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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88화 (28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8화

-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됩니다.

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한꺼번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사, 살았다!”

“이걸로 끝난 거 맞지?!”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며 우연히 옹기종기 모이게 된 사람들이었으나 다들 기쁨에 얼싸안기 바빴다.

그리고 다들 종료라는 글자에 시선을 빼앗긴 덕에 다음에 떠오른 메시지를 주시한 것은 이우연밖에 없는 듯했다.

- 최대 업적자 : 강예나

‘강예나라…….’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이름의 주인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들 공포에 질려 제 목숨 하나 챙기기도 어려울 때 업적이란 걸 세웠다면 그 여자밖에 없을 테니까.

몬스터 머리를 단번에 반으로 가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했다. 대체 뭘 하던 사람이길래 망설임 없이 몬스터를 죽일 수 있었던 건지.

그러나 그런 상념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2차 몬스터 웨이브까지 대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 00:20:00

“자, 잠깐. 2차가 있다고?”

“1차로 끝난 게 아니야?!”

사람들이 경악하며 혼란에 빠진 것과는 반대로, 이우연은 검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익숙하지 않은 검을 잡아서인지 손이 얼얼했다.

‘어쨌든 20분은 쉴 수 있다는 건가.’

워낙에 검이 무거웠던지라 팔에 잠깐 힘을 빼는 것만으로도 검끝은 땅에 떨어져 질질 끌렸다.

그런 이우연을 보고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 저기요. 혹시 그 검 어디서 난 거예요? 몬스터 잡으면 드랍되거나 그런 건가요?”

“……네.”

이우연은 망설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방금 전 이 검으로 어찌어찌 작은 고블린을 처치했을 때 아이템이 드랍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드랍템이 아니라 누구에게 받은 것이라는 게 문제일 뿐이지. 그렇다고 그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사정이 애매했다.

그래서 이우연은 대신 다른 점을 설명했다.

“다들 소지창이라고 말해 보세요. 소지창 안에 기본 무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까 만난 낯모를 여자가 전해 준 팁을 듣고 바로 해 본 결과, 소지창 안에는 초보자용 무기가 들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정말로 초보자용 무기여서 그런지 볼품없어 보이는 얇은 단검과, 무엇에 쓰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지팡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무 무기도 없이 돔 안에 갇혀 버린 사람들에게는 그나마도 감지덕지이기는 했다.

하나둘씩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소지창을 외친 사람들은 단검과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거 아무리 봐도 완드죠? 게임에서 많이 봤는데.”

“설마 마법도 쓸 수 있는 건가?”

“게임 시스템 가지고 올 거면 튜토리얼도 줘야지, 망할.”

“이렇게 짧은 검으로 아까 나온 몬스터를 어떻게 잡아? 제대로 된 무기가 나올 때까지 모여서 몬스터를 잡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미쳤어? 어차피 1차니 2차니 하는 거 보면 3차까지만 버티면 끝나지 않을까?”

“차수면 3차 종료가 국룰이긴 하죠.”

“그럼 괜히 허접한 무기로 도전했다가 죽느니 그냥 나무 위에 피해 있는 게 낫지!”

과연 RPG 게임이나 장르물 도식이 어느 정도 상식의 범위 안에 들어온 나라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영화 촬영이 아닌가 의심하던 사람들도, 슬슬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는 여러 의견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야 당장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현실 파악을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핸드폰 연결이 안 돼. 경찰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세금만 처먹는 새끼들 같으니라고!”

누군가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마구 두드리며 성질을 냈다.

“이 천태호를 무시하는 거야, 뭐야!”

그러나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황 파악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하는 건 상수는 아닐 겁니다.”

자신을 교수라고 밝힌, 김숙자라는 이름의 여자가 부러진 안경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목소리에 깔려 있는 권위가 느껴져서인지, 급한 상황에 어쩌다 모인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조용히 집중했다.

“만약 나무 위로 피한다고 한들, 나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몬스터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을 테니까요.”

맞는 이야기였다.

2차 웨이브라는 것이 시작되면 다들 근처 나무로 올라가 당장의 소낙비를 피해 볼 생각이던 사람들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것도 그렇군요.”

김숙자 교수의 말에 가장 먼저 찬동하고 나선 것은 김성연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떡 벌어진 체격이 나름대로 듬직했다.

“그럼, 일단 다음 습격에 대비해서 진영이라도 짜 봅시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진영이라니, 뭘 어떻게…….”

“벤치나 꺾인 나무라도 가져와서 방어진 구축부터 해야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검 하나 들었다고 아까 같은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

“그거 말인데요.”

이우연이 나섰다.

어찌 됐든 이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의견을 한데로 모아야 했다. 몬스터에 대항하려면 머릿수가 많은 편이 유리하니까.

“상태창을 봤더니 1차가 끝난 시점에서 레벨이 꽤 올라 있더군요. 아예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최대 업적자니 뭐니 하는 걸 보면 게임처럼 몬스터 처치가 끝난 시점에서 경험치를 정산해 주는 것인지, 레벨이 1에서 4로 올라가 있었다.

그 덕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철근처럼 무거웠던 롱소드가 아주 약간이나마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진짜다.”

“전 레벨이 2네요? 아까 슬라임 잡아서 그런가.”

상태창을 확인한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다들 아직 창백한 낯이었지만 목소리에 희망이 돌아온 것을 보면 역시 소지창과 상태창의 존재가 유효했던 모양이다. 체근민 수치 따위가 눈에 보이는 만큼, 게임처럼 몬스터를 잡으면 보상도 주어진다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이걸로 대충…… 싸우는 쪽으로 정리된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우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검을 쥐고 있던 터라 거의 홀로 몬스터들을 상대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참여한다면 2차 때는 방어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리라.

“휴우…… 큰일이네요.”

그때 이우연 옆에 서 있던,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청년이 어두운 얼굴로 아스팔트 바닥에 눕혀 둔 부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이솔방울이라고 했던가? 특이한 이름이었다.

몬스터에게 맞아서 부상당한 바람에 쇼크로 기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최대한 풀이 있는 부드러운 평지에 눕혀 두기는 했지만, 역시 빨리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우연의 시선을 느낀 솔방울이 설명했다.

“일단 옷을 찢어서 어떻게든 지혈까진 했지만…… 다음 웨이브가 시작되면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요.”

그랬다.

아무리 근처 기물들을 모아서 나름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해도, 초보자들만 모인 만큼 얼마나 부상자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포에 질려 부상자고 뭐고 목숨만 챙기려고 달아난다고 한들 이런 상황에 누가 그걸 비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부상자는커녕 지금 멀쩡한 사람들도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우연에게 솔방울이 문득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검 다루는 게 익숙하시던데, 검도라도 배우셨던 거예요?”

“아뇨, 딱히…….”

하긴 이우연 본인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참이었다.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으로서 검이라고는 다뤄 본적도 없는데 묘하게 손에 붙는 것이, 혹시 재능이라도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때 구석에서 단발을 한 여자가 손톱을 마구 물어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어떡하지. 운영자니 뭐니 해도 난 이런 거…… 왜 하필 내가…….”

이후에 되짚어 생각하면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당장은 신경 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우연 또한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신경을 빼앗긴 것이다.

- ■부 서버의 침투가 확인되었습니다.

- 플레이어, ‘이우연’의 안정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제한 시간 내에 안정화되지 않을시 외부 서버 소속 플레이어로 간주됩니다.

아무리 봐도 긍정적이지 못한 붉은 글씨들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 하나 도통 이해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외부 서버?

내가?

이우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시스템 메시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을 때.

- 경고!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등급 제한이 있습니다(A급에서 F급 랜덤 출현)

- 2차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00:30:00

- 몬스터 웨이브 활성화 시간 동안 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으윽……!”

“진짜 또 시작이잖아!”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한탄해도 당장 다가올 현실이 바뀌는 법은 없었다.

이우연은 눈가를 좁힌 채 다시금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옆에 조용히,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완드를 든 김숙자 교수가 섰다.

이우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거 쓸 줄 아세요?”

“어느 정도 감이 오긴 하는데.”

타닥!

나뭇가지 위에서 화려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김숙자 교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횃불이라도 들고 있다고 생각하겠네. 몬스터 눈알 정도는 지질 수 있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이 검을 휘두를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테고.”

“흠, 그렇겠네요.”

이우연은 김숙자 교수가 든 완드에서 튀어 오른 불꽃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타닥!

그렇게 생각한 것과 동시에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들더니 허공에 불꽃이 떠올랐다.

김숙자 교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네가 한 건가?”

“그런가 본데요……?”

얼떨떨한 것은 이우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자신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은.

하지만 발현한 재능에 새삼 시선을 빼앗길 틈도 없었다.

키에에엑!

저 멀리서 다시금 몬스터들의 괴성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수 중앙 위의 하늘이 시커멓게 물드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귓가에는 가벼운 날갯짓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무슨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들처럼.

“저, 저게 다 몬스터야?”

“비행이 가능하다면 나무 위로 도망칠 수도 없잖아!”

“30분을 또 어떻게 버텨?”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경악하던 것도 잠시.

콰콰쾅!

호수가 폭발했다.

용솟음치듯 튀어 오른 물보라와 함께 막 위로 날아오르려던 괴물들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져 호수가 첨벙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어?”

“방금 저 몬스터들…… 이리로 날아오려다가 당한 거 맞죠?”

“누가 폭탄이라도 설치했나?”

“근데 누가?”

추측이 오가는 사이, 이우연은 검을 쥔 손에 힘을 놓지 않았다.

‘강예나란 사람인가.’

망설임 없이 몬스터를 상대한 것도 그렇고, 저런 게 가능한 역량이 있는 사람은 그 외에는 없을 듯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는 일.

1차 웨이브 때 봤던 몬스터들의 기세로 추측해 봤을 때, 아무리 중앙에서 누군가가 막아 준다고 하더라도 모든 몬스터들을 일소할 수는 없을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키이이이이익!

날개가 다 부러졌는데도 파들거리는 모양새의 녹색 고블린들이 바닥을 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날 수 없다고는 해도 곤충처럼 번들대는 눈동자와 손톱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몬스터라는 것을 게임 그래픽이 아니라 실물로 보니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히이이익!”

덕분에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섣불리 나서는 대신 뒤로 슬금슬금 몸을 빼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때.

“이렇게 하면 되나?”

치이이익!

김숙자 교수가 앞으로 나서 완드에 붙은 불로 고블린을 지져 버렸다.

불꽃은 놀랍게도 완드에서 고블린으로 쉽게 옮겨 붙더니 장작이라도 태우는 것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키아아아아악!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며 흉측하게 타들어 갔다.

사람들은 홀린 듯이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동족의 비명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인지 고블린들이 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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