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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23화 (23/221)

23화

이에 강태석이 판단을 내리기도 전 변화는 빠르게 밀려들었다.

입구의 폭음.

갑자기 울려퍼지기 시작한 총성과 요란한 웃음소리.

타타타타타탁.

타타타탁.

허억... 허억...

"... 온다."

"네?"

쭈욱.

거의 본능적으로 뒤의 소년과 두 소녀를 주욱 지하통로 구석에 밀어넣은 강태석은 손의 리벨리온을 꺼내들고 곧바로 바닥에 구슬, 드론들을 흩뿌렸다.

촤아아악!

흩뿌려지는 일곱개의 구슬.

이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일곱마리의 기계거미.

챠르르르륵.

흩뿌려진 일곱개의 거미가 사방 50m 정도를 스캔해 강태석의 뇌리로 전달했다.

입체적으로, 푸르게 그려지는 사방의 모습.

통로와 어둠에 막혀있는 부분까지 마치 투시라도 된것처럼 푸른 윤곽으로 보인다.

꺽인 코너, 쭉뻗은 통로를 통해 달려오는건 아까전 자신을 피해 숨었던 세명의 피난민.

그리고 뒤쫓아오는 한명의 여인.

퍼퍼퍽...

흐어억!

흩뿌리는 사격 한번으로 단번에 발악하려던 피난민들을 제압하는걸 본 강태석이 심호흡을 했다.

달리는 속도부터 시작하여 정확하게 총기를 쥔 손과 도망치는 다리를 맞추는 실력까지.

보통이 아니다.

거기다 상성도 자신이 불리.

잠시후.

키리릭...

생각을 마친 강태석은 기계거미 한마리를 불러 자신의 손에 쥐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꾸득 힘을 주어 강하게 움켜쥔뒤... 그대로 꺾인 통로너머를 향해 강하게 내던졌다!

이윽고.

휘리리리리리리릭!

퍼어어어억!

억...

"좋아."

마치 마법처럼 직각에 가까운 커브를 그리며 내달린 금속공이 상대의 이마에 직격한것을 느낀 강태석이 그대로 통로밖으로 나갔다.

**

통로, 구석.

"술래잡기라."

'추억의 게임이네.'

살아남은 피난민이 제공해준 금속줄에 꽁꽁 묶여있던 여인의 말을 들은 강태석이 눈을 감았다.

자신이 심심할까봐 그런지 그 짧은 틈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하여간 허튼짓하는데는 도가 튼 녀석들이다.

'물자를 모아야 점수라 이거지.'

강태석이 묶인채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이야 만만한 피난민들을 무슨 게임속 몹마냥 털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지하공동망도 어느정도 물자가 보관되어있다.

사람뿐 아니라 구석구석 뒤지는게 녀석들 점수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

그 말은?

제법 수상하게 용접되어있는 막힌 통로가 있다면... 여기 모인 놈들은 반드시 뚫으려 들것이다.

그리고 피난민들과 달리 녀석들은 이를 충분히 뚫을수 있다.

기본화력이 다른 놈들이니까.

그리고 지하에서 수상한 배를 만들고 있다는걸 들킨다면...

"..."

콧김을 흥 내뿜은 강태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냥 손놓고 있을수만도 없게 되었기에.

손을 좀 써야할상황.

물론 자신혼자서 들어온 수백명을 상대한다는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눈앞의 여자도 기습으로 제압했을뿐, 정면에서 제대로 붙었으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을터.

아까도 말했듯 화망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니까.

하지만... 그건 상대들도 마찬가지다.

"너희 근데 너무 겁이 없다. 흥에 너무 취한거 아냐 다들?"

"...?"

미간을 좁히는 여인을 내버려둔 강태석이 뒤쪽, 기존의 소년들과 합류한 피난민 셋을 바라보았다.

총 여섯.

"이 근처 산책 좀 다니자고."

"산책이요?"

"그래. 일명 <고슴도치> 만들기."

"..."

강태석의 말에 소년은 물론, 응급처치를 하고 있던 피난민들마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

지하통로, 어딘가.

타탕!

"으하하하! 여기 알부자들이 엄청 많네. 뭐이리 챙겨놓은게 많아?"

흐으으으...

노인과 중년과 여인, 그리고 아이.

그중 이미 무력화된 중년 사내의 앞에서 두개의 배낭을 뒤져보던 1남 1녀가 기분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사실 하루 먹고살기 바쁜 피난민들이 물자 가진게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 싶어 그냥 점수딴다는 느낌으로 플레이하기로 했다.

쉘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게 중요하니까.

한데 물자 자체도 생각보다 양과 질이 제법이다.

"하긴 뭐. 생각해보니 그간 모았던거 여기오면서 다 가지고 왔을거아냐."

"하하. 그러게. 우리가 딱 좋은 타이밍에 마주친거네."

"그나저나... 어쩐다."

철컥.

손에 들린 개인화기를 빙글빙글 돌려보던 사내가 구석에 박혀 벌벌 떠는 넷을 바라보았다.

이미 모두 무장해제가 된 상황.

손만 까딱하면 이들은 순식간에 벌집이 된다.

후환을 남기지 않을 목적이라면 지금 이자리에서 정리하는게 베스트.

하지만...

"잠깐. 죽일필요까진 없잖아."

"... 쩝. 그건 그렇지."

터엉.

휘익.

발로 땅에 떨어져있던 화기만 퉁 걷어차 압수한 사내가 여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쉘터민들 중에서도 좀 더 막나가긴 한다.

그러니 쉘터의 이득이 걸린 이 게임에 차출되어 참여된거고.

망설이면 손해를 볼수있는 상황, 자신들은 좀더 망설임없고 차갑게 대처할수 있기에 쉘터의 이익을 대변하러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걸 즐기는건 아니다.

살기위해 어쩔수없이 빼앗고 죽일뿐.

되려 가끔은 자신들이 공격하는 상대에게 동정을 넘어 동질감마저 느낀다.

물론 그게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건 자신들 스스로가 더욱 잘 알지만 말이다.

'쓰벌. 이미 지옥속에 살고있구먼 면죄부는 무슨.'

총을 겨누고 있던 사내가 속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철컥.

"거. 살려는 줄테니 허튼생각들 하지마쇼. 복수하러오면 그때는 우리도 진짜 어쩔수 없다고."

"..."

이에 고개를 끄덕인 노인과 여인, 소녀가 이를 꾸욱 악문채 중년의 사내를 주섬주섬 부축하여 꺾인 통로 너머로 사라져갔다.

누가 봐도 무장해제상태에 완전한 빈털터리.

아마 다른 쉘터의 참가팀들도 구태여 공격하거나 노리진 않을 것이다.

"그래. 이게 차라리 속편하네. 점수나 따러 가자고."

강화된 힘으로 배낭을 들쳐멘 남자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 움직이려던 그때.

철컥.

철커덕.

"살려줄라니까... 진짜."

방금전 살려준 넷이 사라져갔던 통로 너머에서 들려오는 장전음에 두 남녀가 혀를 차며 손의 화기를 장전했다.

개인화기의 수준, 숙련도, 신체레벨.

애초에 자신들은 피난민들이 독기 좀 품는다고 어떻게 해볼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게 이 드넓은 지하 공동망, 자신의 팀을 비롯한 이들이 흩어져 사냥하고 있는 이유.

하지만...

철커덕.

철컥.

"이런 썅."

"... 언제."

가로세로로 쭉쭉 뻗은 통로와 코너 사방에서 들려오는 장전음.

십수군데에서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사내와 여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딱 들어도 수십명.

언제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자신들을 포위했단 말인가.

잠시후.

키이이잉...

사방에서 자신을 비추는 수십개의 레이져포인터 들에 사내와 여인이 침을 꿀꺽 삼키며 총기를 바닥에 떨구고 양손을 들어 내보였고.

저벅.

"아니 이렇다니까. 다구리에 장사없는데 이놈들 왜 이렇게 간이 큰거야."

이게 <술래잡기>의 진짜 의미.

수십명의 무장한 피난민들의 앞으로 걸어나온 강태석이 기가 막힌다는듯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

술래잡기.

원래 의미는 술래가 다른 참가자들을 쫓아다니며 잡는 게임.

하지만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술래를 잡는 게임.

저레벨때 유행하던 이 놀이는 강자들이 약자를 사냥하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고.

그리고 실제로도 소수의 강자들이 뿔뿔히 흩어진 다수의 약자들을 차례차례 잡아가는 형식으로 흘러가지만.

이런 식으로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어 역전될수도, 불리하게 흘러갈수도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철커덕.

철컥.

강태석이 뒤쪽 통로를 바라보았다.

차례차례 인질로 잡혀 무장해제된 서른명 가량의 쉘터팀 참가자들.

그리고 그 옆, 그들 주변으로 우글우글 모인 백수십명 가량의 무장피난민들.

피난민이라고 해도 당연히 총기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쉘터팀의 총기들을 빼앗아 더욱 강력하게 무장했다.

그런 이들이 수십, 수백.

이정도 사이즈 되면 이제 상대라도 섣불리 건드릴수가 없다.

아무리 맹수들이라고 해도 가시가 뾰죽뾰죽 솟은 고슴도치나 호저를 쉽사리 후려치고 물어 뜯을수 없는것처럼 말이다.

"바깥에서는 멀쩡하고 똑똑하게 행동했을거면서 말이야. 하여간 여유생기면 이런다니까."

"..."

인질로 잡힌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강태석을 향해 옆의 소년이 물어왔다.

"형. 안죽여요?"

"..."

"왜요?"

"아니 됐다. 그리고 안죽여."

강태석이 붙잡힌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녀석들은 엄연히 바깥, 쉘터의 인원들.

이 녀석들이 게임에 참가하겠다고 소수로 들어와, 그것도 따로 돌아다녔기에 각개격파 형식으로 어느 정도 손쉽게 제압한거지 쉘터들과 피난민의 총력은 애초에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녀석들을 마구잡이로 죽인다?

그때부터는 분노한 쉘터들의 전력을 받아내야할수도 있다.

"잘 모셔둬야지. 귀중한 인질들이니까."

'나중에 쓸데도 많고.'

몸을 뿌득 푼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사실 어 느정도 <고슴도치>는 만들어졌다.

상대가 무슨 학살에 미친 녀석들도 아니고 이사람들 그대로 끌어모아 건조구역 근처에만 콕 틀어박혀도 폭풍은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전력을 다하면 뚫리기야 하겠지만 상대도 굳이 똘똘 뭉친 수백명에 뛰어들기보다 다른 만만한, 흩어진 피난민들을 노릴테니까.

자신은 술래잡기가 끝날 때까지 건조구역을 지킬수 있어서 좋고.

여기 모인 이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할수 있어서 좋고.

하지만...

'그래. 전력차는 벌려둘수 있을때 벌려둬야겠다.'

듣자하니 쉘터팀 참가자들은 아직도 수백이 넘는다.

지금이야 이 넓은 지하 공동망 덕분에 이기고 있지만 제대로 붙으면 한참이나 부족한 상황.

아직 상대가 눈치채지 못했을때 이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혀놓는게 좋다.

"가자고. 술래잡으러."

이윽고.

촤르르륵...

작은 거미를 앞세우는 강태석의 뒤로 모인 사람들이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

얼마후.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굳이 도망칠필요 없이 뭉치면 저들도 어쩔수없다는 것을.

그렇게 수십명, 혹은 일백 가까이.

미리 들어와 지하 공동망의 구조를 파악하고 서로 어느 정도 교류도 하고 있었던 피난민들은 각자가 각자들의 네트워크와 방법을 동원해 빠르게 뭉쳤다.

그렇게 똘똘 뭉쳐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콕 세우고 처박히니 이제는 쉘터팀들도 섣불리 짓쳐들어가기 곤란한 상황.

화력에서 우위를 점한다지만 그들이라고 총알 박히면 안죽는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까스로 이런 <게임>도 벌일 정도의 여유로운 공간에 들어왔는데 구태여 자신의 목숨마저 걸어가며 점수를 따고싶진 않았다.

즉 게임은 그대로 대치국면으로.

에이 퉤. 똥싸다 만 느낌이네.

그냥 이대로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자고.

지하통로 구석, 모여있던 서너명의 사내들이 침을 내뱉으며 쭈그려앉은채 투덜거렸다.

<자신들이 온전한 포식자인 곳>과 <자신들도 당할수 있는 곳>은 그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 이 거대한 지하 공동망은 전자에서 후자로 뒤바뀐 상황.

괜히 어슬렁거리다가 눈먼 화망에 갈려나가느니 이대로 죽치고 있다가 나가는게 낫다.

하지만...

"크훅.... 크후... 크하... 이 버러지들이."

"어... 어어... 대장? 괜찮아요?"

구석에 쭈그려앉아있던 사내가 벽에 머리를 박고 붉다못해 시뻘건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구스트를 보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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