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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13화 (31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13화

이른 새벽.

나는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 두 세계의 동기화까지 23:11:56

새삼스럽지만 무서운 숫자였다. 앞으로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니.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네.’

어젯밤, 양태원이 길을 열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기에 공략은 오늘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집합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잠이라도 더 잘까, 싶었지만 솔직히 더 잘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뒤척이던 나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산책이라도 할까.’

약속한 시간까지 두어 시간쯤 남았으니까 그동안 성 주변을 거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내성을 나서 마을로 나가 보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그다지 인기척은 없었다. 하기야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다들 곯아떨어질 만도 했다.

“요, 용사님?”

“왜 여기에…… 안녕하십니까!”

경계 중이던 병사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했다.

나는 그들에게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며 외성의 성벽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경치라도 구경할 셈이었던 것이다.

“어라?”

그런데, 선객이 있었다.

이우연이었다.

성벽에 몸을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이우연이 나를 힐끗 쳐다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일찍 일어났네. 더 자는 게 낫지 않아?”

“그러는 너야말로.”

안색이 창백하다.

물론 이우연의 경우 이 타르토스로 온 후 멀쩡한 낯으로 있던 게 더 드물기야 했다만.

나는 자연스럽게 이우연 곁으로 가 함께 성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전투 후 포로들을 성내로 수용하기에는 조금 저어됐기에, 심각한 부상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성 밖에 임시로 친 막사에서 지내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임시 막사를 세워 지내고 있는 그 뒤로는, 삶을 침범하려 드는 불길한 검은 죽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우연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한참 망설이다 물었다.

“괜찮겠어?”

“뭐가?”

“……아리아드네랑 싸우는 거.”

그 질문에, 이우연이 놀란 눈동자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그렇게 물어본 것이 어지간히 뜻밖이었던 듯했다.

몇 번이나 입을 뻐끔대며 할 말을 찾는가 싶던 이우연은, 곧이어 맥이 탁 풀린 듯 웃었다.

“알고 있었구나?”

“…….”

“언제 알았어?”

조심스럽게 묻는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나는 명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황제가 죽었을 때.”

처음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이우연이 전력으로 황제에게 달려들었을 때였다.

평소라면 적당히 페이스를 배분하며 내게 전위를 넘겼을 녀석이 무리하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황제의 목을 향해 검을 치켜든 이우연의 모습은 마치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위태로웠다.

게다가, 황제의 목을 치려는 이우연을 루카스가 저지하기까지.

누가 보아도 깊은 인연이 있는 모습이었다.

또, 전투가 끝난 후 아리아드네를 바라보는 모습도 그랬다.

마치 오랜 친우를 보는 것 같던 그 눈길.

그쯤 되면 알아차려 달라고 외치는 셈 아닌가.

이우연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당신은 평소에는 둔하면서 중요할 때는 눈치가 빠르더라.”

“……이걸 눈치가 빠른 거라고 할 수 있나?”

내가 알리시아도 아니고, 힌트가 너무 많았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기에는, 타르토스에 왔을 때부터 이우연의 모습이 너무도 이상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힌트를 제외하더라도…….

“나도 B루트의 나 자신을 만난 적이 있잖아.”

그래서일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논리를 넘어선 영역에서 ‘감’이 왔다.

그것은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이었다.

겉모습도, 드러나는 성격도 그리 닮지 않은 두 사람인데, 영혼의 뿌리는 같다는 그 감각.

또 이전, B루트의 나 자신이 이우연을 보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의 눈에는 루카스의 흔적이 언뜻 비쳐 보였던 것이겠지.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런저런 힌트를 봤더라도 지금의 결론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 같긴 하다.

그도 그럴 게 워낙에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타르토스에서 10년을 넘게 함께했던 친구가, 한국에서 환생해 제 삶을 살고 있었다니.

심지어 나는 친구의 환생과 우연히 만나 또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만일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나답지 않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우연이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릴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그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혹시 내가 눈치채지 못하면 끝까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어?”

“그래, 내 존재가 당신 발목을 잡는 건 싫으니까.”

그 말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만약 내가 알리시아만큼 둔했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는 뜻 아닌가.

“아니, 왜 숨기려는 거야?”

큰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까 정신 사납게 지금 당장은 화제로 삼지 않을 거다, 라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예 말을 꺼낼 생각조차 없었다니.

솔직히 섭섭하다.

“너한테 발목 잡힐 정도로 연약하지 않은데.”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알면서.”

이우연이 성벽 밑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어딘가 새벽의 어스름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하지만 이미 알아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네, 레나.”

그건 정말이지, 위화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호칭이었다.

이우연이 나를 레나라고 부르다니.

소름이 돋아 나는 팔을 문질렀다.

“야, 너는 레나라고 부르지 마. 그냥 강예나라고 해.”

“왜?”

이우연이 미소 지었다.

어쩐지 약간 심기가 뒤틀린 것 같은 미소였다.

“나한테 레나라고 불리는 건 싫어?”

“그게 아니라, 너는…… 루카스가 아니라 이우연이잖아.”

이우연이 뭣 때문에 심기가 비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랬다.

아무리 영혼이 같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우연은 루카스가 아니라 이우연이었다.

루카스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에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제 손으로 직접 황제의 목을 친 것이 아닌가.

“전생은 전생이고, 지금의 넌 그냥 이우연이지.”

이미 흘러간 과거는 과거이고,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나는 그런 이우연과 만난 것이다.

그야 기억이 있다면 추억을 공유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루카스와 이우연을 동일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 내 말에 말문이 막힌 듯한 이우연이 눈을 깜박였다.

“의외네.”

“뭐야? 설마 전생에 왕자였다고 왕자 취급이라도 해 달란 거야?”

“그게 아니라, 내 전생을 알면…… 당신이 나한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거든.”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왜?”

“……멍청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이우연의 눈동자가 성벽 아래를 훑었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나는 깨달았다.

수도로 떠난 페트라도, 엘리사 메이도, 그리고 이 성의 사람들과 심지어는 적군들까지도.

그들은…… 루카스가 이전 생에서 지키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저렇게 된 건 나 때문이야.”

이우연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회한이 엿보였다.

“난 항상 한발 늦었지. 알리시아가 죽었을 때도, 일리아스 때도 그랬어.”

그랬다.

내가 개입하지 않은 운명에서, 루카스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이 상대에게 가 닿는 일은 없었다.

알리시아의 연락을 받고 북부의 깊은 숲까지 달려왔지만, 결국 알리시아의 죽음을 보아야 했고.

그런 알리시아의 죽음 때문에 절망한 일리아스의 마음 또한 돌리지 못했다.

결국에는 그 자신도 황제와 신전의 책략에 당해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니까 다들 나한테 화를 낼 자격이 있어. 같잖은 혈연 따위에 휘둘려서 이 꼴을 만들었으니.”

죄책감이 무겁게 내려앉은 얼굴로, 이우연은 죽음의 길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내 세계의 아리아드네가 저렇게 날뛰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계속 저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자신의 세계에 일어난 비극도, 그리고 이 세계에 다가온 죽음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루카스가 맞긴 맞네.’

정말 쓸데없는 부분까지 책임감을 발휘하는 녀석다웠다.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데도 어쩜 본질은 그대로인 건지.

그게…… 기꺼우면서도, 솔직히 속이 터진다.

“야, 이우연.”

“응…… 악!”

뻐억!

나는 이우연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겼다.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이우연이 머리를 감싸 쥐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우연을 노려보았다.

“누가 화를 낸다는 거야?”

“방금 이렇게 때려 놓고?”

“나는 최선을 다한 사람을 탓할 생각 없어.”

이우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우연은, 다른 운명의 루카스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힘이 부족해서, 여건이 되지 않아서, 단지 운이 나빠서 그런 결과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네가 없었더라면 이 세계의 가능성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고.”

우연처럼, 기적처럼 다시 만난 인연.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만일 루카스가 이우연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국에 돌아갈 수조차 없었을 테다.

차원의 틈새를 방랑하는 영혼은 깊은 인연을 가진 누군가가 끌어 주지 않으면 영원히 방랑하게 된다.

환생한 루카스의 영혼이, 이우연이 나를 끌어당겨 주었기에…… 차원의 틈새에서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현재가, 미래의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건 내가 잘 알아.”

이우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런 이우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뭐?”

“너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랬는데도 부족했던 거라면…… 도움을 받으면 되잖아.”

내가 그러했듯이.

나는 이우연을 향해 다짐했다.

“내가 도와줄게.”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해도, 모두가 힘을 합치면 분명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그렇게 말하자, 잠시 제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던 이우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하하하!”

“……뭘 웃어? 한 대 더 맞을래?”

“아니, 그냥.”

이우연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이래서 내가 당신을, 두 번이나…….”

무언가 말하려던 것을, 이우연은 굳이 잇지 않고 속으로 눌러 담았다.

나도 굳이 그 뒤를 묻지 않았다.

새벽의 동이 트고 있었다.

* * *

타르토스에서 무당이 치르는 제사를 보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마계로 통하는 입구를 봉인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 봤자 약식이기는 하지만요.”

이 며칠간 화식을 금한 탓인지 얼굴이 반쪽이 된 양태원이 숨을 고르며 청동검을 들었다.

양태원을 감싸 안고 있는 청룡이 후, 하고 청동검에 입김을 불어 넣으니, 상서롭다고밖에 할 수 없는 기운이 청동검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양태원의 손에 들린 청동검이 땅에서 하늘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검은 강을…… 갈랐다.

그러자.

파아앗!

검으로 베어진 물의 길 사이로 틈새가 벌어졌다.

그리고 검으로 벤 자리는 기묘하게도 벌어진 채 다시 메워지지 않았다.

“에휴.”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청동검을 휘두른 양태원이 힘이 빠진 것처럼 자리에 주저앉자 곁에 있던 이선과 류세연이 깜짝 놀라 잡아 주었다.

“태원아!”

“괜찮아요. 신력을 소모해서 그런 것뿐이니까.”

“괜찮은 거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이 진흙빛이야.”

“밥 먹으면 나아진다고요. 어쨌든, 예나 누나. 이걸로 길은 뚫었어요. 여기로 들어가면 이 길을 만들어 낸 영혼의 심층부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벤 자리를 들여다보며 양태원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휙 하고 바람이 불었다.

- 귀곡성이 들리는구나.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청룡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 그 슬픔을 이해하려 하지 말거라. 이해하는 순간 잡아먹힐 터이니.

“……무언가 조언이 하고 싶은 거라면 좀 더 알기 쉽게 해 주면 안 될까?”

청룡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양태원을 좀 더 단단히 감싸듯 끌어안았을 뿐이다.

양태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르신들이 하는 덕담이라고 생각하고 넘기…… 아야.”

꼬리로 얻어맞은 양태원은 머리를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맙다, 태원아.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방법이 있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야.”

“에이, 이 정도야 당연히 해 드려야죠. 제가 예나 누나한테 받은 게 얼만데. 그냥…… 몸 조심히 돌아오기만 하세요.”

기특한 말에 나는 양태원의 머리카락을 마구 쓰다듬었다.

양태원이 입을 삐죽였다.

“아, 누나. 머리 다 상한다구여!”

“솔직히 말해서 염색 때문에 이미 개털이야.”

“힝…….”

“이선 헌터, 태원이를 잘 부탁합니다.”

“물론이죠.”

복잡한 심정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선은 겉으로는 웃어 보였다.

과연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돌아오면…… 연락 주세요. 알겠죠?”

“그래, 나한테도 연락해!”

진언 마법의 사용 후 후유증에 시달리느라 덩달아 귀가가 늦어져 남아 있던 류세연이 나를 향해 주먹을 흔들었다.

설마 저걸 인사라고 하는 건가.

“내 번호 류세연 언니라고 저장했지?”

“그렇게는 저장 안 했는데.”

“뭐가 어째?!”

약간 소란스러워진 사이, 이우연과 양태원도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형도 뭐, 조심하고.”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하네. 사회성을 좀 기르는 게 어때?”

“아, 씨. 나름 걱정해 준 거잖아!”

그렇게 한국의 헌터들과 나름대로 훈훈한 인사가 오가는 동안.

내가 인사를 나누어야 할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내 시야에는 조한율의 메시지가 아침부터 계속해서 뜨고 있었다.

조한율 : 다른 운영자 클래스의 심상 세계인 만큼 저는 아예 간섭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요. 서버 불안정도 걱정되고요. 그래서 공략 과정을 보지도 못할 테고오오오…… 돕지도 못할 테고오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도와줬어.”

솔직히 내 쪽이 훨씬 큰 빚을 졌다. 한국 헌터들을 용병으로 보내 준 데다, 아직 운영자로서 초보인 일리아스를 성심껏 도와주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조한율은 그게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메시지가 구구절절 이어졌다.

조한율 :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예나 씨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요…….

무슨 영화 감상문도 아니고, 아침부터 내내 저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닌데.”

조한율 : 그거야 그렇지만~! ( ꈨຶ ˙̫̮ ꈨຶ ) 걱정돼서 그렇죠!

우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조한율 : 공략 성공하고 나서 꼭 연락 줘야 해요, 예나 씨! 우리 집은 항상 비어 있으니까아아아 。゚( ゚இ‸இ゚)゚。

“그래, 당연하지.”

조한율 : 약속! 약속한 거예요!

그렇게 조한율의 소란스러운 당부를 마지막으로.

“준비됐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알리시아, 일리아스, 루카스, 그리고 이우연까지.

한국 헌터들과 인사를 나누라고 얌전히 뒤로 물러서 있었던 알리시아가 오우거의 팔을 위협적으로 빙빙 돌렸다.

“준비야 진작 됐지. 지루해서 죽을 뻔했다.”

“준비는 네가 아니라 내가 다 했는데 왜 네가 생색을 내는 거지?”

“아, 시끄러워.”

저 남매는 마지막까지 저러는군. 하지만 그것조차 정겹게 느껴졌다.

눈이 마주친 이우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끝을 내야겠지.”

죽음의 길을 바라보는 이우연의 눈에는 결연함이 어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루카스에게 시선을 돌리자, 루카스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나. 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 잊지 말도록.”

“나, 참.”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며칠 전 루카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딱히 소원 같지도 않은 소원이나 부탁한 주제에.

“공략 성공이나 하고 생각하지?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성공할 거다.”

루카스가 나를 마주 보며 픽 웃었다.

“우리에겐 용사가 있지 않나.”

“……기대에 부응해 보도록 하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양태원이 만들어 준 죽음의 길 사이로 뛰어들었다.

세계의 존속을 건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불길에 휩싸인, 수도의 대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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