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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28화 (28/221)

28화

"후후. 따라다닌 보람이 있네. 드디어 꼬리를 잡았어. 이 페리트란 쉘터놈들."

터어어엉..

철컥.

자신의 어깨, 완장을 보며 총구를 겨누고 웃는 사내들의 말에 강태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쫓아왔다고? 우리 쉘터를?"

"그래. 이 이기적인 놈들같으니."

가장 앞에, 총기를 겨누며 선 사내는 재수없다는듯 침을 퉤 뱉은뒤 얼굴에 미소를 지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본론바로 꺼내지. 너희 쉘터놈들이 숨겨놓은 물자 어디있어?"

"물자?"

"그래. 너희놈들이 숨겨놓은 물자말이야. 아 참고로 허튼짓 할생각하지 말고. 이대로 벌집 만들어서 지하 깊숙한 곳에 버리면 범인 못찾는거 알지?"

철컥.

멀찍히 떨어져 노골적으로 총구를 겨누는 녀석의 강태석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놈들이 뭔가 착각하는것 같았기에.

물론 페리트란과 아린의 쉘터도 당연히 비축해둔 물자와 무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다른 쉘터에 비해 넉넉한 수준이 아니며.

눈앞, 피난민으로 보이는 이들과 비교해도 쉘터민 한명당 배당되는 양을 비교하면 조금 더 낫거나 비슷한 수준.

"너희들 뭔가 잘못 생각하는거같은데. 우리도 너희랑 별차이없어. 곳간 파먹고 있다고."

그런 강태석의 말에 뒤에 서있던 이들중 한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하지마 이 새끼야! 너희는 가장 먼저 와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저 바깥의 핵융합엔진같은 것도 발견했잖아! 너희들이 우리랑 비슷한 수준일리가 있겠어? 뭔가 바리바리 꿍쳐뒀겠지."

"맞아. 이 쓰레기같은 놈들. 다른 사람들은 언제 물자 떨어질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저들만 살겠다고!"

"지하가 막혀 무너졌을때 바깥에서 빨리 사태를 해결하려 한것도 그래. 우리가 뭔가 숨겨둔걸 발견할까봐 빨리 끄집어내려한거 아냐?!"

한명의 분노가 터지자 마치 기폭제처럼 주변이들의 목소리가 고래고래 터져나왔다.

욕망, 결핍, 분노, 약간의 광기.

이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뻔했다.

지하 파낸거야 이놈들이 다 갈려나가기 전에 구해주려고 한거고.

미리 찾아놓은 물자가 있기는 커녕 자신들도 빠듯하게 아껴쓰며 다른 쉘터놈들이 행여나 난리치며 도적집단으로 변할까봐 필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한데 이런 꼴이라니.

하지만 강태석은 굳이 말로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배고프다고 총 들이미는 놈들한테 입으로만 주절주절 떠들어서 뭐한다고.

"일단 너희를 어떻게 할지는 페리트란한테 물어봐야겠네."

"뭐?"

"그전에 한대씩만 맞자."

말을 마친 강태석의 전신이 꿈틀거린 순간.

타아아아아앙!

티이잉!

"무슨! 총이!"

폭발하듯 퉁겨나가며 사라진 강태석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십수미터 앞, 그들의 사이로 떨어졌다.

리틀-비틀로 쏘아진 총알을 튕겨낸채.

전신을 강화한 주먹을 우득 쥐며.

잠시후.

퍼버버버버버버벅!

"커헉..."

"꺽..."

마치 화려한 꽃마냥 피어난 강태석의 손과 발이 거침없이 주변, 뭉쳐있던 이들의 총기와 방탄복을 휩쓸었다.

**

공업단지 지상, 페리트란의 천막.

"그놈들은 뭐지?"

지이이익...

지익...

밧줄에 묶여 기절한채 굴비마냥 줄줄이 끌려온 열세명의 사내를 본 페리트란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이마에 땀이 난 강태석이 숨을 푸 내쉬며 대답했다.

"후. 우리 쉘터가 보물창고라고 믿고 있는 놈들."

"... 이런."

강태석의 말을 들은 순간 페리트란은 단번에 상황을 알아챘다.

다른 쉘터녀석들과 전체적인 피난민들에 집중하느라 이런 사태까지는 신경쓰지 못했다.

설마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생겨나고 있을줄이야.

심지어 마냥 헛소문으로 치부될만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심각하다.

"우리가 믿고 있는건 배지만... 모르는 녀석들은 뭔가 천년만년 먹고살만한게 있어서 배짱부리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

"어떻게든 손을 써야해. 안그러면 조만간 터져. 피난민들이 뭉쳐서 오던. 쉘터녀석들이 뒤에서 밀어붙이건."

강태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 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점점 바닥나갈 물자속, 바깥의 이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질거라는 것.

군중에 퍼져나갈 절박함과 광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희생양을 찾는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그리고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리트란들의 쉘터를 향할것이며.

그렇게 되면 최소한 단체 고문, 재수없으면 전원 몰살이다.

바깥에 있는 녀석들도 무슨 불쌍한 양떼가 아니니 말이다.

이에 심각해진 페리트란이 강태석을 보며 말했다.

"일단 이쪽으로. 그리고 군터. 이놈들 가둬놔."

"그러지."

무장병 사내, 군터가 주변을 손짓하자 굴비처럼 묶여있던 이들이 차례대로 무장해제된채 끌려갔고 강태석은 페리트란을 따라 그의 개인천막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건...

'아너스빌?'

천막 안에 후룩 차를 마시고 있던 아너스빌의 모습에 강태석이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자 페리트란이 흠흠 거리며 대답했다.

"오해하지마. 그저 외부에서 왔다기에 그쪽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

주절거리는게 더욱 수상하지만 뭐 무슨 상관이랴.

"같이 들어?"

"음... 그래도 상관없겠지. 이미 상당히 정보를 공유한 상태니. 차한잔 줄까?"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리트란이 구석에서 티백을 하나 꺼내와 철잔에 놓고 적당히 뎁혀져있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쪼르르륵...

"내 앞으로 된 티백도 이제 달랑 세개 남았는데 숨겨둔 물자라니."

이제는 거의 텅 비어버린 보관함 안을 보며 쓰게 웃은 페리트란이 드럼통을 개조한 테이블 앞에 앉은 강태석의 앞에 앉았다.

이로서 작은 원형의 드럼통 주변에 앉은건 세명.

페리트란, 아너스빌, 강태석 혹은 카트란.

둘을 마주보던 페리트란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듯 반쯤 식은 차를 한모금 들이킨뒤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는 않아."

페리트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것이 희망이라는 등불에 힘과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버렸다.

에너지야 지금도 반영구적으로 공급된다고 하지만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전기만 있다고 살수는 없는 노릇.

먹을것, 마실것, 치료할것, 탄환과 기타등등.

수많은 것들이 필요하며 이것들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바닥나는 중이다.

거기다 공업단지의 전체적인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숨어살때는 삶만 근근히 유지할 정도로 아껴가며 살던 이들.

하지만 풍족한 에너지가 공급되고 새로운 사람들간의 교류가 늘자 전체적으로 활동 자체가 증가하며 소비도 늘었다.

거기에 전체적인 물자야 늘어날리 없지만 <아껴쓴다>만 있던 선택지에 <뺏어쓴다>라는 보기가 하나 더 추가된 상태.

지금 이 상태를 어떻게든 돌파하지 않으면 조만간 이곳이 생지옥으로 변할수도 있다.

설령 배가 완성된다고 해도 말이다.

잠시후.

그런 페리트란의 말에 고민하던 강태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긴 한데."

"또?"

"..."

강태석이 페리트란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는 뭐가 또란 말인가.

그리고 저런 기대어린 눈길을 받을만큼 좋은 생각도 아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위험하니까.

부담스러운 페리트란의 시선속에서 강태석이 입을 열려던 그때.

"설마 지하플랜트를 말하는거야? 그쪽으로 가자고?"

"..."

"미쳤군 진짜. 몇번 느낀거긴 하지만."

"..."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좀...'

하지만 정답이다.

페리트란과는 전혀 상반된, 기가 질린다는듯한 아너스빌의 눈길과 말투에 입맛을 다시던 강태석이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도시를 유지하는 핵심시설이 무엇인가?

구국가무장집단이나 혁명세력, 내부범죄집단등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무기고.

마모되고 고장나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정비하는 공업단지.

사람과 물자를 구석구석으로 실어나르는 지하공동망.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건 뽑으라면 하나.

지하, <중앙플랜트>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위한 필수시설.

도시의 모든 구역이 필요로하는 물자를 책임지고 생산, 운송하던 장소.

세피로트 타워 지하에도 있기는 했지만 이는 올림포스라는 특수한 공간을 위한 소규모 독립플랜트에 불과할 뿐.

사실 도시가 무너지고 이 중앙플랜트가 파묻힌 순간부터 이 고립된 대지에는 예정된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사실상 전력이 강화된 지금이라고 해도 중앙플랜트를 향하는 건 미친짓.

왜?

그곳이야말로 이 도시를 멸망시킨 주범들이 머무르는 대지니까.

<하이브>.

현재 모든 기계병기들을 찍어내고 운영하고 있는 현세마경.

기계병기들이 침공하자마자 가장 먼저 집어삼키고 또아리를 튼곳.

스캐럽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머신들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수리받으며 에너지를 채우고 움직인다.

"... 카트란. 내가 거길 생각못한건 아냐. 다만 생각하면 안될 뿐이지."

페리트란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듯 중얼거렸다.

플랜트를 수복하겠다고 하이브를 치자고?

도시가 멀쩡하고 나름 군경이 있던 때에도 실패했던 일이다.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할 병력이 있으면 그냥 도시 전체를 수복해버리면 그만.

심지어 원자재와 물자를 보관하는 곳은 중앙플랜트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며.

외곽에 살짝 침투해 물자만 살짝 빼오는 등의 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 페리트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식료품 카트리지만 따로 보관된 열차가 있어. 위성도시, <센트라>에서 이곳으로 향하던."

"!"

센트라라는 말에 아너스빌과 페리트란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목표.

물자는 지하의 물자전용, 초대형 공중부양레일을 타고 센트라에서 도시의 플랜트로 도착해 가공되고 분배되어 곳곳으로 퍼진다.

그런 이들을 보며 강태석이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계획대로 중앙플랜트 깊숙한 곳에 들어갔어야했지만 도시가 함락당하면서 열차가 멈추고 바깥에 남게된거지."

"... 어디서 안거지 이걸? 물자의 이동시간과 위치는 최상급보안인데."

운좋게 알수있는게 아니다.

눈매를 바짝 좁히고 묻는 아너스빌의 말에 강태석이 덤덤히 대답했다.

"그날. 너희 세피로트 타워의 메인컴퓨터 털면서."

"..."

그날을 언급하자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아너스빌을 보며 강태석이 그날을 떠올렸다.

아너스빌의 말대로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알수없는 정보.

이는 자신이 세피로트 타워의 메인컴퓨터를 털었을때 혹시나 하여 검색해보고 알게된 것.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플랜트라 하더라도 중앙 플랜트와 연관이 없을수는 없기에 혹시나 해서 찾아봤고 이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계획에서 물자는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였으니까.

길이 650m, 크기는 초대형 벌크유조선 그이상.

열차라기보다는 크고 우람한 진공레일을 내달리는 거대한 <캡슐>에 가까운 녀석.

도시 전체가 함락되며 작동을 멈춘 탓에 중앙플랜트에 들어가지 못한 <캡슐>이 이 도시 근방, 총 일곱개가 있다.

그중 세개는 너무 중앙플랜트에 가깝고 두개는 이곳 공업단지에서 너무 멀며 하나는 금방 썩는 신선품 등을 담은 녀석.

결국 남은 것은 하나.

중앙플랜트에선 멀고 이곳 지하에선 가까우며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식료품, 물, 기타 물자들이 골고루 담겨있을.

D-8191 캡슐이 자신들의 목표다.

"물론 거기도 반지옥일수 있어. 지금 핵융합장치가 만들어내는 전파방해장치 범위보다는 훨씬 밖이거든."

"..."

"선택은 네 몫이야. 페리트란. 도와는 주겠지만."

"잠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페리트란이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오른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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