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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00화 (30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00화

막사 안에서는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군대를 물리겠다며 황제 앞에서도 위세가 당당하던 귀족들은 지금 혀를 빼물고 늘어진 채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은 단 한 번의 손짓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고귀함이니 품위니, 그런 것은 죽음 앞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가 뻣뻣하더니 말이야.”

황제는 베른 공작의 머리를 손으로 툭 떨구며 감탄하듯 금발의 악마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진 거지?”

“오래 살았으니까.”

아리아드네는 황제를 일견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어딘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파충류의 비늘처럼 보이는 매끄러운 손은, 마치 피 웅덩이에 담갔다 뺀 것처럼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방금 전 망설임 없이 십수 명의 목숨을 제물로 사용한 손이었다.

“그래서 몰라도 될 것을 알게 되었지.”

아무리 운영자라고는 해도 허락되지 않은 권한 이상을 사용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신을 섬기는 종이자 자애를 베풀어야 할 신관인 교황은, 신의 자비가 아니라 신의 권력을 탐한 대가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법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신전은 대대로 이 대륙을 손에 넣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

실로 신의 종을 자처하는 자들다웠다.

인세에서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책임은 신에게 떠넘겨 버리는 역겨운 종자들답게.

그런 아리아드네를 관찰하며 황제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는데.”

“시스템상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노화가 극단적으로 느려지거든. 나는 이미 수백 년간 살아왔어.”

물론 그것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의 이야기지만.

황제는 자신을 악마라고 칭하는 주제에 의외로 질문에는 성실하게 대답 중인 성녀를 바라보았다.

저것은 신의 종으로서 보이는 친절함인 것인지, 혹은 지고한 존재가 인간에게 보이는 일말의 상냥함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터.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애초에 신전은 대체 어떻게 교황을 운영자로 만들 수 있었던 거지? 신의 점지라도 받은 건가?”

물론 황제 또한 운영자가 살해를 통해 다음 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초대 운영자가 교황이 되었는지는 몰랐다.

그 의문에 아리아드네는 무감하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 시스템이 생긴 날, 시스템은 무작위로 한 사람에게 운영자라는 직책을 떠넘겼어.”

마치 오래된 기억을 풀어놓듯 눈동자가 허공을 더듬었다.

실제로도 아리아드네에게는 무척이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이제는 두 세계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평이하고, 그래서 더욱 비참한 비극.

“그리고 운영자가 된 인물은, 무척이나 평범한 농민이었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 그저 눈앞에 나타나는 글자가 신의 벌인 줄 알았지. 그래서 신에게 회개하려고 신관을 찾아왔고…….”

“행운이 제 발로 굴러 온 셈이로군.”

황제의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에 아리아드네는 잠시 침묵했다. 풍성한 속눈썹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떨렸다.

저자는 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익숙한 분노는 잠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가도 금세 얼어붙었다. 그 분노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힘없는 자를 짓밟는 것은 인간의 본질일진대 새삼스레 분노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서, 이 마법으로 저 성안의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건 정말인가?”

“그래.”

방금 제 밑의 수하를 제물로 바친 주제에 악마의 확답을 들은 황제의 눈은 밝게 빛났다.

그런 황제에게 아리아드네는 조용히 경고했다.

“다만 대범위 마법이니만큼 성벽 가까이 접근한 병사들도 죽게 될 거야. 그 목숨은 고스란히 당신 영혼이 짊어져야 할 거고.”

“상관없다.”

자신의 병사들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

“그깟 병력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지.”

어차피 이 전쟁은 길어질수록 제 살을 깎아 먹는 짓이었다. 상대방은 숫자는 적었지만 견고한 요새가 있는 데다, 심지어 이쪽은 보급품마저 상실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김에 눈엣가시였던 귀족들과, 병사들 몇백의 목숨쯤 내주더라도 빨리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것이 훨씬 이득인 게 당연했다.

그렇게 타인의 목숨을 한낱 숫자로 치부하며, 황제는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로 정말 루카스를 죽일 수 있는 거겠지?”

“그래.”

그리고 황제의 승낙을 받아들이며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 또한 규격 외의 강자지만…… 그래도 필멸자인 이상 죽음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니까.”

원하는 대답을 들은 황제의 눈에 기묘한 충족감이 떠올랐다.

루카스가 태어난 이후부터 마음속에 자리하던 열등감이 일그러진 형태로 충족되었다.

아무리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과는 달리 멀쩡한 신체를 가졌다고 해도 어차피 죽으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

심지어, 그 죽음이 과거 루카스의 동료이던 성녀의 손에 이루어지다니!

황제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신이 날 선택했다는 증거로군. 자신의 동료에게도 배반당하다니, 꼴사납기 그지없어.”

“그래, 맞아.”

아리아드네가 황제의 오만함을 두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람을 믿는 건 죄니까.”

그러나 그 죄를 벌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아리아드네의 손에서 붉은색의 피가 문양으로 만들어지며 허공으로 빛이 피어올랐다.

“그러니 내가 그 죄로부터 이 세계를 구해 줄게.”

- ‘죽음의 장막’이 시전되었습니다.

- 이 필드 내의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막사 안에 있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깥에는 오색의 오로라처럼 황홀한 마법이 펼쳐졌으리라.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근원적인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신성 마법.

이 전장에 선 모든 이들은 죽음을 거스르지 못하고 절명하게 될 것이다.

본래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지 않는 이상 시전이 불가능하지만, 수십의 생명력을 제물로 바친 만큼 지금의 아리아드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마법이었다.

그러나…….

- 안 돼!

머릿속에서 저항하는 가냘픈 목소리가 울렸다. 다른 운명의 자신에게 몸을 빼앗긴 처절한 영혼의 외침이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질 법한 울음이었으나, 아리아드네는 그것을 무시했다.

이곳의 자신 또한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이 결말만이 모두가 평안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용사의 의지가 실현됩니다.

콰콰콰쾅!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시야에는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죽음의 장막이 파훼됩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황제가 당황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아리아드네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

대신, 아리아드네는 조용히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피를 삼켰다.

파훼된 마법의 반동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던 것이다.

속에서 올라온 물컹한 핏덩어리를 다시 씹어 삼키며, 아리아드네는 가슴께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지 신체적인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밖을 보지 않아도 메시지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애가 왔구나.

결국에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리아드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몰랐을까?

레나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무리 다른 세계로 쫓아내더라도, 심지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저 어둠으로 떠밀더라도…… 결국에는 이 세계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등을 떠밀었을 때도, 모든 것을 알게 된 어깨를 떠밀었을 때도 항상.

자신이 이 세계에서 쫓아낸 주제에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결국 그 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리아드네는 설핏 미소했다.

너는 한때 길을 찾지 못해 방랑하는 아이였고, 나는 너와 함께하고 너를 이끌던 인도자였는데.

이제 네게는 인도하는 별 따위는 필요 없구나.

그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우면서도…….

“밉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씹어 삼키며 아리아드네는 눈을 감았다.

“네 존재가, 네가 구하려는 이 세계가…… 내 잘못을 자꾸만 돌아보게 만들어.”

한 세계를 죽음으로 이끈 후, 아리아드네는 홀로 묘지에 잠든 채 악몽을 꾸었다.

그것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악몽이었다.

자신만이 보는 환상 속에서 친구들은 끊임없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 가며 죽어 갔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보았다.

그렇게 참극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몇십, 몇백, 몇천 번 꿈을 되풀이해도 답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답을 찾았더라도 아무런 소용도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다. 비극을 재현하는 무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다. 미래가 없으니까. 아리아드네가 그 미래를 부수어 버렸으니까.

그렇기에 아리아드네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하루하루 악몽을 꿈꾸며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왜 하필 내 앞에 나타난 걸까, 너는.”

아직도 그 악몽 속에서 새로운 존재를 발견했을 때를 기억한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평온한 악몽을 끝내러 온 불청객.

그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을 때 아리아드네는 절망했다.

운명 따위를 믿지 않게 된 지금, 그럼에도 운명의 장난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악몽이 다른 차원에서 던전의 형태가 되어 나타났다는 것도, 하필이면 그 던전에 뛰어 들어온 것이 레나였다는 것도.

어째서, 도대체 왜 네가 여기에…….

어떻게 저 아이가 여기에 온 것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레나의 곁에 또 하나, 무척이나 익숙한 영혼이 있었던 것이다.

구하고 싶었던 또 다른 친우.

그러나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대가를 감수해 가며 환생의 궤도에 올리기 전,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었던 영혼.

“그 애를 다시 한번만 보고 싶군.”

루카스가 죽기 전 빌었던, 이루어지지 못한 애정 어린 고백에 마음이 움직였다.

평생을 왕자라는 신분에 얽매여 있던 이가 처음으로 내뱉은 이기적인 속마음.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만이라도 좋으니까.”

그 마음은 자신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아리아드네는 경고했다.

“어쩌면, 운이 좋아 그 애의 세상에 닿아 환생할 수도 있겠지만…… 도달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요. 깊은 차원의 틈새 속을 영원히 떠돌게 될 수도 있고, 설령 다시 태어난들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정말로 그런 불확실한 도박을 하실 건가요?”

“무슨 소리야, 아리아드네.”

꺼져 가는 생명을 그러모아 루카스가 웃었다.

“내 특성이 뭔지 알잖아.”

그렇게 떠나보낸 영혼을 정말 레나의 곁에서 발견한 순간에, 아리아드네는 전율했다. 그러니 그들이 자신의 악몽에 끼어드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이의 악몽에 끼어들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검을 들었다.

낯모를 타인을 동정했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아리아드네는 타는 듯한 심정으로 과거의 친우들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 번은 방해하려고도 해 보았으나, 결국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을 동정하는 마음이, 제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그 의지가 너무도 눈부셨기 때문에.

……그렇게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들은 아리아드네의 악몽을 끝냈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거기에 있었다면, 우리는 승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비록 잃은 것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새롭게 얻은 무언가를 지켜 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유일한 희망을 밀어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아리아드네는 과거 옵타티오를 쓰러트린 후, 레나의 영혼을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냈다. 어차피 다른 세계에서 온 영혼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추악한 욕망을 더 파헤치기 전에 본래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겼다.

옵타티오는 그저 악룡이고, 그 악룡을 처치하는 것으로 세상을 구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영혼이되…… 그래도 소중한 이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마지막까지 더없이 빛나는 별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친우를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낸 결과가 이것이다.

아리아드네는 누구보다도 더욱 처참하게 짓밟혔다.

영혼의 밑바닥까지.

“너를 보면 지나온 내 모든 과거가 과오이며, 후회이고, 실패처럼 느껴져.”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그 후로 제 삶을 지옥으로 만든 용사의 여정을 쭉 지켜보았다.

그저 나약한 인간답게 흔들리다가도 다시 나아가는 모습.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누군가에게 손을 빌려주는 용기.

아리아드네는 그것을 때로는 방해하고, 때로는 돕고, 때로는 방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어쩌면, 인간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서로를 돕고 나아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다면, 설령 당장은 정체할지라도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러나, 그렇기에.

“그래서 나는, 너를 인정할 수가 없어…….”

용사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아리아드네를 부정한다.

그렇기에 자랑스러운 만큼 증오스럽고.

아꼈던 마음만큼이나 철저하게 부수어 버리고 싶었다.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산산조각으로 짓밟아 버리면 이 뜨거운 증오가, 미움이, 사랑이 식을 것도 같았다.

그것만이 자신의 지옥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었다.

- 나는 그런 거…….

영혼 속 어딘가에서 다시금 일어나는 목소리를 짓밟으며, 절망에 휩싸인 한 인간은 손을 들었다.

영혼 밑바닥에 마지막으로 남은 무언가도 마저 부수고자.

- 경고!

- 던전 포화도가 급속하게 올라갑니다.

붉은색의 글씨가 시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 * *

죽음의 장막이 걷히고, 성안이 힘찬 노랫소리로 가득해졌을 때.

나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섰다.

알리시아도, 일리아스도, 루카스도 반가웠지만 가장 반가운 얼굴은 따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다들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연스럽게 길을 터 주었다.

루카스가 격려하듯 페트라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웃으면서, 페트라 앞에 섰다.

페트라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 페트라.”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칼.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었다.

몸을 빌리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마주서 보니 페트라의 시선이 약간 더 높았다.

나보다 키가 좀 더 큰 모양이었다.

‘그렇게 작았는데.’

힘이 없는 어린아이였던 시절을 알고 있었던 만큼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모습이 무척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페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 용사님.”

“레나라고 불러.”

“그…… 저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신 것, 알고 있습니다. 감사…….”

“아니, 감사는 내가 해야지.”

나는 페트라의 말을 막고, 먼저 어깨를 확 끌어안았다.

품속에 들어온 페트라가 깜짝 놀라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훌쩍 커 버린 아이의 등을 찬찬히 두드렸다.

이렇게 살아 있는 따뜻한 체온이 얼마나 기적처럼 느껴지는지.

“나는, 네가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고마워. 모든 게 네 덕분이야.”

나 혼자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운명.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페트라를 포함한 숱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너를 도울게.”

이제껏 페트라의 몸을 빌리고 있었기에 본인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

그래서 이렇게 만난 지금 직접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도와 달라고 외쳤던 너의 목소리는 확실히 닿았다고.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너의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네, 레나 님.”

페트라가 기댄 어깨 부분이 약간 젖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루카스가 조용히 그런 페트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떨어졌다.

“……킁.”

……알리시아가 옆에서 괜히 코를 훌쩍여서 감동이 약간 깨졌지만, 하여간에.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리아스가 물었다.

“근데 레나, 왜 너만 왔어? 용병들이 온다고 들었는데.”

“야, 이 무정한 놈아! 감동의 재회를 방해하지 말라고!”

“감동의 재회도 좋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데. 저길 봐.”

일리아스가 쓴웃음과 함께 성벽 밑을 가리켰다.

그리고 일리아스가 가리킨 곳을 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던전?”

“아마 임의로 던전을 터트릴 모양이야. 용사를 쓰러트리기엔 인간의 병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지?”

주어는 없었으나, 누굴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

확실히, 그저 감동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우리 쪽 운영자 말에 따르면 타르토스와 인연이 가장 깊은 내가 키잡이 노릇을 해야 한다더군. 내가 앞장서면 다들 자연스럽게 내 길을 따라올 거라고 했어.”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시커먼 게이트가 열렸다.

동시에, 조한율의 발랄한 메시지도.

조한율 : 지금 도착했어요!

“조금 늦었네.”

그리고, 하늘에 열린 틈새 속.

순백색의 날개를 펼친 이우연이 가장 먼저 지면 위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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