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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321화 (32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321화

그리고, 두 사람이 이 세계를 떠난 순간.

우르르르!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구성하는 대기가 휘몰아치고, 땅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뭐야?”

“이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가 떠났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야. 이제 이 세계는 소임을 다 했어.”

그러고 보니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그런 설명을 들었지.

묘지기가 그랬듯이, 저 ‘아리아드네’ 또한…… 이제야 길고도 긴 추모를 끝낸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군.”

일리아스가 세계를 돌아보며 감회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지?”

“던전은 클리어했으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되겠지.”

“그런가. 간단하네. 뭔가 기분도 좀 묘하고…….”

알리시아가 죽어 가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다가, 결국 쾌활하게 외쳤다.

“나는 돌아가자마자 술부터 마실래!”

“그것참, 좋은 생각이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때였다.

일리아스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레나, 너는 달라.”

“응?”

설마 이제 와서 나는 어디로도 못 돌아간다고는 하지 않겠지.

의심 어린 눈동자로 일리아스를 바라보자, 일리아스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했지? 네가 속해 있는 세계는 타르토스가 아니니, 이대로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너는 저쪽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옵타티오를 클리어했을 때처럼.”

“……그랬었지.”

“아니, 잠깐만!”

알리시아가 달려들다시피 하며 물었다.

“설마 그럼 여기서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뜻이야?”

“이미 오기 전에 다 이야기했잖아. 뭘 새삼스럽게…….”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래도 조금 더…….”

“이별이 아니다.”

소란스러운 남매의 말다툼에 끼어든 것은 뜻밖에도 루카스였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레나.”

루카스의 말에 이우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무슨 약속?”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것참, 굉장히 신경 쓰이게 말하네.”

“이게 너네 둘이 싸울 일이냐?”

어이가 없다.

신경전을 벌이는 놈들은 내버려 두고 나는 불안해하는 알리시아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나도 생각이 다 있으니까. 약속도 약속이지만…… 이게 이별은 아니야.”

솔직히 루카스가 굳이 약속을 내세워서 내게 결심을 받아 낼 일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때는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기에 말하진 못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 모두가 노력했는데 내가 보상을 차지하려니 미안하지만…….”

- ‘최후의 전령’을 처치하십시오.

- 보상 : 플레이어가 원하는 보상을 자유롭게 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던전을 클리어한 공을 따지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스템이 판정한 최대 업적자가 나인 만큼 보상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졌다.

“이번 보상은 내가 선택하게 해 줬으면 해.”

어쩌면 이렇게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왕 받는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 이번만큼은 너 자신을 위한 보상을 선택해라.

내게 루카스가 받아 낸 약속은 그것이었다.

이번만큼은 나 자신을 위한 보상을 택하는 것.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내 소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타르토스로 통하는 던전 개설권을 받아 내려고 해.”

내가 아무리 타르토스에 머물고 싶다고 하더라도 내 영혼은 결국 한국에 귀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르토스에 올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조한율이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타르토스에 보냈던 것처럼, 던전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는 일이 가능하다면 나도 그렇게 타르토스와 한국을 오가면 되는 일이다.

한국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던전을 통한다면 얼마든지 타르토스로 올 수 있는 것이다.

“보상이야 뭐 아무래도 좋고, 말은 쉬워 보인다만…….”

내 말을 들은 알리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그게 보상이야? 결국 타르토스에 올 때마다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거잖아.”

“미친 소리 하지 마, 레나.”

일리아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꽉꽉 눌렀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야. 하지만 너 정도 플레이어가 세계를 오가려면 상당히 어려운 퀘스트가 주어질 거라고. 그걸 매번 어떻게 감당하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질문도 예상 범위 내였다.

“하지만 이거 말고는 리스크 없이 세계를 오갈 방법이 없는걸. 다른 수가 없다면 감수해야지.”

“레나, 너 진짜 그러다가 죽어!”

알리시아가 기겁했다.

“계속 SS급 몬스터 같은 걸 던져 주면 어떻게 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야, 인마!”

“루카스 님도 루카스 님입니다.”

일리아스가 루카스를 쏘아보았다.

“왜 이런 약속을 받아 냅니까? 레나가 위험에 처해도 좋습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지.”

루카스는 일리아스의 비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방법이라도 없으면 레나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어떻게 알고?”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이우연이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두통이라도 이는 것인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세계를 구한 대가로 자발적으로 위험한 던전에 들어갈 권리를 얻다니, 정말이지 이게 무슨…… 당신 미쳤어?”

“원래 해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비싼 법이야.”

“대체 그게 무슨 비유냐고.”

볼이 사정없이 꼬집혔다. 아프다.

“그만.”

루카스가 볼을 꼬집어 대는 이우연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던전 클리어도 우리가 도와주면 될 일이야. 레나 혼자 던전을 클리어하게 두진 않을 테니까.”

“말은 잘한다, 말은! 너는 뭘 부추기고 있어?”

알리시아가 왕자를 향해 팍 짜증을 냈다. 팔만 성했다면 바스타드 소드라도 꺼낼 기세였다.

“나 오늘 왕자고 뭐고 반역한다! 내가 한번 왕이 되어 보련다!”

“너한테는 무리야. 나라가 일주일 내로 망하겠는걸. 난 가라앉는 배에는 타지 않는 주의라서.”

“야!”

마지막까지 이렇게 아옹다옹하는 남매를 보면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하하하하!”

내 웃음소리에 알리시아가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른 모두도.

하지만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싸우기도 하고…… 이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얘기하는 것.

이런 일상을 되찾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아마 그런 내 심정이 전해진 것이겠지.

곧이어 알리시아도 결국은 함께 웃기 시작했고, 일리아스의 입가에도 어쩔 수 없다는 미소가 어렸다. 루카스와 이우연도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웃었을까.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은 것은 물론 일리아스였다.

“……어쨌든 여기서 토론해 봤자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자. 서둘러야 해. 곧 세계가 무너질 테니까.”

그리고 일리아스의 손짓에 따라 출구가 나타났다.

이 던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출구였다.

나는 그 출구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희들이 먼저 가. 나 이제 맨 처음 어딘가로 떠나는 거에 트라우마 있어.”

“……그거 좀 가슴 아픈데?”

일리아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나섰다.

“그럼 내가 먼저. 사실 운영자가 이렇게 오래 떠나 있으면 문제가 많거든. 다들 돌아오자마자 몬스터 떼에 깔려 죽고 싶지는 않겠지?”

일리아스다운 말이었다.

“레나, 무리는 하지 마.”

일리아스는 내 머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출구 너머로 발을 디뎠다.

검은 허공 너머로 일리아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여간 저 새끼는 말이 많다니까.”

알리시아는 사라진 오빠 등에 대고 욕을 내뱉었다. 나는 낄낄대며 웃었다.

“너희 정말 사이좋다.”

“너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에잇, 모르겠다.”

알리시아가 한팔로 내 어깨를 툭 쳤다.

“레나. 그럼, 또 보는 거야. 약속했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꼭 지켜야 돼.”

“당연하지. 내가 언제 약속 어기는 거 봤어?”

“……못 봤지.”

이마가 한 번, 맞부딪혔다.

딱딱한 온기를 남기고서는 알리시아 또한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남의 등을 보는 건, 이것대로 힘드네.”

“그걸 이제야 안 건가.”

팔짱을 꼬고 비딱하게 선 루카스가 코웃음을 쳤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저렇게 얄밉게 구는 것도 재주다. 나한테만 그러는 거겠지만.

“한 마디 작별 인사와 함께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남겨지는 것도, 영원한 이별일지도 모르는데 남을 배웅하는 것도 지옥이나 다름없지.”

“혹시 그거, 지금 나한테 항의 중?”

“이 정도는 알아들어서 다행이군.”

“이 자식이…….”

“그러니 나를 지옥에 남겨 두지 말고 돌아오도록.”

말문이 막혔다.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루카스는 등을 돌렸다.

“또 보자.”

어딘가 낯익은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루카스마저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눈을 껌뻑인 채 남아 있는 내 어깨 위로 무거운 팔이 올려졌다.

“저게 진짜 나야? 재수 없어.”

물론 이우연이었다.

이우연은 약간 기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역시 연상보다는 동갑이 낫지? 그치?”

“너도 만만찮게 재수 없긴 해. 그리고 루카스는 나보다 어리거든? 연상 취급해 줄 생각 없거든?”

“왜 쓸데없는 곳에서 장유유서를 지키려는 건지 모르겠네. 강예나 씨, 그걸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꼰대라고 해.”

“누가 꼰대야. 죽을래?”

그렇게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결국 나와 이우연은 마주 보고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예전에는 내가 어째서 타르토스에 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는지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웃고 있는 이우연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은, 이 생을 이어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만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처럼 만난 필연이자, 믿을 수 없는 행운 같은 기적을.

우리는 잠시 그 순간을 만끽했다.

더 이상의 말도, 행동도 필요하지 않았다.

“강예나.”

“응, 이우연.”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알아.”

나는 이우연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 이상의 약속은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 곁으로 돌아갈 테니까.”

“……와.”

이우연이 쑥스러움을 감추려 입가를 매만졌다.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알았으면서.”

“그야 바라기는 했지.”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이우연이 내 어깨에서 팔을 떼고 등을 돌렸다.

“먼저 갈게, 강예나.”

이우연도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더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더 하늘의 조각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재앙이 오랜 시간 머물러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이 대륙은, 이제 과거의 모든 비극과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제 정말로 이 세계 또한 종말을 맞이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아드네.”

죽음이 떠난 세계에서 아리아드네가 눈을 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리아드네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모두 떠났네요.”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보고 진작에 의식이 돌아왔단 건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다.

나는 도통 일어나지 않으려 하는 아리아드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응, 모두 떠났어. 이제 여기엔 너와 나뿐이야.”

“그런가요…….”

아리아드네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하늘을 비추는 태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빛이 우리가 있는 넓고 외로운 초원을 비추고 있었다.

종말하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리아드네의 가슴이 들썩였다.

“이러고 있으니 꼭 우리가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 같네요.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도저히 맨땅에서 노숙은 못 하겠다니까, 그럼 기절이나 하라면서 검집으로 때렸는데…….”

“뭐 그런 걸 기억하고 있냐. 좋은 기억도 많을 텐데.”

“좋은 기억인데요?”

“그리고 얻어맞은 건 나도 만만치 않거든. 욕할 때마다 날 때렸잖아.”

“응? 욕은 하면 안 되죠. 그리고 그거 다 레나한테 배운 거예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레나는 화나면 일단 손부터 나가니까…….”

“와, 나를 무슨 무뢰배로 만들고 있네.”

어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방향이 수상해지고 있다.

쿵!

다시 한번 어딘가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아리아드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누워 있는 아리아드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가자.”

“………….”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손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언젠가의 아리아드네가 그랬듯이.

아무도 없는 풀밭에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저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 걸까요?”

불안에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결국은 종말을 맞이한 세계를 바라보며 아리아드네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보답받지 못하는 것에 지쳐서, 믿음도 선의도 포기하고…… 사랑했던 모든 것을 죽여 버리게 되는 걸까요?”

자신 또한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다른 아리아드네가 홀로 겪어 내어야만 했던 비극.

간접적으로 그 기억을 본 나조차 감정에 휩쓸렸을 정도였는데, 직접 그 몸에 절망이 깃들었던 아리아드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인간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자신이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엿본 만큼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두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있잖아.”

“그야 레나는 용사니까…….”

“내가 용사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인간이라면, 그런 나를 만든 건 아리아드네 너야.”

한때 방랑하던 나를 이끌어 줬던 나의 별.

그렇다면 이제 내 차례인 것뿐이다.

나는 아직도 풀밭에 누워 있으려고 하는 아리아드네의 손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그러니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어나.”

풀밭에 온통 물이 들어 버린 흰 신관복은 더 이상 순백일 수 없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기에 어쩌면 이전처럼 제 몸을 태우며 밝게 빛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나 순백을 지킬 수도, 그저 절망 같은 암흑에 물들 수도 없는 것.

누군가의 손에 등이 떠밀려 절망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도 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등을 밀어 주는 누군가의 손길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살아 있는 이상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레나를 만난 건, 신이 주신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아드네가 눈부신 것을 보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은 결국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냈네요…… 그렇다면, 제가 믿어야 할 것도 분명해지겠지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신관복을 입은 채, 끝나 가는 세계에서 아리아드네가 웃었다.

“고마워요, 레나.”

그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소였다.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래요. 또 만날 테니까.”

“그야 물론.”

아리아드네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망설임 없이 스스로 걸음을 옮겼다.

너울처럼 흔들리는 긴 금발이 출구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무너지는 이 세계에 홀로 남았다.

지평선 너머로부터 시작된 붕괴는 기어코 유령성의 마지막 잔해마저 집어삼켰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것이, 이 세계의 결말이었다.

“하…….”

한 세계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가슴이 어딘지 텅 빈 것 같기도, 무언가 차올라 충만한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이제 이 세계는 사라지겠지만, 나는 오래도록 이곳의 비극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돕지 못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나는 결코 멈출 수 없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당신의 의지를 격려합니다.

언제나 곁에 있는 파트너를 매만지며 나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가 용사에 어울리는 인간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 볼게.”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나는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야 그렇다.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폭력적일 만큼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운명을 강요하는 법이니까.

영원한 해피 엔딩 따위는 없는 지난한 싸움의 연속.

이렇게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꺾일지도 모른다. 변할지도 모른다.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

무엇 하나 명확한 답이 없는 지옥 같은 세상에, 그럼에도 단 한 줄기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 또한 인간이기에.

절망도 희망도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기적 또한 결국은 인간이 일으키는 것.

그렇기에…….

내가 너를 외면하지 않는 한.

당신이 나를 외면하지 않는 한.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럼, 나도 가 볼까.”

그렇게 믿고 있기에, 나는 웃으며 이 결말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본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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