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투타타타!
투타타!
총성이 빗발치는 타워 안을 강태석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배급.
여전히 작동하는 사옥 곳곳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
층마다 자리잡은 열두개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루어지며 안에 있는 물건은 그때그때, 날짜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위에서 뭘 내려보낼지 결정하는 <올림포스>의 기분에 따라 말이다.
그리고 덕분에 세피로트의 <기둥> 부위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된 상황.
부족하게 지급되는 배급과 운좋게 얻을수있는 <대박>을 노리고 모여든 이들이 그야말로 살육전을 벌인다.
"우리 쉘터도 저기에 있다가 그냥 나왔어. 바깥보다 나름 풍족하긴 한데 죽어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데 설마 정상부까지 가야해?"
진입하기도 전부터 긴장하는 아린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건 사옥의 상층부.
굳이 거주구인 <올림포스>까지 갈 필요는 없다.
아마 갈수도 없을테고.
'일단은 들어가서 판단해봐야겠다.'
뿌득.
입구를 보며 몸을 푼 강태석이 아린을 바라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엄호를 받았지만 안쪽에서는 혼자 움직이는게 편하다.
폐쇄공간이기에 저격의 위험성도 낮고 무엇보다 빠르게 돌파해야할 구간이 많을테니 말이다.
"갔다오지."
"계단탈거면 북쪽으로 가 아저씨. 유리라서 여차하면 도와줄수 있으니까."
"..."
아저씨라는 단어에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아저씨라니.
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철컥.
폐허사이, 몸을 숨기며 총구를 정면으로 겨누는 아린을 뒤로한 채.
터어엉!
숨을 고른 강태석이 300m, 뻥 뚫린 타워의 입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세피로트타워 근처, 고층건물 폐허 15층.
"다들 질리지도 않나봐. 저긴 왜 기어들어가는지."
키이잉...
철컥.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가 자신의 화기를 들어 저 멀리, 엄폐물이 없는 황무지를 내달리는 상대를 겨누었다.
거리는 대략 700m.
폐허에서 입구까지 상대가 달려야하는 거리는 300m.
그정도면 다섯발도 더 쏴서 맞출수 있다.
제법 빠르긴 하지만 말이다.
"배낭에 칼에... 가진게 좀 있네. 세상이 하수선하니 너무 원망하지말자고."
총알 한발보다 가진게 많으면 남는 장사.
무엇보다... 만약 살아남아서 나오면 귀찮아진다.
이상하게 저 안에서 살아나온 놈들중 가끔 상상도 할수없는 괴물이 되어 나온 녀석들이 있었으니.
끼릭...
온전히 조준을 마친 사내가 조준경 정가운데 선명히 들어온 상대를 보며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퍼어어어억!
"커헉... 이런 미친! 방어드론!"
키이이이이잉!
직경 30cm.
자신의 오른손을 쏴 꿰뚫은 허공의 금속원반을 본 사내가 기겁을 하며 허둥지둥 폐허뒤로 숨었다.
**
키이이이이이잉!
키잉!
내달리는 강태석의 뒤로 거대한 말벌소리가 쉴새없이 울려퍼졌다.
비친 칼뒤로 보이는건 허공을 붕붕 날아다니며 은빛 선을 그려대는 두개의 금속원반.
퍼어어억!
퍼억!
썅!
와아악!
두개의 금속드론이 날아다니며 사격을 가할때마다 폐허 구석구석에서 쌍욕과 비명성이 울려퍼졌다.
한두명이 아닌것이 무시하고 달렸으면 벌집이 되었을수도 있는 숫자.
그때.
키이이잉...
무량기공을 둘러싼 강태석의 뒤통수로 강렬한 기척이 느껴졌다.
난리가 난 상황,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맞추겠다는 선명한 의지.
이에 맞추어 강태석의 몸과 손에 들린 칼이 핑그르르 회전했다.
이윽고.
쩌어어어어어엉!
칼과 탄환의 충돌.
놀랍게도 강판을 꿰뚫을 위력을 지닌 총알이 휘둘러진 칼날에 의해 정확히 잘려나간다.
마치 무아지경과도 같은 속에서 행해진 그 신기에 다시 땅에 내려앉아 내달리던 강태석이 만족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레벨 5.
10까지의 절반.
강해진 육체. 증가된 근력, 늘어난 오감.
자신은 착실히 초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점점더 예전의 그 감각을 되찾으며.
키이이이잉!
퍼어억!
귓가,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요란한 기동음과 사격음을 뒤로한채.
터어어엉!
발을 구른 강태석이 어느덧 눈앞까지 다가온 정면, 환영하듯 열려있는 어두컴컴한 기둥의 입구로 뛰어들었다.
**
후우우웅...
킬링필드라는 명성과 달리 건물 안쪽은 제법 고요했다.
로비의 형태를 띈 1층.
그 너머로 보이는, 지금은 망해버린 명품샵들.
세피로트 타워 저층부는 예전 복합공간의 쇼핑몰로 꾸며진곳.
하지만 건물 전체에 불이 꺼져있고 대리석바닥 위 건물 전체에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그때의 화려함은 눈씻고 살펴도 찾아볼수 없다 .
빙글.
로비를 빠르게 가로질러 안내데스크를 타고넘어 몸을 숨긴 강태석은 숨을 돌렸다.
"그냥 쉬었다올걸 그랬나."
대리석 벽면에 기댄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총알을 쪼개긴 했지만 매번 그런식으로 대처하긴 영 힘들다.
체력, 마력은 둘째치고 강갑 쿨타임이라도 돌렸으면 좀 좋았겠는가.
3단계 강갑이 적용되면 방금전 저격은 몸뚱이로도 어느정도 받아낼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없는거에 목매달필요 없지."
스르륵.
강갑 2단계.
몸 내부 전체를 전투용으로 강화한 강태석이 망가진 태도, 야마하대신 새로 받아온 칼을 꺼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칼이라기보다는 복잡한 기계장처치럼 보이는 물건을.
<리벨리온>
>레벨제한 : 5
>다목적 근접전투지원병기.
>이계너머, 어떤 상황에서도 마력에 의해 작동하는 이 병기는 일곱개의 초소형지상드론을 통해 병기사용자를 지원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칼날은 병기이자 안테나의 역할을 합니다. 단단하지만 망가질 경우 원활한 드론플랫폼 사용이 어려워질수 있습니다.
그런 설명창을 입증이라도 하듯 검푸른 칼날의 부분에는 칼날을 관통하는 일곱개의 작은 원형구슬이 보였다.
하나하나가 대략 직경 1cm정도.
거기에 강태석이 마력을 불어넣자 끼리릭 소리가 나며 원형의 구슬들이 딸깍딸깍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구슬에서 뻗어나오는 네개의 강철 철사, 아니 다리.
끼리릭.
순식간에 원과 네개의 선을 이용해 그린 만화의 거미같은 모양새로 변한 일곱개의 구슬들이 칼날에서 터터텅 떨어져내리며 땅 위에 안착해 뽈뽈뽈뽈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강태석을 주변에서 호위하듯, 바쁘게.
끼리릭...
끼릭...
호기심많은 생명처럼 주변폐허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찔러보며 돌아다니는 드론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숨을 골랐다.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드론들.
전투능력이 없고 컨트롤하기도 힘들지만 주변을 살피는 정도로 활용하기는 그만.
끼리리릭...!
바닥을 기어다니는 드론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목표가 데이터니 굳이 내부에서 벌어지는 배급항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거리가 먼곳, 무너진 계단을 타고 사람을 피해다니며 위로 쭉 올라가면 되니까.
정찰기능을 지닌 리벨리온을 가지고 온 이유가 그것.
잠시후.
끼리리릭...
끼리릭...
어둠속에 잠긴 강태석의 신형이 조용히 흩어지는 기계거미들을 따라갔다.
**
세피로트 타워.
정상, 그보다도 더 위.
타타타타타!
<우아아악!>
<제기랄 놈들아! 우린 이번 배급 없으면 굶어죽는다고!>
"하하. 저놈들 꼴좀 보세요."
"진짜 웃기는군요."
아래 폐허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녹지의 대지, 안락하게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십수 남녀들이 하늘에 뜬 화면을 보며 유쾌히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허공이 아닌, 원형의 땅 전체를 감싼 반원형의 유리돔에 뜬 화면을 보며.
돔에 의해 격리된 내외부.
그안의 청정한 공기와 자체적인 생태계를 이루어 관리되고있는 녹색의 정원과 꽃들까지.
지상 1km, 그 위에 높이 뜬 올림포스는 지상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바로 세피로트 타워 지하의 자동화 플랜트와 연동되어 운영되는 올림포스의 에코시스템.
그야말로 지옥 위의 천상낙원.
하지만...
투타타타타타!
타타타!
우아아아악!
정원 사방에 설치된 서라운드 시스템에서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비명과 허공의 화면을 즐기는 남녀들의 눈가에 맺힌건 마냥 즐거움만이 아니었다.
화려함과 미소사이로 드러나는건... 억눌린 광기.
"... 그나저나 언제까지 여기에 갇혀있어 할까요? 답답한데."
"하하. 기다리고 있으면 어련히 센트라에서 구조대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데."
"하긴. 우리가 막 버려질 그런 사람들은 아니죠."
하지만 말을 하며 여유롭게 웃는 이들의 얼굴은 현실을 부정하고자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도시가 함락된지 1년 반.
구조대가 오기에는 이미 충분한 시간.
하지만 누구도 오지 않는다.
여유로운 물자로 <배급>을 뿌려대며 하늘, 돔위에 뜬 벌레들을 보고 즐기며 현실을 잊고자하지만 고개를 내려 선명하게 보이는 지상을 보면 현실을 잊고 싶어도 잊을수가 없고.
아무리 불안감을 떨치려고 해도 오지않는 구조대와 갇힌 자신들의 신세를 떠올리면 점점 가슴한켠이 답답해진다.
우득.
이를 대변하듯 웃던 이들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던 포크 하나가 마치 종잇장처럼 우그러진순간 주변의 웃음이 멈추며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몰렸다.
마치 연극이 멈추듯, 연기가 끝나듯.
그런 이들의 시선속에서 포크를 움켜쥔 사내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호탕하게 외쳤다.
"으하하. 답답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아래 <사냥>을 좀 다녀오도록 하지요."
"아아. <사냥>."
"아하하. 잘 다녀오십시오. 여기서 저흰 지켜보고 있을테니."
사냥.
사내의 입에서 나온 그 한단어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남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
세피로트 기둥부, 50층 계단.
끼리리릭...
끼리릭...
작은 무언가가 빠르게 사방을 살피며 비상통로계단을 타고 올랐다.
얼핏 보면 벌레라 생각하고 넘어갈 정도의 미약한 움직임.
그렇게 작디 작은 일곱개의 선들이 벽을 타고 오른뒤 어둠속에서 스르륵 인영이 따라 올라왔다.
"기분나쁠 정도로 페이스가 좋은데."
계단을 타고오른 강태석이 50F라고 써진 글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표, 데이터가 있을 중앙제어실의 위치는 150층.
삼분지 일까지 한번의 충돌없이 도착했다.
그리고 이런 추세라면 150층까지도 충돌할 일이 없어보였다.
왜?
어차피 밖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은 오직 층마다 자리잡은 열두개의 엘리베이터들을 중심으로 활동중이었으니.
매층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건 아니기에 그들도 때때로 계단을 타고 이동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엘리베이터 근처 계단의 일들.
방송으로 알려주는 배급위치 주변의 계단들만 피해 드론으로 살피며 올라가면 위험할 일이 없다.
착실히,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스르륵.
강태석이 다시 어둠에 몸을 숨긴채 드론들을 올려보내며 위로 향하려고 했다.
급할건 없지만 마냥 시간을 낭비할수도 없다.
같이 온 아린이 지금도 바깥에서 싸우며 시간을 끌고 있을테니.
빠르게 데이터를 확보한뒤 합류해서 돌아가는게 베스트.
그리고 만약 운이 좋다면 중앙제어실에서 한가지 <실험>을 더 해볼수도 있다.
"코드 <롱기누스>가 작동하려나."
중얼거린 강태석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려던 그때.
키이이이이이잉...
키이이잉...
<경고. 경고. 지금부터 사냥이 시작됩니다.>
<사냥터 추첨중... >
<추첨완료. 46F-52F까지의 층이 폐쇄됩니다.>
<해당층의 인원들은 모두 준비하십시오.>
동시에.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어쩐지 운수가 좋다 했다."
콰르르르르릉!
녹아들듯 들러붙어 사라지는 위쪽 계단 통로를 보며 강태석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