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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82화 (28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2화

알리시아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리아스도 자기가 목을 친 교황의 시체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아리아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 묻은 완드를 든 손은 긴장으로 움찔거리고 있다.

“아리아드네! 설명부터 들어.”

루카스 또한 당황하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를 잘 모르는 메이만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내 앞에 보호하듯 섰다.

검날이 미묘하게 아리아드네를 겨냥하고 있었다.

하기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교황의 말을 들은 아리아드네가 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 본인의 목숨이 노려지는 상황이니까.

기특하기는 했지만, 나는 조용히 메이의 어깨를 밀고 앞으로 나섰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이 아니다.

“아리아드네.”

하지만 이름을 불러도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리아드네의 눈은 무언가를 헤아리듯 허공을 맴돌며 빛났다.

“일리아스 님께 들었어요. 제가 운영자 자리 따위에 집착하는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더군요.”

조용한 목소리로, 아리아드네는 지난 세월을 회고하듯 말했다.

일리아스에게서 그간 신전이 해 온 일을 들었다더니 충격이 큰 듯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을 때 벌어졌다고는 해도 아리아드네 또한 신전의 일원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몇 년 동안 교황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만큼 더더욱.

“솔직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모두가 고통받는 동안 저는 대체 무엇을 해 온 것일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을 모두 아리아드네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리아드네!”

내가 한 번 더 이름을 불렀지만 여전히 귀담아듣지 않는 모양새.

“그래도, 이런 저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아리아드네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더없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 모두 아리아드네를 겪을 만큼 겪어 보았고, 저 녀석 고집이 얼마나 센지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교황의 입에서 튀어나온 뜬금없는 한마디로도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할 만큼 영리하다는 것도 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여기서 모든 게 끝날 것이다.

“아리아드네, 내 말부터 들어. 혼자 멋대로 결론 내리지 마.”

하지만 이미 성녀님께서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되뇌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나마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다행이네요. 이것도 저의 운명이겠죠.”

“야! 내 말 좀 들으라고!”

“그렇다면 부정해 보세요, 레나.”

아리아드네와 시선이 마주쳤다.

“제가 죽어야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그래서, 아리아드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 눈은 페트라가 아니라, 정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망해 왔던 재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 입으로 직접 아니라고 말해 봐요.”

계속 그리워했던 녹색 빛깔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의 말은 틀렸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일단 이 상황을 무마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고, 아리아드네를 죽여야 한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볼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아니라고.

“…….”

입만 뻐끔거리는 나를 보고 아리아드네가 눈동자를 휘며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냥 순진한 소녀 같은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고, 나는 변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거울에 대고 거짓말을 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듯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리아드네는 진실을 알아차릴 테니까.

“레나는 진짜 거짓말을 못 한다니까.”

“……아리아드네,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 줘.”

“아직도 말리려고요?”

“그거야 당연…….”

“옵타티오 공략 후에.”

아리아드네가 내 말을 끊었다.

“내가 일부러 레나의 등을 밀었는데도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이야기였는데, 듣는 순간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지만…… 이런 것에 상처 입을 때가 아니었다.

아리아드네가 나를 알고 있는 만큼 반대도 그랬다. 저건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고 던지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나 자신에게 배신당하더라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루카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아리아드네, 너는 지금 본인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네가 무엇을 지키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게 친우를 지독하게 상처 입혀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인가?”

“이미 상처는 입힌걸요. 그렇다면 지킬 수 있는 것이라도 손에 쥐어야지요.”

굳건한 대답이었다.

아리아드네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해요. 저는 진작 알고 있었거든요. 옵타티오 공략이라는 목적을 마치면 이방인은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

이방인.

제자리.

무엇 하나 가슴을 찌르지 않는 말이 없었다.

그 단어 중 무엇도, 아리아드네의 입으로 들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루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정보를 대체 어떻게…….”

“교황 성하께서 알려 주셨어요. 이방인의 최종 퀘스트는 옵타티오를 없애는 것이고, 그러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사람이니 너무 정을 붙이지 말라고요.”

“그럼…… 왜 그 사실을 레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옵타티오를 없애고 이 세상을 구하는 데 레나의 힘이 필요했으니까요. 이 정보를 알고 옵타티오 공략을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아리아드네는 쐐기를 박았다.

검보다 말이 매섭다는 것은 이럴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상처를 주는 게 목적이라는 걸 아는데도 그 효용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일단은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대체 뭐라고 해야…….’

그런데, 그때였다.

내가 숨을 고르며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빈틈을 알아챈 아리아드네의 손이 성력으로 만들어진 불꽃으로 휩싸였다.

‘방심했……!’

그리고 그 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목을 향해 날았다.

“이, 이 미친……!”

그러나 다행히 그 손이 목숨을 끊기 전에.

나와 아리아드네가 대화하는 동안 몰래 등 뒤로 접근하던 알리시아가 외팔로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아채는 게 먼저였다.

동시에 틈을 노리고 있던 루카스 또한 아리아드네에게로 달려가 다른 한쪽 팔을 붙잡았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였다.

“이거 놔주세요.”

아리아드네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리시아는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얘는 왜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어! 지가 황소야, 뭐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잘 잡고나 있어라!”

“……방금 성녀님은 자살하려고 하신 겁니까?”

그리고 그 난장판을 보던 메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세상을 구한다는 명목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리 쉽게 목숨을 버릴 작정을 하느냐, 라는 의미겠지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그걸 한다.

그런 녀석이다.

그래서 더욱 골치가 아픈 거다.

알리시아가 멍하니 있는 내게 외쳤다.

“레나, 뭐 해? 얼른 밧줄이라도 가져와! 꽁꽁 묶어서 어디 던져 버리게.”

그러자 일리아스가 한마디 참견을 섞었다.

“성녀께서 정말 작정을 했다면 묶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니?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리아스, 자네는 대체 누구 편이야!”

“근본적으로 아리아드네 님을 설득하지 않는 이상 육체적인 구속 수단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한 일리아스의 눈이 재빠르게 허공을 훑었다.

“그리고 교황이 남긴 말은…… 사실이긴 하네요. 레나한테 아리아드네 님을 죽여야 한다는 퀘스트가 걸려 있어요.”

얼떨결이기는 했으나 교황을 죽이며 자동적으로 운영자가 된 일리아스는 정보를 알아내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이미 내게 운명의 씨앗과 관련된 모든 사실을 들었으니만큼 상황 판단이 빠른 것도 있을 테고.

잠시 시스템 권한으로 무언가 정보를 읽던 일리아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레나,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뭐?”

“아리아드네 님이 네게 칼자루를 쥐어 주셨잖아.”

일리아스가 친구들에게 붙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아리아드네를 턱으로 가리켰다.

“운명을 바꾸지 않는다면 타르토스는 멸망한다고 했지. 그리고, 그 운명을 바꾸려면 아리아드네 님이 죽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진실이야. 그렇지?”

“…….”

나는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부정하지 못한 시점에서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무슨, 그런…….”

“그게 대체 뭐야!”

루카스와 알리시아가 반발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무슨 그런 운명이…….”

“그야 아리아드네 님이야말로 세계를 멸망시킨 장본인일 테니까요.”

일리아스가 루카스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루카스가 눈썹을 움찔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아리아드네가 어째서 그런 일을 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일리아스의 시선이 아리아드네를 훑었다.

“본래대로의 역사에서, 아리아드네 님이 후계자 싸움을 끝내고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죽어 있었을 겁니다.”

페트라가 과거로 역행하기 전, 본래의 역사.

내가 운명을 바꾸기 전에는, 분명 그랬다.

길고 긴 싸움에서 돌아온 아리아드네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아리아드네가 뿌려 온 선의의 씨앗은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싹이 트는 봄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았다.

“그 심정이 어땠을지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원흉은 선행을 베풀어야 할 신전이었으며, 다들 권력 다툼에 희생되었지요. 옵타티오를 처치한 영웅을 돕는 이들도 없었다…… 이런 세상은 차라리 멸망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죠.”

본인이 한번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작정을 했었기 때문일까.

일리아스의 말은 무척이나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운명이 바뀌었잖아!”

알리시아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답답한 듯 외쳤다.

“지금은 나도, 루카스도 살아 있어! 일리아스도 쌩쌩하고, 레나도 여기에 있잖아. 이제는 아리아드네가 세상을 멸망시킬 이유도 없는데 왜 죽어야 한다는 건데?”

“맞는 말이다.”

루카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설령 정말 그런 퀘스트가 있다고 해도, 누군가 한 명이 죽어야만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그딴 퀘스트는 거부하는 게 낫다. 이걸 받아들이면 교황과 다를 게 뭐지?”

루카스다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일리아스가 나를 보았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레나.”

“……나?”

“그래, 너. 다른 사람의 의견은 아무래도 좋아.”

일리아스가 그리 말하며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이 세계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너고, 이제껏 고생한 것도 너잖니. 그리고 지금 네 앞에 그 방법이 있어. 너를 배신한 친우가 눈앞에 있고, 심지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죽어 주겠다잖아. 세상을 구하는 데 이보다 쉬운 길이 어디에 있어?”

“일리아스!”

“너 지금 무슨 개소리야!”

루카스와 알리시아가 각자 소리쳤으나 일리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어떤 증거를 찾으려는 것처럼

“널 배신한 아리아드네 님을 죽이고 세상을 구할 건가?”

그 물음에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질문부터 모순이네.”

“그래?”

“응. 너희들을 구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그깟 이유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본말전도 그 자체야.”

어쩌다 보니 세계를 구한다는 거창한 명목으로 여기에 오긴 했지만, 내 목적의 근본은 결국 소박하다.

내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그저 그 마음이 전부였다.

이성적인 말도, 논리도 필요 없다.

나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리아드네의 말에 상처 입었다고 해서 내 결론이, 마음이 변하는 일은 없다.

나는 아리아드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리아드네, 네 의사는…… 충분히 알겠어.”

아리아드네가 내 등을 밀었다는 것도.

내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는 것도.

제 목숨을 기꺼이 바쳐 세상을 구할 생각이라는 것도 잘 알겠다.

아리아드네가 눈가를 좁혔다.

“그렇다면……!”

“나는 그래도 너를 구하고 싶어,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가 내게, 함께 세계를 구하자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당시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바빴던 내게는 그 말이 꽃놀이 타령처럼 들렸다.

대체 세계의 안녕 따위가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내게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네가 나를 배신했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고통스러운 낮을 견디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지냈다. 누군가에게 동정을 베풀어도 호의는 돌려받지 못하기 일쑤였고, 오히려 악의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이 세상에 아리아드네 같은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리아드네야말로 내가 이 세상의 선의를 믿게 하는 근본이었으니까.

아리아드네가 없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는 날들이었고.

애초에, 아리아드네가 없었더라면 그런 날을 바란 적도 없을 테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설령 우리 사이에 비밀이 존재했다고 해도, 그런 나날이 거짓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다.

아리아드네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네가 좋아하는 운명 같은 건 난 믿지 않지만…….”

배신당했으니 깔끔하게 상대를 버려 주겠노라고.

그렇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살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세계에 기를 쓰고 돌아오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용사 같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클래스가 된 거겠지.

나는 비효율과 비합리의 끝을 달리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나는 망연히 선 아리아드네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나처럼 배신당해도 도통 떨어져 나갈 생각이 없는 끈질긴 인간을 구한 네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구할 거다.

십여 년 전 내가 받은 선의를 복리로 쳐서 갚아 주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지금 여기서 죽으면 나도 뒤따라서 죽을 거야.”

“……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아리아드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시 말해 줘? 네가 죽으면 나도 콱 죽어 버릴 거라고.”

“……라고 하네요, 아리아드네 님.”

일리아스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물론 딱히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레나도 아리아드네 님 못지않게 고집 센 건 잘 아실 테고. 당신을 구하겠다고 사선도, 세상도 뛰어넘은 레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하실 건가요?”

일리아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아리아드네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내 말밖에 없다는 것을.

애초에 이런 상황을 노리고 한 질문이었다.

하여간 성격이 나쁘다.

“……무슨, 그런…….”

내 협박을 들은 아리아드네가 무릎에 힘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주저앉았다.

다행히 다른 두 사람이 붙잡고 있어 부축해 주기는 했지만.

알리시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여간 미친것들…….”

“오늘 드물게 의견이 잘 맞는군.”

루카스도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저 둘이 의견이 맞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한편, 거의 주저앉은 아리아드네의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딜 봐도 설득당한 걸 넘어서, 완전히 의지가 꺾여 버린 표정이었다.

하기야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협박을 해 댔으니.

“아니, 레나…… 대체 쉬운 길을 놔두고 왜 그러는 거예요?”

이 대신전의 미궁에 갇혀 있었던 것은 루카스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세계를 바꾸고 싶었던, 혼자 힘으로 해내려고 했던 아리아드네 또한 이 미궁에 갇혀 있던 죄수였다.

너무 오래 고통받은 탓에 죄수는 스스로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내밀었지만, 나는 그게 싫다.

“뭘 새삼스럽게. 언제는 쉬웠어? 히든 루트 하나나 두 개쯤 찾으면 그만이지.”

쉬운 길을 찾아 나태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야 어렵겠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을 봐. 어떻게든 될 거야.”

이제껏 그래 왔듯이.

그러자 아리아드네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어딜 보아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

그리고…… 호의를 돌려받은 사람의 표정이다.

나는 주저앉은 아리아드네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고 위로했다.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어쨌든, 이걸로 한시름 놓았다.

그야 이제부터 히든 루트를 찾긴 해야겠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알리시아와 일리아스, 루카스와 아리아드네까지.

우리가 함께 있으면 어떤 고난이라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했을 터였다.

- 경고!

-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귀를 창으로 뚫는 듯한 이명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

- ■망의 ■■이 출현합니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심지어는 시스템의 글자마저 깨져 허공에서 춤추었다.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력이 거꾸로 향하는 듯했다.

“커헉!”

메이가 가장 먼저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달려가 부축해 주고 싶어도 아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온몸에 가해지는 압박을 견뎌 내는 것에 필사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 세상을 지탱하던 중추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이대로라면,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온몸이 찌그러질 것만 같았다……!

‘대체 왜?’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시스템이 오류라도 일으킨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원인은 뭐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릴 때였다.

문득.

정말로 우연히, 시스템 구석에 떠오른 메시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 운■자, ‘운명을 거■스는 자’와 플■이어, ‘강■나’와의 ■■가 진행 중입니다.

깨져 버린 글씨.

그러나 그 내용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저 메시지를 띄운 장본인에게 생각이 미쳤다.

내가 만일, 지금 이 세계의 아리아드네를 구해 낸다면.

그걸 지켜보고 있었던 미지의 운영자.

‘다른 세계의 아리아드네’는, 그걸 어떻게 생각할까?

- ■리 조건 : 세■를 멸망시킨 자를 죽이■오.

아니, 그것은 우문이다.

다른 운명을 살아가게 된 아리아드네가 무엇을 바라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치지직!

세계가 흔들렸다.

이윽고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재앙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깎여 나갈 정도로 압도적인 죽음.

혹독한 겨울의 그림자가 인간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탄식했다.

왜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만일 다른 차원에 있는 운영자인 아리아드네가 이미 익숙한 개체인 ‘나’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자신’이 매개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인간의 형상을 한 절망이 흰 발을 대지에 디디며 내려앉았다.

등 뒤로 긴 금발이 날개처럼 나부꼈다.

그러나 천사 같은 모습과 달리 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질투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

“너와 나의 차이점은 뭐였지?”

그저 우연과 행운으로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이 세계에, 그리고 또 다른 자신에게.

“그런 거, 나는 인정 못 해.”

한 세계의 운명을 잡아먹은 재앙이 모든 것을 뒤틀어 버리며 강림했다.

- 당신은 세계를 멸망시킨 최후의 전령을 목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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