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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39화 (39/221)

39화

금속의 배가 향하고 있는 방향, 구름속 상공 1km의 위치에.

쿠르르릉...

하늘에서 천둥번개에 휩싸인 푸른 빛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아주 좋아. 아주.>

부우웅....

허공, 두 소녀를 옆에 데리고 선 금발소년이 몸 안에서 넘치는 힘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과 계약했던 기계장치들의 왕은 자신이 되살아난 이후에도 충실하게 약조를 이행했다.

블루 블러드.

중앙 플랜트, <하이브>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있던 푸른 피.

이는 당장 힘이 모자랐던 자신에게 넘치는 마력을 부여했다.

거기에 그곳에 잠들어있던 기계군대들의 지배권한까지.

이뿐이랴.

만족스럽게도 심장과 제물들까지 모조리 한군데 먹음직스럽게 모여있다.

폭사당하게 놔둘수는 없다.

산채로, 통째로 잡으리.

"어림도 없지. 내가 먹어야... 한다고!"

콰아아아앙!

콰아앙!

하늘, 푸른 뇌전을 후려치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미사일을 터트리던 소년이 발아래의 배를 향해 은빛 물결을 거세게 휘몰아쳤다.

**

쿠두두두두두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으으..."

"으아아아..."

갑판에서 에너지소드를 들고 혹시나 올라오려는 기계병기들을 후려치던 사람들이 신음성을 흘렸다.

은빛 격랑.

그야말로 온세상이 홍수가 난것마냥 은빛의 기계병기들에 의해 그득 들어차있었다.

지평선너머, 도시 전체가!

대체 어디서 이정도의 숫자가 숨어있었는지가 의아할 지경.

그런 이들의 사이, 서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던 칼슨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은빛물결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중앙 플랜트에서 모조리 쏟아져나온거군..."

이정도면 전파방해장비가 먹힐리가 없다.

옵저버, 비틀, 디스트로이어.

십레벨을 전후로 하는 고레벨 기계병기들마저 쏟아져나와 끊임없이 배에 충돌한다.

그나마 지금 버티고 있는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토록 두렵던 디스트로이어와 옵저버들을 말 그대로 <으깨버리며> 내달리는 거대한 배에 갑판위에 있던 이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런걸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한거지?

은빛 물결도 엄청나지만 이걸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는 이 거대한 회색빛 쇳덩이도 대단하다!

그런 칼슨과 사람들의 옆.

저벅.

"쓸만하지?"

갑옷을 해제하고 맨몸으로 걸어나온 강태석이 갑판위, 질주하는 배를 보며 말했다.

두께 2300mm 타르늄 합금외장.

전체중량, 55만 7000톤.

이런 거대한 쇳덩어리를 평속 88km, 최대시속 130km까지 움직일수 있는 구동계까지.

<강태석>

>레벨 : 8(66.09%)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약식 EMP(Active/Passive)(등급-E)

>스탯 : 근력7/반사신경6/체력5/마력7/기술5.

>무장 : 전투강갑(S)/여의(S)/오시리스(C)/칠채영창(B).

정면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눈 앞에 떠오른 창을 살폈다.

방금전의 전투로 조금더 오른 경험치.

무장에 추가된  두가지, 오시리스와 칠채영창.

다소 의외였다면 칠채영창이 오시리스보다 높은 등급인 B였다는 것.

'아직 내가 가능성을 다 못끌어낸건가.'

강태석이 자신의 손에 들린 창을 바라보았다.

하긴 그럴수도 있다.

현재 레벨로 자신이 모두 가능성을 끌어낼수 있는 무장들은 E급정도.

그런 강태석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페리트란과 아린.

그리고 처음보는 소년.

처음 봤지만 페리트란과 아린의 앞에 선 소년을 본순간 강태석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챌수 있었다.

부스럭.

"여기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거 수신인 아닙니까."

카티 베이트.

소녀, 아린 베이트의 아버지.

어디선가 들어봤나 했었는데 나중에 아린을 본순간 기억이 났다.

등의 가방에서 청홍쌍갑을 꺼내 건네는 강태석의 모습에 멈칫한 소년은 이내 웃으며 장갑을 받아들었다.

"고맙네. 잘쓰지. 이게 있었으면 아까 한판 붙어볼수도 있었을텐데."

쿠릉...

쿠르르릉...

하늘에서 관조하듯 번쩍이는 구름속 푸른빛을 올려다보던 소년, 카티가 강태석을 보며 물었다.

"이제 어쩔거지?"

소년의 말에 페리트란과 아린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한데 집중된다.

어느새 올라온 군파츠와 칼슨, 그리고 갑판위에 서있던 모든 이들까지도.

그리고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다가 격동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건 하늘에서 몰아치는 태풍.

현재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힘들이 격돌하며 이 거대한 도시 위에 푸른 파괴의 에너지를 흩뿌려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배에 타고 거친 풍랑을 버텨내야한다.

안정권에 도달할때까지.

잠시후.

콰르르르릉...!

은빛의 바다를 거칠게 헤치던 배 위, 지평선을 향해 눈을 뜬 강태석이 창을 우득 쥐며 대답했다.

"북쪽으로 갑니다."

도시 위, 은빛 기계병기들의 파도너머.

도시 밖, <웜즈씨>의 건너편.

그곳에 자리잡은 경계너머의 영토.

<칠국연합>

현재 미사일과 폭격을 쏟아붙고 있는 이들의 대지.

강태석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

콰르르르릉...

"북쪽으로 간다고? 지금 이 폭격이 날아드는 곳에서?"

옆에서 제정신이냐는듯 묻는 칼슨의 말에 대부분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어느 방향이 위험해보이는지는 안다.

현재 하늘과 땅을 물들이고 있는 거대한 포화들.

당장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흉흉하기 그지없는 하늘위, 푸른빛의 무언가가 자신들의 상공에서 포격을 막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것들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간다?

더 거친 풍랑으로 조각배를 몰고 들어가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이들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안그러면 쫓아오는 저놈에게 다 죽으니까."

강태석이 푸른 빛을 머금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저 이벤트보스, 망국의 왕은 지금 자신들이 이뻐서 지켜주고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혹시나 포화에 자신들이 죽어 삼키지 못하게 될까봐.

녀석의 목표는 명확히 자신들이며.

되려 이 거센 포화가 자신들을 지켜주고있는 것.

만약 자신들이 지금 상황에서 북쪽, 칠국연합의 대지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망국의 왕은 자신들을 따라 자연스레 그들과 멀어질 것이고 칠국연합은 그런 망국의 왕을 보며 일단 한숨돌리고 퍼붓던 공격을 멈출것이다.

그러면 끝장.

하늘위의 존재는 그대로 내려와 자신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리.

반대로 자신들이 칠국연합을 향해간다면?

망국의 왕이 본격적으로 가까워지면 칠국연합은 놀라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을 것이고.

그정도가 되면 망국의 왕또한 감당하기 힘들어 일단은 자신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즉 <웜즈씨> 너머, <칠국연합>의 영토 경계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일단 살수있다!

문제는 하나.

과연 그곳까지 도착하기 전...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냐는 것.

망국의 왕은 결코 자신들을 쉽게 보내주려하지 않을테니까.

쿠르르릉...

쿠르르릉...

하늘 위에서 천둥번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격전의 존재를 다시한번 바라보던 강태석이 주변을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북쪽으로 가면 살수있다. 내가 장담하지. 다만... 그때까지 다들 살아남도록."

<오시리스, 항로 설정합니다.>

강태석이 오시리스의 권한자로서 방향을 설정한 순간.

콰르르릉...

내달리던 배가 거칠게 진동을 토하며 포화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상공.

콰콰쾅...

콰쾅...

허공에서 날아드는 미사일과 포격등을 쳐내던 금발 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법 까마득한 아래에서 움직이던 배가 갑작스레 북쪽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것.

포화가 날아드는 그곳을 향해 말이다.

이에 소년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배를 따라 이동하려고 했지만...

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흑.. 우아아악! 아래것들을 삼켰으면 이정도는 그냥 진즉에 짓밟아버릴수 있었는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강렬한 충격에 허공에 떠있던 금발 소년이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처음에는 아래 녀석들을 지켜준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닌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의 공격은 자신을 향해 더욱 정확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좌표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며 화력이 집중되기 시작한것.

상황은 점점 더 명확해졌다.

자신의 목표가 아래, 배이듯.

웜의 바다 건너편에서 포격을 퍼부어대는 녀석들이 경계하고 있는건 바로 허공에 뜬 자신.

녀석들은 자신이 강해지기전에 지워버리겠다는듯 당장 동원가능한 투사체를 모조리 동원하여 이쪽방향으로 쏟아붙고 있었다.

물론 녀석들이 걱정하는 바는 맞았지만 말이다.

"내가 죽기 전에도 발목잡더니 되살아나서도 나를 방해하는구나. 진즉 모조리 죽여버렸어야했는데."

까드드득...

이를 꽈득 악문채 지평선 너머, <칠국>이 있을 곳을 바라보던 금발소년이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아래를 노려보았다.

상황이 이러니 아래의 배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다.

원래 자신의 힘이 되었어야할 녀석들.

놓칠수없다.

모조리 삼켜 자신의 원래 힘을 되찾고 바다를 건너가 저 증오스런 녀석들도 모조리 지워버리리.

"너희들에게... 다시 악몽을 선사해주마."

콰아아아앙...

콰아앙...

하늘, 퍼부어지는 폭격과 대항하던 금발의 소년이 아래를 보며 웃음과 동시에.

촤르르르르륵...

지상, 육중한 배의 사방을 감싼 은빛 병기의 바다가 다시한번 출렁였다.

**

배 갑판.

콰드드드득!

"막아! 막아! 절대로 못올라오게 해야한다!"

투타타타타타타!

제법 넓어보이는 갑판 위에 서있던 이들이 끊임없이 칼을 휘두르고 화망을 펼치며 아득바득 기어오르려는 기계병기들을 퉁겨냈다.

정면승부라면 붙는 족족 죽어나갈 고레벨 병기들이었지만 상황은 명백한 그들의 우위.

두꺼운 철판을 두른채 시속 100km에 가깝게 내달리는 <배>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계병기들에게 큰 압박이었다.

튕겨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밀어내기만 해도 되는 상황.

그렇기에 갑판 위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어느새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정말... 정말 살아나갈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콰득!

갑판 위에 올라온 스캐럽을 으깨부순 무장병사내, 군터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은빛 지평선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은빛 기계병기들의 물결과 하늘에 휘몰아치는 푸른 폭풍.

그 너머로 좀더 잔잔해보이는 은빛의 바다가 보인다.

웜즈씨.

원래대로라면 범점불가의 지옥이겠지만 지금은 희망으로 가는 대지.

저곳에 진입하는순간 기계병기들도, 푸른 폭풍들로부터도 한층더 안전해진다.

그렇게 되면...

"드디어... 이 도시를 떠나는구나."

군터의 말에 옆에서 함께 싸우던 이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그 말대로였기에.

도시가 기계병기들에 의해 몰락한게 어언 2년.

그당시가 잊혀지지 않는다.

흉악한 녀석들에게 대부분이 몰살당하고 꿈도 희망도 없이 도시를 헤멘 기억을 어찌 잊겠는가.

꿈도, 희망도 없던 세월.

하지만 드디어 그들에게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덕분이다. 살아나가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해도 해주마.'

"다들 힘내라! 부상자는 갑판 아래로 가서 교대하고! 조금만 더 버티자!"

"우아아아아아아아!"

카트란을 떠올린 군터가 우렁차게 소리치자 주변의 이들이 칼과 총을 들어보이고 소리지르며 희망찬 표정을 짓던 그때.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갑작스레 갑판 위를 훅 쓸고 지나간 은빛의 거대한 무언가에 수십명의 상체가 피떡이 되어 그자리에서 지워졌고.

"...어?"

철벅.

그들이 사라진 자리, 얼굴에 흠뻑 묻은 피를 쓸어내리며 믿기 힘들다는듯 눈을 꿈뻑이는 군터와 몇몇 생존자들 앞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쿵쿵거리며 등장했다.

갑판아래, 벽면을 타고 올라와 그들의 앞으로.

크기 4m.

여섯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거미의 하체와 전갈 같은 꼬리, 두개의 팔로 이루어진 인간형의 상체.

거기에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것.

마치 인간과 같은 미소를 띄우고 빙글거리고 있는 얼굴.

마치 인형과도 같다.

<아아. 아아아아. 안녕하세요? 크흐. 크하하. 말은 오랜만이네. 지하에만 박혀있었던지라.>

"아아... 아아아..."

눈 앞에 나타난 기계인형을 본순간 2년전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 군터의 입에서 절망섞인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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