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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9화 (9/221)

9화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크기 3m의 8각형 기계덩어리는 잔잔히, 조용하게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서 형용할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쿠우우우웅!

저게 바로 초대 연방이 만들어낸 기적, 핵융합엔진.

쿠르르릉!

<핵융합엔진(B)을 발견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선박건조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퀘스트 : 아티팩트-방주 건설>

>상당한 고등급의 핵융합엔진을 발견했습니다.

>얻을수 있는 설계도안에 따라 건조가능한 배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조건 1. 핵융합엔진 확보.

>조건 2. 설계도안 확보.

>조건 3. 타르늄합금 확보(설계도안에 따라 필요량이 달라집니다.)

>조건 4. 최고 3.31 ver 이상 보행중장비 확보(확보한 중장비의 양질에 따라 완성도/완성기간이 달라집니다.)

>조건 5. 인력 확보(확보한 인력의 숙련도에 따라 완성도/완성기간이 달라집니다.)

>방주를 완성하고 안에 병기와 자원, 물자와 인력을 그득 채우십시오.

>완성시 방주에 대한 1급 통제권한을 지닙니다.

제단 위에 올려져있는 푸른빛의 핵융합엔진을 본 강태석이 누운상태에서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목표가 눈앞에 있자 자동적으로 몸과 정신이 임전태세에 돌입한것.

'혼자 들고갈수 있을까?'

예상했던것보다 크기가 작아서 해본 생각.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레벨이 올랐다고 해도 무리다.

저건 말 그대로 통짜 금속덩어리.

근력 좀 강해졌다고 수톤단위의 물체를 들어나를수는 없는 법.

거기다...

크르르릉...

크르릉...

"..."

주변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낮은 숨소리들에 강태석이 주먹을 우득 쥐었다.

아까전에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정신이 온전해지니 사방의 기척이 느껴졌다.

쿵쿵거리는 발걸음, 처덕거리는 물기.

이곳은 온통 실험체들 투성이.

아니, 실험체들의 둥지.

크르르릉...

크르릉...

사방,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실험체들은 제단 꼭대기, 엔진에서 쪼여나오는 푸른 빛을 일광욕하듯 쬐며 나른한 크릉거림을 내뱉고 있었다.

왜 자신의 위에 포개져있는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고 했는지 여실히 이해할수있는 상황.

물론 여전히 궁금한건 있었지만.

<넌 누구지?>

슥슥.

강태석이 공용어로 상대의 어깨죽지에 글을 써보았다.

상대는 누구인지.

어째서 몸을 위에 포개고있고 어째서 지금 저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있는지.

하지만 그런 강태석의 손짓에 어둠속, 깜박이는 두 동그란 눈에 비쳐온건...

????

"...???"

'못알아들은건가.'

의아하다는듯 빠르게 눈을 깜빡깜빡거리는 상대의 반응에 강태석이 다시 한번 글을 쓰려던 순간.

"여기있었군."

"...!!"

스륵.

"둘다 따라와."

갑자기 옆에 조용히 나타난 누군가의 묵직한 음성에 강태석이 고개를 돌렸다.

어둠속에 보이는건 안겨있는 자와 달리 크고 단단해보이는 실루엣.

"움직이면 들킬텐데."

"걱정마라. 크란이 널 안아주면 괜찮을테니."

그러며 나타난 자가 톡톡 치자 안겨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강태석을 폭 껴앉았다.

'이걸로 괜찮다고?'

이해할수 없는것이 여러가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따를수밖에.

잠시후.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강태석이 가슴팍에 폭 매달린 상대와 같이 앞장서는 누군가를 따랐다.

**

철벅...

철벅철벅...

물기가 서린 지하통로를 지나니 희미하게 켜진 전구들이 보이며 그제서야 둘의 모습을 확실하게 확인할수 있었다.

앞장선 이는 한눈에 봐도 굴강해보이는, 키 2m의 덩치큰 사내.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에 매달린 이는...

'소녀.'

키는 크다.

거진 170cm 정도.

하지만 얼굴에 풋기가 서렸고 팔다리와 전신이 하늘하늘 메말랐다.

"크란. 이제 내려와도 된다."

"아?"

"내려와도 된다고."

사내가 이리저리 손짓하자 크란이라 불린 소녀가 알아들었다는듯 매달려있다 톡 하고 떨어져내렸다.

이윽고.

"여기까지다. 외부인. 나가라."

"..."

뭔가 아쉽다는듯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훅 끌어당긴뒤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사내를 보던 강태석은 그제서야 상대의 정체를 알수 있었다.

더불어 왜 이들은 아까전 실험체들에게 공격을 받지않았는지의 이유도.

샛노란 눈동자.

뭔가 이질적인 기감.

이들은...

'사람 대상으로도 실험했다더니.'

강태석이 눈 앞,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

육체강화시술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 그자체를 강화하는것.

당연히 그 실험의 끝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

그렇지만 그 실험은 실패로 판정되었다.

태양을 볼수 없었고 수명도 2년이 한계였기에.

하지만 눈앞의 이들이 살아있는 이유는 둘중 하나.

아직 시술을 받은지 2년이 안되었거나.

아니면 태어난지 2년이 안되었거나.

순간.

<지하의 생존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핵융합엔진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발전기, 식물육양기, 정수시스템등을 가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의 . 이 실험체들은 흉포하며 현재 지하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빠른 이탈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싶다.

"빨리좀 말해줄것이지."

후우우우우욱!

퍼어어억!

"이런!"

통로 너머.

마치 대포알처럼 날아들어 바닥에 처박힌 묵직한 창에 소녀의 옆에 서있던 사내가 이를 갈며 어둠너머를 바라보았다.

**

후후후훅!

퍼퍼퍼퍼퍽!

여러개의 창들이 쉴새없이 통로를 지나 강태석을 비롯한 셋에게 날아들었다.

지하에 넘쳐날 금속자재들을 깎아만든 투박한 모양새.

하지만 위력만큼은 진짜였다.

퍼어어억!

터어어엉!

지하통로의 콘크리트를 푹 패일정도로 박히던 창을 튕겨낸 강태석이 저릿한 팔의 통증을 느끼고는 곧바로 강갑의 3단계 모드를 발동했다.

아까전 싸웠던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여유부리면 그대로 치명타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륵!

터어어엉!

터텅!

순식간에 몸에서 돋아난 하얀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강태석이 유려하게 칼을 휘둘러 창들을 빗겨내며 소리쳤다.

"어디로!"

"... 이쪽이다!"

사내는 잠시 망설였지만 말그대로 찰나일뿐.

터터터텅!

타타타탁!

강태석에게 뒤를 맡긴 사내가 소녀를 들쳐멘체 미친듯이 구석구석 복잡하게 갈라진 통로 사이를 앞장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

잠시후.

"후욱... 후우."

촤르르르륵.

지하통로 무너진 틈사이.

먼저 들어간 두 남녀를 따라 비좁은 틈으로 들어온 강태석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강갑을 완전히 풀었다.

마력이 거의 바닥인 상태.

하지만 이제 한숨 돌릴수 있겠다 싶어 조심히 바깥을 살피던 그순간.

"아아... 아아아."

"후욱... 허흐..."

울먹이는 소녀.

거친 사내의 숨소리.

이에 고개돌린 강태석이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사내의 복부와 심장부근을 관통한 커다란 창.

사내의 골격은 장대했지만 꿰뚫은 창의 두께는 거의 쇠파이프이상.

아무리 봐도 치명상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한 강태석이 배낭뒤, 급속 고양제를 꺼내 사내에게 주사하려던 그때.

".... 그만해라. 그건 사람을 대상으로나 먹히는 거니까."

"너희도 사람이야."

"크흐. 고맙지만 예전 얘기지.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이제 지났어. 더 살고싶지도 않고."

사내의 생명력은 과연 놀라웠다.

심장이 관통당한 상태에서도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한계.

착실하게 꺼지고 있는 생명의 끈속, 뭔가 후회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짓던 사내가 강태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린 이제 끝장이다. 끝장이어야하고. 하지만 이 아이는 아니지."

"..."

"부탁이 있다.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

사내가 소녀를 가리키며 강태석에게 말했다.

**

지하, 깊은곳.

쿵!

쿵!

우하하하하!

우하하하하하하!

아아아아악!

너른 지하공간.

광장 혹은 동굴처럼 자리잡은 곳, 높고 크게 세워진 제단을 중심으로 모인 수백명들이 피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아비규환.

사슬과 갈고리에 손바닥이 꿰뚫린채 제단 위 천장에 매달린 수십명의 남녀들이 전신이 꼬챙이에 관통당한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주변에 모인 수많은 이들은 광기에 찬 미소와 함성을 내지르며 매달린 이들의 살점을 뜯어먹고 피를 들이마셨으며.

한쪽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린 남녀들이 그야말로 미친듯이 서로를 물고 핥으며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광기와 환락.

말그대로 한폭의 지옥도.

그런 이들을 향한 누군가의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더 즐겨라! 더더! 드디어 우리의 지상진출을 막던 가증스럽던 위선자 놈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다 뜯어먹어라!"

우아아아아아!

제단 위.

금기를 범한 식욕과 성욕을 채우며 환희의 함성을 내지르는 수백명의 남녀를 샛노란 눈동자로 내려다보던 사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드디어 승리했다.

가증스럽던 두더쥐파 놈들을 상대로.

뭐? 우리는 지상으로 나가서 안된다고?

이곳에서 운명을 받아들이고 시간이 되면 죽어야한다고?

탐육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같이 <고기파티>를 즐긴 놈들이 무슨 깨끗한 척이란 말인가.

어둠속에 숨어 풀떼기만 먹는 삶은 질렸다.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인류.

기계에게 들키지않고 강인한 육체를 지녔으며 2년만에 성체로 자라나는 번식력까지.

마땅히 지상, 구세대 허접한 인간들을 가축삼고 새로이 문명을 번성시킬 새시대의 주인들이다!

"아끼지말고 모조리 씹어먹어라! 위에 고기는 넘칠테니! 밤이 되면 위로 올라간다!"

우아아아아아!

터져나오는 함성에 거구의 사내가 크게 웃었다.

**

<내전이 종결됐습니다.>

<현재 지하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즉시 벗어나 전쟁에 대비하십시오.>

좁은 폐허틈새, 끊임없이 떠오르는 경고음.

이를 보며 미간을 좁히던 강태석의 앞, 가쁘게 숨을 내쉬던 사내가 주머니에서 작은 버튼을 꺼내들었다.

딸칵.

"이걸 작동시킬거다. 틈틈히 설치해뒀지."

"..."

"우리는... 위로 올라가서도 안되고 올라갈 자격도 없다. 이미 선을 넘었기에. 하지만 이 아이는 아냐."

사내가 소녀를 안쓰러움과 어여쁨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

자신이 각별히 신경썼기에 아직 죄를 짓지 않았다.

이 지하에서 올라갈 자격을 지닌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아마 이아이가 되리라.

한살도 채 안된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쿨럭. 네 생명의 은인이잖나. 잘 보살펴다오."

"..."

"어서 가. 난 짐이다. 1000을 세고 누를 테니 그전에 빠져나가라.”

이에 강태석이 눈을 지긋히 감았다 뜬뒤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의미.

잠시후.

아아... 아아...

타타타타탁.

소녀의 손을 잡은 강태석이 어둠속, 사내를 뒤로한채 내달리기 시작했다.

**

"아아! 아아아!"

콩!

콩콩!

자신에게 손을 잡힌채 뛰던 소녀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강태석의 뒤통수를 콩콩 때렸다.

왜 놔두고 가냐는듯 울먹이며.

하지만 강태석 입장에서도 어쩔수 없다.

'... 그런데 점점 아픈데.'

뒤통수의 충격을 애써 무시하던 강태석이 정신을 집중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대충 외워두었다.

기억대로라면 조금만 더가면 출구.

강태석이 소녀의 손목을 잡은 손을 꾹 쥐고 발에 한층더 힘을 주려던 그때.

퍼어어어억!

"크흐. 어딜가나. 고기야."

타탁.

창이 내리꽃힌 앞바닥.

이를 피해 멈춰선 강태석이 저멀리, 길을 막은채 웃고있는 샛노란 눈동자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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