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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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터어어엉!

터엉!

순식간에 곡면으로 된 벽면을 타고 내달린 강태석이 저 위쪽, 옵저버를 향해 내달렸다.

물론 강태석이라고 수직으로 된 벽을 박차는 재주는 없지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끊임없이 튜브터널 벽면을 파고 대거리를 내미는 기계병기들이 있었기 때문.

터어어어엉!

콰드득!

튀어나온, 길쭉한 금속촉수 형태의 병기를 으스러질듯 강하게 짓밟은 강태석이 그 반동을 향해 거침없이 150m 위, 옵저버를 향해 질주했다.

물론 이미 옵저버는 거의 폭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집중사격을 두들겨맞고 있었지만...

티티티티티팅!

키이이잉...

구형으로 옵저버를 감싼 반투명한 장막에 모조리 튕겨나가는 탄환을 보며 강태석이 혀를 찼다.

그렇다.

전투력은 없지만 옵저버는 엄연히 상위레벨의 병기.

그리고 상위레벨부터 희소하게 적용되는 방어기술, <역장>.

아무리 기계병기라도 저정도 화망이면 타격이 없을수가 없건만 한단계 위의 법칙이 된 역장은 그마저도 모조리 튕겨내고 있었다.

'뚫을수 있을까?'

터어어엉!

콰직!

발치,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스캐럽에게 허리춤의 칼중 하나를 박아넣은뒤 뛰어오른 강태석이 20m 건너편, 분주하게 돌아가는 눈들중 여덟개로 자신을 바라보는 옵저버를 바라보았다.

푸르게, 하지만 무심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여덟개의 구슬들.

녀석과 자신사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리.

마치 시간이 멈춘것처럼 천천히 흘러갔고.

그렇기에 더욱 객관적으로 상황이 파악되었다.

몸상태는 최악.

전투강갑도, 나노머신도 제대로 못쓰고 EMP도 역장에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손에 들린 칼쪼가리들로 녀석을 해치울수 있을까?

하지만 강태석은 이런 고민조차 사치라는것을 깨달았다.

캡슐위로 뛰어오르자 보이는 광경.

캡슐과 튜브사이, 옵저버의 뒤쪽으로 난 좁은 틈 사이로 그야말로 기계병기들이 해일처럼 자그락거리며 밀려들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

감당할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여기서 옵저버를 해치우지 못하면 자신들은 그대로 쓸려나간다.

키이이잉...

서서히 흘러가는 시간속, 어느새 5m 앞까지 가까워진 옵저버를 보던 강태석이 전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전투강갑 1단계.

강화된 근력과 마력.

EMP.

검명.

그간 익혀온 것들이 모조리 차례차례 발현되며 강태석의 육신을 강화시키고 오른손의 칼끝에 그러모였다.

특히 검명과 터지기 직전의 EMP가 어우러져 새하얀 파도의 번개장이 너울거리는 것이 일품.

그 속에서 강태석이 다른 왼쪽손을 휘두른 순간.

터어어엉...

왼손에 들려있던 스캐럽의 사체가 천천히 옵저버의 머리부분으로 내던져졌다.

이어지는 강렬한 스파크.

치지지직!

10cm.

내던져진 스캐럽이 허공의 반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혀 불똥을 튀며 우그러들었다.

흠집도 나지 않는 옵저버.

하지만 그정도면 충분하다.

기계병기와 기계병기.

같은 법칙으로 작동되는 두 물질이 부딫치며 역장에 구멍을 내고 빈틈을 만든다!

이어.

터어엉...

콰드드드득!

옵저버의 앞에 내려앉은 강태석이 휘두른 칼이 정확히 스캐럽과 역장의 틈을 지나 옵저버에 닿음과 동시에.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칼끝에 맺혀있던 번개장이 강렬하게 터져나가며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파아아아앙...

"해치웠나?"

"이새끼가 재수없게."

퍼어어억!

에너지소드를 휘두르며 달려들던 기계병기들을 토막내던 군파츠가 옆수하의 말에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눈으로 캡슐 위를 올려다보았다.

실패했으면 정말 다죽게 생겼기에.

캡슐이고 뭐고 당장 도망가서 튜브를 무너트려야할 판.

우르르르릉...

남은 거리 1km.

강화된 육체로 뛰면 1분도 채 안걸릴 거리가 마치 영겁처럼 느껴진다.

옆, 터질것처럼 엔진음을 토해내며 캡슐을 끌고있는 수십대의 덤프트럭들을 흘긋 본 군파츠가 가늘게 눈을 뜨고 캡슐위를 바라보던 그때.

후우우우웅...

무언가 전원이 꺼지는듯한 소리.

동시에.

키이이잉...

키리리릭...

"... 됐다!"

마치 눈앞의 인간들이 보이지않는다는 것마냥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해대는 기계병기들의 행동에 군파츠가 환희섞인 미소를 피어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이이잉...

키리리리릭...

키리리릭...

"쌰앙."

언제 그랬다는듯 다시 푸른 안광들을 빛내며 성큼 걸어오기 시작하는 기계병기들을 본 군파츠가 잠시 고민한 뒤 빠르게 등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

키이이잉...

어둠속, 먼지쌓인 캡슐위.

EMP에 의해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구름너머로 다시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한 안광을 보며 강태석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절반쯤은 꺼졌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 나머지 센서.

다시 반투명하게 먼지를 밀어내며 감싸기 시작하는 역장.

뒤쪽,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다시끔 밀려드는 기계병기들.

'실패다.'

치직...

다시 역장으로 온몸을 감싼채 자신을 노려보듯 응시하는 옵저버를 보며 강태석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옵저버의 처리는 실패.

전력을 끌어모아 공격했지만 얕았다.

역장이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 지금 더이상의 시도는 무의미.

이제 남은 수단은 하나뿐이다.

캡슐을 포기하는것.

캡슐은 포기하고 살아남은 이들을 모두 끌어모아 후퇴한뒤 튜브에 설치되어있던 폭탄을 무너트려 통로를 막아야한다.

후퇴하는 도중에도 피해가 막심하겠지만, 그리고 이곳의 물자는 모두 포기해야겠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

여기 있는 이들의 죽음을 넘어 위까지 침범당하기 싫다면 무너트려야한다.

생각을 마친 강태석이 뒤로 뛰어 아래로 내려가려던 그때.

타아아아아앙!

한줄기, 경쾌한 사격음이 아래쪽에서 터져나옴과 동시에.

퍼어어어억!

목뒤를 가격한 제법 묵직한 충격에 고개가 퍽 꺾인 강태석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목덜미 뒤를 매만졌다.

누가 자신을 노렸는지는 둘째치고 평범한 위협은 리틀-비틀이 감지해 막아낸다.

한데 이를 뚫고 자신을 공격했다고?

하지만 목뒤를 만진 강태석은 왜 리틀-비틀이 갑작스레 이뤄진 공격에 반응하지 않았는지 알수 있었다.

자신의 목에 꽃힌건 아주 작은 주사기.

그 속에 담겨있던 초록빛 액체가 바늘을 타고 목뒤의 혈관으로 주욱 주입됨과 동시에.

쿠르르르릉....

용암과 같이 강렬하고 뜨거운 기운이 강태석의 뇌리와 전신을 덮쳤다.

**

타아아앙...

"좋아."

명중.

철컥.

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다목적 유탄발사기를 회수한 군파츠가 주변을 향해 거세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 일단 후퇴! 후퇴해라!"

"후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이대로 후퇴하면 피해가 너무 크다고!"

군파츠의 말에 사방, 싸우던 이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그나마 지금 피해가 적은 이유는 모두가 목숨걸고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서가 크다.

한데 후퇴한다고?

일단 전선이 무너지고 뒤를 잡히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는 일방적인 학살이 일어날터.

차라리 이대로 싸우며 천천히 물러서는 것만 못하다.

그런 이들의 말에 군파츠가 다시한번 우렁차게 고함성을 내질렀다.

"걱정마라! <적마인> 그놈이 대신 시간을 끌어줄테니까!"

"... 적마인이?"

"그렇다면 한번 해볼만한데."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면서 군파츠가 차가운 눈으로 캡슐 위를 바라보았다.

'너무 원망하지 마라. 네가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니까.'

쿠르릉...

쿠르르릉...

뭔가 심상찮은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위를 보던 군파츠가 몸을 빙글 돌렸다.

자신이 쏘아보낸것은 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극히 귀하고 비싸며 유용한 물건.

<블랙 블러드>.

검은 피.

그 정체는 초고양 폭주각성제.

아니, 그런 단어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맞는 순간 전신의 근력과 체력, 마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오감과 반사신경 역시 끌어올린다.

하지만 핵심은 뇌신경계의 변화.

육체, 하드웨어는 강화해봤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마치 온 뇌의 신경과 뉴런들이 폭발하듯 자라나고 이어붙고 연결하며 연산속도와 뇌내용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이를 자신에게 판 이의 말에 의하면 머릿속에 <신>이 강림한 느낌이 들거라는것.

물론 본인의 사용후기를 들을수는 없다.

효과가 끝난순간 대상자는 뇌가 그대로 녹아버려 죽으니까.

쩌어어억!

주변에 달려들던 스캐럽을 쪼개버린 군파츠가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적마인>의 상태를 마음대로 불러낼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전, 분명한 위기의 순간에 쓰지 않은것만 봐도 알수 있으니.

하지만 불러낼수 없다면 불러내게 해주면 그만.

자신이 녀석에게 꽃아준 <블랙 블러드>는 녀석의 모든 것을 불태워 그야말로 한계 이상의 전투력을 뽑아내게 해줄것이고.

더불어 그 와중에 터져나오는 강렬한 신경파장은 주변 기계병기들의 시선을 모조리 녀석에게 집중시킬 것이다.

자신들은 그 틈을 타서 안전히 후퇴할수 있을터.

"너는 내가 기억하마."

이를 마지막으로 캡슐을 등돌린 군파츠가 덤덤히 입구쪽으로 칼을 휘두르며 향하려던 그때.

쿠릉!

쿠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뒤쪽에서 심상찮은 굉음과 바람이 훅 하고 터져나오며 군파츠를 스쳐지났다.

기온이 내려가는듯한 차가운 공기.

귓가를 파고드는 묵직함.

예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르다.

이에 입구를 향하려던 군파츠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 .... 저게 뭐야."

'블랙 블러드가 원래 저런 거였나?'

뒤쪽.

캡슐의 위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사방을 집어삼켜가는 짙은 어둠에 군파츠를 비롯한, 주변 모두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

쿠르르르르릉!

<근력스탯... 5>10으로 증가합니다.>

<반사신경... 5>13으로 증가합니다.>

<체력스탯... 5>8로 증가합니다.>

<마력스탯... 7>9로 증가합니다.>

<기술스탯... ... .... 5>270으로 폭증합니다.>

<능력치 변동... <여의> 가동자격 재판정중.>

<현재 운영모드 17번, 암해. 가동 가능합니다.>

<가동하시겠습니까?>

이에 눈이 반쯤 돌아간 강태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순간.

콰르르르릉!

강태석의 왼손.

작은 원 안에서 말 그대로 <검은 바다>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

콰르르르르릉!

콰릉!

캡슐 위.

검게 물든 이의 주변을 타고 그림자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주변 캡슐과 원형의 튜브를 타고.

해가 지고 어스름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저건... 무슨."

덤프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던 사내 하나가 뒤쪽에서 펼쳐지는 이질적인 광경에 눈을 껌뻑였다.

마치 검은 그림자가 뒤쪽부터 터져나와 온 통로를 뒤덮는듯 하다.

여기까지는 얼핏 보면 신기한 현상정도.

하지만...

"허억..."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어둠.

그 검은 그림자가 만들어내기 시작한 광경에 사내가 주춤 물러섰다.

난장판속, 바닥에 떨어져있던 총기도, 시체도.

주변에서 삐걱거리는 기계병기들의 파편들도.

마치 없던 것처럼 평평하게 퍼져나가는 <그림자> 속으로 녹아내려 사라진다!

스치는 모든 것들을 가리지않고!

잠시후.

"와아아아아아악!"

"뛰어! 뛰어어어어어어!"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수천대의 기계병기도, 땅바닥의 사체들도.

말그대로 거침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퍼져나가는 어둠에 사내를 비롯한 모두가 비명성을 내지르며 입구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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