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철컥.
자신의 뒤통수를 겨누는 소리에 강태석이 양손을 들어보이며 뒤를 돌았다.
보이는건 잔뜩 겁먹은채 자신을 겨누고있는 소년.
그리고 뒤에 선, 더 어린 두명의 쌍둥이 소녀.
각자 열 두어셋 쯤 되었을까.
셋의 나이를 다 합쳐도 채 40이 안될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가 더 궁금할 정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신을 쏘겠다는데 가만히 양손들고 있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의 : 현재 1개의 운영모드가 사용가능합니다.>
<모드 : 리틀-비틀>
<사용하시겠습니까?>
전투강갑 3단계가 없는 지금 기계화도 안한 자신은 총맞으면 구멍이 숭숭 뚫리는 상황.
칼을 뽑기에도 너무 가깝다.
강태석이 이에 동의한 순간.
촤르르륵.
왼손, 이제는 희미해진 원형도형에서 미세한 금속액체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피부를 타고 흘렀다.
"어어? 어어어!"
그 갑작스런 소음에 소년이 놀라 뒤로 주춤한 순간.
타아아아아앙!
저도 모르게 당겨진 방아쇠에 굉음이 터져나옴과 함께.
티이이이잉!
발사된 탄환이 강태석의 피부, 무언가에 경쾌하게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체는 순식간에 경화되어 피부에 자리잡은, 직경 10cm 정도의 작은 은빛 타원.
스르륵...
총알을 막아낸 은빛 원반은 순식간에 다시 액체로 돌아가더니 스르륵 강태석의 피부를 타고 옷속 어딘가로 숨었다.
<모드 : 리틀-비틀>
>나노머신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오히려 이해할수 없는 생명에 가까운 물질.
>소량의 나노머신은 당신의 마력을 추출해가는 대가로 당신을 숙주로 이해하고 보호하려듭니다.
>레벨과 마력이 성장할수록 당신은 더 많은 딱정벌레들을 부리고 보호받을수 있게 될것입니다.
'좋아.'
강태석이 살짝 욱신거리는 피부부위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끊임없이 개량된 개인화기의 강렬한 충격량은 원반이 막아준다고 다 해결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피부아래, 전투강갑 2단계로 흩어냈다.
전투강갑 3단계보다 훨씬 효율적인 사용법.
물론 빗발치는 화망속에서는 어림도 없겠지만 이런 기습적인 한두발정도는 충분히 막아줄수 있다.
"이 아저... 형이 한발은 봐줄테니까 그거 내려놓으렴. 안먹히는거 봤지?"
"으으..."
"그리고 나쁜 사람 아니다. 이거봐."
강태석이 자신의 어깨 위, 푸른 돌고래가 그려진 완장을 톡톡 쳤고.
그제서야 어둠속의 완장을 발견한듯 소년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효과가 있네.'
강태석이 어깨의 푸른 돌고래 완장을 바라보았다.
이는 페리트란이 만들어준 것.
<우리 쉘터가 무슨 착한 놈들의 모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개판속에서 누군가는 질서를 유지해야겠지. 그게 어느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우리도 지켜줄거다.>
현재 자신이 몸담은 페리트란의 쉘터는 어쨌건 명분을 지니고 있으며 현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습게 보여서도, 물러서서도 안된다.
한입한입 물어뜯기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온 사방이 개판이 된 지금, 자신들 쉘터민이 이에 휩쓸려 다른 쉘터의 누군가에게 당한다면?
상대가 몰랐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게 놔둘수는 없다.
그렇기에 만든 표식.
적어도 자신들 쉘터민을 해한 이는 이를 알고 행했다는 의미가 되며.
자신들은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보복할것이기에.
상대도 사생결단을 내려는게 아닌 이상 섣불리 건드릴수 없다.
물론 자신들도 명분을 줄수 없으니 섣부른짓 하지 말고 조용히 상태 유지에만 힘써야겠지만 이런 족쇄가 반대로 소년같은 피난민들에게는 청신호가 된다.
적어도 자신들은 다른 쉘터처럼 헛짓거리는 하지 않는다는걸 말해주니 말이다.
"죄송... 죄송해요."
"괜찮다. 그럴수도 있지."
손을 휘휘 저은 강태석이 오빠와 여동생들로 보이는 셋에게 다가가 물었다.
"위로 올라가지 왜 여기있니."
"여기가 그나마 안전해요. 솔직히... 우리까지 지켜줄 여력은 없잖아요."
등뒤에 멘 배낭끈을 꾹 움켜쥔 소년의 말에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
헛짓거리야 안하지만 자선구호단체도 아니다.
끝없이 밀려드는 피난민들.
페리트란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꼼꼼하고 엄격하게 물자를 운영해왔기에 제법 여유가 있긴 하지만 그들 모두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받아줄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닌 상황.
'나도 뭐... 해줄수 있는건 없지.'
그리고 소년의 말마따나 여기가 좀더 안전하긴 하다.
위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긴 하니까.
거기다 운좋으면 지하 공동망 구석구석에 남겨진 물자도 구할수 있는 상황.
"여긴 막다른 길이니까 다른데 가서 찾아보렴."
짧게 말을 마친 강태석은 지하통로의 다른 곳으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원래 목적은 이근처 허튼짓을 하려는 놈들을 대상으로 한 순찰.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더해졌다.
'아무래도 찝찝해. 좀 알아볼수 있으면 좋겠는데.'
보행중장비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한것처럼 보이는 용접.
그냥 한때 이곳에 고립되었었을 생존자들이 다른 도구로 했다고 여길수도 있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상황.
물론 우선순위는 여전히 순찰이긴 하다.
찝찝하고 불분명한 무언가와 달리 난장부릴 녀석들은 배의 건조에 명확하고 선명한 위협요소니까.
그렇게 강태석이 갈라진 지하통로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순간.
쫑쫑쫑.
"... 얘들아. 난 엄마오리가 아니란다."
자신의 뒤를 조심스럽게 쫑쫑 따라붙는 세 아이들을 보며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
지하도.
철벅.
"아저씨.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어요?"
"형."
"... 하. 그래요 형."
선심썼다는듯 한숨을 팍 내쉬는 소년의 말에 강태석은 손이 근질거렸지만 참기로 했다.
여동생들 앞에서 오빠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주는건 아무래도 정서 교육상 좋지않으리.
"아직 안 강해. 멀었지."
"에이. 총알도 막아냈으면서. 혹시 사이보그 시술한거에요? 그거 원래 불법이었다는데."
"호기심이 많을 나이구나. 하지만 프라이버시란다. 기억해두렴. 비밀이 많은 남자가 인기가 많다는걸."
"인기 많아요 형?"
"..."
대화를 중단하고 앞을 바라보며 걷던 강태석은 흘끔 고개를 돌려 옆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제법 야무진 체구, 유연해보이는 몸.
재능은 있어보인다.
배우면 금방금방 뭔가 익히기는 할것같은 상태.
하지만 딱 거기까지.
레벨로 치면 2.
뒤의 소녀들은 1.
아무리 봐도 이 무법천지 개판이었던 도시에서 살아남기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하긴 뭐 그런것도 아닌가. 총만 잘 다루고 독심만 있으면.'
자신이나 구스트같은 케이스가 특이한거지 레벨 10 이하는 총만 잘 갈기면 사이좋게 너도 한방, 나도 한방.
한두방 버틴다해도 주춤주춤하는 사이 자동사격으로 드르륵 갈아버리면 그걸로 끝.
애초에 자신같이 육체로 싸우는 기계사냥꾼 등이나 강력한 신체가 필요한거지 화기전문가나 테크니컬같은 직업들에게는 다른 요소들이 더 컸다.
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 아까 그거 실수맞지? 방아쇠?"
"하하 무슨 소리세요 형님."
형에서 형님.
넉살좋게 웃는 녀석을 가늘게 눈뜨고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지하통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발소리가 들리면 숨는 생존자들의 기척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대다수가 소수지만 마주치는 횟수가 상당하다.
이 근방만 이정도라면 지하 공동망 전체에는 상당히 많은 피난민들이 들어와있다는 이야기.
'그래도 쓸데없는 녀석들은 없어보이니 됐나.'
강태석이 콧숨을 내쉬었다.
상황 좀 힘들면 저들도 언제든 강도로 돌변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긴장상태에서 그렇게까지 할 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저들로서는 배의 건조 장소로 가는 철판을 뚫을수도 없고 말이다.
문제가 되는 녀석들은 위의 쉘터녀석들인데 그런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상황.
이정도면 됐다 여긴 강태석이 주변을 좀더 둘러보려던 그때.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
폭음, 그리고 들려오는 진동.
거기에 뭔가 무너지는 소리.
심상치않은 사태에 강태석의 미간이 좁아졌다.
**
지하 공동망, 제3입구.
"자자. 귀찮은 놈들 들어올까봐 일단 입구 막았다. 이제 천천히 진행해보자구."
쿠르릉...
무너진 잔해를 보며 웃은 남자가 널찍한 지하도 안에 보인 수백명의 남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여 여유롭게 웃고 있는 이들.
하나 하나가 겁에 질린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다.
게임, <술래잡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각 쉘터들마다 차출된 최대 다섯명의 인원들.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사내가 말을 이었다.
"룰은 간단해. 지금 이 격리된 지하구역 안에 피난민들이 우글우글하다. 대충 알기로 일천은 가볍게 넘지."
"우왓. 징그러. 바퀴벌레같이."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거야. 쥐새끼도 아니고."
웃으며 웅성거리는 이들.
하나하나가 사납기 그지없다.
그런 이들을 보며 앞에서 설명하는 이가 속으로 혀를 찼다 .
'아주 그냥 제대로 된 놈들만 보냈네.'
아무리 막장인 상황이라도 사람을 바퀴벌레로 보고 쥐새끼로 여기는게 당연할리가 없다.
쉘터도 결국 사람사는 데고 사람들끼리 뭉쳐 버티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 <술래잡기>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보는 녀석들이 유리한 게임.
각 쉘터도 이기기 위해 그런 녀석들만 골라보낸 것이다.
그게 지금 눈 앞의 결과물.
자신도 어느 선을 넘은거같긴 하지만 적어도 저정도는 아니다.
"..."
인간을 사냥감으로만 여기는 수백명의 흉포한 이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내가 이내 진행을 위해 입을 열었다 .
"간단하다고 했지? 제한시간 1시간. 1시간동안 피난민 놈들 털어서 최대한 물자를 많이 모아와. 그 물자들을 점수매겨 높은 점수를 받은 팀이 승리. 물건에 대한 평가는 최근 쉘터간의 거래시세를 그대로 적용한다. 귀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건 당연하겠지? 그렇게 해서 높은 점수를 받은 순서대로 핵융합엔진이나 공업단지의 자재에 대한 우선권을 가질거야."
이에 모여있던 이들의 눈빛이 희번득거렸다.
이게 공업단지에 모인 쉘터 거의 대부분이 이 게임의 참가를 결정한 이유.
그리고 게임에 난다긴다하는 다섯을 보낸 이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하나였다.
다들 원하는건 많은데 강한 놈들이 너무 많이 모였다는것.
당장 핵융합엔진의 에너지만 해도 모든 이들이 충전을 원하지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한세월이 걸릴 것이다.
공업단지의 자재, 트럭, 기타등등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
그렇다고 미련하게 쉘터간 힘겨루기를 할수도 없는 노릇.
그렇기에 이 게임이 주최되었다.
아주 평화롭고 젠틀하게.
서로 피터지게 싸우지 않고도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
"참가안한 쉘터 놈들은? 그놈들이 순서를 인정안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크흐. 하여간 어딜 가나 선비놈들이 있네."
번쩍 손을 든 누군가의 질문과 웅성거림에 앞에 서있던 사내가 웃었다.
"인정 안하면 어쩔건데. 지금 <우리>가 결정했는데."
"으하하하. 하긴."
손을 번쩍 들었던 사내, 구스트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다.
지금 자신들이 결정했다.
과반수, 아니 대다수에 가까운 쉘터들을 대표해 모인 자신들이 말이다.
참가하지 않은 소수의 쉘터따위는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될뿐.
물론 녀석들의 순서는 점수 최하위보다도 아래가 될것이다.
잠시후.
째깍.
"자. 시작. 한시간 뒤 여기로 모여. 시간 늦으면 탈락이야."
"으하하하! 좋아 좋아. 가자 얘들아!"
우렁차게 외치는 구스트와 네 수하들을 필두로.
89개 쉘터, 445명의 참가자들이 우르르 복잡한 지하통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
으하하하!
꺄아아아아악!
투타타타!
"…."
울려퍼지기 시작한 총성과 비명성속.
이를 들은 강태석의 표정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