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마치 마법처럼 52층과 53층사이, 비상통로계단의 벽들이 녹아붙으며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틀어막는다.
콰르르르릉!
터어어어엉!
이제까지 조용히 움직이던 강태석이 단번에 계단을 박차며 겅충 뛰어올라 벽이 막히기전 통과하려고 했지만 실패.
쿠르르르릉!
해일처럼 밀려들어 단번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벽을 보던 강태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리벨리온을 휘두르려다가 움칫 멈춰서고는 땅에 내렸다.
타탁.
"... 지금 수준으로는 못 뚫겠지."
팅팅.
계단에 선 강태석이 자신의 바로위, 이제는 통째로 막혀버린 천장을 칼로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이 건물의 재질이 뭔지 모른다면 모를까, 알고있는데 리벨리온을 전력으로 휘두르는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자신의 리벨리온을 박살내버리겠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한 검기, 그것도 상위급 검기를 사용해야 간신히 갉아내며 뚫어볼수 있는 수준.
만약 30레벨마저 넘어 <강기>를 사용할수 있다면 두부처럼 썰어낼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림도 없다.
"그래. 갇혔다 이거지."
46층부터 52층.
터어엉...
아까전에 울려퍼진 방송을 들었던 강태석은 미련없이 칼로 한번 두드려본뒤 천장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비상계단 밖으로 나가는 철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사냥>이라는 것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던가.
아니면 직접 층 안으로 들어가 위로 올라가는 또 다른 방법을 찾던가.
그런 강태석의 생각이 끝나기도전 건물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낭랑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이번 사냥의 룰 역시 동일합니다.>
<현재 46층부터 52층까지의 총 인원, 414명.>
<만약 당신들이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참가자를 잡는다면 승리!>
<<올림포스>의 참가자는 단 1명.>
<성공할경우 생존한 여러분들 모두에게 1인당 20일분의 보급과 추가보상이 주어집니다.>
<제한시간 30분. 이 시간이 지나거나 한쪽의 인원이 몰살하면 사냥은 끝납니다.>
<모두 힘내주시길.>
<180초후 올림포스의 참가자가 내려옵니다.>
414대 1.
턱도 없이 유리한 숫자.
거기다 이 세피로트에 살아남아있는 이들중 무력한 민간인은 없다.
하나하나가 생존력과 화기로 무장한 전투인원들.
말그대로 사냥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턱도 없이 불리하네."
강태석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올림포스, 1층.
더불어 세피로트 기둥부 최상층, 151층보다 한칸더 위에 위치한곳.
고작 한층 차이지만 그 격차는 1층과 151층간의 차이보다 더 크다.
그런 올림포스 1층, 화려한 대리석과 장식으로 치장된 엘리베이터 문 앞에 알몸으로 선 사내가 웃었다.
이 엘리베이터만이 유일하게 올림포스와 아래, 세피로트타워를 연결한다.
즉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문.
키이이이잉....
<48F... 49F... 50F...>
맹렬하게 커지고 있는 엘리베이터 위, 패널의 숫자를 보던 사내가 흥을 참지 못한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릴때 그 영화를 참 좋아했지. 시빌워 말이야."
시빌워.
지구를 지키던 영웅들이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싸웠던 영화.
자신이 그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하나다.
수많은 히어로중 가장 좋아하던 두 히어로가 주역으로 등장했으니까.
전신을 강철의 병기갑옷으로 무장한 아이언맨.
강화시술을 받고 초인이 된 캡틴 아메리카.
하지만 태생이 가난했던 캡틴 아메리카와 달리 자신처럼 커다란 부를 거머쥐었던 아이언맨에게 좀더 동질감이 갔고.
그렇기에 어릴적 영화를 볼때마다 한가지를 도통 이해할수 없었다.
왜 두개를 나뉘어 가져야하지?
초인의 육체와 강철의 병기.
왜 아이언맨은 바보같이 두가지를 동시에 지니지 않지?
그의 능력과 재력이라면 캡틴 아메리카의 육체도 지닐수 있었을테고.
그랬다면 영화에서와 달리 캡틴 아메리카를 그야말로 형편없이 두들겨패버릴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나이가 먹어서야 깨달았다.
영화에서는 각 영웅들의 아이덴티티와 파워밸런스를 고려해야했기에 어쩔수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현실의 자신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술준비완료.>
<시작하시겠습니까?>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키이이이이이잉...
벽면이 스르륵 녹아나듯 자라며 영화속에서나 볼법한 수많은 기계팔들과 주사기가 튀어나왔다.
뒤이어 아이언맨의 일부를 연상시키는듯한 전신갑옷 파츠들도.
그리고 잠시 후.
치이이익...
<나노머신 강화시술중... >
<시술 한계치까지 육체를 강화합니다.>
"끄흐... 흐아아아아! 으하하하!"
사방에서 꽂힌 주사기.
동시에 전신에 차오르는 힘과 활력에 사내가 기분좋게 웃으며 우렁찬 괴성을 내질렀다.
**
<151F.... O>
키이이이이이이잉!
151층을 지나 올림포스를 상징하는 O에 잠시 멈춰섰던 엘리베이터가 그야말로 맹렬한 기세로 아래를 향해 질주했다.
150층, 130층, 87층, 60층!
마치 지상을 향해 내리 꽂히는 벼락처럼.
이윽고.
<... 52>
띠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선순간 그 입구쪽, 진즉에 대기하고 있던 십수명의 남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그들의 손에는 개인화기가 잔뜩 들려있는 상태.
돌격용화기부터 시작하여 진지구축용 머신건, 저격용 소총까지.
스르르륵...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문을 본 남녀들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며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은 서로 싸웠지만 지금은 힘을 합쳐야할 때.
이 <사냥>에 성공하기만 하면 이루 말할수없는 넉넉한 보상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이정도 화기라면 고작 인간의 육신 하나 걸레짝으로 못만들겠는가!
하지만 문이 열리고 그곳에 총알을 쏟아 부으려던 이들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금새 깨달았다.
치이익...
열린문 너머, 금빛 엘리베이터안.
보이는건 전신을 기묘한 갑옷으로 휘두른 사내.
이에 사람들이 어버버하면서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
콰직!
"꺼어어억... "
"어어?? 어어어?"
사방으로 튀는 피.
순식간에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동료의 모습에 서있던 이들이 눈을 끔벅였다.
범인은 어느새 그들사이에 나타난 갑옷사내.
주먹을 내뻗은 사내가 그들을 보며 소름끼치게 씨익 웃는것을 본 순간.
"우어어... 우아아아아아아!"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
투타타타타!
"으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
콰지지직!
콰득!
정신차린 사람들의 괴성과 사격음.
그리고 이를 통째로 덮어버릴듯한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소름끼치는 파열음이 바닥과 천장을 타고 플로어 전체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현재 플로어 생존자... 401!>
<올림포스측 생존자... 1!>
<여러분. 이제 고작 30초 지났습니다. 모두 분발해주세요.>
울려퍼지는 기계음.
어느새 51층 플로어로 걸어나와있던 강태석이 이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사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플로어의 생존자들이 올림포스측을 사냥하는게 아니다.
그 반대.
올림포스측이 내려와 플로어의 인간들을 사냥하는것.
<위>의 녀석들에게만 허용된 나노머신 생체강화시술.
이로 인해 극한으로 강화될 육체. (추정 10레벨,스탯 최상급).
거기에 주렁주렁 달고올, 도심 주민들은 죽기전까지 한번도 보기힘들 A급 군용병기들.
이건 30분의 제한시간동안 올림포스측 참가자가 도망다닐까봐 걱정해야하는게 아니다.
되려 30분동안 몰살을 걱정해야할 정도의 전력차.
그리고 그건 강태석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도망다닐수 있을까? 30분동안?'
어느새 드론들을 모두 리벨리온에 수납한 강태석이 이를 빙글 휘두르며 생각했다.
30분동안 도망칠수 있을까?
이제부터 52층에서 46층, 일곱층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다닐 녀석을 상대로?
이에 대한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불가능.
숨는것도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 플로어 전체가 녀석들의 감시 하일테니.
"싸워야겠네."
강태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투쟁을 결심하자마자 두개의 신체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뇌와 심장.
심장은 두근거리며 뜨겁게.
뇌는 착가라앉으며 차갑게.
당연히 혼자는 못이긴다.
이 플로어 전체에 있는 생존자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한판 붙어야한다.
그리고...
'인질로 잡는다.'
그렇게 인질로 잡아 단번에 주파한다.
녀석을 이용해 150층까지, <기둥>의 인원은 이용할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촤르륵.
결정을 내린 강태석이 칼을 쥐고는 빠르게 플로어의 어둠속 어딘가로 내달렸다.
**
30층부터 80층.
세피로트 분양당시 비싼 가격에 팔렸던 레지던스 구역.
차원이 다른 올림포스만은 못하지만 이곳 또한 산다면 주변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만만찮은 가격과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거주공간이었다.
그중 51층, 5105호.
타아아아앙!
"당장 나가서 싸워야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저 빌어먹을 새끼를 잡아죽여야 한다구요!"
109평 넓이, 고급스런 내장과 다섯개의 방, 네개의 화장실을 자랑하는 레지던스의 커다란 거실에 모여있던 수십명을 향해 한 사내가 대리석 탁자를 으스러져라 내리치며 울분을 토했다.
이곳, 51층을 기반으로 살아가고있는 무장세력의 리더.
사내는 평상시에도 항상 자신들끼리 싸울게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저 <올림포스>를 뚫어야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151층, 수천명에 달하는 모든 생존자들이 힙을 합친다면 불가능한것도 아니라면서.
<배급>같은 녀석들의 농간에 서로 싸우느라 힘빼지말고 플랜트 시스템을 탈취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자체를 손에 쥐어야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말에 늙구수레한 노인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힘없는 목소리와 흰 수염과는 다르게 총을 잡은 팔뚝은 마른 근육이 선명하여 인상적인.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자를 잡자고?"
"그럼요."
"어떻게? 너는 저번 사냥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으니 알 테지. <저게> 싸워서 이길 만한 수준이던가?"
"..."
"그래. 그리고 만약 운이 좋아 저 하나를 잡는다고 치자고. 그러면 그 위에 내려올 녀석들은? 설마 1년전 <그날>을 잊은 건 아니겠지."
1년전, <그날>이라는 노인의 말에 사내를 비롯한 몇몇 관록있는 이들이 눈을 감았다.
그날.
사내 이외, 혁명을 주장하던 혁명단원들이 힘을 모으고 함정을 파서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여인을 습격한 날.
사냥을 내려온 여인은 다른 올림포스 인원들처럼 육체를 강화하고 기계갑옷으로 무장했지만 그날이 처음이라 그랬는지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게 보였고.
덕분에 자신들은 여인을 몰아붙여 제법 깊은 상처를 입히고 엘리베이터 위로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즉 그날은 그들이 처음으로 <위>의 인원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승리를 쟁취한 역사적인 날.
하지만 그 이후로 끔찍한 재앙이 찾아들었다.
<감히> 자신들의 권위가 범해졌다고 생각한 올림포스의 거주자들은 참지 않았고.
즉시 모두가 생체강화시술과 기계병기로 무장한채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으니까.
백서른다섯.
하나만 해도 수백을 몰살시킬수있는 이들이 자그마치 백서른다섯.
그날 사냥에 참가했던 500명 가량의 혁명단원들은 전원 몰살당했고.
연좌제로 학살당한 그들의 가족들까지 합하면 그날 하루만에 죽은 인원들의 숫자는 자그마치 이천에 달했다.
<배급>으로 인해 언제 그랬냐는듯 세피로트 타워는 모여든 생존자들로 얼추 빈자리가 채워졌지만... 그날 벌어진 일까지 모두 잊을수는 없는 법이다.
그날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에겐 말이다.
"..."
"운에 맡기자꾸나 운에. 운이 좋다면... 이번 <사냥>에 나온 이가 몇은 살려둘수도 있겠지. 우리가 잘 흩어져 도망친다면 더욱 그렇고."
그런 노인의 말과 주변 체념하듯 끄덕이는 이들의 얼굴에 사내가 터져라 이를 악물던 그때.
끼드드드드득...
끼기기긱...
"벌써 포기하면 곤란한데."
"!!!!!!!!!!!!!!!!"
철문을 쪼개며 들어오는 칼날과 목소리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SNS.
선동과(S) 날조로(N) 승부한다(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