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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89화 (29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89화

이미 공격을 당해 비실비실한 놈들도 있었으나 날개만 좀 다쳤을 뿐 기세등등한 녀석들도 꽤 보였다.

“단박에 해치워야 해!”

김성연이 고함을 내지르며 단검을 휘둘러 고블린 한 마리의 배를 꿰뚫었다.

문제는 초보자용 단검이라 그런지 아무리 세게 휘둘러도 뼈를 잘라 낼 정도의 위력은 없어 단숨에 죽일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고블린들의 생명력이 생각보다 훨씬 질기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즉사하지 않은 고블린들은 부상을 입고서도 바들대며 바닥에 떨어진 채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 쪽이 효율이 좋긴 하네요.”

콰직!

자신의 발에 이빨을 박으려 물고 늘어지는 고블린의 머리에 롱소드를 박으며, 이우연은 마력 소모량을 계산했다.

마법으로는 즉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은 좋은데, 문제는 한 번 쓸 때마다의 마력 소모량이었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30분 내내 쓰려면 마력 배분에도 계산이 필요할 성싶었다.

“어떻게 저런…….”

앞에 나선 셋의 싸움을 보던 누군가가 감탄을 내뱉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전까지 같은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던 사람들이니만큼 출발선은 같을 텐데, 이런 것이 재능의 차이라는 것일까.

세 사람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였다.

마법을 쓰면 쓸수록 감을 익혀 가는 것인지 날아드는 고블린을 효율 좋게 불꽃으로 처치하는 김숙자 교수, 그리고 정확성은 좀 떨어져도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 한 마리씩은 베어 나가는 김성연.

특히 이우연의 경우는 검을 휘두르는 솜씨도 솜씨였지만, 적절하게 마법마저 이용하는 것이 얼핏 보기에도 일반적인 재능이 아니었다.

김숙자가 헛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혹시 자네 2회 차쯤 되나? 소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던데.”

“글쎄요, 딱히 기억은 없는데요!”

선두의 세 명이 나름대로 선전한 데다 여기까지 도달한 몬스터들 대부분이 부상을 입은 채였기 때문일까, 지레 겁을 먹고 뒤에 물러나 있던 사람들도 자신감이 붙었다.

“우, 우리도 가자!”

“둘이서 달라붙어!”

전위가 해결되니 앞에서 처리하지 못한 몬스터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부상자들을 우선으로 보호합시다!”

“간호사님은 뒤로 물러나 있어요!”

여유가 생겼는지 나름 훈훈한 소리마저 오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어떻게든 30분 정도 버티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 몬스터가 출현하였습니다.

쿵!

지면이 흔들린다.

중후한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아스팔트로 된 도로가 박살 날 정도의 무게감.

“말도 안 돼.”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야 그랬다.

- A급 몬스터 : 긴 뿔의 악마

이런 도시에서 코끼리를 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인간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맹수를!

코끼리 형태를 한 마수가 긴 코를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그 덩치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심지어 단단한 회색 거죽에 삐죽삐죽 돋아 있는 털에는 보랏빛의 독액이 맺혀 있었다.

한 번 발을 내디딜 때마다 독액이 흩뿌려져 같은 몬스터인 고블린의 피부마저 녹이고 있었다.

“이런.”

이우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A급이라니.

고블린도 힘겨웠는네 말도 안 되는 상대였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새싹 같은 재능으로는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몬스터였다.

진짜 코끼리는 초식 동물이기라도 하지, 저 마수는 인간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게 어딜 봐도 육식계다.

‘어떻게 하지?’

사실 여기서 제 한 몸 챙기는 거야 쉬웠다.

롱소드를 가진 것은 물론이고 마법까지 자각했으니, 혼자라면 남은 몇십 분 정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우연이 도망간다면 다른 사람들, 특히 기절해 정신을 잃은 사람들은 그대로 저 마수에 짓밟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망 안 가나?”

옆에 서 있던 김숙자 교수가 물었다. 완드를 든 손은 떨리고 있다.

“……그러는 교수님은요?”

“늙으니 다리에 힘이 없어서 말야.”

그러나 마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교수쯤 되는 인물이니만큼 승산을 계산하지 못할 리 없다.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을 확률은 터무니없이 높았다.

그런데도 비킬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이 사람은 여기서 제 몫을 다할 생각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

그래서 이우연도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저도 싸우느라 다리에 힘이 다 빠져서요.”

여기서 자신이 도망친다면 부상자들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여기 버티고 있으면 아주 약간이라도…… 살 확률이 높아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확률이 높은 쪽에 걸어야겠지.

- 특성이 개화합니다.

- 플레이어, ‘이우연’의 안정도가 높아집니다.

또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나 확인할 여유는 없다.

“나도 함께하지.”

더불어 김성연 또한 굳은 얼굴로 함께 버티고 섰다.

이건 또 의외였다.

이우연의 시선을 느꼈는지 김성연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

“도망갔다가 어설프게 혼자 저걸 상대하느니 여기서 승부 보는 게 낫겠어.”

즉 자신과 김숙자 교수를 방패로 삼겠다 이건가.

그것도 나름대로 납득되는 사유였다.

이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하시죠.”

그렇게 세 사람은, 각자의 각오를 다지고 다가오는 몬스터에 맞설 준비를 했다.

다들 죽을 각오마저 하고, 다가오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을 때…….

“어이가 없네.”

무뚝뚝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콰드득!

거대한 몬스터의 몸이 여지없이 반으로 갈렸다.

생의 증거인 뜨거운 피가 도로에 철퍼덕 쏟아지고, 방금 전까지 형형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몬스터가 생명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반으로 잘려 버린 몬스터 사이로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를 높게 묶어 올리고 가벼운 가죽 갑주를 착용한 모습.

한 손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검이 들려 있었다.

여자의 눈길은 앞에 나선 세 사람을 향해 똑바로 박혀 있었다.

“저렙들이 A급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겠다고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지?”

그 거대한 몬스터를 단숨에 처리한 여자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탓할 일도 아니네. 몇 마리 흘린 내 잘못이지. 한 방에 다 죽이고 싶어도 난도를 올리면 안 되니. 이거야 원.”

“…….”

여자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침묵했다.

감사의 말조차 나오지 않은 것은 너무 황당한 탓이었다.

산처럼 거대해 보였던 몬스터를 한 방에 쓰러트린 것도 그렇고, 장비하고 있는 무기도 그렇고…… 무엇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그냥 눈부신 재능이라며 감탄할 단계조차 아니었다.

심지어 무언가 모를 위압감까지.

특히나, 그 눈.

강렬한 눈동자가 사람들을 훑는 순간 다들 등줄기에 섬뜩한 것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호랑이 앞에 맨몸으로 서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A급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한, 서릿발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여기, 부상자 하나 부탁합니다. 그냥 기절한 거니까 신경은 안 써도 돼요.”

그러나 여자는 그런 사람들의 분위기는 익숙하기라도 한 듯 아랑곳하지도 않고, 옆구리에 끼우고 있던 사람 한 명을 솔방울에게 넘겼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본인과 비슷한 체구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무슨 깃털이라도 들고 있었던 것처럼 가벼운 동작이었다.

솔방울은 당황해 짐짝처럼 넘겨진 사람을 받아 들었다.

“어? 네, 넵!”

마치 솔방울이 간호사라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이우연은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걸 지적하기도 전에 검사가 허공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이것도. 이건 포션이라는 건데…… 뭔지 알겠죠?”

게임에서 나올 법한 병에 담긴 액체를 본 솔방울이 확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게임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저 병의 용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사람들을 돌아보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면면들이 화려해서 그런가 야매긴 해도 나름대로 잘 해 놨네. 허접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잠깐은 문제없겠고…….”

적나라하게 평가하는 말에 그 야매 방어진을 구축한 본인인 김성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평가당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이봐, 아가씨! 대체 뭘 하는 사람이길래 말을 함부로……!”

“문제는 3차 때 적어도 S급 몬스터가 나올 거란 건데.”

그러나 항의도 잠시, 갑작스럽게 나온 S급이라는 단어에 모두 숨을 삼켰다.

방금 전 나온 A급 몬스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는데 그보다 더 센 몬스터가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저 사람은 그걸 또 어떻게 알지?

궁금한 것투성이였으나 사람들은 눈치만 볼 뿐 검을 든 여자의 위압감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여자가 혀를 찼다.

“그럼 여긴 됐고, 다른 곳에도 생존자가 있는지 봐야겠군.”

그렇게 혼잣말만 남기고 여자가 등을 돌렸다.

등장도 퇴장도 하도 황당했던 탓에 사람들은 여자가 떠나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상 외의 강자다 보니 도움을 청하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자, 잠깐만요!”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이우연은 저도 모르게 미련 없이 떠나려는 여자의 뒤를 쫓아갔다. 무시하고 갈 줄 알았는데,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지만 의외로 이우연의 부름에 착실하게 반응했다.

“뭐야?”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이우연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그 목소리에서 어딘가 다정하게 들리는 구석을 찾아냈다. 목소리에는 마치 친근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기묘한 일이다.

‘만난 적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기억했을 테다.

물론, 이우연은 낯모를 타인에게서 호감을 받는 일이 드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보통 이우연의 외모에서 기인한 호감이었다.

다만 지금 이 사람은 이우연의 얼굴 때문에 호감을 가진 것은 아닌 듯했다.

그 증거로 여자의 눈길은 이우연의 얼굴 대신 롱소드를 들고 있는 손에 꽂혀 있었으니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검 잡는 게 영…… 쯔쯧.”

“저, 강예나 씨 맞으시죠?”

이우연의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지간히 이우연의 말이 놀라운 듯했다.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최대 업적자 이름을 봤어요. 그쪽 외에 다른 사람이 뜰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나요?”

“눈치도 빠르지.”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이름은 강예나가 맞는 듯했다.

이우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강예나를 졸래졸래 따라가며 걱정을 담아 물었다.

“제가 돕지 않아도 될까요? S급이라면 A급보다도 센 거 맞죠? 그쯤 되는 몬스터가 나온다면 혼자서는 위험할 텐데…….”

“진짜 은근히 맹탕이라니까…….”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따라올 필요 없어. 지금의 그쪽이 도움이 될 것 같아? 기껏해야 레벨 4, 5 정도일 텐데. 이번 던전이 끝나서 내 경험치를 나눠 먹어도 10 정도나 간신히 찍을 거고.”

“…….”

어딘지 모를 다정함은 논외로 치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가차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기까지 한 말.

그러나 이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걱정된다, 이 말이네요.”

낯모를 자신을 도와준 걸 보면 저 말에 악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쌀쌀맞게 들려도 본심은 선의로 해석하는 게 맞다.

그런 계산에서 한 말이었는데.

강예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어려서 그런 건가…… 완전 말랑…….”

“말……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야, 말랑한 이우연 씨.”

뭔지는 모르겠는데 놀리는 건가?

다만 이 정도면 위화감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이우연은 이번에는 그 위화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혹시 내 팔로워? 팬은 아닐 테고.”

“……너 지금도 팬이 있어? 아이돌이야, 뭐야.”

“아이돌은 아닌데 SNS 계정 팔로워가 조금…….”

이우연은 설명하면서도 약간 민망해졌다.

가끔 일상 사진이나 올리던 계정인데 어쩌다 보니 유명해져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보니 강예나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물어본 것뿐인데, 아무래도 예상이 틀린 모양이다.

강예나가 혀를 찼다.

“외모 지상주의 짜증 나네.”

“잘생긴 사람 싫어하세요, 누나?”

“큽?! 쿨럭!”

이우연의 물음에 강예나가 사례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켈록거렸다.

몬스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던 사람이, 굉장한 변모였다.

“뭐? 누, 누나아아?!”

“초면에 반말하시길래 당연히 누나인 줄 알았죠.”

이건 비꼼 반, 진심 반이다.

어이없어하던 강예나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어렸다.

“와, 성깔 좀 봐. 너 지금 내 검 안 보여?”

“몬스터를 일도양단하는 건 두 번 봤는데요. 그렇지만 절 죽일 거면 진작 죽였을 거잖아요.”

그 야무지기까지 한 대답에 강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성깔 좀 봐.”

“제 성격이 왜요?”

“몰라서 묻냐? 됐다. 몰랐던 건 아니니까. 누나라고 부르는 건 신선하네.”

“연하 좋아하시나 봐요, 누나.”

“아니, 징그러우니까 다신 하지 마. 진짜 때릴 거니까.”

이건 진심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가시는 느껴지지 않아서 이우연은 붙임성 좋게 물었다.

“그럼 말 놔도 되는 건가?”

“까분다.”

그래도 하지 말란 소리는 하지 않기에 이우연은 꿋꿋이 반말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끈질기게 따라붙은 이유는 어떻게든 이 사람에게 붙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은 것 반, 순수한 호기심이 나머지 반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강예나가 멈추어 섰다.

“3차 시작되기 전에 유리한 고지 선점하러. 그러니까 그만 따라와. 네가 위험해서 하는 소리니까.”

시선이 마주쳤다.

상황이 워낙에 급박해서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딘지 깊은 호수 같은 인상을 주는 검은색 눈동자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우연은 강예나의 시선을 마주하며 눈을 깜박였다.

뭔가 이상한 감각이 가슴속에서 울컥 솟았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첫눈에 반한…… 건 아니고.’

취향과는 별개로, 그런 식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가슴 한구석이 이상했다.

이제껏 자각하지 못했던 어딘가.

영혼이나 무의식이라고 부를 법한 무언가가, 드디어 그리워하던 것을 찾아 울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굳이 나한테 따라붙지 않아도 넌 살아남을 거야.”

잠시 기묘한 감각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이우연은 강예나의 말에 순수하게 놀랐다.

마치 이우연의 속셈을 알아차린 듯한 말이 아닌가. 자신의 성격 자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우연이 놀란 것을 본 강예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여기서 죽을 리가 없잖아.

그 미소 또한 기묘하기 그지없었다.

근거 없는 신뢰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애정이 담긴 미소.

손으로 해를 가린들 햇살은 비치기 마련이듯, 그 표정에 자신을 향한 감정이 낱낱이 드러나서, 이번에야말로 이우연은 혼란에 빠졌다.

“대체 누구…….”

하지만, 강예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이번에야말로 자리를 떠났다.

마치 예언 같은 한마디를 남기고.

“그럼 또 보자, 이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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