그 말에 정 팀장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예? 대체 누구신데 제가 개발한 아이템을 다…… 길드장님 지인이십니…… 아!”
곧이어 팀장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조한율이 불렀던 예나라는 이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강예나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내 정체를 알아차린 팀장이 경악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다가,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리더니, 결국엔 기괴한 소리까지 튀어 나왔다.
“어, 어, 어어……!”
그런 팀장을 보는 조한율이 귓가에 소곤거렸다.
“아, 소문나는 건 걱정 마세요. 길드 들어올 때 길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불문에 붙이라는 비밀 유지 계약서 쓰니까.”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보다, 어디 한번 보자.”
“……그럼 테스터를 해 주시는 거군요!”
이내 표정을 가다듬은 팀장이 눈을 반짝였다.
“랭킹 1위…… 가 아니라, 길드장님 지인분이 테스트해 주시면 저야 좋죠! 혹시 괜찮으시면 나중에 후기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후기를 요구하는 눈빛이 워낙에 간절해서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템들을 공짜로 받는데 후기쯤이야. 어차피 사용기는 조한율이 직관하게 될 테니 부담될 것도 없고.
“여기예요, 여기.”
조한율이 이끄는 대로 가보니 아이템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안 그래도 어제 보고서 볼 때 예나 씨가 생각나더라고요. 예나 씨, 약간 특이한 아이템들 좋아하지 않아요? 지난번 VIP 스토어에서 쓸어 간 내역을 봤는데.”
하기야 예전에도 조한율에게 블랙 카드를 받았다는 명목으로 상당히 이것저것 질렀던 경험이 있었다.
나는 찬찬히 아이템들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탐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불을 끄려고 하면 오히려 더 폭발이 커지는 폭발구라거나, 특정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 섬광탄, 플레이어의 마력 반을 소비했을 때 1분간 기척을 완전히 숨겨 주는 은신의 반지나 어디서 본 것 같은 마취독이 발린 침을 쏠 수 있는 시계가 그랬다.
다만…….
“이거 몬스터용이 아니라 대인용 아이템 아냐?”
내 질문에 팀장이 눈을 끔벅였다.
“예??”
“무슨 소리예요, 예나 씨. 보통 이런 위험한 아이템은 사람한테는 쓰지 않…….”
도중에 말끝을 흐린 조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지. 예나 씨는 쓰는군요…….”
“응, 엄청 유용할 것 같긴 하네. 잘 쓸게.”
그렇게 나는 대략 몇백 억어치의 장비들을 소지창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소지창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기분은 아주 짜릿했다.
“아, 이건 어때요?”
한동안 사무실을 뒤적대던 조한율이 갑자기 빈 검집 하나를 들고 왔다.
투명할 만큼 흰빛이 감도는 금속의 몸에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한 검집이었다.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장식용이나 박물관에나 전시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게 뭔데?”
“수입한 오리할콘을 섞어 만든 검집이요. 원래는 검도 같이 제작할 예정이었는데 도중에 오리할콘 단가가 너무 올라서 중지했거든요. 검에 맞춰 늘어나게 제작해서 롱소드 정도는 다 맞아요. 예나 씨 검에도 맞을걸요?”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싸 보이는 데다 딱히 던전 공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아 사양하려는데, 옆구리에 매달린 파트너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우웅!
그 떨림에서는 마치 네가 뭔데 거절하느냐, 라는 듯한 불만이 전해져 왔다.
평소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검집에 꽂고 다녀서 그런 건가? 성검 주제에 물욕이 생긴 건가?
내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파트너를 바라보는 사이 조한율이 검집을 내게 떠안기듯 넘겼다.
“봐요. 에고 소드도 좋아한다니까! 가져가세요.”
“아니, 그래도…….”
“근데 예나 씨랑 너무 잘 어울린다. 저 사진 하나만 찍어도 돼요?!”
“…….”
현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이자 운영자의 배포는 정말로 컸지만…….
‘좋은 게 좋은…… 건가?’
좀 헷갈린다.
* * *
그렇게 아이템을 싹쓸이한 후.
점심은 사내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이런 걸로 괜찮겠어요?”
“어차피 점심 먹고 바로 일 보러 가야 한다면서. 괜히 멀리 나가지 말자.”
애초에 내가 먹는 걸 가리는 편도 아니고, 사실 사내 식당이라고 해도 식사 질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여러모로 길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편인 것 같았다.
“그야 당연하죠. 일도 힘든데 밥이라도 맛있어야 기분이라도 좋지 않겠어요?”
조한율이 잘 튀겨진 치킨가스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근데 그건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걸까.
“그나저나 예나 씨 진짜 특이하다. 맨바닥에 침낭 깔고 자면서 아이템 욕심은 엄청 많네요.”
내가 탐욕에 차서 아이템들을 쓸어 넣는 것이 제법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나는 우거지국의 건더기를 건져 먹으며 대답했다. 간이 딱 맞는 게 아주 맛있었다.
“침낭 정도면 푹신하고 편안한 잠자리인 편인데. 나뭇잎도 아니고.”
“……잠깐, 저 약간 눈물 나려고 해요.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거죠?”
“그리고 맨바닥에서 좀 잔다고 죽지는 않지만 아이템은 생사 여부를 가르니까.”
타르토스에서 초반에 정착할 때는 돈이 워낙 없어서 싸구려 철검, 가슴 보호대 하나를 구하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이제는 쓸모가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면 일단 소지창에 다 집어넣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그나마 인벤토리 슬롯에 제한이 없어서 다행이지, 일반적인 게임처럼 현질을 통해 슬롯을 늘리라고 하거나 혹은 제한이 되어 있었다면 나는 진작 이 인생이라는 X망 게임을 포기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말하자 조한율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당장 깎이는 체력이나 마력은 수치화해서 보여 주지 않는 주제에 아이템은 무제한이라는 게 웃기죠. 이게 진짜 게임이라면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이는 체력이 숫자로 보이고 인벤토리도 제한되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나마 다행인 점이긴 하죠.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기도 하고.”
“현실적?”
“네, 인간의 능력은 수치화할 수 없으니까요. 위기 상황에서 데이터 해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봤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빙글빙글 웃는 조한율의 시선은 내게로 박혀 있었다. 눈빛에 담긴 반짝이는 호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나한테 왜 그렇게 잘해 줘?”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밥을 먹는 내내 쏟아지는 시선에 결국 나는 입을 열고야 말았다.
사실 내내 궁금하던 문제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조한율이 내게 호의를 보이는 건 알겠는데, 이유도 잘 모르겠고 물어봤자 그냥 감동받았다거나 최애라는 두루뭉술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자 조한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이제 익숙해진, 호의 넘치는 웃음이었다.
처음 정체를 속이고 나를 몰래 관찰했을 때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제가 예나 씨한테 잘해 줘요? 기본적인 것 같은데. 본인 서버 랭킹 1위한테 이 정도 투자야 당연하죠. 사실 이우연한테도 이 정도는 해 줘요.”
“……그래?”
“물론 그거랑 별개로 제가 예나 씨를 좋아하는 건 맞아요.”
조한율이 치킨가스 하나를 내 밥 위에 얹어 주며 씩 웃었다.
“솔직히 운영자가 되고 난 후로 내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 아니, 애초에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에 옳고 그름이니 원칙이니 따져야 하나? 내가 뭐라고. 그렇게 고민할 때가 많았거든요.”
가볍게 말하고는 있지만 나는 조한율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확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것이었겠지.
조한율이 짊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한 무게의 자리였다.
천 명과 만 명의 목숨을 저울질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자리.
마음만 먹으면 세계 하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자리.
“그런데 예나 씨를 보면 역시 옳은 건 존재하는구나. 아니, 적어도 옳음을 추구하는 걸 포기하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나는 조한율이 얹어 준 치킨가스와 밥을 같이 입안으로 넣고는 꿀꺽 삼키고서 말했다.
“멋있네.”
조한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멋있다고.”
진심이었다.
사실 조한율은 운영자란 자리를 원한 적도 없는데, 갑작스레 떠맡게 된 책임에서 도망치지도 않고 꾸역꾸역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트러블의 원인이 된 나를 쉽게 제거하기보다는 내 사정을 먼저 생각해 주었다.
자리의 무게에 짓눌리는 대신, 고민하며 흔들리면서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쉬운 길은 아니었다.
조한율의 입가에 샐쭉한 미소가 걸렸다.
“지금의 공략 속도로 보면 아마도…… 곧 예나 씨랑 이별하게 되겠죠?”
그렇지 않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내가 도중에 죽지만 않는다면 남은 던전을 모두 공략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국 시간으로 두세 달쯤 남았을까.
조한율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별을 입에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만남이 만남이었으니만큼 언젠가는 내가 다른 세계로 돌아가리란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제까진 내비치지 않았던 아쉬움이 은은하게 엿보였다.
조한율이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예나 씨가.”
“……나도 그래.”
우습지.
타르토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딱히 길지 않은 시간을 나눈 타인들이 더욱 그리워질 것 같으니.
* * *
점심 식사를 마친 내가 주위 산책을 하고 펜트하우스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조한율이 1층 로비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바쁘지 않아?”
“그 정도 시간은 있어요. 게다가 예나 씨 출입증도 없어서 나가려면 이야기를 해야…… 어라?”
막 1층에 내려온 조한율이 로비 한구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연락 못 받았는데.”
그 시선이 머무른 곳에는…….
“어, 예나 씨?”
오랜만에 보는 이선 헌터.
“여기서 보는군.”
그리고 김숙자 교수였다.
나는 이선 헌터가 손을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휴식 기간 동안, 한국에서 만난 인연들을 다들 한 번씩 보고 가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