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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19화 (32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19화

아리아드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 최후의 전령이 패배를 인정합니다.

- ‘죽음’이 심판을 포기합니다.

- 두 세계의 동기화가 정지됩니다.

축포처럼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 최대 업적자 : 강예나

- 원하는 보상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여느 때 같다면 이 메시지가 떠오른 것으로 끝, 성공을 축하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도 없었다. 성공 메시지를 곱씹어 볼 겨를도 없이 나는 아리아드네에게 달려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끝을 내긴 뭘 내!”

알리시아였다.

알리시아는 남아 있는 한 팔로 아리아드네의 멱살을 잡았다.

눈시울이 우는 것처럼 붉었다.

그게 너무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너무 억울해서인지는 본인도 모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널 죽이려고 여기 온 것 같아?”

“알리시아, 그렇게 흥분하면 상처가…….”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지금 우리더러 널 죽이라는 거야? 어?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아리아드네를 향해 분노를 터트렸을 때보다 더욱 처절하게, 알리시아가 아리아드네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비통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정확한 이야기기도 했다.

알리시아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이곳에 아리아드네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다.

알리시아에게 멱살을 잡힌 아리아드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나 싶더니…….

“하, 하하…… 아하하하!”

이번에는 웃기 시작했다.

만일 내가 아리아드네의 성격을 몰랐다면, 그리고 이 상황에 무지했다면 정말로 즐거워서 내는 웃음소리라고 착각할 만큼이나.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아리아드네는 심지어 눈물이 고인 눈을 손가락으로 훔쳐 내기까지 했다.

“알리시아는 정말, 변하지 않네요. 아까 저한테 화내지 않았어요? 정말로 죽일 기세였는데.”

“착각하지 마. 화는 지금도 났거든?”

알리시아가 한 번 더 꽉, 아리아드네의 멱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멋대로 죽으려고 하기만 해 봐. 진짜 죽여 버릴 테니까.”

“하지만 그건 알리시아의 생각이죠. 저를 죽이는 게 낫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

“드물게도, 저 역시 알리시아의 말에 동의합니다.”

둘만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일리아스였다.

아마도 우리 중 가장 냉정하다면 냉정할 녀석의 말에 아리아드네가 눈을 깜박였다.

“네?”

“그것도 그럴 게, 이렇게까지 사고를 크게 치고 혼자 죽음으로 달아나는 건 비겁하지 않습니까? 뒷감당은 누가 하라고요.”

“……그것도 그렇군.”

루카스도, 입가에 남아 있던 핏자국을 소맷자락으로 아무렇게나 닦으며 말했다.

마력을 다 소진한 탓에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뻔히 보였지만, 억지로 선 채 위엄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루카스다웠다.

“이대로 나 혼자 모든 뒤처리를 하게 되는 건 사양이다. 돌아가면 대신전이며 왕위며, 이걸 나더러 어떻게 하란 거냐? 누군가 도와줘야지. 그게 알리시아나 레나는 아닐 테고.”

“아, 저더러 도와 달라고는 하지 마세요. 전 다시 협곡에 틀어박힐 생각이라서.”

“그럼 일리아스 너 말고도 도와줄 녀석을 데려와라. 그럼 풀어 줄 테니까.”

“이러니 어쩔 수 없네요.”

일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왕 죽을 거라면 같이 일에 깔려 죽도록 합시다.”

그 농담 같은 말에 아리아드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다들, 제가 여러분을 죽이려고 했던 건 알고 있죠? 죽어 준다고 할 때 그냥 죽이는 게…….”

“그런 사람들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아리아드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우연이 그렇게 말을 얹으며 알리사아의 손을 잡고는 슬며시 풀어, 아리아드네의 멱살을 해방시켰다.

“우리는 이제 저들이, 저런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피어났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져 버리는지도 알지.”

나처럼 그저 기억으로만 엿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리아드네와 함께 운명을 걸었던 친우.

“그래서 이 세계를 지켜 주고 싶은 거야.”

그러나 다른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이우연이 아리아드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아리아드네. 너도 함께 지켜 줘.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피워 낼 수 있도록. 우리는 운이 없었을 뿐,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한때, 그저 운이 없었던 탓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져 버린 세계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리아드네가 이우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언뜻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곧이어 한숨이 이어졌다.

“……일단, 사과부터 하게 해 주세요.”

아리아드네가 그렇게 말한 순간, 세계가 부서졌다.

우수수!

마치 완성되어 있던 퍼즐이 위를 무너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드래곤이 도사리고 있던 동굴은 온데간데없이, 주위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후각이었다.

산뜻한 풀 냄새와 잔잔한 꽃향기가 코를 스쳤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여긴…….”

이우연이 신음 같은 소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은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어디를 보아도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우거지고, 들꽃들이 만발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기 넘치는 자연 사이에서는, 한때 위용을 자랑했을 회색의 성벽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부스러져 가고 있었다.

와르르!

또 한번, 어디선가 성벽의 돌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인간의 손길이 끊긴 지 오래된 성벽의 잔해 앞에서, 이우연이 아리아드네를 돌아보았다.

희미한 고통과 동정이 얼굴에 스쳤다.

“계속해서 이곳에 있었던 건가?”

아리아드네가 옅게 미소했다.

“네, 이곳이 저의 세계예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자, 아리아드네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무덤.

이제는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아리아드네가 겪었던 비극이 잠든 세계.

쓸쓸하고 참혹한, 혼자만의 지옥.

“얼마나 오래 지난 거지?”

“글쎄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시간을 세는 것도 잊어버렸어요.”

아리아드네가 대답하며 햇살이 부서지는 것처럼 웃었다.

하지만, 잊었을 리가 없다.

차라리 모조리 잊어버리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시간이 흘러 차라리 우리에 대한 기억도 무뎌지고, 감정도 풍화되었더라면.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그냥 적당히 홀로, 이기적으로, 정의로우려 노력했던 젊은 날은 치기 어린 것이었다며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죄송해요, 모두들.”

아리아드네가 무덤이 된 세계에 선 채 고개를 깊숙이, 아주 깊숙이 숙였다.

“저는…… 그냥 화가 났어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저 자신에게도, 그런 저를 놔두고 떠나 버린 사람들에게도요. 불합리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이런 짓을 했다간 언젠가 더 크게 후회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당장에라도 사라졌으면 좋겠어서.”

조용한 사죄의 목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흩뿌려졌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없어질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어요.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서는…….”

“아리아드네.”

나는 조심스럽게, 쓰러진 아리아드네의 몸을 바닥에 눕힌 후, 용케도 아직 부서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또 다른 아리아드네를 불렀다.

“네, 레나.”

그렇게 대답하고 미소하는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꼭 같았다. 도저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아리아드네는 죽음 따위가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어제를 후회하고, 과거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추하게 발버둥을 치고.

그래도 살아 있는 이상 오늘을 살고, 불안해하면서도 내일을 기대하는 인간답게.

그렇다면 내 답도 간단했다.

“우리와 함께 가자.”

나는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았다.

나도 아리아드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다.

만일 지금 이 아리아드네에게 손을 뻗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죄를 벌하지 않는 것이 용사답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용사라는 직함을 내려놓을 것이다.

나는 그저 눈앞에서 괴로워하며 발버둥 치는 사람을 구해 주고 싶을 뿐이다.

“너도 나를 도와주었잖아. 기억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세계에 떨어진, 내 상황이 그저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내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아무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아 세운 벽 너머로 햇살처럼 아리아드네가 손을 뻗어 왔다.

아마도 그 벽 너머로 내가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겠지.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도와 달라고 하는 내 목소리를.

그리고, 지금의 내게는 이제까지 아리아드네가 저질러 온 모든 행동이 제발 살려 달라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과거의 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런 사람을 외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배운 것은, 아리아드네에게서 배운 것은 타인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법이다.

타인의 사정을 동정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것.

마침내, 사랑하는 것.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널 도울 차례야.”

용서를 빌어야 한다면 함께 빌 테고, 죄를 갚아야 한다면 그 또한 함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냥 네가 살아만 있어 주면 좋겠어, 나는.”

아리아드네가 살아 주기만 한다면.

“……레나.”

아리아드네가 목이 꽉 막힌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너무…… 속 편한 이야기예요. 한 세계를 멸망시키고 이제 와서 모두와 함께 살아간다니…… 저 같은 사람한테, 도저히 온당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온당이고, 나발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알리시아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됐고 그냥 끌고 가! 여기서 설득해 봤자 설득될 녀석도 아니고, 일단 끌고 간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일리아스가 동생이 부리는 억지에 한숨을 쉬었다.

“너는 애가 무슨, 사람을 납치할 생각만 하는 거니?”

“아, 닥쳐! 네가 운영자가 되었으니까 사람 하나쯤은 우리 세계로 데려갈 수 있지? 그렇다고 말해!”

알리시아가 이번에는 일리아스의 멱살을 쥐고 짤짤 흔들었다.

아리아드네가 이렇게 말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기도 하고요.”

막 알리시아에게 무어라고 말하려던 일리아스도, 대거리를 하려던 알리시아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루카스와 이우연은 물론이고 나 또한 귀를 의심했다.

“아리아드네, 뭐라고 했어?”

“말 그대로예요.”

마치 당연한 진리를 말한다는 듯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며 아리아드네가 내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방금 전까지 이 손에 잡혀 있었던 온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저는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세계로는 갈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야, 헛소리하지 마. 지난번에는 잘만 왔잖아? 그때는 오지 말래도 왔으면서 그게 무슨 헛소리야.”

“……잠시만요. 설마.”

일리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일리아스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아리아드네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지만.

“아무래도 운영자는 처음이라 낯선 게 많지요?”

“지금의 아리아드네 님이 우리 세계로 오면…….”

“네, 운영자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상태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알리시아와는 달리, 그쯤 되니 나도 슬슬 이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이우연이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던전이 문제겠군.”

그랬다.

레벨 80대의 내가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는 한국의 전체 서버에 오류를 일으켰다.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추어 던전의 레벨을 올리기 때문이다.

아직 만렙도 아닌 내가 그 정도였는데, 하물며 시스템 규격 외의 강자가 된 아리아드네가 지금의 타르토스에 오게 되면…….

“아니, 잠시만 아리아드네. 네가 저번에 왔을 때는 딱히 던전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뭔가 방법이…….”

“그때는 다른 제 자신의 몸을 빌렸으니까요. 껍데기를 빌려 힘을 억누른 거죠.”

그저 강림한 것만으로도 세계가 요동칠 정도였는데, 심지어 그게 힘을 억누른 상태였다는 건가.

하기야 우리 다섯 사람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아리아드네 본인이 마음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쓰러트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건 사실이었지만…….

아리아드네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저 몸을 계속해서 빼앗아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아니, 그래도 뭔가 방법이…… 그래, 우리가 던전을 싹 다 클리어하면 되잖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될 수준이 아닐걸요. 정말로.”

“야, 닥쳐!”

알리시아가 아리아드네에게 화를 내며 일리아스를 돌아보았다.

“일리아스, 뭔가 방법이 있지? 있을 거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계산하던 일리아스가 머리를 짚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이거…… 정말 방법이 없는데.”

“…….”

우리 모두는 그 말의 뒤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언제나 무언가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리아스인데, 그런 녀석이 저렇게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타르토스에 오면 비정상적으로 던전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고, 일리아스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우리 몇 명이 노력한다고 해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즉…….

“그럼, 아리는?”

알리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 우리랑 같이 돌아갈 수 없어?”

“…….”

“야, 대답해 보라고! 평소에 그렇게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입 다물고 있는데!”

알리시아의 고함만이 조용히 초원의 들판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아리아드네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드네와 일리아스의 말대로라면, 이 멸망한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규격을 초월한 강자가 된 아리아드네는 생명이 넘치는 세계로는 갈 수 없다.

존재만으로도 다른 생명을 죽이게 될 테니까.

“……혹시, 아리아드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너를 죽여 달라고 한 거야?”

“…….”

어차피 아리아드네에게 남겨진 길은 아무도 없는 이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뿐이라.

다시 한번 희망을 찾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싶어졌으나, 그럼에도 이제는 더 이상 구원받을 방법이 없기에.

그래서, 차라리 끝을 내 달라고 했던 건가.

여기까지 와서도, 결국 내 힘으로는 아리아드네를 구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모두가 아연한 침묵에 빠진 가운데, 아리아드네만이 어딘가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 악몽은 끝났으니까요. 전 이걸로 충분해요.”

아리아드네가 땅에 무성한 풀을 쓰다듬었다.

“게다가, 이곳은 제가 만들고 지켜 온 무덤이에요. 제가 떠나면 이곳은 어떻게 되겠어요?”

나는 그 말에 눈을 껌벅였다.

아리아드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이 결말을 납득했기 때문도, 물론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덤?”

내가 멍하니 되묻자 아리아드네는 의아해하며 내 말을 반복했다.

“네, 무덤.”

“왜 그래, 레나?”

“……그거, 누군가가 했던 말이네.”

“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나는 떨리는 입가를 매만졌다.

“잠시만…….”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혼자서 다 해결한 적이 있었나? 애초에 단 한 번도, 나 혼자의 힘으로 무언가를 구해 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내 목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때로는 보호를 받고 지키기도 하며, 그렇게 함께 싸우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목소리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강예나?”

이우연이 의아한 듯 나를 불렀지만, 나는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의식이 먼 곳의 기억을 더듬듯 희미해지고 있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용사의 영혼을 축복합니다.

그래, 그 영혼.

모두가 사라진 세계 따위에는 미련을 접고 그만 떠나면 좋을 것을, 무엇 하나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그저 홀로 무덤을 지키며 떠나간 이들을 기리던 누군가가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억울한 상황인데도 그 영혼은 다른 이를 돕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그저 힘이 있고 자신은 도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와주었다.

나는 분명한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녀석은 아마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그야, 그도 그럴 것이.

- 용사의 영혼이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그건, 나 자신이니까.

파지직!

허공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일며 한 줄기의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저 맑고 푸르던 하늘을, 번개가 굉음을 내며 정확히 반으로 찢어 버렸다.

“저건…….”

아니, 번개가 아니다.

하늘을 가르는, 도저히 인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행한 것은 단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러나 검은 그저 검일 뿐.

성검이 대행하는 것은 검을 쥔 이의 의지다.

그리고 그 검을 쥔 인영이 찢어진 하늘 사이로 나타났다.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바람을 두른 채, 검사 하나가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이쪽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결코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해 본 적이 없는 사람.

“설마…….”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쿵!

세상을 찢어 가며 나타난 여자가 땅 위를 박살 내며 내려앉았다.

짧게 잘린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그리고 나타난 그 얼굴은 내겐 가장 익숙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얼굴이었다.

차원을 넘어 도움을 청하는 부름에 응답한 용사가 검을 든 채 입꼬리를 올렸다.

“찾았다.”

다른 운명을 걸어간 ‘강예나’가 이 세계에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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