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쿠르르릉!
흔들리는 폐허속, 어둠을 바라보는 강태석을 향해 옆의 무장병 사내가 물었다.
"일단 패트릭 구해준건 고맙게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아래로 내려갈거지?"
치이이익.
뒤쪽에 기댄채로 급속고양제롤 맞으며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군인을 뒤로한 무장병 사내의 질문에 강태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한번에 지하까지 쫙 내려가려고. 단번에."
"... 뭐? 그게 뭔 헛소리야. 무슨 재주로 그딴게 가능하다고."
오래끌생각없다.
<꼼수>를 이용해서 한번에.
자신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듯 표정을 짓는 무장병 사내를 비롯한 주변군인들을 흘긋 본 강태석이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상태창을 조작했다.
티티틱.
틱.
<레벨 2 달성>
<추가스탯 3이 지불됩니다.>
<레벨제한이 해금됩니다. 이세계의 추가적인 병기와 물자들을 활용할수 있습니다.>
<스킬슬롯이 해금됩니다. 현재 한개의 스킬을 등록할수 있습니다.>
<기본직업이 해금됩니다. 사용자는 세개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습니다.>
*테크니컬
*화기전문가
*기계사냥꾼
>주의하십시오. 이 세계를 떠나기전까지 한번 정한 직업은 바꿀수 없습니다.
눈은 손보다 빠르게.
타타타탁.
뭔 소린지 답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 강태석의 눈동자가 쉴새없이 상태창을 스쳤다.
<기본직업 결정... 기계사냥꾼을 선택했습니다.>
<이세계의 무인기계병기들을 상대할때 추가적인 경험치와 보상, 타격치를 확보합니다.>
<근력 3/반사신경 1/체력2/마력1/기술2를 확보합니다.>
<스킬 선택... Passive <정전기장>//Active <고폭장>중 택 1... Passive, <정전기장>을 선택하셨습니다.>
<앞으로 사용자의 몸 주변에서 미약한 에너지장이 흐릅니다. 이는 저항력과 감지능력, 반사신경을 소폭 상승시킵니다.>
<스탯 투자... 근력1/체력1/마력1 투자>
...
<강태석>
>레벨 : 2(1.44%)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정전기장(Passive)(등급-E)
>스탯 : 근력4/반사신경1/체력3/마력2/기술2.
>무장 : 태도-야마하/강화피복(D)/특수전투목적용 배낭(Used)...
기계사냥꾼.
범용성은 좀 떨어져도 레벨업은 가장 빠르다.
정전기장.
몸의 마력을 폭주시켜 강한 일격을 먹이는 고폭장보다 무량기공과의 조합이 더 좋다.
스탯.
근력, 체력, 마력.
기술과 반사신경은 자신의 경험치와 컨트롤로 어느정도 메꿔도 이 셋은 기본.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하드웨어에서 밀리는 상태가 지속되면 답이없다.
애초에 하루이틀한 게임도 아니고 선택은 실로 찰나의 순간.
작업을 마친 강태석이 아무일없었다는듯 대답했다.
"간이 점프-워크가 있어. 이곳 1층에."
"!!!"
"구세대의 유산이지. 잘만 활용하면 단번에 지하 5층 목적지까지 갈수 있을거다."
"...."
강태석의 말에 주변 무장병들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
점프-워크.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 워프게이트의 부산연구물같은 존재.
코드만 안다면 지정된 좌표를 통한 양방향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네가 여기 해당코드를 안다고? 여기 연구소장이라도 되나보지?"
저벅.
숨소리를 죽이며 무너진 폐허사이, 길게난 길 사이를 걷던 강태석이 무장병 사내의 말에 덤덤히 대답했다.
"어쩌다보니 알게됐지. 그런것도 없이 이곳에 올수도 없고. 지금 수준으로."
"... 그렇긴 하지."
동의하는 군인들을 보며 강태석이 실소했다.
세계의 법칙.
10-30-60-100-150.
이 단위를 기준으로 각자는 크게 변화의 시점을 맞는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알에서 부화를 하듯.
해당레벨의 전후로 전투력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양지차.
그리고 이곳, 무기고는 그렇게 벽을 넘은 병기, 레벨 10 <디스트로이어>들과 그보다 더 강한 병기인 15의 <나이트>들이 돌아다니는 장소이다.
한때 귀족급은 아니더라도 현대화된 군부대가 철통처럼 지켜지고 있었지만 어느날 지하를 뚫고 난입해들어온 수십기의 디스트로이어와 기계병기들에 의해 모조리 학살당하고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곳.
무너진 지상은 녀석들을 봉인하기 위해 퍼부어진 폭격의 잔재에 불과하다.
진짜 위험한 곳은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지하 핵심시설들.
그리고 자신이 향하려는 목적지는 그 가장 깊은곳이다.
지금 레벨로는 당연히 어림도 없지만...
'점프워크가 있다면 한번에 도달할수 있다.'
강태석이 숨을 골랐다.
그걸 가능하게 해줄건 자신이 지닌, 이곳 시설의 모든 권한을 사용가능하게 해주는 마스터코드.
게임으로 치면 치트키.
자신도 정말 우여곡절끝에 이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이다.
지하의 <전투강갑>에 대해 알게된것도 그때.
'고맙네 친구. 아 진짜 사람은 아니었지.'
게임속, 스쳐지났던 예전의 인연을 떠올리던 강태석이 숨을 고르며 폐허 사이를 헤쳤다.
이제 곧있으면 정문을 중심으로 한 전파방해가 끝난다.
다시 스캐럽이 덮쳐올 시기.
하지만 여기부터 500m 가량은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있던 전파방해기기가 부서졌으니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점프워크까지도 안전하게 날로 먹는거였는데. 이래서 인생이 알수가 없..."
"잠깐."
"?"
"근처에 전파방해기 신호가 잡히는데?"
그야말로 안전영역을 벗어나기 직전의 순간.
탐지기를 살피는 무장한 사내의 말에 긴장하며 전투준비를 하던 주변 군인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
"맙소사. 운이 정말 좋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파방해기기가 나타나다니."
우우우웅!
어두컴컴한 폐허를 지나던 한 군인이 속삭였다.
그도 그럴수밖에!
지금 그들이 서있는 곳은 새로 등장한 전파방해기기의 영역 안.
그리고 눈 앞, 그들이 선 칙칙한 철문 안에서 그 기계가 잠들어있다.
이러면 일이 너무나 쉬워진다.
지금 자신들 앞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기계를 챙긴뒤 그걸 들고 점프-워크로 가서 숙 들어갔다 슉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이건 그냥 날로 먹는 일.
그런 군인들을 향해 무장병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심하지 마라. 높은 확률로 주인이 있을테니."
"..."
이에 접근하던 이들이 다시 확 굳은 눈으로 돌아왔다.
하긴 쌩뚱맞게 이 지옥 한복판에 멀쩡히 작동하고있는 기기라니?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다.
그런 사람들 속,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댄 무장병 사내가 조심히 접근하며 문을 확 열어제낀 순간.
철컥!
철커덕!
"누... 누구세요?"
"????"
방안.
폐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제법 단정하게 꾸며진 공간속, 찻잔을 든채 얼빠진 눈으로 답변하는 여인의 모습에 모두의 눈이 혼란에 빠졌다.
**
방안.
"그래서. 눈떠보니 여기였다고? 보급품들이랑 이 기계랑 같이?"
"... 네."
"기억도 없고... 나가지 말라는 편지가 탁자에 써있어서 계속 여기서 버티고 있었다고?"
"네."
"... 기가 막히는군."
군인들과 함께 비좁은 방에 들어선 무장병 사내가 눈앞, 장발머리 미인의 말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이 지옥속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고?
물론 살아남을수는 있다.
방해전파기기도 있고 보급도 있고.
무엇보다 어찌보면 가장 위험한 인간역시 이곳엔 접근할 생각조차 안하니까.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너무 이질적이다.
그런 무장병 사내를 향한 뒤쪽, 군인의 작은 속삭임.
"대장."
스윽.
어깨에 손을 집으며 슬쩍 왼쪽, 방한구석에 설치된 휴지곽만한 정사각형 기계장치를 가리키는 부하의 손짓에 무장병 사내가 고심했다.
어찌보면 일거의 고민조차 필요없는일.
수상한 여인은 내버려두고가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계만 챙겨가는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여인은 100% 죽는다는것.
방해장치가 없어지는순간 지금도 기지를 돌아다니고 있을 스캐럽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와 여인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리라.
그때.
"같이 데리고 가지."
"... 너."
"데리고 가자고. 놓고가면 안될거같은데."
그런 강태석의 말에 무장병 사내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
"나가면 안된다고 했는데..."
"하하. 걱정하지마. 누군진 몰라도 당신을 저 안에 두고 떠난 사람이 당신을 보호하려고 한 말일테니. 우리랑 함께가면 된다고."
안심시키듯 여인의 곁에서 걷던 아린이 여인의 등을 탕탕 치며 호탕하게 말했다.
어찌보면 그 편지의 내용은 당연한 것이다.
나오는순간 기계장치들, 혹은 적대적인 외부사람들의 습격을 받게될 터이니.
이에 곁에서 걷던 군인들이 몇몇은 수상쩍다는 눈길로, 몇몇은 애매한 눈길로 여인과 아린을 바라보던 그때.
"도착했어."
강태석이 앞쪽을 가리켰다.
쿠르릉!
마치 마법진같은 원형도면들이 10m 육면체 방, 부서진 폐허중 세 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닥, 왼쪽, 정면.
나머지 세 면이 형편없이 부서져 안쪽 공간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에 비하면 신기할 정도로 멀쩡한 모습.
거기에 기계장치없이 덩그러니 그려진 벽면의 도형들이 그 이질감을 더했다.
도착했다는 말에 환해지던 군인들의 표정이 온통 불신으로 물들 정도.
"여기가 점프 워크라고? 무슨 요가명상실이 아니고?"
"맞아."
바닥에 주저앉은 강태석이 바닥에 쪼그려앉아 원형의 도형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애초에 이 세계에 적용된 워프는 과학보다는 마법에 가깝다.
온전한 워프를 기술력으로 흉내라도 내려면 레벨 400을 넘어가는 초문명에서나 가능하니까.
키이이이이잉!
강태석이 마력을 섬세하게 불어넣은 순간 바닥에 있는 원형의 진이 희미하게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치직이는 반발력.
여기서 제대로 된 마력코드를 짜넣으면 작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빛이 꺼진다.
'아마... 이렇게였지.'
강태석이 마력을 기억하던 마스터코드의 형태에 맞게 부여한 순간.
쿠르르르르릉!
"... 진짜였네."
세개의 원형진 사이, 허공에 파직거리며 생겨나는 검은 원을 본 주변군인들이 침음을 삼켰다.
불길하면서도 신비로운 반경 1m의 검은 구체.
그런 이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선 강태석이 들어갈 준비를 하며 말했다.
"다녀오지."
"다녀온다고?"
"그래. 이건 1인용이야."
"..."
"껄끄러우면 나대신 가도되고."
"... 아니 됐다. 어차피 나올때도 그 코드란걸 알아야할테지."
무장병 사내가 손을 저었다.
자신들은 상대가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나오면 그만.
무엇보다 상대입장에선 현재 딱히 자신을 배신할 이유도 없으며 도망칠 이유도 없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다시 나올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한다."
키이이잉!
전파방해기기를 중심으로 아직 형태가 남아있는 폐허벽면들 뒤쪽 구석구석에 군인들을 자리잡게 한 무장병 사내가 강태석을 보며 말했다.
"다녀와라. 여기서 기다리지. 물건을 가지고 오면 이후 쉘터까지 우리가 엄호한다."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구체로 한발 내딛은 순간.
파직!
파지지지지직!
파파파팟!
검은 구체가 요동치듯 점멸하더니 스팟 소리를 내며 번쩍이며 강태석의 신형을 집어삼키며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
스파파파팟!
콰르르릉!
'도착.'
검은 구체의 점멸과 함께 나타난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찬가지로 보이는건 정육면체의 세 면에 자리잡은 세개의 원형진.
차이가 있다면 도착지점의 원형진은 출발지점과 다르게 천장과 다른 두 벽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출발지점의 것과 대칭을 이루듯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면, 뻥 뚫린 방향으로 보이는건...
"찾았다."
위의 난리통과는 다르게 멀쩡하게 격리된 연구실 형태의 공간.
사방팔방 자리잡은 복잡한 기계장치들의 한복판.
제법 넓은 공간의 천장부에 매달려있는 수상한 흉부갑옷을 본 강태석이 주먹을 쥐었다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