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콰아아아아아앙!
우드드득!
거체와 인간.
거대한 병기와 붉은 마인이 미친듯이 대지를 으깨며 격돌하는 광경이 온사방에 비추어졌다.
이미 주변에 있던 이들은 이에 휘말릴까 겁나 멀찍히 떨어진지 오래.
몇몇 이들은 지원사격을 해볼까 싶어 총도 쏘아봤지만 그즉시 폭포수처럼 퍼부어지는 반격에 기가 질려 사격을 멈추었다.
그나마 공격을 하지 않으면 눈앞의 싸움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공격하지 않는게 다행.
그 과정에서 안목높은 몇몇 이들은 격돌하는 둘중 한쪽의 정체를 알아챘다.
"센티넬... 센티넬이다."
"웜즈씨 건너편에나 있는 개체가 어째서 여기에..."
"그나저나 반대편은 뭐지?"
그런 그들의 의문속, 치고받는 둘의 싸움은 서서히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서서히 느려지는 움직임, 작동을 멈추는 팔다리.
콰지직직...
적빛 마인의 손이 기계팔의 관절 사이를 깊숙히 파고듬과 동시에.
키이잉...
"우아아아악! 말도 안돼!"
서서히 멈추는 기동, 풀려가는 금속섬유속에서 사내, 구스트가 비명섞인 괴성을 내질렀다.
**
콰지지직!
전투강갑에 의해 강화된 손이 그대로 관절 사이를 깊숙이 파고든다.
그와 동시에 몸 내부에서 튕기고 튕기며 증폭된 강렬한 파동이 손끝에서 터지며 상대의 몸통, 관절과 기계장치들을 타격한다!
터어어어어어어엉...!
손끝에서 퍼졌건만 그 타격이 센티널, 금속팔의 관절부위를 지나 전신으로 퍼진다.
검명.
마력과 생명력이 충만하다못해 넘실거리며 몸 바깥으로 터져나가는 행위.
이는 마법처럼 상대의 전신, 내외를 고루 박살낸다.
상대, 센티널은 이미 전신에 피해가 누적된지 오래.
아니, 사실 센티널은 아직 움직일 여력이 있지만 그 본체가 되는 상대는 달랐다.
키리리릭...
키릭...
"커흑... 허윽...."
센티널의 몸통에서 뻗어나온 금속섬유가 휘리릭 풀려나며 그안에 자리잡고있던 구스트의 바디가 천천히 바깥으로, 쓰러지듯 흘러나왔다.
구스트의 상태는 센티널 그이상으로 만신창이.
검명으로 터져나온 파장은 센티널과 구스트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휩쓸었으며.
아무리 사이보그 몸체라 한들 센티널조차 버티지 못한 파괴력을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숨넘어가기 직전의 상황.
내외 육신이 마치 거대한 해머에 끊임없이 두들겨맞은 것처럼 고루고루 망가졌다.
잠시후.
털썩.
키리리릭...
텅텅텅텅!
입에 문것을 뱉듯 금속섬유를 풀고 구스트를 퉤 뱉어낸 센티널이 손에 들고있던 화기와 미니건들마저 촤르륵 풀어버린채 미친듯이 지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 모든것을 잘라내고 도망치는 도마뱀마냥!
어어?
우왓!
놀라 비켜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하, 나왔던 공동망 입구로 도망치는 센티널을 본 강태석은 숨을 고른뒤 다시 땅을 박찼다.
지금 끝내야한다.
놓쳤다가 어디서 다시 수리받고 기어나오거나 한다면 실로 귀찮아진다.
이윽고.
터어어엉!
터어어엉!
지하공동망, 도망치는 센티널과 온몸에서 시뻘건 증기를 뿜어내는 강태석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어디로 가는거지?'
텅!
텅텅!
구스트가 사라지자 한껏 더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며 내달리는 센티널을 쫓아달리던 강태석이 미간을 좁혔다.
여덟개의 다리를 모두 달리는데 집중하자 되려 망가지기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지경.
문제는 녀석의 목적지.
<혹시 이 지하공동망에 바깥으로 이어지는 침략로가 있나?>
만약 그렇다면 문제가 커질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거침없이 달리는 센티널을 쫓던 강태석은 의외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도망치던 녀석의 목적지가 예상외의 장소였기 때문.
아니, 그보다도 익숙한 장소.
키르르륵...
내달리다 힘이 다한듯 키릭소리를 내며 멈춰선 녀석이 도착한 곳은 아까전 강태석이 드나들었던 선박건조구역의 지하통로였다.
내부의 빌더들이 다시 입구를 막아버린 장소.
키리릭...
힘이 빠진듯 여덟개의 팔다리를 추욱 늘어트린 녀석이 막힌 철판을 바라보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한개의 금속팔을 들어올린다.
이윽고.
치치치칙...
치치칙...
뾰족하게 뻗은 금속손에서 나온 촉수, 그 끝에서 솟아난 몇가닥의 용접기들이 꼼꼼하게 철판과 철판사이를 용접하여 마무리한다.
그걸로 끝.
키리릭..
작업을 마친후 축 늘어지는 센티널을 보며 강태석이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의문 하나가 풀리기는 풀렸다.
대체 누가 이 구역에 용접을 해가며 철판으로 틀어막았는지를 알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강태석이 궁금한건 그 다음이었다.
'왜 여길 격리시키려고 한거지? 이녀석이?'
마치 아늑한 산실마냥.
쿠르르릉...
격리된 철판벽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내 자신의 육체전체, 서서히 풀려가는 마인화에 정신을 차렸다.
키리리릭...
붉게 물들었던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압착되었던 강갑이 녹아 다시 몸속으로 흘러든다.
지속시간이 끝나간다는 의미.
풀리기 전에 정리를 해야한다.
키이잉...
스러져가는 전신의 변화속, 마지막까지 적빛을 유지하고 있는 손끝에 검명의 기운을 모아 상대의 머리위에 선 강태석은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정리하면 레벨이 오른다.
아마 1레벨 정도는 확정적으로 오를 것이다.
하지만...
"..."
아까전, 구스트의 모습을 떠올리던 강태석이 붉게 물든 손끝과 거의 작동을 정지해가는 센티널의 본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후.
퍼석!
내리꽃아진 강태석의 손끝이 그대로 유선형의 동체, 그 깊숙한곳을 파고들었다.
**
탁탁탁탁...
"허억... 후우. 하아. 이쪽 어디 근처였는데."
지하통로를 뛰어가던 아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사라진곳은 이근처.
이윽고 무언가 벽면을 으깨며 내달린 흔적을 발견한 아린이 손과 등에 달린 네개의 개인화기와 탄창을 매달고 뛰며 거친숨을 내뱉었다.
"아으! 힘들어죽겠네!"
숨을 헐떡이며 아린이 탄식을 토했다.
기동성과 화력.
중요하지만 양립할수없는 두 요소.
화력을 보강하려면 필수적으로 강력한 화기와 많은 양의 탄창이 필요한데 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면 기동성이 좋을수가 없다.
트럭이나 장갑등으로 기계화를 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멀리서 쏴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꼴.
"후욱... 후우. 체력을... 좀 길러야하나."
그렇게 거친 숨을 내쉬며 쉴새없이 뛰던 아린의 눈앞에 어느덧 목표하던 것이 보였다.
철컥.
"아저씨 괜찮아?"
등뒤에 메고있던 개인화기를 겨누며 통로 안으로 뛰어든 아린이 쪼그려앉은 강태석과 그앞, 널부러져있는 금속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일단 별일없어보이긴 하지만 어떨지 모르는 상황.
순간.
"마침 잘왔다. 이리로."
"??"
"자. 여기다 손올려봐."
"손?"
거대한 금속덩어리 위, 얽기섥기 뻗어나온 금속섬유 위의 작은 구체를 가리키는 강태석의 말에 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어어? 우와? 우와아아아아!"
키이잉!
키이이이잉!
센티널의 본체, 구멍난 틈에 조종석마냥 올라탄 아린이 마치 자신의 손과 발처럼 움직이는 여덟개의 금속발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
'역시 재능이 있어.'
키이이잉.
투타타타타!
아하하하하!
여덟개의 발을 자신의 손마냥 쓰는것도 모자라 끝에서 기계섬유를 쭉 뽑아 개인화기를 들고 쏴보는 아린의 모습을 보며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센티널은 코어를 뽑아내면 이런식으로 활용할수 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외골격과 여덟개의 다리, 탄탄한 몸통이 일종의 엑소슈트 역할을 하게되는 셈.
죽이기는 힘들지만 화기전문가의 모자란 방어력과 기동력, 화력을 일거에 보충할수 있기에 도시근방에서는 아주 귀중한 재료로 취급된다.
하지만 저렇게 자유자재로 활용하는건 분명 재능의 영역.
자신은 저걸 줘도 저런식으로 못쓴다.
비록 레벨업은 못했지만 이런식으로 활용하는게 전력보강에는 훨씬 유용할 터.
"그거 커스텀하고 안뺏기는건 네 역할이야. 그것까진 못해줘."
"하하. 당연한 소릴. 아저씨 고마워."
잡는것과 분배는 전혀 별개.
자신이 잡았다고 통째로 자신의 것이 되면 얼마나 좋으리.
그렇지만 바깥의 쉘터는 핵융합엔진뿐 아니라 눈앞, 센티널에 대한 권리까지도 요구하며 뻗댈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줄순 없다.
그건 오롯이 페리트란과 아린의 몫.
아마 바깥, 지금쯤 대피하고있을 피난민들을 무난히 흡수할수 있다면 그정도 억지를 막아낼 힘은 생길것이다.
터엉...
터어엉...
신이 난듯 센티널의 거체를 몰고 바깥으로 향하는 아린을 보며 한숨 푸욱 내쉰 강태석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돌렸다.
욱신거리는 전신, 고갈된 체력.
하지만 일단은 사태가 끝났다.
앞으로 별일없다면 배의 건조와 쉘터의 안정화는 무사히 진행되리라.
"아 맞다. 그 녀석들 살아있으려나."
소년과 두 소녀.
잠시후.
스윽.
자리에서 일어선 강태석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전 피난민들이 대피했던 장소로 향해보았다.
하지만...
'없어?'
수많은 사람들속.
그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는 소년과 두 소녀의 모습에 강태석이 눈썹을 찌푸렸다.
**
지하통로, 어딘가.
와그작.
"이게 초콜릿이라는 거구나. 흐음. 흐으음."
뚜벅.
난리통에 모두가 피신한 공동망 안, 누구도 보이지 않는 지하통로 더욱 깊숙한 곳으로 걷던 소년이 초콜렛을 와그작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먹어볼래? 아 하긴 못먹지."
강태석과 만난 순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무표정을 유지한채 있는 두 쌍둥이 소녀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한 소년이 어느새 도착한 곳을 바라보았다.
굳건하게 가로막힌 철판의 벽.
처음 강태석과 마주쳤던 입구와는 다른, 건조구역을 틀어막고 있는 또다른 용접벽중 하나이다.
스윽.
"고생했다. 푹 쉬어."
용접면을 매만지며 누군가를 애도한 소년이 이내 입맛을 다셨다.
"하. 나를 위해 만들어놓은 공간인데. 엄한 녀석들이 쓰네."
굳건히 막힌 벽을 바라보던 소년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미처 <완성>되기 직전에 나와야했던 탓에 연약하고 나약한 몸뚱아리.
마지막 단계를 위해 기껏 산실을 만들어놓았더니 아차하는 사이 우르르 몰려든 인간들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고.
갑자기 터져나온 전파방해장치인가 뭔가의 범위에 휩쓸려 자신이 지하에서 부리던 센티널도 신경계가 뒤엉켜 멈춰버리고 말았으며.
운좋게 기계인지 인간인지 모를 정도로 뒤섞인 놈이 있길래 그놈으로 다시 작동시켜 이 바퀴벌레 소굴을 싹 정리해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게 단 한명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던 핵융합엔진을 뺏겨 온전한 부화직전에 실패한 것도.
그 엔진덕분에 전파방해장치가 작동해 이곳이 인간들의 영역이 된것도, 산실을 빼앗긴 것도.
심지어 마지막에 센티널과 반인반기계 녀석이 박살난것도 모두 단 한명이 벌인 일.
그래서 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연약한 몸을 이끌고 나가보았다.
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씁. 실수인척 쏴봤는데 그것도 막아버리고 말이야."
아쉽다는듯 중얼거린 소년은 미련없이 몸을 빙글 돌렸다.
제대로만 되었다면 이미 1주전쯤 도시를 통째로 <먹어치웠을> 테지만...
노렸던 노렸지않건 1라운드는 녀석의 승리.
이제 이곳에서의 계획진행은 더이상 무리.
"일단 지금은 물러나지만... 기다리라고. 곧 다시 찾아올테니까 말이야."
잠시후.
소녀 둘을 이끈 소년이 저벅저벅 걸어 어둠속, 저너머로 사라졌다.
**
지상, 천막.
"에취."
'왠 오한이.'
침대에 누워 모포를 푹 덮어쓰고있다 재채기를 토한 강태석이 옆을 바라보았다.
설마 재채기의 원인이 이 넷인가 싶었기에.
"아저씨 괜찮아? 뜨신물 줄까?"
"..."
아린.
크란.
달리안.
아너스빌.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있는 넷의 시선에 강태석이 가늘게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