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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07화 (30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07화

쾅!

물론, 그것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강예나가 휘두른 검에 파훼되었다.

허공에서 빛의 조각이 되어 비산하는 신성 마법을 본 병사들이 잠시 주춤한 순간에.

쿵!

“꺼져라아아아!”

알리시아가 폭풍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같은 인간의 신체라면 모를까, 한쪽 팔에 거대한 몬스터의 몸을 달고 있는 만큼 그저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부딪힌 병사들은 종이 인형처럼 옆으로 휙휙 쓰러졌다.

거의 폭풍이나 다름이 없었다.

바닷길이 갈라지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알리시아가 달려 나가는 대로 길이 생겼다.

“따라붙어!”

그리고, 그 뒤를 나머지 세 명이 따라붙었다.

“자, 잡아라!”

“놓치면 안 돼!”

맨 앞에서 길을 내고 있는 알리시아의 등 뒤로 수십 개의 칼날이 내리쳐졌다.

그렇지만…….

“꺼지라는 말 안 들렸어?”

뻐어억!

‘그’ 알리시아의 등 뒤에 바로 따라붙은 것이 ‘그’ 강예나였다.

자신의 친우를 노리는 칼날을 향해 강예나는 가차없이 주먹을, 발을, 검을 휘둘렀다.

주먹에 맞은 세 명이 한꺼번에 코피를 뿌리며 날아가고, 검을 휘두른 것에 갑옷이 절반 넘게 베여 즉사하고, 발로 걷어찬 기세에 휩쓸려 수십 명이 엉켜 넘어졌다.

인간보다는 인외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기백이었다.

“커헉!”

“으아악!”

“괴, 괴물 새끼들이!”

그리고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병사들의 비명을 들으며 백사현도 소리를 지르며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 씨! 저리 가라고!”

그래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에 비해서는 백사현 또한 나름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클래스가 배우인 터라 검사로서의 실력은 떨어졌지만, 대신 여러 클래스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덕에 오히려 이런 난전에서는 유리하다고 할 법할 것이다.

게다가 시선은 앞장선 두 사람이 다 끌어가고 있기도 했고.

암살자의 은신 스킬을 적절히 이용하며 어떻게든 따라붙는 걸 보면 백사현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그리고 마찬가지로 조용히 뒤에 따라붙은 이우연은 백사현의 등을 노리고 베어 오는 검을 쳐 내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곧 닿을 수 있어.’

현재 황제 또한 적군 중앙까지 들어온 네 사람이 거슬리기야 하겠지만, 당장 급한 것은 전위를 습격하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리고 황제 없이는 몬스터들을 요격하는 대범위 마법의 시전이 불가능한 만큼 당분간 앞에 나서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속도라면 충분히 황제가 있는 단상까지 이를 수 있을 터였다.

“역도들을 막아라!”

“가만히 두지 마라!”

물론 그들이 황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적군 또한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특히나 용사에게 단단히 망신을 당한 신관들이 그랬다.

“저 사기꾼을 단죄해라!”

“성력을 계속해서 불어넣어!”

근처에 있는 병사들이 말려들기에 대규모의 마법 공격은 쓸 수 없었지만, 신관들이 쓰는 성력은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물론 강예나가 성검으로 신성 마법을 계속해서 파훼하고는 했지만, 아무리 파훼하더라도 그 잔해는 남는 법.

주위에 성력이 충만해지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아, 진짜 짜증 나게!”

바로 몬스터의 팔을 달고 있는 알리시아의 몸에 가장 먼저 이상 반응이 생긴 것이다.

서걱!

“알리시아!”

처음으로 알리시아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덮쳐 오는 기사의 검을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베인 것이다.

뒤에 따라붙었던 강예나가 기사의 검을 쳐 내기는 했지만 한 번 입은 상처에 계속 성력이 스며드는 것이 문제였다.

일반인이라면 주위에 아무리 성력이 충만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시아의 경우 마력과 연금술을 결합해 몸에 몬스터 팔을 붙이고 있는 만큼, 성력이 충만하면 문제가 되었다.

“아, X나 아프네!”

알리시아가 팔을 감싸 안고 고함을 질렀다. 성력이 마치 바늘처럼 연결부를 찌르듯 압박한 탓이었다.

질풍처럼 길을 뚫고 나가던 알리시아의 움직임이 살짝 둔해지자, 그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역시 신관들이었다.

“효과가 있다!”

“역시 사기꾼이었어. 다들 성력을 더 모아라!”

“파훼돼도 괜찮다. 밀도를 높여!”

“……쳇.”

강예나가 짧게 혀를 찼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다.

성력을 파훼하는 것과 별개로 주위에 신관이 많으면 성력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니.

“내가 앞장설게!”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 강예나가 길을 뚫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알리시아만큼의 파괴적인 속도를 내기는 힘들었다.

“감히 황제 폐하의 호위인 나를 뚫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내가 상대해 주지!”

게다가 시간이 지나며 전군에 흩어져 있던 실력 있는 기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길을 뚫는 속도는 점점 떨어졌다.

이우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막상 황제 근처에 도달하더라도 체력이 떨어져 고전할 확률이 컸다.

혹은 몬스터들을 어느 정도 처치한 황제가 다시 후방으로 물러날 수도 있었고.

이대로 여기서 발이 묶이는 것은 곤란했다.

‘마법을 써야 하나?’

이우연은 아직도 멀리로만 보이는 황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근처에는 아직도 마법 공격을 막을 성력 결계가 자리하고 있었고, 황제 주위에도 쟁쟁한 호위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력은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길을 뚫는 것은 레나와 알리시아에게 맡겨 두고 마법은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대로라면…….

이우연이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파직!

파지직!

뺨에 무언가 날카로운 감촉이 닿았다.

“이건……?”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 어어?”

“이게 무슨…….”

콰지지직!

하늘에서, 백열하는 번개가 지상으로 내리쳤다.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일까.

벼락이 줄기줄기 바닥을 내리치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우르릉!

번개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 뒤늦게 천둥소리가 지상을 울리듯 크게 퍼졌다.

지진처럼 울리는 소리에 놀란 몇몇 병사들이 귀를 막고 땅에 엎드렸다. 백열하는 번개가 지면을 그을리듯이 스쳐 지나가자 무기를 놓친 병사들도 있었다.

“처, 천벌이다!”

“주신께서 노하신 거야!”

“……뭐지?”

그리고, 딱히 자연 현상에 감동할 성격은 아닌 강예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진언 마법?”

그러나, 누구의?

이우연 또한 벼락이 내리친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일견 벼락처럼 보였던 그것은 적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타격만을 준 것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멈췄어……?’

마치 전기에 감전되어 필드 전체가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필드 전체에 ‘상태 이상’이 걸립니다.

- ‘상태 이상’은 각 플레이어의 레벨과 클래스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달라집니다.

- 플레이어, ‘이필연’이 상태 이상에서 벗어납니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위로, 이우연의 귀에 한 목소리가 닿았다.

“야아아아아아, 강예나! 보고 있냐아아아아!”

그 목소리를 들은 강예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류세연?”

설마.

하지만, 정말이었다.

콰콰콰쾅!

감전되어 일시적으로 마비된 병사들을 향해 골렘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벼락에 맞아 반쯤 타 버린 몬스터의 시체들과 함께 수십 명의 병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크르르륵!

그리고 상대가 몬스터건 병사건 신경도 쓰지 않는 언데드 병사들이 미친 듯이 돌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던 데다 상태 이상 마법까지 걸린 터라, 전위의 병사들은 새로운 적에게 속절없이 뚫려 버렸다.

“마법사를 공격해라!”

물론 그래도 황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레벨이 높아 상태 이상 마법에도 걸려들지 않은 만큼, 다시 한번 적을 향해 공격을 지시했지만…….

쿠콰쾅!

몬스터들을 불태웠던 푸른 불꽃은 황금빛의 실드에 가로막혔다.

공격이 막힌 황제가 이를 갈았다.

분노에 찬 호통이 터졌다.

“루카스, 네 이노오오옴!”

백마를 탄 왕자가 망토를 휘날리며 마력을 휘감은 검을 높이 들고 있었다.

적군을 향해 검을 든 채 왕자가 외쳤다.

“그대들의 눈에는 내가 악마로 보이는가!”

“루카스!”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런 명예도, 실리도 없는 싸움에 아까운 목숨을 버리라 명한 것은 누구냔 말이다!”

길지 않은 말이었으되 모두의 귀에 박히는 말이었다.

루카스의 목소리에 그렇지 않아도 상태 이상에 걸려 움직일 수 없는 병사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누가 보아도 루카스의 모습은 악마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용사가 함께한다고 직접 말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에잇, 악마에게 현혹당하지 마라!”

“공격해! 왕자를 잡아!”

사이에 섞여 있는 독전대들이 병사들을 몰아세웠으나, 그럼에도 쉽사리 움직이는 병력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탁!

이우연은 바닥을 박차고 날았다.

황금빛의 날개가 마력으로 형성되며 높이 날아오른 순간, 지면의 모든 것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단상 위에 선 황제조차 그랬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검을 겨눈 순간.

이우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거대한 시선을 느꼈다.

아마도 그 시선은, 이 전투를 지켜볼 자격이 있는 사람의 것일 테다.

‘아리아드네.’

오래된 친우의 이름을 부르며, 이우연이 단상을 향해 마법을 날리는 동시에.

지면에서 빛나는 검이 뻗어 나갔다.

강예나였다.

- 성검이 ‘절대 신성 결계’를 파훼합니다.

용사는 약속을 지켰다.

이제껏 마법에서 황제를 보호해 주던 두꺼운 장벽이 산산조각 나면서.

이우연이 쏘아 보낸 불의 화살이 단상을 완전히 박살 냈다.

쿠콰콰쾅!

“폐, 폐하!”

“황제 폐하를 보호해라!”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우왕좌왕하고 있다가 불의의 습격을 받은 호위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미 단상은 산산조각이 난 후였다.

이우연은 매캐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땅에 내려앉았다.

본래 황제를 정통으로 노렸던 마법이 그 근처에 서 있던 기사의 기지로 약간 빗나갔음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이 매캐한 검은 연기가 가시기 전까지는 황제가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

그때, 연기 사이로 빛을 잃은 검날이 훅, 하고 이우연의 목을 향해 날아 들어왔다.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동시에 등 뒤에서도 검날이 찌르고 들어왔다.

이우연은 등 뒤는 보지도 않고 아직 접지 않은 날개로 등을 베려던 검을 쳐 냈다.

연기 사이로 찌릿찌릿하게 퍼지는 살기 덕분에 보이지는 않아도, 어디에 적이 있는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걱!

이우연은 가장 큰 살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검을 휘둘렀다.

은빛의 검이 연기를 가르고 밑으로 내려쳐지고.

“폐하, 커헉!”

황제를 지키려던 기사가 주군을 대신해 목을 깊게 베이며 쓰러졌다.

천천히, 연기가 가라앉았다.

검은 연기 너머.

악몽 같은 형제의 얼굴이 보였다.

황제가 독기 오른 눈으로 이우연을 올려다보았다.

“감히 이름도 없는 천한 놈이!”

“이름이 있으면 됩니까?”

“뭐라?”

“신분이 천하면 죽음이 달라집니까?”

이 사람은 어째서 변하지를 않은 걸까.

이우연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렀다.

“에드워드.”

이제는 아무도 감히 부르지 못할 이름을 부른 자를 향해 황제가 분노했다.

“건방진 놈이, 어디서 짐의 이름을!”

그 호통에도 이우연은 웃지 못했다.

한때 평생을 얽어맸던 인연은, 이렇게 보니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은 머리카락도, 푸른 눈동자도 과거의 자신과 닮았다. 어릴 때 의지했던 형제의 모습도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권력을 탐하는 동안 탁해진 눈동자가, 시기에 찌들어 있는 그 얼굴은 혐오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저 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던가.

“한때는 제가 왕궁에서 도망치면 그걸로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왕자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영원의 방랑자’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왕가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런 회피는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장소조차 잃게 되었을 뿐.

“도와주세요.”

성에서 죽어 가던 이들의 목소리는 기억을 되찾은 그때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귀에 맴돌고 있었다.

그때는 구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끝을 냅시다.”

그럼에도, 이렇게 돌아와서 결국 끝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이 지금의 이우연, 아니, 루카스가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였다.

루카스는 손이 떨리지 않도록 힘을 주고 검을 들었다.

“형님.”

그렇게 이우연이 검으로, 형제의 목을 치려던 순간이었다.

치지직!

마력의 스파크가 일어나며 몸이 뒤로 밀렸다.

누군가 방해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이우연은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검을 들었다.

누가 어떻게 방해를 하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건 내가 짊어져야 할 죄니까.

그러나.

캉!

누군가가 이우연의 검을 쳐 냈다.

막 황제의 목을 치려던 검이 땅으로 가라앉았다.

이우연은 자신을 방해한 이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만둬라.”

언제 여기까지 도달한 걸까.

세상에서 가장 낯선 얼굴이, 루카스가, 또 다른 운명을 걸어간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든 검이, 형의 목을 쳐 냈다.

“네, 네 이……!”

마지막 말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도 강건해 보이고, 결코 끊어 낼 수 없을 것 같던 인연은 하릴없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하염없이.

“이 죄는 너의 몫이 아니다.”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시는 것을 보며, 루카스가 과거의 자신에게, 아니, 또 다른 삶을 살게 된 이우연에게 말했다.

“그러니 너는 네 삶을 살아라.”

그리고 루카스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눈도 채 감지 못하고 부릅뜬 채 잘려 나간 형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이우연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끈질긴 인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부릅뜬 형의 눈을 감겨 준 루카스는 황제의 목을 들고 전장을 향해 외쳤다.

“전쟁은 끝났다. 우리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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