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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81화 (28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1화

교황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상황은 상당히 뜻밖이겠지.

그도 그럴 게 대신전이라는 장소는 지금껏 대대로 쌓여 온 성력이 아주 충만한 곳. 신관에게는 여기만큼 전투에 유리한 곳도 없을 터였다.

그러니 교황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에 모습을 드러냈겠지.

실제로도 내게 한 대 얻어맞은 교황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몰렸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교황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러게 네크로맨서를 얕보지 말았어야지.”

이 세상에서 가장 집요한 흑마법사.

일리아스가 원한을 품으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

뻐억!

이번에는 무릎으로 교황의 턱을 가격했다.

아마도 골이 흔들렸을 것이다.

지금의 신체 스펙이라면 이대로 머리뼈를 부술 수 있지만 딱 죽기 전까지만 가도록 힘을 조절했다.

한 방으로 끝내기에는 쌓인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알리시아도 이용하지 말아야 했고.”

과거의 자신처럼 이용당하는 어린애가 없길 바라면서, 옵타티오를 쓰러트려 놓고서도 제 공을 떠벌리는 대신 우직하게 자기 할 일만 해 온 녀석을 무려 대륙 공적으로까지 만들다니.

그냥 죽어라.

빠각!

발로 밟은 교황의 팔뼈가 발밑에서 부스러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으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는지 교황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을 들으며, 나는 유령성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그까짓 권력이 뭐라고 루카스를 희생시키네 뭐네 하는 것도.”

여기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

하지만 운명을 바꾸지 않는다면 분명히 도래할 미래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노인의 손을 지근지근 밟았다.

“그리고, 그리고…….”

옵타티오를 쓰러트리면 몬스터가 사라진다고 했던 거짓말.

그 거짓말에 얼마나 숱한 도전자들의 목숨이 사라졌던가. 애초에 그 옵타티오를 만들어 낸 것조차 이들이다.

교황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악당에게 내가 설교를 좀 한다고 해서 뉘우칠 리도 없다.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냥 말 그대로, 죽어라 팼다.

퍽!

퍼퍽!

얼마나 주먹을 휘둘렀을까.

살점이 튀고 바닥에도 피가 흥건해지고 있었고, 어느새 교황은 고통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미궁 안에 고여 있던 성력이 빠져나갔다고는 해도, 이곳이 신관에게 유리한 장소임은 여전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패도 상처가 복구되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아무리 패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데 마침 복원력 좋은 샌드백이 생긴 참이다.

무참하게 얻어맞은 교황이 나를 노려보았다.

고통과 피에 젖은 얼굴은 흉악했다. 자비로운 교황의 모습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이익……! 감히……!”

“감히라. 권위에 절어 있는 놈들이 뒈질 때 꼭 그런 소릴 하더라. 네가 뭐라고?”

“나는……!”

“그래그래, 위대하신 교황 성하이자 운영자지. 그래서 뭐?”

나는 우드득, 하고 한쪽 손을 한 번 더 짓밟았다.

다른 쪽 손은 검을 꽂아 바닥에 꼬챙이처럼 박아 버린 채였다.

“그래 봤자 손을 쓰지 못하면 운영자 권한도 못 쓰는 거 아냐?”

내 말에 교황의 얼굴에서 분노의 빛이 사라지고 경악이 들이찼다.

그리고 교황의 그 반응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역시나.”

평소 조한율을 보다 보니 깨달았다.

조한율은 시스템 권한을 사용할 때 항상 가상의 키보드를 끌어왔다. 아마도 본인의 클래스가 프로그래머인 만큼 그런 형태로만 운영자 권한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교황의 클래스는 성직자.

“아까 조한율을 배제할 때 기도를 하더군.”

그래서 문득 생각한 것이다.

혹시 운영자는 권한을 사용할 때 직접적으로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권한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시스템에는 항상 허점이 있고, 완벽한 클래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설은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나를 바라보는 교황의 눈에 분노가 가득 들어찼다.

“이, 이 새끼가!”

“오, 드디어 가면을 벗어 던졌네.”

노인의 얼굴에는 이제 날것의 분노와 증오가 그득했다.

드디어 한결 인간다워지지 않았는가.

나는 이미 손가락이 박살 난 교황의 손을 한 번 더 밟았다.

조한율 : 와우.

그리고 때마침 한국의 운영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조한율 : 갑자기 개입이 가능해졌길래 와 봤더니 그새 운영자를 잡으셨군요. 손이 관건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대.

약간 떨떠름하게까지 느껴지는 메시지.

운영자 권한을 사용하는 데 손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아무리 조한율과 사적으로 친해졌다고 해도 딱히 입에 담을 만한 정보는 아니긴 했다.

사실상 운영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었으니까.

“시스템은 이런 곳에서는 공평하니까, 같은 운영자라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어.”

조한율 : 이거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네요. 예나 씨 앞에선 손 조심해야지.

“보호 장갑이라도 하나 사 줄까?”

조한율 : 선물은 기쁜데 기쁘지 않아!!ㅠㅠㅠ

그래도 한국의 운영자라는 제 입장의 유리함을 들어 나를 협박하지는 않는 것이 조한율다웠다. 볼수록 괜찮은 인간상이란 말이지.

“이쪽은 정리했다.”

내가 바닥에서 벌레처럼 뒹구는 교황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마침 몬스터의 정리를 대강 끝낸 루카스가 다가왔다.

메이가 두 손이 완전히 망가진 채 바닥에 뒹구는 노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대로 둬도 됩니까? 혹시 틈을 타 도망가기라도 하면…….”

“아니다, 엘리사 경. 그렇다고 당장 교황쯤 되는 인물을 죽일 수도 없는 일이야. 레나, 힘 조절에 주의해라.”

루카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복잡해질 정치적 상황은 제쳐 두고라도, 만일 여기서 교황을 죽이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차기 운영자가 정해진다.

그걸 생각하면, 여기서 교황을 죽이는 건 확실히 지양해야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나는 농담 삼아 루카스에게 물었다.

“왜, 내가 이대로 운영자가 되면 곤란해?”

“그것도 문제지만 지금 죽일 경우 네가 운영자가 될지, 페트라가 운영자가 될지 확실하지 않은 게 더 문제다.”

그건 그랬다.

내가 여기서 운영자를 죽이게 되면 차기 운영자가 누가 될지, 시스템적으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나야 그렇다 치고 페트라에게 원치 않는 가시 면류관을 씌울 생각은 없었다.

본인이 원한다면 또 모를까.

나는 잠시 고민해 보았다.

“루카스, 참고삼아 물어보는 건데…… 내가 운영자가 되면 어떨 것 같…… 알았어. 인상 찌푸리지 마.”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사실 나도 운영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냥 평범한 왕족인 루카스만 해도 이 모양인데, 운영자 같은 자리는 줘도 사양이다. 성질도 급하고, 딱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만 그럼 누가 차기 운영자가 되냐, 하는 건데.

“그럼 하나 더 물어보겠는데, 루카스 너는 어때? 생각 있어?”

“미쳤나?”

루카스가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왕족으로 태어난 것만 해도 내겐 충분한 짐이다.”

예상했던 답변이긴 하지만 너무 질색하고 있으니 우습긴 했다.

모르긴 몰라도 신전 내부에서는 이 운영자 자리를 가지고 거의 십여 년 동안 배틀로얄을 벌였을 텐데, 막상 그 자리를 준대도 싫다는 사람이 있으니.

“보통 한번 권력을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서 눈 까뒤집고 달려들지 않아?”

“내가 그랬다간 죽이러 올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말이지.”

“응, 여기 한 명 있긴 해.”

재수 없어서라도 다른 차원에서 루카스의 뒤통수를 노리러 올 것 같긴 했다.

루카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겐 그 누구보다도 두려운 한 명이지.”

“뭘 또 그렇게까지…… 하여간, 이게 문제네.”

일리아스의 작전이 성공하고, 그리고 내가 혼돈의 용사 클래스 보정을 받아 교황이라는 거물을 잡은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대로 교황을 풀어 줄 수도, 그렇다고 곧장 죽일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풀어 주는 거야 당연히 논외고, 죽이게 되면 죽이는 대로 누군가가 차기 운영자를 맡아야 한다는 것.

“누가 되어도 문제로군.”

일단 신전처럼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은 안 된다. 사람이 모여 조직이 되면 이득을 탐하게 되기 마련. 덕분에 이 타르토스 대륙은 아주 오랫동안 신전의 손에 고통받았다.

하지만 조직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라고 한들 안전한 것은 아니다. 권력을 탐하고, 자신의 손에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이 제 손에 쥐어져 있는데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게다가 운영자라는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만큼 너무 무력한 개인이 맡게 되었다간 목숨이 위험할 가능성도 컸다.

신전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황제라는 변수도 남아 있다.

새삼 운영자 자리라는 게 얼마나 막대한 권한과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느껴졌다.

루카스도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래도 누가 운영자가 되건 이제는 나를 포함해 감시의 눈이 많을 테니…… 신전이 그랬듯 권한을 남용하지는 못할 테지.”

“감시라…… 그거야 어렵지 않다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당장 완벽하게 느껴지는 안은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며 바닥에 구르고 있는 기절한 운영자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걸 어떻게 정하란 거야?”

그때였다.

익숙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꼭 네가 정할 필요는 없지.”

슬슬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과연, 일리아스의 모습이 있었다.

일리아스가 나를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안녕, 레나.”

무려 대신전을 박살 낸 네크로맨서께서는 자신이 성공시킨 작전이 아주 만족스러우신 모양이다. 쓰러진 교황을 바라보는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냥 일단 처죽이고 생각하면 안 되나?”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알리시아의 모습도 함께였다. 알리시아가 외팔로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수도에 올라오는 중간에 사라진 거였군. 신세를 졌다, 일리아스.”

“이 정도로 뭘요. 그냥 제가 신전을 치는 데 루카스 전하를 이용한 것뿐입니다.”

저렇게 삐죽한 말은 하지만 알리시아 때문에 삐걱대던 사이가 원만하게 돌아온 것이 보였다.

알리시아도 편하게 웃고 있었다.

“이야, 루카스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일리아스가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안 된다고, 암시장에서 얼른 마석 구해 오라고 얼마나 사람을 쪼던지…… 아, 왜 때려. 어, 엘리사도 있었잖아!”

“또 뵙습니다, 알리시아 님.”

무려 대신전의 미궁 안에서 나누기에는 무척이나 여유롭고 긴장감 따위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한담이었다.

그리고…….

“성하.”

아리아드네까지.

이번에는 환상이 아니라 본인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발치에 허망하게 구르고 있는 교황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야 아리아드네 입장에서는 미우나 고우나 자신이 모시고 있던 사람이니만큼 심경이 복잡할 것…….

뻐억!

아리아드네가 기절한 노인네를 발로 걷어찼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입이 떡 벌어졌다.

막상 하늘처럼 모시던 교황 성하를 걷어찬 아리아드네는 분노에 차 있었다.

“설마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셨을 줄은 몰랐네요, 성하.”

……저 성질은 진짜 변하질 않네. 보는 내가 다 아파질 정도의 일격이었다.

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일리아스가 살짝 속삭였다.

“방금 전 나랑 알리시아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럼 아리아드네는 사정을 전혀 몰랐던 거야?”

“응, 하지만 완전히 무결하다고는 이야기 못 하겠네.”

일리아스는 단번에 핵심을 찔렀다.

과연 가차가 없다.

“네 등을 민 건 아리아드네 님이 맞으니까.”

“…….”

“다만 이야기는 들어 봐. 기억에 다소…… 결락이 있더군.”

“결락? 그게 무슨…….”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동안 조용하던 시스템 메시지가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떠오른 것이다.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 ‘아리아드네’의 죽음

- 운영자, ‘운명을 거스르는 자’와 플레이어, ‘강예나’와의 내기가 진행 중입니다.

- 승리 조건 : 세계를 멸망시킨 자를 죽이시오.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시스템 메시지는 그렇다 치고, 내기 조건이 저렇게 함께 뜨는 것은 의도가 분명했다.

나와 내기를 한 운영자, B루트의 아리아드네로 추정되는 인물은 ‘이쪽 아리아드네’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아리아드네 본인을 세계를 멸망시킨 자라고 확정지으면서.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틀린 말이었다.

‘이쪽의 아리아드네는 아직 운영자도 아니잖아.’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페트라의 기억 속에서 아리아드네는 교황을 죽이고 운영자가 되었다. 아마 그 권한을 사용해서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겠지.

하지만 이쪽의 아리아드네는 다르다.

만일 운영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지금 당장 교황을 향해 달려들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리아드네는 오히려 교황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건지, 운영자 후계 싸움에 뛰어든 것치고는 자리에 관심도 없는 눈치다.

어쩌면 내가 개입하면서 아리아드네의 심경이 바뀌고, 또 운명이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아리아드네가 세계를 멸망시킨 자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러니 저쪽 운영자의 속내가 어떻든 이 내기를 아리아드네를 죽이는 것으로 이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던전 클리어 조건이야.’

솔직히 교황을 손에 넣으면, 히든 루르라도 하나 뜰 줄 알았다.

어쨌든 운영자쯤 되는 인물이니 운명이 뒤바뀌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상은 틀렸다.

교황을 아무리 죽어라 패도, 이렇게 손발도 쓰지 못하게 묶은 채 바닥에 굴려 놓아도 다른 히든 루트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던전을 클리어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수단을 짜내야만…….

“어라, 일어났네.”

그 말대로였다.

성력 덕에 그렇게 팼는데도 정신을 차린 노인이 눈을 뜬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콰득!

“크아아악!”

물론 손가락 하나 꿈틀거리기 전에 검을 박아 두었던 것을 뒤틀어 움직이지 못하게 해 두었다.

일리아스가 곤충 표본처럼 뒤틀린 교황을 보며 산뜻하게 웃었다.

“하하하. 귀하신 분이 이게 무슨 꼴일까.”

“이, 이, 이 하찮은 것들이……! 신의 분노가 두렵지 않으냐!”

“신 같은 게 어디 있는데?”

알리시아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어릴 때부터 인간의 악을 마주하며 자라온 알리시아가 할 법한 말이었다.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교황의 눈길이 필사적으로 다른 이를 훑다가, 성녀 아리아드네를 발견했다.

마치 구원을 발견한 것처럼 그 눈빛에 희망이 깃들었다.

“아, 아리아드네! 어서 나를……!”

그러나 그 얼굴은 곧 일그러졌다.

아리아드네가 고개를 저으며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아리아드네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성녀 아리아드네는 교단을 등졌다.

“저 어리석은 것이!”

성녀의 배신을 알게 된 교황이 핏발 선 눈으로 성녀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 모습은 성직자보다는 악귀에 가까웠다.

“스스로 용사라 지껄이는 저자의 목적을 알기나 하는 건가!”

그 순간, 잠시 안일하게 있던 머리가 확 깨어났다.

교황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검을 빼 드는 것보다 교황의 혀가 더 빨랐다.

“잠……!”

“저자는!”

노인이 마지막 발악처럼 소리쳤다.

“성녀를 죽이려고 여기에 왔어! 성녀 아리아드네가 죽어야만, 이 세상을 구할 수 있…….”

다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서걱!

일리아스의 완드가 교황의 목덜미를 날카롭게 내리쳤고, 힘을 잃은 노인의 목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의 말로치고는 무척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새삼스럽게 비관하거나 신경 쓰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단지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아리아드네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저 교황 자식, 끝까지……!

“아리아드네, 저 자식 말은…….”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쩐지 아리아드네는 속이 시원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알리시아가 혀를 찼다.

“이거 X됐네, 진짜.”

내 말이 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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