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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34화 (34/221)

34화

띠이이잉...

띠이잉...

황금빛, 적빛, 혹은 검은빛.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일곱개의 목록.

여타 흰색 글자로 쓰여진 다른 것들과 명백히 궤를 달리한다.

그 앞에 선 강태석이 이를 하나하나 살폈다.

<칠채영창>

<(주)아스트란 바디슈트>

<블루 블러드>

<청홍투갑>

<긴급좌표지정기(3급)>

<마수란(3급)>

<망연록(-)>

위의 네개는 황금빛.

그다음 두개는 적빛.

마지막 하나는 흑색.

각 색이 의미하는건 명확했다.

황금빛은 귀하다.

적색빛은 위험하다.

흑색빛은 금지되었다.

사실 각 물품에 상세한 설명따위는 써있지 않았지만 패널과 별개로 작동하는 강태석의 시스템창은 친절하게도 각 물품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띄워올렸다.

<칠채영창>

:연방에 의해 멸망한 청무국, 삼대공가중 <비연공가>의 비보.

:비연공가의 17대 가주는 단신으로 연방의 현대식 군대를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이어진 귀족, ####에 의해 사망하고 청무국은 그대로 멸망.

:####는 과한 손속으로 재판에 섰지만 상대 저항의 격렬함과 전쟁중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징계로 마무리.

<(주) 아스트란 바디슈트>

:기업, 아스트란에서 만든 개인용 방호슈트.

:개인용 방호슈트지만 지나친 고성능으로 인해 군용으로 사용될수 있음을 경계하여 판매 및 생산금지.

:하지만 기계병기들과의 전선이 고착화되고 격렬해짐에 따라 민간구역에 피해가 생기기 시작한 뒤로부터 개인의 방위를 위해 부분적 생산, 판매 허용.

<블루 블러드>

:대륙 5대 블러드중 하나.

:블러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 정체는 저멀리, 중앙대륙 <영원의 샘> 정수의 일부.

:일시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부여하나 수준에 맞지 않으면 그대로 전신 마력회로가 불타오른다.

<청홍투갑>

:생명력의 오른 홍갑, 마력의 왼 청갑.

:두개의 강철장갑은 착용한 순간부터 착용자의 생명력과 마력을 서서히 빨아먹으며 각 투갑은 충전된 생명력과 마력의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발현한다.

:구매자, 카티 베이트. 배송되던 중 도시의 함락 및 캡슐의 작동정지로 운송중단.

<긴급좌표지정기(3급)>

:연방의 폭격용 위성, <제네시스>에의 1회성 접속권한 부여.

:단 한번, 지정된 좌표로 반경 300m, 3급 수준의 폭격을 15초간 퍼붓는다.

:주의. 통신기능이 고장날 경우 사용에 제한이 생길수 있습니다.

<마수란(3급)>

:생체강화시술의 연구를 보강하기 위해 도시로 전달되고있던 중앙대륙, 어떤 마수의 알.

:주의. 이미 부화했을수도 있음. 마수의 생명력을 무시하지 말것.

<망연록(-)>

:도시의 ????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던 데이터.

:캡슐의 작동이 정지하며 모든 데이터 자동파기.

:현재 복구불가. 열람권한없음.

"?"

마지막에 뜬 망연록의 <열람권한없음>이라는 단어에 강태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열람권한이 없다고?

현재 이 시스템을 조종하고 있는건 카트란의 마스터코드.

카트란은 도시의 권한 대부분을 허락받을수 있을 정도로 그 지위가 높았다.

한데 그런 카트란의 것으로도 읽지 못하는 내용이라니.

'어차피 파손되어 못읽는다고 해도... 내용이 뭐였길래.'

강태석이 흑색으로 표기되어있는 망연록의 문구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읽을수 없는 내용에 집중할필요 없다.

예상대로 1, 2, 3, 4번은 제법 값진 물건들이었고 5, 6번 목록은 군용, 혹은 위험한 녀석이라 적색으로 표기된 녀석들.

"카티 베이트... 어딘가 낯익은 이름인데."

강태석이 중얼거리던 그때.

"와. 너 뭐야 이거. 어떻게 한거야?"

"그거 마음대로 건드리면..."

하지만 늦었다.

키이이이이잉!

쿠르르릉!

놀란 표정으로 옆에 다가온 군파츠가 패널을 만진 순간 쿠르릉 소리와 함께 주변의 시스템들이 작동하며 사방에 있던 큐브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위의 일곱가지 목록들이 담겨있는 큐브들이 차례대로 그들이 선 큐브 주변으로 옮겨지기 시작한것.

이윽고.

쿠웅!

쿠우우웅!

쿠우웅!

캡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큐브들이 속속들이 솟구쳐 그들의 주변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케이스도 반투명한 강화플라스틱으로 되어있던 일반큐브들과는 완전히 그 재질이 다르다.

아래로는 다이아몬드마냥 영롱하게 꽉 들어찬 케이스 한가운데 굳혀져있는 일곱빛깔의 창.

왼쪽으로는 각종 기계장치들로 그득 들어찬 케이스 안, 보기만 해도 육중해보이는 크기 3m의 로봇형태 갑옷.

오른쪽으로는 케이스 사방에서 뻗은 사슬들에 의해 한가운데 칭칭 동여메진 적청색의 건틀렛 한쌍과 푸른빛의 작은 실험관.

전면으로는 반투명한 케이스 전체에 그려진 하나의 복잡한 회로와 가운데 완전히 연소되어버린 무언가의 흔적.

그리고 후면으로는...

쿠우우우웅!

"뭐야. 이게 제일 귀한거야? 뭔데 이렇게 꽁꽁 싸매놨데. 이거 내가 가져도 되나?"

가장 마지막에 올라온, 두터운 강철케이스를 보며 군파츠가 희희낙락 웃었다.

다른 것들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수라도 있는데 이건 10m짜리 케이스 전체를 숫제 철판으로 꽁꽁 둘러싸매놨다.

가장 엄중해보이니 가장 귀해보일수밖에.

그리고 그런 군파츠의 말에.

"그래. 네가 가져라. 꼭 가져."

"???"

"항상 안좋은 예감은 딱 맞아 떨어지더라니."

강태석이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그래, 패널 좀 건드린 군파츠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재수가 없을뿐.

그런 강태석의 표정에 군파츠가 눈을 꿈뻑인 그때.

쿵!

쿵쿵!

콰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뭐야 이거!"

"하아.... 진짜!"

철판을 단번에 찢어버리고 튀어나온 거대한 곤충다리에 비명을 내지른 군파츠와 강태석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

도시, 어딘가.

후우우우우웅...

드높은 폐허빌딩 위에선 소년 하나가 아래, 폐허가 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에는 크기 5m에 가까운 기갑창을, 허리춤에는 크기 3m의 태도를 매단채로.

150cm정도의 작은 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장.

과하다 못해 기괴한.

심지어 어울리지 않는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딸은 잘 있으려나."

열살정도의 앳된 외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

그러거나 말거나 빌딩 위에 선 소년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혼자 활동하는게 너무나도 익숙해진것처럼 말이다.

"청홍투갑이라도 제때 도착했으면 좋았을텐데. 로켓배송을 썼어야했어."

두서없는 말을 이리저리 중얼거리던 소년이 이내 몸을 쭈욱 폈다.

없는것 탓해서 무엇하랴.

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한다.

이것도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소년이 저 멀리, 딸이 있을 도시 정반대편을 바라보다 빙글 몸을 돌린 그때.

쿠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 저거 뭐야."

도시 바깥.

무서울 정도로 잔잔하게 퍼져있는 은빛의 지평선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빛에 소년이 작게 중얼거렸다.

죽음의 바다, <웜즈씨>.

모든것을 집어삼키는 은빛벌레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야할 곳.

한데 거기서 빛이 피어오른다고?

뭔가 수상하다 못해 심상찮다.

자신이 도시를 돌아다닌 제법 오랜 기간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

"... 잠깐 확인해보는것 정도는 괜찮겠지."

중얼거린 소년이 심호흡을 하고 저아래를 보며 발에 힘을 주었다.

말 그대로.

자신은 웜즈씨라도 잠시 다녀오는것 정도는 가능하다.

심상찮은게 있다면 확인해보는게 좋을터.

잠시후.

터어어어엉!

20층 높이, 빌딩 위에서 뛰어내린 소년이 거대한 창과 칼을 움켜쥔채 그대로 지상으로 수직낙하해내렸다.

**

캡슐내부.

"허억... 허억."

"후우... 하아아."

좁은 큐브안에서 한바탕 거세게 날뛰며 땀을 흘린 강태석과 군파츠가 거친 숨을 토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의 앞에 자리잡은건 철판을 꿰뚫다못해 갈기갈기 찢으며 두개의 큐브를 이어놓은, 길이 5m 정도 곤충형 마수의 시체.

그 생김새는 마치...

"모기... 모기라고? 으하하하. 모기가 5m라고? 모기한테 죽을뻔했다고?"

실성한듯 웃는 군파츠의 옆, 지친 표정으로 주저앉은 강태석의 눈 앞으로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중앙대륙-칼파츠 모기(LV. 10)를 처치하셨습니다.>

<상당한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8(47.09%). 상당한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

강태석이 긴 숨을 푸욱 내쉬었다.

단번에 경험치가 10%나 차올랐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이다.

하다하다 중앙대륙산 모기랑 이런 구석동네에서 치고받게 될줄이야.

거기에 대륙 먹이사슬중에서도 최하위인, 말그대로 그곳에선 모기신세인 놈과 이렇게 목숨걸고 싸워야할정도로 약해졌다고 생각하니 이건 뭐 안타까운걸 넘어 서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놈이랑 싸우려고 일곱가지 보기중 단번에 선택을 해버려야했다는 것.

치이이잉...

강태석이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칠채색의 창을 바라보았다.

으깨지고 박살난 다이아몬드 케이스에서 꺼내어져 강태석의 손에 들려진.

그리고 그제서야 케이스에 빨려들어가던 빛을 되찾고 스스로의 영롱한 일곱빛깔을 온전히 뽐내기 시작한 길이 2m의 창.

그리고 강태석의 왼편에는...

키이이잉!

철컥!

"후우... 후우. 그래도... 와 이거 장난아니네."

강태석이 고개를 돌려 감탄하는 군파츠의 앞, 그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크기 3m의 로봇을 바라보았다.

(주) 아스트란 바디슈트.

자율전투.

원격조종.

바디슈트.

세가지의 모드로 운행가능한 전투병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을 보호하며 극한의 전투력을 뽑아낸다.

'저것도 괜찮았겠지만...'

바디슈트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성이란게 있다.

결국 자신이 이 급박한 상황에 이 창, 칠채영창을 쥐었던건 결국 스스로가 이걸 가장 원했기 때문.

하지만 아마 길들이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처럼 보였다.

우우우우웅...

전투강갑, 2단계를 동원해 손을 집어삼킬듯 타고오르려는 일곱빛깔을 억누른 강태석이 어느덧 평범한 창으로 위장한 녀석을 바라보던 그때.

텅텅텅텅!

"끝났나?"

"어느정도."

"하. 대체 무슨 일인지. 보상 고르라고 했더니."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페리트란이 난장판이 된 아래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아래에서 굉음이 터지길래 허겁지겁 내려왔더니 이게 왠걸.

군파츠와 카트란, 둘이 그야말로 피터지게 왠 거대곤충마수와 치고받으며 큐브를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좁은데서 어찌나 살벌하게 싸우던지 차마 지원을 오고싶어도 방해될까봐 위에서 지켜만 봤어야할 정도.

"다친데는?"

"없어 없어."

"그나마 다행이군. 그나저나 그게 각자 고른 보상인가보지?"

창과 로봇을 가리키는 페리트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고 군파츠도 잠시 다른 것들을 아쉽다는듯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군파츠의 모습에.

"왜. 이거 가지고 싶다며."

"... 시끄러. 먼저 올라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모기시체를 가리키며 웃는 강태석의 말에 군파츠가 손사래를 치며 사다리를 가리켰고.

이에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강태석이 먼저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아래 선 그때.

…!!!

…… !!!!

… 이 새끼들! 딱 걸렸어!

당장 나와아아!

위쪽, 입구너머 지하에서 들려오는 심상찮은 소란에 페리트란과 군파츠, 강태석의 고개가 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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