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92화
서늘한 새벽, 이우연은 눈을 떴다.
창문을 열고 잔 적은 없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찬바람에 자연스럽게 잠이 깬 것이다.
‘왜 이렇게 춥…… 아, 조한율 집에서 잠들었지.’
이우연은 어렴풋한 정신으로 어쩌다 여기서 잠들었는지를 되짚었다.
어젯밤, 던전에서 돌아온 후 조한율과 사후 회의 겸 보고를 하다가 마침 자리에 있던 양태원이 배가 고프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어쩌다 같이 밥을 먹게 됐다.
그러다 보니 최근 스트레스가 많았던 조한율이 술 한 병을 깠고, 성인이 된 양태원도 좋다고 한 잔씩 받아 마시고, 그리고 둘 다 취했다.
즉, 망했다.
“아, 내가 왜 운영자 같은 걸 해야 되는 거야!”
“저도 무당하기 싫어요! 청룡 님은 좋아도! 아니, 청룡 님도 미워! 미운데 좋아!”
둘 다 술에 취한 채 직업적 고충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예나 씨 진짜 돌아오기는 하는 걸까? 그 성격에 또 다른 세계 가서 용사하고 있으면 어떡해?”
“진짜 완전 그럴 것 같아여!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용사의 동료인 우리가 용사를 찾으러 가야 하는 걸지도! 게임에서도 그런 파트가 종종 있으니까!”
“그럼 찾으러 가 볼까?! 운영자 권한을 이럴 때 남용해야 하지 않겠어?”
“근데 제가 보기에 한율 누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면 바로 죽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손금 생명선도 좀 짧…….”
“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둘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의외로 잘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슷한 정신 연령인 건지도 몰랐다.
심지어는 술에 취하는 속도도 비슷했다.
조한율이 술병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이우연, 네가 말 좀 해 봐! 저 타르타른지 뭔지 하는 다른 쪽으로 가지 말라고.”
“언젠 잘 보내 줄 거라면서.”
“아, 당연히 잘 보내 줄 거야! 받은 게 얼만데. 그렇지만 이번에 예나 씨, 저쪽에서 안 좋은 일도 있었고오…….”
그렇게 말하며 조한율이 도중에 아차, 싶었는지 양태원 쪽을 바라보았지만 양태원은 이미 단단히 취해 있어 꾸벅꾸벅 조느라 사람 말을 알아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러게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원샷 할 때부터 그럴 것 같더라…….
이우연은 맛이 가기 직전인 조한율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술주정 작작하고 그럴 거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
“아, 왜! 너도 보내기 싫잖아! 말은 해 볼 수 있잖아!”
“이미 말했어. 섭섭하다고.”
“그게 뭐야. 네가 섭섭하다고 예나 씨가 고집을 꺾겠어?”
“그러니까.”
이우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더 말 안 하는 거야.”
자신은 저 쇠고집을 꺾어 본 역사가 없다. 말해 봤자 기력만 낭비될 뿐이다.
“……야, 이 쓸모없는 여우 새끼야! 그 얼굴 뒀다 뭐하냐?! 미인계 몰라?”
“…….”
진짜 술주정도 귀찮게 부린다.
결국 상대해 주는 것도 귀찮아진 이우연은 두 사람 모두 식탁 의자에 앉은 채 뻗어 버린 것을 그대로 두었다. 굳이 각자 침대로 옮겨 줄 만한 이유도 없었다.
내일 아침 담에 걸리든 말든 알 바 아닌 데다, 무엇보다 이우연도 막 던전 공략을 마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남들까지 신경 쓰기 귀찮을 정도로 피곤했다.
어깨며 다리며 쑤시는 것이 전투의 후유증인지 조한율 때문인지 통 모를 일이었다.
‘진짜 귀찮게…….’
그렇게 이우연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정신을 되찾고 눈을 떴을 때 즈음.
“안녕.”
목소리가 들렸다.
이우연은 깜짝 놀라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소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인영이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기척 하나 내지 않고 고요하게.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에 수묵화처럼 그 모습이 점점 퍼져 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
그리고,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영혼이 울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본 강예나가 웃는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네.”
“…….”
“나 돌아왔어.”
마치 어제 보고 헤어진 것 같은 태평한 말투에 이우연은 잠시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다시 만나면 무어라 말할까, 고민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하지만 막상 이렇게 강예나의 모습을 눈앞에 두고 보니…….
이우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냥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이우연의 말에 강예나가 눈썹을 꿈틀했다.
“……네가?”
그 반문을 들은 이우연은 잠시 난감해졌다.
둔할 때는 한없이 둔하면서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이우연은 잠깐 호흡을 고른 후 태연하게 웃었다.
“왜? 우리 동갑이잖아, 누나.”
그 한마디에 강예나의 눈이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걸로 강예나도 이우연이 일산 호수 공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렸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솔직히 이건 이우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원인이, 강예나가 차원의 틈새를 떠돌다 과거에 우연히 간섭한 탓이었다니.
‘아니…… 우연이라고만은 볼 수는 없나.’
강예나가 차원의 틈새에서 미아가 되는 대신, 과거라고는 해도 일산 호수 공원 던전을 거쳐 여기에 이렇게 돌아온 것은 강예나와 자신의 인연이 이정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우연은 한국에 있어야 했다.
만일 이우연이 한국에 없었더라면 강예나의 영혼을 끌어당길 요인이 충분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일, 다 기억하나 보네.”
잠시 복잡한 얼굴을 했던 강예나가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누나라고 하지 마라, 진짜. 때린다.”
도를 넘게 질색하는 반응에 이우연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되게 싫어하네. 왜? 누나 소리가 싫어?”
“그냥 호칭인데 호불호가 어디 있어? 그렇지만 너한테 들으면 뭔가…… 징그러워.”
그건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강예나는 육감이 뛰어난 편이니.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의문은 감추고 이우연은 싱긋 미소 지었다.
“나 부상자야. 때리는 건 너무하잖아.”
“부상? 왜? 산낙지 잡고 온 건 난데.”
저 의미 불명인 말도 이제는 그 뜻을 안다.
“SS급 대양의 지배자를 산낙지 취급하는 건 너뿐일 거다.”
당시의 전투를, 이제는 가늠해 볼 수라도 있었다.
당시 김숙자 교수가 부상자를 포함한 생존자 무리를 이우연과 김성연에게 맡기고 호수 쪽으로 뛰어가더니, 이후에 거의 하루 반나절 동안 타오르던 불길 때문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진언’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더더욱.
그리고 가늠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두 사람 다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가서 안쓰러웠다.
“아마 문어의 재생력 때문에 공략에 애를 먹은 거겠지?”
“응, 문어 다리 자르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어. 아무리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게…… 보고 있자니 배고프던걸. 회 먹고 싶어졌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봐. 여기는 너…… 아니, 당신이 사라진 한 달 간 난리가 났었는데.”
강예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달? 역시 차원의 틈새라 시간 차이가 좀 있었나. 다들 걱정했겠네. 미안.”
이럴 때 솔직하게 사과하는 건 변하지 않는 장점이라 이우연은 약간 웃어 버렸다.
“우리가 걱정한 것도 걱정한 건데, 그보다 호수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문제였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때 호수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목격담을 속속들이 올리고 있어. 기사도 뜨고, 뉴스도 타고. 덕분에 헌협은 아주 뒤집어졌지. 현 랭킹 1위 업적치를 두고 물고 늘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증거까지 나왔으니.”
시스템 제한이 풀린 후 일주일간 미친 것 같은 대소동을 아주 간단하게 브리핑한 것뿐인데, 강예나의 얼굴이 아주 크게 일그러졌다.
“젠장.”
벌써 저러면 밖에 나갔다간 기절하겠군.
이미 정부가 알고 있는 강예나의 주소지 근처에는 기자가 수십 명은 깔려 있는 상태였다.
“귀찮게 됐네.”
이우연은 익숙하게 강예나를 달랬다.
“뭐, 어때. 이제 와서 유명세 하나둘 정도 추가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잖아.”
“맛집 검색하다 내 이름 보는 건 은근히 짜증 난다고.”
“맛집 정도야 내 추천이나 받으면 되잖아. 그보다, 이거 받아.”
이우연은 소지창에 넣어 둔 아이템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우연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아이템을 본 강예나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만도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마지막 운명의 씨앗이었으니까.
“이걸로 다 모였어.”
이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났다.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건 아니건 상관없다, 이우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 감정이 이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자신의 바람은 변함이 없었다.
강예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설령 곁에 머물지 못하더라도, 어느 쪽 세계를 선택하더라도.
설령, 이걸로 정말 이별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이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리라.
“이제 선택은 네 몫이야.”
* * *
제목 : 현 랭킹 1위 ㄱㅇㄴ 최초 목격담 썰 정리
내용 : 우리 나라 최초 던전인 일산 호수공원 던전에 터졌던 돌발성 던브(정부 기준 SSS급 던전)에서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이 갑자기 당시의 기억이 났다고 인터넷에 썰을 쓰기 시작.
처음에는 그냥 관종인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이 신분증+헌터 자격증 올리고 썰 풀면서 화력 붙고 기사화 됨.
공중파에서 인터뷰도 함.
내용 요약하면 일산 호수 공원 던전에서 나왔던 보스몹은 SS급 대양의 지배자라는 이름의 문어 몬스터였다.
그리고 전투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1,2,3차 몬스터 웨이브 모두 최대 업적자 이름에 ㄱㅇㄴ(=3 본명) 라는 이름을 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외에도 하급 몬스터 혼자 싹 쓸었다는 증언도 다수.
그래서 왜 단체로 기억상실했냐는 게 현재 소소한 논란거리임.
시스템에서 뭔가 금제?를 걸어 놓은 것 같은데 조건 충족했다면서 갑자기 기억이 돌아왔대.
개인적으로 글쓴이 궁금한 점은
1. 시스템이 뭐길래 인간 기억까지 조작할 수 있나? 혹시 우리도 알고 보면 기억 조작당한 거 아님? 우리는 사실 과학자들이 만든 통 속의 뇌는 아닐까? ㄴㅇㄱ
2. 현 랭킹 1위 전 방랑하는 구도자 현 ㄱㅇㄴ는 대체 어떻게 레벨 1이었던 시절에 SS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거임?
3. 무엇보다, 방구는 왜 이제껏 저 이야기를 안 함? 너튜브 렉카들이 신상 파헤친다 과거에 어쩌고 하면서 겁나 입털어댔는데 저 이야기만 했어도 의문점 바로 풀렸을 듯.
4. 과거에는 멀쩡히 ㄱㅇㄴ 라는 본명을 플레이어명으로 썼는데 왜 방랑하는 구도자 됐다가 또 ㄱㅇㄴ로 바꾼 걸까?
5.
- 야 4번은 너무 억까아니냐? 누구나 간지나는 이름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잖아요
└ ㅇㅈ나 같아도 간지나는 걸로 바꿀 듯
- 방구가 본인 이야기 말 안 한 거는……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솔직히 헌터라고 자기 사정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해야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ㅇㅇ글쓴이가 좀 편파적으로 쓴 듯? 혹시 방구 악플쓰던 헌터니?
└ 그러는 너는 방구 신도임? 실드치는 거 뻔히 보임
└ 응응 방구석 악플러보단 방랑하는 구도자님 실드치는 게 더 나을 듯^^♡
- 어떻게 공략했는지가 뭐가 중요함? 결과적으로 방랑하는 구도자님이 클리어 성공했고 증언 쏟아지니 이제 얘기 끝이지
└ 궁금해 할 순 있지
└ 궁금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꾸 까려고 드니까 그렇지
- 궁금점도 많은데 대신 의문도 풀리긴 함. 사람들이 단체로 기억상실증+SS급 몬스터 혼자 쓰러트렸으면 방랑하는 구도자님이 랭킹 1위 되는 거 쌉가능이지
└ 맞음. 현재 랭커들 그때 던전 출신이 많잖아. 일산 호수던전 히든 클리어하면서 초기 경험치 많이 얻었으니까. 지금 보니 애초에 그런 던전을 솔로 공략한 셈이니 1위한 게 오히려 당연할 정도.
-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이제껏 방랑하는 구도자님 업적치를 어디서 얻었는지가 계속 의문이었는데 마지막 의문마저 해결된 거임. 즉, 방랑하는 구도자님 갓.벽하시다
└ 이렇게 보니까 진짜 쩐다 이게 어떻게 가능? SS급 몬스터 솔로 공략 가능한 대한민국의 검사? 이거 실화냐
└ 전세계로 치면 몇 위일까? 나 국뽕 너무 많이 들이켜서 지금 손 떨려
└ 검사 플레이어로서는 사실상 1위 아님? 몰라 내 마음속에선 방랑하는 구도자님이 세계 1위야
- 근데 진짜 =3는 왜 의심받을 때 이런 사정 말 안 했을까? 그때 니네 구해 준 게 나라는 말만 했어도.
- 헌협이 나서서 죽어라 깔 때 헌협 대표인 0원 길드장 구해 준게 나다! 했으면 상황 정리 깔끔하지 않았냐?
└ ㅁㅈㅁㅈ나같으면 배은망덕한 새끼라고 존나 빡쳐서 인터뷰 했을 텐데 지금 그때 까던 새끼들 아닥한 거 봐 ㄷㄷ 꼴불견
- 말해 봤자 시스템 상으로 기억이 안 난다면 소용없다고 생각했겠지.
└ 일케 생각하니 개억울해
└ 헐…… 우리 방랑하는 구도자님 혼자 속앓이했을 생각하니 눈물남 말해도 어차피 아무도 안 믿어 줄 테고 얼마나 혼자 답답했을까 과몰입 중 ꃼ.̫ ꃼ
└ 시스템 개색기 ㅠㅠㅠㅠㅠ
- 근데 그때 이야기 안 해서 지금 반작용이 크게 온 것도 있는 듯? 당시 어그로라고 좀 까였던 인터뷰 가져옴
제목 : 방랑하는 구도자님 인터뷰 재평가되는 중
내용 : 당시 인터뷰 발췌
Q. 어떤 입장을 발표하려는 것인지.
A. 간단하다. 나는 평범하게 던전을 클리어해 업적치를 쌓았고, 시스템 기준으로 1위였던 것뿐이다. 바라는 것과 달리 딱히 밝힐 만한 특별한 정보나 치트키 같은 건 없었다.
Q. 그렇다면 일단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던전을 클리어한 업적자이니까.
A. 감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다.
Q. 하지만 일부 헌터들은 랭킹 1위 헌터의 플레이어명인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이름을 던전 클리어 기록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글쎄, 시스템보다는 본인들의 눈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잘 찾아보면 내 이름이 있는 던전이 있을 거다.
- 간지 쩐다 ㅅㅂ
- 아것이 방랑하는 구도자님의 클라스……?
- 야 지금 보니까 그냥 다 맞말이네 욕하던 새끼들 기억이 잘못된 게 마즘ㅋㅋㅋㅋ
- 나 같으면 들숨에 나는 랭킹 1위 날숨에 SS급 몬스터 공략자 하고 자랑했을 텐데
- 와 저때 시비터는 거 아니냐고, 건방지다고 존나 ㅈㄹ하던 새끼들이랑 싸우던 게 전생갓다
- 지금 =3 팬카페에서는 방복절이라고 난리났음ㅋㅋㅋㅋ
└ 방복절이 뭐임?
└ 방랑하는 구도자님 인터넷 억까에서 해방된 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략)
- 지금 모나미 인별 본 사람?
- 헐 모나미가 =3 악플 자료 자기한테 보내달래. 고소할 건가봐.
- 근데 방랑하는 구도자님 악플을 왜 모나미가 고소함?? 둘이 진짜 친해?
- 대박 둘이 사귄다는 게 헛소문이 아닌가봄
└ ㅅㅂ뭔소리야그냥친구인데친해서대신해 줄수도있지뭘사귄대말도안 되는소리 하지 마라방랑하는구도자님은던전공략하느라연애할시간이없음아무리모나미라도안 되는 건안 되는 거다
└ 숨 쉬고 말해;
└ 말도 안 되는 루머 유포하지 말라고!!
└ 근데 이 말이 맞다. 혹시 사귀다 헤어지면 어캄?
└ 싸우기라도 하면 건물 두 세개는 날아갈듯
제목 : 이제까지 랭킹 1위 억까 증거 모음
내용 : 그냥 팩트만 말해도 실드러로 몰아가던 새끼들 때문에 다 pdf 따놨음. 그리고 개인신상까지 추적하면서 학창시절 어쨌네 뭐네 하고 입털던 너튜브 렉카충들, 관심 한번 받겠다고 졸업 사진 올린 새끼들, 그리고 이제껏 헌협 소속 헌터들이 sns 나 방송에서 방랑하는 구도자님 까던 영상, 인터뷰 다 모아 놓음 이거 모나미한테 보낼 예정ㅅㄱ
- 정성이다 추천 박고 감
- 이렇게 보니 심하긴 심했네 방구 개억울했겠다
- 본인이 구해 준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고 억까하고…… 그런데도 한 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던전 공략한 진정한 영웅ㄷㄷ
└ 이왜진……?21세기 감동 스토리 실화
- 하 방랑하는 구도자님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 방복절! 방복절이다!
* * *
“…….”
조한율이 내게 패드를 주며 읽어 보라길래 읽다가 나는 그만 패드를 내던지고 말았다.
“이게 뭐야. 진짜 온통 내 얘기잖아.”
물론 공식적으로 나선 이후로 항상 화젯거리가 되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낯이 영 간지럽다.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인터넷이 떠들썩해요. 아무래도 이제껏 예나 씨를 욕하던 사람들이 지레 찔려서 더 그러는 것도 있고.”
“그렇구나.”
“그래도 좀 뿌듯하지 않아요? 드디어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데. 특히 김성연 길드장은 요새 안색이 말이 아니라는 말이 돌던데요? 본인이 제일 의심하고 X같이 굴었는데 까고 보니 기억을 못 한 거였으니까.”
“김성연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건 좀 억울하겠군.”
김성연이 일부러 잊은 것도 아니고, 내가 시간대를 거슬러가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뿐이다.
뭐, 사실 내가 처음에는 의심스럽게 행동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내 능력치가 하락했다는 걸 숨겨야 하는 상태였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지만.
“이걸로 적당히 주고받은 셈 치지.”
“와, 대인배 마인드. 저 같으면 공식 사과에 손해 배상도 하라고 윽박지를 건데. 내 노고를 이제 깨달았냐! 하면서요. 어쨌든 예나 씨 없었으면 그때 포화도 올라가서 던전 터지고 일산 한복판에 문어 몬스터가 자리 잡았을걸요?”
“나만이 아니라 김숙자 교수님도 고생하셨어. 사실 나보다 더 고생하셨지.”
그냥 근성 하나로 진언을 시전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오히려 내 목격담 때문에 김숙자 교수님의 노고가 묻히는 게 신경이 쓰인다.
‘나중에 이건 인터뷰라도 해야겠다.’
막상 교수님 본인은 기억이 돌아왔을 텐데도 내 핸드폰으로 ‘나중에 제대로 상황 설명해 주면 고맙겠다.’라고 문자 한 통 넣은 게 전부였다.
아마 내 사정을 짐작하고 배려해 주신 듯했다. 진정한 대인배 마인드란 교수님 이야기겠지.
그래도 이런 일이 터진 덕분에 인터넷에서 마구 돌아다니던 내 신상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잠잠해진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조한율 집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로 익숙지 않은 댓글들을 보느라 눈이 아프다.
나는 약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기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긴 하죠.”
그래.
지금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떻게 타르토스로 가느냐가 문제야.”
- 플레이어, ‘강예나’는 메인 퀘스트에 실패하였습니다.
-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 나는 메인 퀘스트에 실패했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퀘스트를 통해 타르토스에 가는 방법 외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운명의 씨앗에 아직 사용 불가란 꼬리표가 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음, 제가 이번에 예나 씨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조한율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차원의 틈새를 헤매다가 이제까지 만들어온 인연에 이끌린 덕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라고 했죠?”
“응, 그럼 설마 내가 또 차원의 틈새로 들어가면 타르토스로 갈 수도 있다는 거야?”
“에이, 제가 무슨 미친 사람도 아니고 그런 걸 예나 씨한테 강요할 리가 없잖아요.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지 무작정 들어갔다간 까딱하면 죽는다고요. 그리고 차원의 틈새를 여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고.”
“……마계로 가면 악마 새끼들이 밀어 넣어 주긴 할 텐데.”
“그건 너무 미친 소리고요…… 기본적으로 차원의 틈새는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높아졌을 때 나타나거든요.”
B루트의 아리아드네가 타르토스에 왔을 때처럼, 본래 다른 차원의 존재가 억지로 틈을 비집고 들어왔을 때 불안정성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원의 틈새를 만드는 것 자체도 인위적으로 불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건데…… 안 그래도 예나 씨 주변 상황이 불안정해졌던 적이 한 번 있었어요.”
“그게 언제인데?”
“예나 씨와 이우연이 처음으로 접촉했을 때.”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접촉이라면……?”
“아마 신체 접촉?”
“그런 거 한 적 없는…… 아.”
그러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당시 이우연을 처음 만났고, 보스 몬스터 공략 후…….
“짜증 나서 등을 한 번 쳤던가, 아니면 부축을 했던가……?”
그것도 신체 접촉이라고 할 수 있나?
하지만 그때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던 건 사실이었다.
- 경고! 경고! 경고!
- 운명력의 작용으로 최후의 시련이…….
조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한국 시스템이 불안정해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