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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09화 (31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09화

Chapter 23.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법

“너와 나의 차이점은 뭐였지?”

아리아드네의 말에, 또 다른 나의 말이 겹쳐졌다.

가슴이 조이듯 아파 왔다.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했고.

그런데도 운명은 이렇게 크게 달라져 버렸다.

사람의 손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운명.

노력해도 닿지 않은 곳.

그저 운으로 너무도 달라져 버린 세상.

그 원망을, 저 절망을 내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과연 달랐을까.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일리아스였다.

“인간의 운명은 원래부터 운에 좌우됩니다.”

“야, 일리아스!”

알리시아가 기겁하며 오빠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일리아스는 그 손을 치웠다.

“저와 알리시아는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뒷골목에서 자랐지요. 그게 저와 알리시아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입니까?”

그 목소리에는 짜증마저 섞여 있었다.

“아리아드네 님이나 루카스 전하가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난 것은 무엇을 잘해서 받은 상이기라도 합니까?”

그럼에도 어쩐지 단순한 시비로 들리지 않는 것은, 여기에 있는 모두 일리아스와 알리시아가 어떤 삶을 겪어 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일리아스는 수백 수천 번, 아니, 태어난 순간부터 고민했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운이 없었던 것인지.

왜 하필이면 돈이 없는 고아로 태어나, 심지어는 실험체로 이용당하다 버려져서, 그나마 개화한 재능이라는 것도 사람들에게 천시받는 네크로맨서의 재능이었던 것인지.

그리하여 일리아스는 한 번 이 세상에 절망했고.

또……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도 했었다.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겁니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는 아리아드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속에 쌓이고 쌓인 분노의 토로인지, 아리아드네를 향한 위로인지는 아마 스스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걸 이렇게 화풀이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냔 말입니까! 정말로 한 번 더 알리시아가, 레나가 죽는 걸 봐야 성이 풀리시겠습니까?”

“……네, 달라지는 건 없죠.”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방황하던 아리아드네의 시선이 일리아스에게 머물렀다.

그 시선에는 분노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해하는 눈빛에 가까웠다.

“그래도, 도저히 그 분노를 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 같지 않던가요?”

“전…….”

“일리아스 님 또한 그저 운이 좋아 레나를 만났기에 분노를 누를 수 있을 뿐이었던 게 아닌가요?”

“…….”

일리아스의 말문이 드물게도 막혔다.

아리아드네가 고개를 돌려 알리시아를 눈에 담았다.

“제가 겨우 소식을 듣고 신전에서 나왔을 땐…… 알리시아는 이미 예전에 죽었다더군요. 깊은 숲속에서. 나중에 알아보니 어릴 때 같은 일을 겪은 실험체에게 원한을 산 것 때문이었다던가.”

지금은 그 텅 빈 속과 무거운 껍데기를 안고 호수 속 깊이 가라앉은 괴물.

‘……그래서였나.’

그때 관리자 권한을 남용하여 그 녀석을 몬스터로 변이시킨 것도 이 아리아드네였으리라.

아리아드네의 역사에서는 그 녀석이 알리시아를 죽였으니까…….

아리아드네는, 그 분노를 풀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설령, 같은 길을 걸었어도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네, 맞아요. 전(前) 황제와 루카스 전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아리아드네의 눈길이 루카스를, 그리고 그 옆에 선 이우연을 훑었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회한 어린 눈동자가 잠시 눈꺼풀에 덮여 사라졌다.

“루카스 전하를, 전하를 따르던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한 것은…… 전하의 형제이고, 나의 부모였던 신전이고, 그에 부역한 귀족들이었고요.”

그리고, 지금 아리아드네가 입에 올린 원수 중……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이 아리아드네가 가진 원한을 짐작케 했다.

아리아드네는 줄곧 나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복수를 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래 보았자…… 홀로 죽어 가는 루카스 전하도, 제게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들의 손도 잡아 주지 못한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복수를 하겠다며 치켜든 칼날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설령 다른 세계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리아드네의 과거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아리아드네.”

나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아리아드네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되 제대로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어둠에 가까운 듯한 짙은 녹빛의 눈동자는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은 채 빙빙 맴돌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완수한 복수는…… 충족감은커녕, 아리아드네의 영혼을 철저히 파괴한 것처럼 보였다.

그 시선을 붙들고자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나는 너를 구하러 다시 돌아왔어.”

“……구한다고요? 저를요?”

“응.”

내가 이 애한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지독한 비극을 겪고, 수도 없이 악몽을 꾸고, 마침내 복수마저 해낸 친구의 마음을 감히 보듬을 수는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차라리, 죽여주는 게 더 편한 결말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발버둥 쳤는데도 아리아드네의 고통은 무엇 하나 보답받지 못했으니까.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테니까.

“뭐든지 할게.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럼에도, 나는 역시 아리아드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내 답이었다.

삶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고, 대항할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올 때도 있고, 보답받지 못할 때도 있다.

“네가 이 세계에 온 나를 구했잖아.”

그래도 나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보았던 이 대륙의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함께 보았던 경치, 함께 견뎌 왔던 고통, 함께여서 기뻤던 적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다.

아리아드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용사가 되기는커녕 애초에 타르토스 대륙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구한 누군가가 다시 나를 도와 이 세상을 구하도록 만들었듯이.

나를 구한 아리아드네 또한, 다시 내 손을 잡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아리아드네가 풋, 하고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대체 저를 어떻게 구하나요? 저는 이 세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산 자의 생명을 빼앗는 죽음이 되었는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일리아스도 있고, 또 도와줄 다른 운영자도 있어. 어차피 죽음이네 뭐네 하는 것도 그깟 시스템 설정이잖아. 우리는 살아 있는 인간이야.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이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아니, 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세상을 뒤져서라도.

아리아드네를 온전히 되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레나, 저는…….

아리아드네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내 필사적인 말이 아리아드네의 귀에 스치지 못했음은 자명해 보였다.

“저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아리아드네가 평생에 걸쳐 대신 복수를 할 정도로 가까운 친우들이 곁에 모여 있는데도.

마치 이 공간에 홀로 있는 듯, 아리아드네의 음성이 외롭게 부유했다.

“그리고 기어코 모두를 구한 이 세계야말로…… 레나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나를 만든 건 너야!”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이 싫어요.”

아리아드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흔들리는 시선이 높이 서서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령 새로운 운명이 싹텄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어차피 사람은 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레나라고 해도 실패할 때가 반드시 올 게 뻔한데.”

“아리아드네.”

그렇게 입을 연 것은, 루카스였다.

“과거에 매몰되어 미래를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어찌 그리하지 않을 수 있나요?”

아리아드네는 오히려 되물었다.

“이미 한 번 황제의 목을 벤 이 대륙이 다음에는 당신의 목을 베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요? 네크로맨서를 천시하고, 괴물의 팔을 단 천한 용병을 멸시하는 인간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하는 건가요? 권력을 탐하고, 타인을 질시하며, 짓밟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바뀌나요?”

만질 수 있다면 피가 질척하게 베어 나올 것만 같은 목소리.

나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저건…… 단순히,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근원에 가진 아리아드네의 분노였다.

“겨우 그깟 욕망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고, 그럼에도 단순한 운만으로 생이 갈리는 거라면. 그게 삶이라면…….”

아리아드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텐데, 인간은 대체 어째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듣기 좋은 거짓말이다.

신분제가 살아 있는 세상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신분제가 없는 세상에서도.

실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운이 앞으로의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

일리아스의 노력과 루카스의 노력은 같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것은 결과뿐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일리아스의 노력이 어떤 운 없는 이를 채찍질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되고, 루카스의 노력은 폄하당하기도 한다.

노력만으로 바뀌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수많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불공평하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도, 분해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

저 절규는 불공평한 것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운명에 항거하는 인간의 외침이다.

저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세계가 동요하고 있습니다.

아리아드네의 눈물이 땅에 흐른 피와 함께 으깨졌다.

“그럼에도 모든 생은 죽음 앞에서만은 평등할 테니.”

아리아드네의 등 뒤에서 검은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마치 날개처럼 보이는 형태의 그것이, 순식간에 독무처럼 피어올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졌다.

“이것이 저의 판정입니다.”

- 세계에 강림한 ‘최후의 전령’이 판정을 내립니다.

- ‘최후의 전령’ 이 세계의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리아드…… 컥!”

아리아드네의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발밑이, 무너졌다.

아리아드네가 앉아 있던 곳을 중심으로 땅이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레나!”

가장 가까이 있던 내 몸이 말려들 뻔한 것을 알리시아가 잡아챘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를 향해 뻗은 내 손은 허공을 맴돌았다.

마치 게이트가 열린 것처럼 검은 구덩이가 갑자기 나타나 아리아드네의 몸을 집어삼켰다.

아니, 집어삼킨 것은 아리아드네의 몸만이 아니었다.

콰콰쾅!

마치 폭발이라도 하듯, 아리아드네의 몸을 중심으로 지면에서 하늘로 이르기까지.

일직선의 기둥이 생겨났다.

마치 지면에서 역류하듯 하늘로 타고 오르는, 검은 물의 강.

“저건…….”

일리아스가 머리를 짚었고, 루카스는 고개를 떨궜다.

- ‘죽음의 길’이 생성되었습니다.

- 두 세계의 동기화까지 168:00:00

결국, 이번에도.

나는 아리아드네를 잡지 못했다.

* * *

“허어억!”

양태원은 숨을 들이켜며 깨어났다.

기절해서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양태원을 간호한 이선이 깜짝 놀라 양태원을 돌아보았다.

“태원아, 괜찮니? 정신이 들어?!”

양태원은 정신을 차리고 얼떨떨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당장은 상황 파악이 잘 되질 않았다. 딱딱한 돌바닥 위에 간이 침낭을 베고 누워 있어서 그런지, 어째 온몸이 배긴 것 같다.

“아, 네…… 저 기절했었군요. 그래서 몸이 이렇게 아픈가?”

“말도 마!”

공적인 일에서 크게 동요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이선도, 무사히 깨어난 어린 후배 앞에서는 동요를 참지 못하고 꼬옥, 껴안았다.

혹시 그대로 죽었을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랐다.

대체, 겨우 스무 살 된 어린애가 이런 전장에서 뭘 하는 건지 자책도 했던 것이다.

덕분에 튀어나오는 말은 질책에 가까웠지만,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너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져서 그대로 낙사할 뻔했어, 대체 왜 그랬어!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내가 이 공략대의 대장인데 말도 안 하고 독단 작전을 실행하면 어떻게 해?”

“아…… 그랬었죠. 죄삼다.”

“죄삼다, 로 끝날 게 아냐! 사유서 써!”

“이제 수업도 안 듣는데 사유서를 써야 하나요?”

양태원은 그 걱정을 고마워하는 한편, 약간 낯부끄러워져서 이선의 포옹을 떼어 냈다. 아직 타인의 호의와 걱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연령대는 아니다.

- 태원아.

그래도,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있던 청룡이 양태원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오는 것은, 역시 안심이 되었다.

잠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본 양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 신력이 다 소모된 건 아닌가 봐요.”

솔직히 그만한 업(業)을 베는 만큼 신력이 모두 소모되어 청룡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아직 청룡이 자신의 곁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게 안심이 되어서, 양태원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신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때로는 원망스럽기 짝이 없던 존재가, 그럼에도 평생을 같이하니 떼어 내려야 떼어 낼 수 없는 소중한 일부, 혹은 삶의 전부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잇차.”

양태원은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이선이 그런 양태원을 부축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때요?”

“던전 자체는 클리어 성공 떴어.”

이선의 말대로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확실히 축하 메시지가 떠 있었다.

- 축하합니다! 던전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 최대 업적자 : 강예나

양태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예나 누나…….’

활약하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최대 업적자가 뜬 것을 보면 무사한 듯했다. 그리고 강예나가 무사한 이상 다른 사람들도 어지간하면 괜찮을 테고…….

“그럼 이제 언제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아, 그게 말이지…….”

이선이 약간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양태원도 아직 힘이 없는 고개를 들어 이선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바라봤다.

양태원이 누워 있었던 것은 성벽 안에 만들어진, 간이 막사의 침낭이었는데…….

높디높은 성벽 위로도 ‘그것’은 무척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을 찌를 듯 닿아 있었으니까.

“저거 혹시…….”

하늘과 지면을 가르는 검은 강.

양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삼도천?”

조한율 : 아, 확실히 그런 이름이 더 어울리겠네.

“어, 한율 누…….”

무심코 평범하게 조한율의 이름을 부르려던 양태원은 입을 닫았다.

이선 헌터 앞에서 말실수를 할 수는 없다.

대신 학교 책상 밑에서 문자를 보내는 감각으로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당GOAT : 왜 삼도천이 여기 생겼대요?

조한율 : ……너 언제 그런 이상한 닉네임으로 바꾼 거야?

조한율 : 아니, 그런 건 됐고. 그런데 태원이 네가 보기에 삼도천이야, 저거?

무당GOAT : 누가 봐도 삼도천인데요. 건너면 죽는 거.

기본은 불교 용어이긴 하지만 민간 신앙도 섞인 터라 삼도천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리고, 양태원 눈에는 그 검은 기둥 속에 흘러가는 혼백의 반짝임들이 보였다.

지금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영들을 모두 흡수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선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던전 클리어 성공은 했는데 저런 상황이라서.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죽음의 길이니 뭐니 하는데, 저게 활성화되면 이 세계가 망…… 하는 것 같아. 몰살? 그런 거?”

“허어…….”

영 현실감이 없는 울림이었다.

이선은 새삼 두통이라도 오는 건지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나는 뭐 좀 도와줄게 있을까, 싶어서 기다려 보고 있는 중이야. 연가도 냈는데 뭘. 게다가 전투 뒤처리도 안 됐는데 저런 게 생긴 터라 예나 씨 얼굴도 아직 못 봤고…… 태원이 너도 챙겨야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다 돌아갔어.”

“저 누나 빼고 말이죠?”

양태원 옆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류세연이 손가락만 까닥였다.

아무래도 저쪽도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이선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태원이 너는 이제 돌아갈 거니? 솔직히 얼른 돌아가서 병원 진찰이나 받았으면 싶은데.”

“아뇨, 저도 예나 누나 도울래요. 어차피 예나 누나도 여기에 있죠? 할 말도 있고.”

“할 말?”

“네, 필드에 펼쳐졌던 시스템 오류를 수정할 때 들은 게 좀 있어서.”

양태원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신력이 완전히 소모되었다면 모를까, 여전히 청룡이 자신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뜻이리라.

조한율 : 뭘 들었는데?

“뭘 들었는데?”

조한율과 이선의 말이 겹쳐졌다.

양태원은 두 사람에게 모두 대답했다.

“한 세계를 멸망시킨 업(業)을 가진 사람이, 이 세계를 저주하고 있어요.”

이 세상을 집어삼킬 만한 분노였다. 지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오갈 데 없이 원망하는 마음을 듣고 풀어 주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데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자신 또한 그런 누군가의 손에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게다가…….

“도와 달라는 목소리를 들었거든요.”

부탁한다고.

제발 막아 달라고.

그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원래 용사 파티의 결전은 마왕 퇴치인 게 정해진 클리셰이기는 한데…….”

청동검을 쥔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청룡이 걱정하는 것처럼 양태원의 몸을 감쌌다.

양태원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마왕이 용사의 옛 동료라는 패턴, 정말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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