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오시리스 후미, 객실부 위.
거대한 창과 태도를 든 소년이 기쾌하게 움직이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계병기들을 때려부수는 중이었다.
비록 후미는 갑판처럼 열려있지않고 튼튼한 타르늄장갑에 의해 단단히 밀폐된 구조였지만 그렇다고 방치할수는 없는법.
돌진하는 거력에 별것 안해도 기계병기들이 갈려나갈 하부에 반해 상부는 아무런 보호기제도 없다.
가만히 놔두면 개미떼처럼 올라탄 기계병기녀석들의 톱질에 의해 야금야금 장갑이 뜯겨나갈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끝도 없군. 그나저나 이 친구는 어디간거지."
그야말로 물밀듯이 상부, 유선형의 드넓은 동체를 타고 오르는 온갖 종류의 기계병기들을 때려부수던 소년, 카티가 숨을 한번 고른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쪽을 향하겠다고 한뒤 각자가 배안으로 흩어지는것같기는 했는데 정확히 어디있는지는 알수가 없다.
그만큼 이 배의 크기가 거대하고 구조가 복잡한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할테니까. 신경쓰지말고 내 할일에 집중할까.'
왼손엔 푸른빛의 장갑과 거태도.
오른손엔 적빛의 장갑과 기갑창.
양손,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기분을 내던 카티가 다시 집중하며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다.
이제 조금만 더있으면 폭풍의 권역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만 되면 일단 한숨 돌릴수 있을터.
콰지지지지직!
마치 차 표면에 붙은 모기떼를 털어내듯.
거대한 창과 칼을 휘둘러 주변, 달려드는 기계병기들을 갈아버린 소년이 발을 굴러 표면의 다른 녀석들도 치워버리려던 그때.
붕붕붕붕!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허공에서 날아든 네개의 길쭉한, 길이 4m의 가시들이 사정없이 날아들어 카티가 서있던 타르늄장갑 표면을 찢어발겼다.
어찌나 위력이 강력했던지 그 두꺼운 가시가 2300mm 두께의 타르늄장갑을 푹 파고들어가 박혔을 정도.
타탁...
이를 피해내 한발 물러선 카티가 자신이 방금전 서있던, 이제는 네개의 가시가 박힌 자리로 내려서는 기괴한 기계병기를 바라보았다.
키는 3m.
팔다리는 기괴하게 길지만 분명 사람의 형체를 하고있고.
어울리지 않는 길고 찰랑이는 생머리에 매력적인 미녀의 외양을 가지고 있다.
콰득!
콰드드득!
타르늄장갑에서 네개의 가시를 다시 뽑아들어 손가락 사이에 집어든 정체불명의 기계인형, 아니 미녀가 카티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대. 분명 2년만이지요?>
"너... <특무단>..."
<아하하. 그런 걸로 부르지마요. 우리 각자에겐 이름이 있으니까. 저는 <베티>라고 했잖아요 그때.>
후웅!
손에 들린 네개의 철창을 이리저리 휘저어 흔들어보이는 미녀가 카티를 보며 웃었다.
**
기계병기들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할 것을 명령받는다.
그게 그들의 본능이자 정수.
그렇게 싸우고 싸우다보면 내면에 다양성 분화 알고리즘을 보유한 기계병기들중 몇몇 녀석들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죽이려면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면 녀석들을 닮아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들이 눈앞의 녀석들.
기계로서의 스스로 강점을 극대화하고 사냥감인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정확히 이해하여 탄생한 괴물들.
대부분은 그 변화과정의 미숙함과 자아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나지만 만약 살아남는다면 인간들에겐 악몽같은 존재가 된다.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갑판위.
쿵...
쿵쿵...
<다들 오랜만이에요. 이몸 <노바티라>가 지하에 잠들어있던 사이 행복하게 잘살고 계셨는지? 몇몇은 내얼굴을 알거같은데요.>
전갈같이 길쭉하고 거대한, 방금 사람들을 찢어버린게 분명한 꼬리를 붕붕 휘두르는 기계인형의 말에 군터를 비롯한 주변이들이 절망섞인 표정을 지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2년전 그나마 굳건히 버티고 있던 도시를 한순간에 무너트려버린 녀석들.
무기고, 시청, 도시경찰청, 중앙플랜트.
단 넷.
단 넷이 등장한순간 균형이 무너지고 삽시간에 도시는 기계병기들의 파도에 휩쓸렸다.
인간처럼 기괴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찢어발기던 녀석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을수 없는 기억.
부우우웅!
<딱히 이정도 숫자를 찢어발기는데는 관심없지만... 우리 새 주인님이 이 배를 멈춰세우라니 어쩌겠어요. 시체도 제물로는 상관없으니 다행이네요.>
꼬리와 두손, 바닥의 무기를 주워든채 붕붕 휘두르며 걸어오는 전갈형태의 괴물의 접근에 군터를 비롯한 이들이 저도 모르게 물러서던 그때.
터어엉.
철컥.
<군터 뭐해. 싸워야지.>
"아린..."
쿠웅...
어느새 전신을 센티널로 감싼 아린의 등장에 군터를 비롯한 이들이 발길을 멈춰서고 주먹을 꾸득 쥐었다.
**
배 깊숙한곳 지하.
구동계축.
크르르르르륵...
크르르륵...
사람 키보다 커다란 수십개의 금속 톱니바퀴들과 거대한 축들이 맹렬하게 진동하며 회전한다.
이곳이야말로 이 배의 구동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부위.
그 사이,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하고 창을 든 강태석의 눈 앞으로 맹렬한 경고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경고. 객실 상부에 개체, <베티>가 침입했습니다.>
<경고. 갑판 상부에 개체, <노바티라>가 침입했습니다.>
<경고. 핵 엔진부에 개체, <로아니로>가 침입했습니다.>
각부위를 가리키는 경고음들에 강태석이 눈을 감았다.
객실, 갑판, 핵엔진부.
모두 중요한 장소.
배의 상부에 해당하는 객실과 갑판부는 두터운 외장 외에 별다른 방어장치가 없다.
그곳이 뚫리면 곧바로 기계병기들이 물밀듯 쏟아져 안으로 들어온다는 의미.
인명피해는 둘째치고 녀석들이 안쪽을 부수며 활개치기 시작하면 배는 얼마가지못하고 산산조각나 흩어지게 된다.
핵융합엔진부야 말해 무엇하리.
그곳이야말로 이 질주하는 배, 달리는 말의 심장.
그리고... 강태석이 선 이곳이 그 달리는 말의 다리.
쿠우우우웅...
<네가 내 상대인가. 혼자는 버거울텐데.>
크기 5m의 거구.
마치 사무라이와 같다.
거대한 일본도와 전신갑옷으로 무장한채 쿵쿵거리며 걸어오는 검은 기계인형의 등장에 강태석이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이곳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다른 곳을 도우러 갈수 있었을텐데.
이 특무단이라는, 네 녀석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배의 각 약점들을 찾아 자신감넘치게 방문했다.
2년전, 동시다발적으로 핵심구역을 공략하며 도시를 무너트렸던 그때와 같이 말이다.
갑판, 객실, 엔진, 구동.
네군데중 단 하나만 뚫려도 끝이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라도 넷 모두를 해결할수는 없다.
다만 다른 이들을 믿는 수밖에.
"덤벼."
키이이잉...
칠채영창의 휘황찬란한 기운이 구동계실 사방으로 뻗쳐나감과 동시에.
<홀로 선 용기를 높이 사 단칼에 으깨주마.>
쿵쿵쿵쿵!
콰아아아아아앙!
공포영화의 한장면마냥 달려온 거대한 기사가 그대로 강태석을 향해 거도를 내리찍었다.
**
오시리스, 내부.
콰아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아앙...
"후욱... 후욱... 후우."
"이런 젠장. 물러나지마! 싸워!"
투타타타타!
타타타!
터어어어엉!
원래는 고급스러웠을 객실내부, 복도와 복도들 사이.
우르르 몰려드는 옵저버와 기계병기들에 맞서싸우던 이들이 이를 악물며 칼을 휘둘렀다.
원래대로라면 갑판선에서 끝났어야할 놈들.
하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면서 이 배안으로 새어들고 있다.
위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이런 녀석들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겉잡을수 없어질터.
"절대 놓치지 마! 적어도 더 아래쪽으로 내려보내서는 안돼!"
콰지지지직!
에너지소드를 휘둘러 달려드는, 개 형태의 기계병기 하나를 두동강낸 페리트란이 주먹을 꽈득 쥐었다.
여전히 자신은 현역이다.
무장화된 육체엔 힘이 넘치고 달려드는 기계병기들을 토막낼 실력이 있다.
하지만 그게 끝.
자신들이 모두 죽을지 살지를 결정짓는것은 자신들이 아니다.
그저 그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발버둥칠뿐.
그리고 그런 페리트란의 상념이 끝나기도 전.
콰르르르르릉!
크게 떨어울린 배가 갑작스레 한층 더 느려진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지상, 갑판.
콰아아아아아아앙!
<아하하! 아래 뭔가 큰일이 생긴거같은데요. 지금이라도 뛰어내려서 탈출하는게 낫지 않겠어요?>
거대한 금속꼬리를 휘두르며 휘몰아치던 기계인형, 노바티라의 말에 아린이 이를 무시하고 센티널의 금속촉수를 휘둘렀다.
따아아앙...
금속꼬리와 두개의 금속팔이 충돌하며 울려퍼지는 청량한 소리.
하지만 노바티라에게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자 선물.>
기괴하게 꺾여 등판의 무언가를 집어내는 노바티라의 팔.
떨그렁...
이어 바닥에 내던져진 둥근 금속구를 본 아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C-8 군용폭탄.
저게 터지면 자신은 몰라도 반경 50m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주변이 반응하기도 전 본능적으로 움직인 아린이 금속촉수와 전신으로 폭탄을 감싼 순간.
... 꾸우우우우웅!!!
육중한 폭음과 진동이 둥글게 말린 센티널의 주변으로 퍼져나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이어 풀려난 센티널의 금속촉수들.
"쿨럭... 커헉."
키이이잉...
피를 토한 아린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센티널의 장갑이 아무리 강력하다지만 그걸 타고 있는 자신은 사람이다.
거기에 터진 폭탄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일반폭탄의 위력을 훨씬 능가하는 군용금지물품.
촤르르르륵...
<어때요? 쓸만하죠? 내가 그날 털었던 데가 무기고라.>
아린과 주변이들의 반응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노바티라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등뒤, 마치 두꺼비 알처럼 실려있는 수많은 무기들을 촤르륵 드러내보였다.
폭탄부터 시작하여 개인화기, 에너지소드에 희귀한 무장들까지.
"..."
그런 노바티라의 말에 콕핏에서 피를 스윽 닦은 아린이 주먹을 꽈득 쥐었다.
전력상으로 보면 불리할것도 없다.
녀석의 바디가 강력하지만 자신이 탄 센티널 또한 밀릴게 없으니.
하지만 녀석이 전신에 둘둘 두른 무기가 문제.
<또 공격하려구요? 나야 나쁠거 없지요. 이런 장난감이 나한테 피해를 줄순 없으니. 하지만 주변 인간들은 괜찮겠어요?>
철컥.
양손으로 화기를 꺼내들며 등뒤의 온갖 폭탄들을 내보이는 노바티라의 모습에 아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다.
저게 문제.
설령 이겨도 녀석의 등뒤에 있는 폭탄이 동시에 터져나가면 사방이 쓸려나간다.
갑판 위에서 싸우고있는 모두가 저녀석의 인질이나 다름없는 상황.
심지어 전장이 교착되자 상황은 녀석에게 더욱 유리하게 흘러갔다.
키릭....
키리리리릭...
갑판에 우뚝선 녀석.
그 뒤로 서서히, 하지만 끊임없이 물밀듯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기계병기들.
그 앞에 장군처럼 선 노바티라가 여유로이 웃었다.
<아하하. 어떻게 하려구요 이제?>
절체절명의 위기.
그순간.
치직...
<아저씨. 지금.>
아린의 작은 통신음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질주하던 배가 <그자리>에서 들썩이는 것마냥 멈춰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