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4화
“응, 멍청한 짓이지.”
내 말을 들은 일리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사람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근본이 바뀌기는 쉽지 않아. 저 지경이 되어도 아리아드네 님은 너를 신경 쓰고 있어. 말 그대로 본인을 죽였는데도. 저건 저것 나름대로 무섭군.”
“야, 신경은 개뿔이.”
알리시아가 코웃음을 치며 내 왼팔을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팔이 저항 없이 마구 흔들렸다.
다 타들어 간 장작 같은 꼴이 되었는데도 신경은 살아 있는 건지 죽여주게 아프다.
“신경을 쓰는데 사람 팔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드냐? 너 이거 잘못하면 절단해야 해. 나처럼 몬스터 팔 붙이고 싶어?”
알리시아의 말대로 아리아드네에게 잡혔던 팔은 반쯤 썩은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부상을 워낙 많이 입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지나면 회복이 될지 대충 감이 오는데, 이건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왼팔이라 망정이지 오른팔이었다면 평생 검을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 포션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상처일 것이다.
나는 힘없이 웃었다.
“트롤 팔은 좀 좋아 보이던데, 나도 이 김에 바스타드 소드로 갈아 탈까?”
“이게 진짜. 헛소리하고 있네.”
“그래, 이번만큼은 내 멍청한 동생 말이 맞아. 언제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네 신념은 존중하지만, 솔직히 이쯤 되면 방법이 없지.”
일리아스가 쓰게 웃었다.
“내 경우와는 달라. 나는 아직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어. 하지만 저쪽의 아리아드네 님은 이미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켰고, 시스템조차 거부하는 마당이지. 저건 몬스터조차 아니야. 그냥 자연재해라고나 할까? 시스템이 저걸 재해로 인지하는 이상 방법이 없어. 그러니…….”
“……응,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런 거겠지.
흘러넘치는 감정만으로는 차가운 현실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아리아드네가 이미 저지른 일도 돌이킬 수 없다.
한 세계의 모든 생명을 뿌리 뽑았기에, 시스템은 저것을 죽음이자 멸망으로 명명했다.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는 것을 위협하는…… 그것이 저쪽의 아리아드네가 제 손으로 만들어 버린 길이다.
저렇게 된 아리아드네는 구할 수 없다.
단순한 인간에 불과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하더라도.
“그럼, 결국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루카스가 한숨과 함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앗아 가는 존재와 무슨 수로 싸운다는 말이냐? 이건 옵타티오 때보다도 더 심하군.”
그 말을 들은 알리시아가 크게 웃으며 빈정댔다.
“와, 왕자님이 약한 소리 한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거냐?”
“그러는 알리시아 너도 지금은 외팔이지 않나.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기엔 연약해 보이는군. 여러모로 전력이 되지 않는 녀석들밖에 없다만.”
그렇게 말하며 루카스가 고갯짓으로 알리시아에게 업힌 나를 가리켰다.
“전위를 맡을 레나도 저 모양 저 꼴이다. 팔이 저래서야 한동안 싸울 수 없겠지.”
“나는 괜…….”
“뭐, 상대가 아리아드네 님이라면 애초에 레나는 전력 외라고 계산해야겠죠. 결국 제대로 된 전력은 저와 루카스 님뿐인데…… 하물며 장소가 대신전인 게 문제네요.”
내가 전력 외라는 말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장소가 대신전이라는 것은 문제였다.
아무리 우리 넷의 평균 레벨이 80대라고는 해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대신전과는 상성이 맞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일리아스가 고여 있던 성력을 빼내고 있다손 치더라도 마법사에게 불리한 장소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는 건가?”
“일단은 시간을 벌어서 제가 운영자 권한을 연구해 저 아리아드네 님을 이 세계에서 쫓아낼 방안을 짜내는 것 정도가 현재로서는 최적의 답안일까요? 하하하.”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지 않나!”
“음, 그렇게 되는군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알리시아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그때였다.
콰아아앙!
미궁 중앙에 펼쳐져 있던 빛의 결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처럼 와장창 부서지는 빛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모양을 본 루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고작 10분도 못 버틴 거냐!”
“루카스 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만큼 버틴 것도 루카스 님이니까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것은 루카스뿐 아니라 일리아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땅을 박차는 발에 한층 더 힘을 가하며 알리시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럼 어떡해? 뭐라도 수를 짜내 보라고, 이 헛똑똑이들아!”
“일단 대신전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 목표야. 지금은 그 방법밖에……!”
하지만, 일리아스는 말을 채 잇지도 못했다.
“소용없어.”
빛의 결계를 부수고 허공에 떠오른 아리아드네가, 쏜살같이 이쪽을 향해 날아와 지면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애써 벌려 놓은 물리적 거리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아리아드네의 입가에는 조소가 서려 있었다.
“아무리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죽음을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리아드네의 말을 들은 루카스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아리아드네, 어째서 그렇게까지 타락한 거냐.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몰아갔나.”
친우의 끝을 지켜보는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
그것은 기묘하게도, 루카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아리아드네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타락?”
그러나 지금 여기에 서서 루카스를 바라보는 아리아드네는 무감했다.
그 시선이 새삼스럽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인간을 바라보는 것 같지가 않은 눈길이었다.
“새삼스레 과거의 망령에게 내 존재 의의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 불쾌할 따름이야, 이런 세계 같은 건…….”
압도적인 죽음.
한 세계를 멸망시킨 재앙.
증오와 원망만이 유일한 동력인 여자의 손에서 성력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루카스가 입술을 깨물었고, 알리시아도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검을 들었다. 과거의 친우를 향해 무기를 드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심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알리시아가 외팔로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그 살기는 진짜였다.
“레나가 어떻게 바꾼 운명인데. 어떤 각오로 날 구했는지 아는데!”
검기를 두른 바스타드 소드가 죽음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쾅!
그리고 그 검을, 아리아드네는 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분명 아리아드네의 목을 단숨에 갈랐어야 할 검은 피부에 닿는 일 없이…… 끝부터 부스러져 먼지처럼 사라졌다.
목숨처럼 아끼던 검이 사라지는 꼴을 본 알리시아가 입을 벌렸다.
“이건 무슨…… 커헉!”
그리고 알리시아는 아리아드네가 장난처럼 휘두른 주먹 한 방에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미궁의 벽에 머리를 부딪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알리시아 또한 숱한 전장을 겪어 온 용병왕이다. 이런 식으로 한 방에 나가떨어질 만큼 쉬운 상대가 아니다.
“알리시아……!”
뒤에서 알리시아를 지원할 마법을 짜내고 있던 루카스가 이를 악물었다. 지원 마법이고 뭐고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알리시아가 나가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리아스, 레나와 메이 경을 데리고 가라!”
그렇게 외치며 루카스가 허공에서 미친 듯이 불의 화살을 만들어 내 적을 향해 쏘아 댔다.
그러나, 그 또한 검처럼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아리아드네의 몸을 저격하기도 전에 불화살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정말로, 말 그대로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아마도 아무리 마력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불화살을 마치 빗방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쉽게 털어 낸 아리아드네가 무료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용없다고 했잖아.”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전력 차.
아니, 전력 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인간은 죽음과 싸울 수 없는 것이다.
몬스터라면 아무리 등급이 높다고 한들 시스템에 기대어 약점을 찾아낼 수라도 있다. 스킬이건 아이템이건 사용해서 빈틈을 찾아내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저것은 인간의 몸으로 시스템조차 뛰어넘어 버린 무언가였다.
“여기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군…….”
그 일리아스조차 그렇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허무하기까지 한, 사실상의 패배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린 재앙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레나.”
익숙하고도 낯설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낯선 말투.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앙.
그럼에도, 어쩐지 눈앞의 아리아드네가 내가 알고 있던 친구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째서 이 세계에 온 거야?”
내가 모르는 숱한 세월을 겪고 마모되어 버린 인간이 앞에 서 있다.
돌아오지 않는 선의에 실망하여 스스로를 탈출구가 없는 미궁에 가두어 버린 괴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가두었던 괴물을 꺼낸 것은…….
그 괴물을 향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돕고 싶어서.”
그게 다였다.
겨우 그런 이유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아무리 거창한 말로 장식하려고 해도 결국은 그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괴물이 피가 끓는 듯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왜 나는 도와주지 않았어!”
그 한마디가 통렬하게 가슴을 쳤다.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았냐니,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어딜 보나 억울하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아리아드네가 자초한 불행도, 운명도, 그 무엇도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레나!”
루카스가 내 몸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재앙의 손길이 다시 한번 내 팔을 붙잡는 게 더욱 빨랐다.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 몸을 잠식해 왔다.
재앙이 분노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게, 모르고 살라고 했잖아.”
“……응.”
“다시는 여기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었잖아!”
“그랬었지.”
“그런데 왜!”
“그래도 돕고 싶었으니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 상처다.
나와 내기를 했던 운영자가 다른 운명을 걸어간 아리아드네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저 녀석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정말로 나를 죽이려 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만약 그렇다고 한들 무언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이 모습을 보니 알겠다.
정신을 잠식하는 고통을 견디며, 나는 겨우 해야 하는 말을 입에 올렸다.
“네 분노는 정당해.”
비단 아리아드네를 보았을 때만이 아니었다.
나는 또 다른 세계의 나 자신을 보았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반대로 저 입장이 될 수도 있었다.
눈을 떴더니 멸망한 한국의 모습이 펼쳐져 있거나, 십수 년의 고행을 버티고 간신히 돌아왔더니 모든 친구가 죽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어째서인지 모를 이유로,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우리의 운명을 가른 것은 단순한 행운이다.
그러니, 운이 없었을 뿐인 사람이 운이 좋았던 내게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닐까.
그 불합리함에, 억울함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더욱 솔직해지자면.
다른 사람이 상대였다면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리아드네이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네가 타인의 고통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의 소망을, 목소리를 듣는 법.
아리아드네가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무도 저 녀석의 고통에는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던 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정심을 느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우리의…… 아니, 나의 패배였다.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 서서히 몸을 잠식해 온다.
“미안해.”
나는 고통을 견디며 아리아드네의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괴물로 변해 버린 친구의 눈동자 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발견한다.
“너를 구해 주지 못해서.”
내 말을 들은 아리아드네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죽여도 되살아나고야 마는 후회를 마주한 사람처럼.
“너는 그런 말을……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내 팔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사과는, 필요 없어.”
가물거리는 시야 사이로 시꺼먼 구멍이 세계를 찢어 놓듯이 나타났다.
그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것은 차원의 틈새라고 불리는 것. 영원한 침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제 가.”
이번에는 등 대신 어깨를 떠밀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어딘가 울먹이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끝을 모를 차원의 틈새 속으로 던져졌다.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마지막 별처럼 깜박였다.
- 해당 던전 클리어 조건 : ‘아리아드네’의 죽음
- 던전 클리어 조건 달성을 포기합니다.
- 던전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