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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04화 (305/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04화

- 운명의 씨앗이 발아합니다.

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야, 레나! 저거 진짜야?!”

옆을 달리던 알리시아도 그렇게 물었다.

운명의 씨앗이 발아하다니, 그건 즉…….

과거, 유령성 전투에서 보았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유령성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감회가 차오르는 동시에…….

“…….”

나는 지금 충돌 직전인 적군 측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저 대군 너머 후방의 막사 어딘가에 아리아드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저 시스템 메시지는 아리아드네의 눈에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저 아리아드네의 세계에서 이미 한 번 일어났고, 그 애가 가장 바꾸고 싶었던 일이고, 지금은 가장 저주스러울 새로운 가능성.

이 세계에 강림해서까지 없애고 싶었던 그 가능성이 기어코 발아한 것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

“레나!”

알리시아가 외쳤다.

그 목소리가 정신을 일깨웠다.

두두두두!

뒤에는 우리를 쫓아오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창병! 준비해라!”

그리고 앞에서는 우리를 죽이려는 대군이.

전장에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다니, 제정신인가 싶다.

나는 검을 쥔 손에, 땅을 달리는 발에 힘을 주었다.

“레나, 죽지 마라!”

“너나 조심해!”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와 알리시아는 입을 다물고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살을 계속 날리며 우리와 몬스터를 어떻게든 저지하려던 적군 측은, 이제 충돌을 대비해 창을 든 병사들을 앞으로 배치한 상태였다.

휙!

물론 나도, 알리시아도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창에 꽂힐 일은 없이, 위로 뛰어올라 각자 병사들의 머리를 밟고 한 번 더 뛰어올랐다.

“커헉!”

“위! 위다!”

병사들의 머리를 밟으며 뛰어오른 우리를 향해 검이며 창이 찔러 들어왔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온다!”

“몬스터들이 옵니다!”

우리를 따라오던 몬스터 무리들이 병사들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폭탄처럼 전열의 창병들이 가지고 있던 창에 제 몸을 마구 부딪쳤다.

콰지직!

몬스터들의 피 냄새가 진동했다.

“으아아아악!”

“밀리면 안 된…… 크아아아악!”

다만 아무리 긴 창이라고 해도 몬스터 한 마리가 꽂혀 버리면 무용지물이다.

차라리 같은 인간을 상대로 하면 모를까, 몬스터들이 군세를 이뤄 덮치자 앞에서부터 흐트러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하늘 위를 날고 있던 이우연이 우리 뒤에 대고 외쳤다.

“몬스터들의 유도는 내가 할게!”

“그래, 맡긴다!”

백사현을 든 채 이우연이 높이 날아올랐다.

한 손에는 푸른 마력이 모여들어 있는 것이 모였다.

이대로 어그로를 끌면서 마법을 적절히 활용하면 몬스터들의 전열을 흐트러트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해낼수록 성에서 수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걸리는 부담은 줄어들겠지.

“밀리지 마라!”

“우리의 숫자가 더 많다! 충분히 해치울 수 있는 숫자다!”

기사들이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후퇴하면 내가 직접 죽이…… 커헉!”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기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병사의 머리를 밟으며 적군 안으로 침투한 알리시아의 손에 투구의 머리채를 잡혔기 때문이다.

알리시아의 팔에 잡힌 기사는 발을 버둥거리며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알리시아는 그 검이 몸에 채 닿기 전에 기사의 몸을 통째로 들어 올려…….

“그럼 그렇게 말하는 네가 몬스터를 상대해 보든가!”

“으아아아악!”

멋들어진 갑옷을 입은 기사가 무슨 종이비행기처럼 허공을 날아 몬스터들과 병사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던져졌다.

저렇게 던져지면 일어나서 자세를 잡기도 전에 밟혀 죽을 것 같은데…….

“저, 적이다!”

“저 은발에 괴물 팔…… 요, 용병왕이야!”

“용병왕이라고?!”

“그래!”

알리시아가 팔을 휘두르며 웃었다.

“어디 한번 죽고 싶은 놈들부터 와 봐!”

아무리 적 한복판에 단 두 명이라고 하더라도, 둘 중 하나가 괴물 팔을 단 용병왕이라면 쉽게 달려들기가 힘들 것이다.

알리시아의 악명은 적이 되면 더욱 무서운 것이니까.

“몸을 두 갈래로 찢어서 죽여 주마! 영원히 안식하지 못하고 떠돌게 해 주겠다!”

……그리고 본인도 그런 악명을 부추기고 있고.

그런데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찢겨 죽고 싶은 놈부터 와라!”

병사들이 알리시아의 기세에 밀려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나며 우리 둘을 중심으로 큰 원이 생겼다.

당장 먼저 달려드는 사람이 죽을 것 같으니 덤벼들 용기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적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제님, 포획 마법을!”

“예!”

휘릭!

병사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후방에서 황금빛의 커다란 그물이 날아왔다. 나와 알리시아를 노리고 쏘아진, 성력으로 된 신성 마법이었다.

만일 알리시아 혼자였다면 주위에 병사들이 몰려 있는 만큼 피하기 쉽지 않았겠지만…….

“어딜.”

콰쾅!

- 에이펙스의 성검이 ‘혼돈의 용사’ 보정을 받아 신성 마법을 파훼합니다.

에이펙스의 성검이 황금빛의 그물을 조각내면서, 빛이 유리 조각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 무슨…….”

“사제님! 사제님이 쓰러지셨다!”

“신성 마법이 먹히지 않다니…….”

병사들의 시선이 알리시아에 가렸졌던 나와, 내 검에 꽂혔다.

평소라면 굳이 과시하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는 성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날이 늘어나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피로했다.

쭉 늘어난 검날이 발광했다.

“헉!”

“성검이다!”

“대륙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

에이펙스의 성검이 자랑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만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성검의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깨달음이 덮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성검을 가지고 있다면, 설마…….”

“그래, 검은 눈동자에 머리카락이라고 들었어!”

“이목구비도 타르토스 대륙 사람 같지 않다던데.”

“정말로…… 용사 레나인가?”

나 혼자만 여기 있었다면 모를까.

은발을 휘날리며 몬스터 팔을 휘두르는 용병왕과, 그 옆에 선 성검을 든 나.

여기까지 오면 이쪽의 정체를 추론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지금의 나는 가면을 쓰고 있지도, 페트라의 몸을 빌리고 있지도 않았으니만큼 내 모습을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용사 레나라고?”

“그 악룡을 처치한 전설의……?”

병사들의 속삭임이 퍼져 나가,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웅성임이 되었을 때.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내가 바로 용사 레나다!”

내 외침에 주위에 늘어선 병사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요, 용사가 정말로 적인 거야?”

“하지만 왕자에게 악마가 쓰였다고 했어. 용사가 저쪽에 붙을 리 없잖아!”

나를 알아본 자들 때문에 혼란함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때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저자가 용사일 리 없다!”

입에 피가 흐른 자국이 역력한, 흰 신관복을 입은 사제였다.

신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손가락질하며 성토를 시작했다.

“저자는 용사를 사칭하는 악마일 뿐, 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당장 쳐라!”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외침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용사와 적대하는 신관이라니, 심지어 그 신성 마법은 용사가 멋지게 격파해 보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용사가 든 성검이 파훼하는 것은 ‘악’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인식 아닌가.

‘실제로는 혼돈의 용사 보정을 받은 거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그랬다.

이대로라면 신관 쪽이 ‘악’은 아닌지, 병사들 사이에 불신이 퍼져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당연히 저렇게 부정할 수밖에 없을 테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외치는 신관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달라지는 게 없군.”

이전 추기경 요하임이 저지른 실수와 같았다.

“스스로 저지른 죄를 덮기 위해 또 거짓말을 쌓고, 제 눈마저 가리고. 진실을 감춘다고 한들 그게 얼마나 갈 거라고 생각하지?”

“뭐, 뭐라?”

“나는 용사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영 얼굴이 뜨겁지만, 적군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려면 이만한 방법도 없다.

그래서 나는 성검을 든 채 신관에게로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사의 검에 파훼된다면, 신성 마법이야말로 사기 아닌가?”

이 전쟁에 내건 대의명분은 ‘악마에 쓰인 왕자’를 토벌하는 것.

그걸 실제로 믿는 이들이 얼마나 있건 간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 대의명분이 흔들린다면 명령을 받은 병사들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틀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죽이는 것.

스스로를 정당화할 이유가 사라진다면 상대를 향한 검에는 망설임이 실릴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패배로 이어진다.

“흐아아아아악!”

“살려 줘!”

심지어 몬스터들과 부딪힌 전위의 병사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오는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 속에서 긴장이 더해졌다.

나는 사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자신 있다면 한 번 더 신성 마법을 써 봐. 누가 가짜인지 한번 보자고.”

“다, 당연히 그거야…….”

“지금, 당장!”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나를 본 사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야 부정하고 싶겠지만 신성 마법을 파훼당한 이상 쉽게 나설 수 없을 테다.

이번에 또 신성 마법이 파훼된다면, 그리고 당장 눈앞의 성검이 가짜라고 증명할 수 없는 이상 신관 쪽이 불리했으니까.

“으, 으윽……!”

그리고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채.

사제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지, 진짠가 봐…….”

“신관들이 거짓말을 한 건가?”

“성검은 진짜가 맞아. 신성 마법이 먹히지 않은 거 다들 봤잖아!”

“용사가 거짓말을 하겠어?”

신관이 나를 상대로 당당히 맞서지 못한 이상, 병사들의 의심이 더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수군거림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을 때.

“에잇, 적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저런 수작에 말려들 셈인가!”

“다들 비켜!”

주춤거리던 병사들 사이로 기사들이 달려 나왔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검을 든 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기가 목을 향해 날아왔다.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모두 뒤를 따라라!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갈 것 없다! 사방에서 덮…… 크헉!”

우드득!

하지만, 가장 먼저 기세 좋게 달려들던 기사의 갑옷이 알리시아의 발길질에 완전히 우그러들었다.

“꺼져, 이 새끼야! 죽인다고 했지!”

가슴팍을 보호하는 두꺼운 판이 발 모양대로 완전히 우그러들었다.

“이 악마의 새끼들이이이이!”

덕분에 숨이 막힌 기사는, 그래도 검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알리시아의 목숨을 노렸지만…….

“도망치는 자는 쫓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걱!

기사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이, 이익!”

“감히…… 커헉!”

그리고 나머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례차례로 검을 든 팔이, 목이 날아가 피를 흩뿌렸다.

막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들려던 병사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추어 섰다.

그들의 눈은 방금 전 너무도 쉽게 기사의 목을 베어 낸 성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맞서는 놈들은 모두 죽을 거다.”

땅바닥에 피가 흩뿌려졌다.

이번에야말로, 전장은 완전히 침묵에 지배되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인데도, 적군 한복판에 서 있는 나와 알리시아를 공격하려 나서는 병력은 아무도 없었다.

그 상태로, 나와 알리시아는 슬쩍 눈빛을 주고받았다.

‘여기는 대충 정리된 것 같이 않냐?’

‘아마도? 근데 오래는 안 갈 거야.’

잠깐은 분위기를 장악했다고는 해도, 결국 우리는 단 두 명이다.

솔직히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저쪽의 승리다.

좀 더 카리스마가 있고 인망이 있는 기사가 이쪽에 당도하면 이 분위기는 단숨에 뒤집힐 것이다. 몇십, 몇백 명을 끝없이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이만큼이나 사기를 떨어트렸으니 다들 정신을 차리고 덤벼오기 전에 다른 쪽으로 튀는 게 정석이긴 한데…….

‘문제는 성 쪽의 상황이 정리가 되어야…….’

그렇게 우리가 퇴각할 타이밍을 노리던 때였다.

쿠구궁!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성을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경악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건 뭐지?!”

“마, 맙소사. 신이시여!”

그 목소리에, 나는 성을 돌아보았다.

상황은 곧장 파악되었다.

먼 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해일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전투처럼 성벽 아래로 밀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몰라볼 수 없는 마법.

이선 헌터의 진언이었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폭풍에 몬스터들이 속절없이 쓸려 나갔다.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 위대하기까지 한 마법이 시전된 것이다.

‘레벨이 엄청 오른 것 같은데.’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도 위력이 훨씬 거대해졌다.

루카스나 일리아스가 보조했을 수도 있겠다.

“저건 말도 안 돼…….”

“몰살당했다고!”

그리고 그 마법을 목도한 적측에서는 절망이 터져 나왔다.

가장 큰 이점인 수적 우세를 잊게 할 만한 광경이기는 했다.

“저런 마법을 두 번이나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대는 최후의 패를 쓴 거다. 진군해!”

여기저기서 그런 소리도 들렸지만, 병사들의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건, 이제 쐐기가 박혔군.

나와 알리시아는 한 번 더 눈빛을 주고받았다.

앞에서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그리고 성 근처에 있던 아군이 수몰당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날뛰어 주면 완전히 오합지졸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마침내, 병사 중 누군가의 입에서 두려움의 단상이 튀어나왔다.

“도, 도망…….”

하지만, 그 목소리가 힘을 얻으려던 때.

쿠콰콰콰쾅!

마법이 터졌다.

막 도망치려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마법이 터진 쪽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불길한 빛의 지옥 같은 불꽃이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한꺼번에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의 시전자는…….

후방에 마련된 단상에 오른, 화려한 망토를 걸친 황제가 커다란 왕홀이 달린 완드를 들고 분노한 얼굴로 그의 병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는 왕홀로 땅을 내려찍었다.

쿵!

쿵!

그 소리는 쇠사슬처럼, 달아나려던 병사들의 발을 전장에 묶었다.

두려움에 차 있던 시선들을 온몸으로 받으며, 황제는 근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악마를 상대로 현혹된 자, 부끄러움을 알아라!”

자신만의 진실에 침식된 자.

“명예를 저버리고 달아나는 자들은 기필코 이 손으로 처단하겠다. 명예를 알고 진군하는 자, 이 손으로 직접 대대손손 영광을 내리겠다!”

……황제는 황제라는 건가.

괜히 이제껏 군림한 게 아니라는 듯이 황제가 두르고 있는 위압감은 순식간에 병사들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왕홀 주위에 모인 마력의 흐름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강대했다.

그 왕홀이 자신의 병사들을 덮치는 몬스터들을 향해 쏘아졌다.

쿠쿠쿵!

또다시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허공에서 피어난 불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재로 변했다.

애초에, 유령성 전투에서도 무려 SS급의 몬스터로 판정되지 않았던가.

본래부터 황제 또한 뛰어난 마법사였던 것이다.

그 황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루카스를 닮은 푸른 눈동자.

그러나 가장 다른 것은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었다.

혐오감, 동경, 질투, 탐욕, 분노 같은 것들이 함께 득시글하게 끓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과거 유령성 전투에서 보았던 그의 심상이 떠올랐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그저 홀로 죽어 갈 수밖에 없었던 독재자.

그가 루카스를 질투한 이유를, 문득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용사마저 악마에 홀리다니, 실로 개탄할 일이로다.”

……그럼에도, 그것이 저자의 결론인가.

검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많은 목숨을 삼키고, 희생시키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는 건가.

“부정한 자는 이 몸이 직접 처단하겠다!”

황제가 든 완드의 뾰족한 끝이 나를 향했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나를 향했다.

파지직!

지옥불로 만든 불꽃의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내가 검을 들어 그 마법을 파훼하기도 전에.

휘리릭!

은빛의 실드가 내 앞에 펼쳐졌다.

콰과광!

그리고 실드에 부딪힌 불화살의 일부는 그대로 소멸되었지만, 남은 일부는 실드를 깨고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피해를 입는 일은 없었다.

휙!

어느새 날개를 펼쳐 날아온 이우연이 검으로 마법을 반으로 가르며 내 앞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지난 유령성 전투 때와 묘하게 겹쳐졌다.

“히, 히익…….”

옆구리에 끼어서 들려 온 백사현도 함께였다.

이우연이 백사현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우연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기척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건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우연, 네가 굳이 왜…….”

그때 이우연이 조용히 말했다.

“강예나, 물러서.”

“뭐?”

“저건 내 몫이니까.”

이우연이 황제를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세웠다.

등을 바라보고 있어, 들리는 것은 목소리뿐이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헤아리기 힘든 회한이었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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