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16화
호기롭게 외치기는 했지만, 아리아드네의 심상 세계에서 생겨난 몬스터인 만큼 처치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서걱!
빛을 뿜어내는 성검이 그림자 몬스터를 정통으로 갈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개로 나눠진 그림자 몬스터가 꿀렁대며 다시 온전한 형태를 되찾았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분노합니다.
아리아드네 본인이 신성력의 근원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심상 세계이기 때문인지 마법은 물론이고 성검조차 그다지 효력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일리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빛은 그림자를 쫓아낼 순 있지만 없앨 순 없는 거지.”
“어려운 말 하지 말고 몸이나 움직여라!”
물론 알리시아는 타박을 주었다. 나도 한숨을 쉬며 성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두드려 패는 수밖에 없겠네.”
“최고의 퇴마는 물리란 얘긴가.”
졸지에 너프를 먹게 된 이우연이 투덜대며 검집째로 검을 휘둘렀다.
게다가 그림자 몬스터의 귀찮은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콰콰쾅!
풍압에 밀려 벽에 부딪힌 그림자 괴물 수 마리가 입에서 기억을 토해 냈다.
- 대체 내가 왜…….
- 어디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형태가 된 후회가 발치를 꿈틀거리며 다가와 피부를 침범하려고 했다.
“조심해. 자칫하면 다시 끌려간다!”
와르르 쏟아지는 절망 어린 기억들이 발치로 다가오려는 것을 일리아스가 불러낸 해골 병사 하나가 몸을 던져 대신 막아 냈다.
그러자 악몽에 닿은 해골 병사의 뼈는 형태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만약 일리아스가 수십 체의 해골 병사를 불러내 방어선을 치지 않았더라면, 우리 또한 그림자 몬스터가 뱉어 내는 악몽에 진작 침식되었을 것이다.
사라지는 해골 병사를 보며 일리아스가 혀를 찼다.
“성력이 너무 강해.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리겠군.”
“그건 이미 예상했던 것 아닌가.”
끼기기긱!
루카스가 힘으로 세 마리의 그림자 몬스터를 벽으로 밀어붙이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화르르륵!
그리고 루카스가 요령 좋게 몸을 피하자마자 그림자 몬스터의 몸체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우연이 마력을 잔뜩 때려 박은 불화살을 쏘아 낸 것이다.
마법이 그다지 소용은 없어도, 일단 껍데기가 단단한 만큼 조금이라도 약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하압!”
뻐걱!
그리고 활활 불타오르는 몬스터는, 내가 검집째로 대가리를 후려쳤다.
세 마리의 머리가 한번에 떨어지며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없앤 보람도 없이, 해골 병사가 친 방어선 뒤로 꾸물꾸물 기어 오는 숱한 그림자 몬스터들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거의 하나의 검은 군집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숫자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심층부로 들어갈수록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지는 듯했다.
전위에 내가 추가되며 그나마 뚫고 지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였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군.”
하기야 아리아드네의 후회가 몬스터의 형태가 된 만큼 아무리 없애도 없애도 끝이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혀를 찼다.
“안 되겠다. 얘들아, 모여 봐라.”
“또 무슨 무모한 소리를 하려고.”
루카스가 불신의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이렇게 안전 방어선을 친 채로 조금씩 전진하다간 끝이 안 나겠어. 그냥 방어선 없애고 바로 뚫어 버리자.”
일리아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다간 몬스터가 뱉어 내는 기억에 잠식될 수도 있어. 아까 사라진 해골 병사를 봤잖니, 레나.”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저 몬스터, 일정 이상의 물리적 타격을 입었을 때만 기억을 뱉어 내더라고. 적당히 힘 조절하면서 밀어내기만 하면 길은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나, 참.”
이우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모인 곳을, 그것도 죽이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면서 맨몸으로 뚫고 가자는 거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가로지르자는 말이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대로 여기서 체력을 소모하는 것보단 그게 낫지. 언제까지 후회에 발목 잡힐 거야?”
과거의 후회에 발목이 잡히기에는 현재의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레나 너야 그렇다 치고 알리시아 쟤가 힘 조절 같은 걸 어떻게 해?”
“야, 나도 할 수 있거든?”
방금 두 갈래로 찢어 버린 몬스터를 냅다 던지며 알리시아가 소리를 높였다.
“나도 여기서 깔짝대느니 뚫고 지나가는 쪽에 찬성! 네 해골들도 불쌍하고.”
“무모하긴 하지만 뭐, 나쁘진 않은 것 같군.”
의외로 찬성하고 나선 것은 루카스였다.
루카스가 눈썹을 치켜올린 이우연을 돌아보았다.
“네가 날 수 있으니, 공중에서 몬스터들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마법을 쓰는 게 좋겠다.”
“……나, 참.”
이우연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강예나 편을 들면 어떡해? 우린 의견을 일치시켜도 괜찮지 않나?”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없지. 언제나처럼 용사를 믿는 걸 제외하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화를 듣던 일리아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수결로 방침을 정할 땐 내가 너무 불리하단 말이지.”
“잡설은 됐고! 정해진 거지?”
알리시아가 호쾌하게 외쳤다.
“간다아아아아!”
그렇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일리아스가 방어선을 치고 있던 해골 병사들을 회수했다.
해골 병사들의 몸에 막혀 지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림자 몬스터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 님페의 바람을 발동합니다.
작은 소용돌이처럼 발치에 감도는 바람과 함께 나는 그림자 몬스터들을 가볍게 밀어냈다.
동시에 이우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생을 이어 가야 할 필연은, 이미 이 손에.”
화르륵!
푸른 전류의 불꽃이 그림자 몬스터의 머리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진언 마법이었다.
마법사가 영혼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가장 간절한 비원.
“그리하여 내가 살아갈 운명 또한, 이 손으로 지켜 낼 기회를.”
이우연다운 진언이었다.
우리에게로 달려들던 그림자 몬스터들은 바로 머리 위에 생긴 푸른 불빛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순간적으로 약해진 틈을 타, 알리시아도 크게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거센 바람에 그림자 몬스터들이 속절없이 휩쓸리며 쓰러졌다.
덕분에 길 중앙에는 약간의 틈이 생겨났다.
나는 곧장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뛰어!”
가장 앞은 나와 알리시아가, 그리고 뒤따르는 일리아스와 루카스는 쓰러진 몬스터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마법으로 공격하며 보조했다.
퍽!
나를 잡아먹겠다며 달려드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적당히’ 힘 조절하며 패는 것은, 솔직히 죽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요령이 필요한 일이기는 했다.
“에라이, 어지간히 깔짝대네!”
특히나 몬스터의 팔을 잘못 휘둘렀다간 참사가 일어날 알리시아의 경우는 더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속도는 이전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파파파팟!
“이쪽이야!”
무엇보다도, 이우연이 공중에서 보조하는 만큼 길잡이 역할까지 해 줄 수 있어 편했다.
이우연의 지시대로 몬스터들이 덜 몰려 있는 부분을 뚫어 가며, 우리는 빠르게 전진해 나갔다.
우리가 괜히 십 년쯤 파티를 꾸렸던 것은 아니었다.
굳이 어떻게 뚫고 나갈지, 말로 하지 않아도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알리시아! 힘 조절 잘하라니까! 기억에 잠식될 뻔했잖아!”
“그러게 좀 더 바짝 붙어 따라오라니까!”
……물론 약간의 사고는 있을 뻔했지만.
알리시아가 낄낄댔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레나! 우리 자주 이 짓 했는데!”
“예전까지 갈 것도 없이 얼마 전에도 했잖아!”
“그건 그래! 넌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한 거야?”
“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루카스가 고함을 질렀다.
“너희 둘 다 똑같으니까 조용히 해라!”
“간만에 옳은 말씀을 하시네요, 전하.”
그렇게 한참 질풍처럼 길을 뚫고 나가고 있을 때였다.
허공을 날며 보조하던 이우연이 휙, 하고 우리 머리맡으로 날아왔다.
“저 앞에 검은 덩어리가 있어. 저게 ‘핵’인 것 같은데.”
“핵이 맞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스가 형이상학적인 무늬가 아로새겨진 미로의 벽을 가리켰다.
“지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벽으로 타고 들어오는 악몽이 많아지고 있어요. 핵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죠.”
“그럼 어떡하지? 핵을 통째로 파괴하면 되나?”
“아니, 겉에서는 파괴하지 못해.”
일리아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후회되는 기억이니만큼, 저 핵 안에 아리아드네 님 본인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기억 속으로 들어가서 ‘이쪽 세계’에 존재했던 아리아드네 님의 의식을 깨워야 해.”
“즉, 저 시커먼 덩어리를 향해 곧장 들어가라?”
이제 슬슬 우리의 시야에도 이우연이 말한 핵이라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들이 가끔 토해 내는 기억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불길하고, 무언가 진득한 것이 들이찬 것 같은 어둠의 구.
저게, 아리아드네가 가장 후회하는 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나를 구해 준 인연에게 내일을 선물하기 위해서.
“좋아, 가자.”
그렇게, 우리는 거대한 어둠 속으로 함께 발을 디뎠다.
* * *
아리아드네의 ‘악몽’에 스스로 뛰어든 후.
나는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모두가 함께였다. 이우연도 날개를 접으며 내 옆으로 내려앉았다.
“시작점은 같은 모양인데…….”
하지만, 그에 안도할 겨를도 없었다.
“이런 X발.”
알리시아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의 앞에는…….
“맙소사.”
언제나 냉정한 일리아스조차 낮게 탄식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동굴 안에 드리우고 있었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크기의 생물.
우리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이제껏 상대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몬스터이자 한때 우리의 지상 과제였던 드래곤.
옵타티오였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띠는 압박감이 달라질 정도였다.
이우연이 약간 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댔다.
“양태원 용하네.”
“아무래도 용이랑 다니니까?”
“무슨 소리야?”
그냥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헛소리를 해 봤다.
‘승산은 얼마나 있지?’
물론 옵타티오처럼 강한 존재가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상대가 SSS급 몬스터인 데다, 쓰러트렸을 당시에도 운이 상당히 기여한 만큼, 이번에도 그때처럼 쓰러트릴 수 있다고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그 당시와는 파티 구성원도 다르지 않나.
‘어떻게 시작해야…….’
그러나, 그렇게 긴장한 것도 잠시.
쿵!
이상하게도 옵타티오는 우리를 공격해 오기는커녕.
그 거대한 몸뚱이는, 마치 세계가 추락하는 것처럼 땅으로 쓰러졌다.
우리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막 옵타티오를 향해 달려들려던 알리시아가 눈을 껌벅였다.
“뭐야, 이게? 공략된 거야?”
“……그랬군.”
“그런 거였나.”
어쩐지 납득한 것 같은 일리아스와 루카스를 뒤로하고.
나는 쓰러진 옵타티오의 몸체 건너, 아스라한 형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 최후의 일격에 성공했습니다!
도저히 눈을 들고 못 봐 줄 꼴이 된 ‘강예나’가, 검을 짚고 간신히 일어서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만신창이가 된 루카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 있었다.
그래.
“혹시 죽은 건가?”
“거의 시체인 건 너거든. 거울 보여 줘? 그 잘난 얼굴이 피떡이 됐는데?”
옵타티오를 공략한 후 우리는 승리에 취해 농담을 주고받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쁨에 겨운 말들이 오갔다.
“살아 있어!”
그래, 알리시아가 구석에 쓰러져 있는 아리아드네를 간신히 둘러메고 왔더랬다. 아무래도 옵타티오 공략 내내 성력을 계속해서 써야 했기에 아리아드네가 탈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때는 내 상처를 돌보기도 바빠 아리아드네의 상태를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렇게 아리아드네 본인의 기억으로 이 장면을 보니…….
‘이미 정신이 들었던 거구나.’
알리시아에게 부축받으며 축 늘어져 있던 아리아드네의 눈에 문득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시선은, 출구에 선 나를 향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의 나는, ‘옵타티오’를 처치하라는 퀘스트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걸, 아리아드네는 이미 운영자인 교황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는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아리아드네를 지켜보았다.
……물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라?”
출구 앞에 선 ‘강예나’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잠시 멈춰 서 뒤를 돌아보기 직전에…….
아리아드네는, 강예나의 등으로 손을 뻗었다.
출구로 밀기 위해서.
아니, 그러려고 했다.
“…….”
내게 손목이 잡힌 아리아드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실체 없는 환상이 아니었다.
이 손에는 분명한 온기가 잡혔다.
나는 아리아드네의 녹빛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 그렇구나.
아리아드네가 가장 후회하는 기억이라는 건…….
“작별 인사라도 할걸, 그렇게 생각했어요.”
등 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그곳에는 이미 옵타티오의 형체 따윈 사라지고 없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리아드네뿐이었다.
한때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드래곤이 쓰러진 자리에는, 새로운 절망이 피어나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자신의 옛 친우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셨네요, 다들.”
그, 목소리.
“윽……!”
성력을 담지 않은 단순한 목소리일 뿐인데도 알리시아가 제 몬스터 팔을 부여잡는 것이 보였다. 팔의 접합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도 아리아드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결국, 순순히 죽어 주지는 않겠다는 거죠. 예상은 했어요. 덧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 인간이라는 거니까…….”
“뭘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스릉!
나는,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성검이 뽑혀 나왔다.
“너도 살아 있는 인간이야, 아리아드네.”
“……제가요?”
“그래.”
“지금까지 제 심상 세계를 탐험하고 온 것 아니었어요, 레나?”
내 말이 우습다는 듯 아리아드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제가 저질러 온 일을 봤겠죠. 저는 이제, 어떤 세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죽음 그 자체랍니다.”
“X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고 있어!”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리아드네의 심상 세계, 아주 잘 보았다.
수도 없이 밀려오는 후회들을 보았다.
“그런 멍청한 짓은 인간밖에 안 해!”
자신이 저질러 온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수도 없이 곱씹고 스스로의 악몽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
죄책감.
그건 멍청하지만, 그래도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착각하지 마, 아리아드네.”
나는 검 끝을 아리아드네에게 겨누며 말했다.
이제껏, 아리아드네가 했던 일을 보며 꼭 해 주고 싶던 말이 있었다.
“넌 지금 죽음을 원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살고 싶은 거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자신 또한 같은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로 삶의 원동력이다.
아리아드네 또한 그랬다.
“너도 새로운 미래가 갖고 싶은 거잖아.”
그 말에 아리아드네의 동공이 커졌다.
마치 본심을 들킨 어린애처럼 가녀린 어깨가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전…….”
세계를 멸망시키고, 홀로 묘를 지키며, 그저 죽지 않아 억지로 살아왔던 아리아드네.
그런 아리아드네가 새로운 가능성을 목도했을 때…… 자신의 욕망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세계에도, 저런 희망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그러나 그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에, 차마 다시 희망을 바란다고 말할 수 없어 저러고 있는 것이다.
“어린애처럼 굴지 마. 언제까지고 후회에 사로잡혀서 화를 내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렇다.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불행한 어제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는 내일은 얻을 수 없다.
일단 일어나 걷기 시작하지 않으면 그대로 멈춰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리아드네를 향해 간절히 말했다.
“그러니까 다시…… 같이 살아가자, 아리아드네.”
절망했다면 다시 한번 일어서라.
질투할 정도라면 네 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움켜쥐어.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간절하게 아리아드네를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그럴 순 없어요.”
그러나, 간절함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못하는 법이다.
“당신들의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니니까.”
“아리아드네……!”
내가 다시 한번 설득해 보려고 할 때, 아리아드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계속 후회하던 작별 인사를…… 지금 할게요, 레나.”
쿵!
아리아드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빛의 화살로 변해 내 심장으로 쏘아졌다.
“안녕히, 나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