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콰아아아앙!
지하, 구동계축.
<아저씨. 좀있다 신호하면 배를 한번만 멈춰줘요. 급정거로.>
아까, 싸우러가기전 아린이 남겼던 한마디 말을 떠올리던 강태석이 고개를 흔들며 날아드는 거대한 칼날을 피했다.
분명 무슨 생각이 있을테지만 일단은 눈앞의 녀석이 급한 상황.
쿠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앙!
<피하기만 해서는 승부가 나지 않을텐데. 그리고 그정도 공격으로 날 어떻게 할수는 없다!>
거대한 구동계들 사이, 후려친 공격을 무시하고 마치 전차처럼 달려드는 녀석의 외침에 강태석이 인상을 썼다.
녀석의 말대로.
레벨은 둘째치고 어찌나 둘러싼 갑주가 단단한지 자신의 공격이 거의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후려친다면 피해가 없을수야 없겠지만 녀석의 검술이 뛰어난것도 문제.
흘려내기, 빗겨내기, 피하기.
모든 종류의 기술을 상당한 수준으로 해내고 있었다.
'체력이 높으면 둔하기라도 해야하는것 아냐?'
콰아아아앙!
거대한 체구에 맞지않게 한자루 칼날을 날렵하게 휘두르며 사방을 으깨어대는 녀석을 훌쩍 피한 강태석이 한번 숨을 골랐다.
구동계는 이 거대한 함선을 움직이니만큼 가장 튼튼하고 강력한 재질로 구성되어있는 부분.
싸우는 도중에 박살난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저런 녀석이 마음먹고 박살내기 시작하면 어디하나 고장나서 멈춰서는건 순식간.
싸움을 오래 끌어 좋을게 없다.
그때.
철커덕.
<아무래도 싸울 마음이 없는 모양인데. 그러면 나도 그냥 내 임무에 충실하는게 낫겠지.>
쿠르르르릉....!
거대하게 돌아가는 구동계 앞에 서서 칼을 치켜드는 갑주무사의 행동에 강태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귓가에 들려온 선내내부통신.
<아저씨. 지금.>
"위아래서... 동시에 쪼으는구만."
숨을 고른 강태석이 그대로 전신의 힘을 실은채 전력을 다해 손에 들린 창을 내던졌다.
눈앞, 거대한 칼을 치켜들고 그대로 구동계의 약한 부분을 후려치려는 녀석을 향해.
이윽고.
키이이이잉...
파아아아아아아앙!
내던져진 2m 길이의 창이 제법 흉흉한 파공성을 뿜어내며 날았지만 그뿐.
처억.
<이게 뭐하는 장난이지?>
키만 해도 5m.
칼을 잡고 있던 한손을 들어 날아드는 창을 움켜쥔 갑주사내가 불쾌하다는듯 강태석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덩치에 비하면 낚시대만도 못한걸 집어던져 공격하려한다니?
하지만 그런 갑주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
!!!!!!!!!!!!!!!!!!!!!!!!!!!!!!!!!!!!!!!!!!!!!!!!!!!
<커헉... 우아아아아아아악!>
거의 해가 뜬것마냥 강렬하게 터져나오며 사방을 휩쓰는 빛과 창의 파편에 갑주사내가 눈을 가리며 주춤 물러섰다.
검폭.
싸우며 강태석이 차곡차곡 쌓아왔던 마력이 칠채영창의 마기와 일시에 폭팔하며 가까이 붙어있던 기계인형, 무장사내를 휩쓴것!
그렇게 균형을 잃고 무장사내가 비틀거리며 쿵쿵 물러서던 그때.
터어엉!
"그렇게 망가트리고 싶으면... 일단 한번 해봐."
땅을 박차고 나타난 강태석이 강렬하게 비틀거리는 무장사내의 머리통을 후려참과 동시에.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콰지직...
<크흑... 크아아아아아아악!>
키드드드드드득...!
넘어져 거대한 구동계 사이에 빨려들어가 고함을 지르는 무장사내와 함께 거대한 배가 비명에 가까운 기계음을 토해내며 멈춰서기 시작했다.
**
갑판, 상부.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마치 달리던 자전거 바퀴사이에 무언가 걸려선것마냥.
콰드드드득!
배 하부에서 불쾌한 마찰음이 터져나오며 거대한 쇳덩어리가 마치 급정거라도 한것마냥 대지를 으깨며 멈춰선다.
시속 100km로 달리던 물체의 급정거.
당연히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폭풍이라도 맞은것마냥 앞으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터어엉...
콰득...
어느정도 언질을 받고 있었던,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벼웠던 군터와 생존민들이 주변의 금속난간과 구조물들을 움켜잡으며 튕겨나가는걸 방지한것과 달리.
콰르르르르르륵...
<이런!!!!!>
인간보다 훨씬 더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던, 그리고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있던 노바티라와 기계병기군단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마냥 우수수 쓸려나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 찰나의 순간, 노바티라의 고성능 기계안이 마주친건 어느새 거리가 훅 멀어진 갑판 위의 인간 녀석들.
그리고 어느새 챙겨든 수십개의 개인화기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배반병기, 센티널.
물론 저런 장난감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등에 지고있는것들은... 그토록 자랑하던 고성능폭약들.
<아. 망했군.>
그런 노바티라의 상념을 마지막으로.
투타타타타타타...
시뻘건 점들로 만들어진 수십개의 선들이 사정없이 허공에 뜬 노바티라를 후려침과 동시에.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차마 눈을 뜰수 없을 정도의 새하얀 섬광과 폭음이 노바티라와 주변, 허공에 우수수 뜬 기계병기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
객실, 상부.
콰아아아아앙!
<어머어머. 이거 진짜 난리도 아니네요.>
갑작스런 급정거에도.
앞에서 터져나온 커다란 폭발에도.
키리릭!
전혀 당황하지 않은채 바닥에 네개의 철창을 박아넣어 균형을 유지한 기계미녀, 베티가 눈앞의 소년 카티를 보며 웃었다.
상황은 중과부적.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이 커다란 배의 후미, 천장에는 카티와 베티 자신만 있는게 아니다.
몰려드는건 수많은 기계병기들.
방금전의 급정거로 우수수 밀려나긴 했지만 그정도는 티도 안날 정도로 수많은 녀석들이 배를 타고 위로 오른다!
그 속에서 거대한 칼과 창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분투하고 있는 소년을 본 카티가 여유있는 표정으로 철창을 들어 내던졌다.
<하여간 처음 중앙플랜트에서 봤을때도 인상적이었지요. 조그마한 주제에 어찌나 잘싸우던지. 딸이 있는 임자있는 몸 아니었으면 대시해봤을텐데.>
"사양... 하지. 나는 나보다 작은 여자가 내 취향이라."
<... 그런 여자가 있기는 해요?>
터어어어어엉!
터어엉!
거대한 칼과 창을 휘둘러 자신의 철창을 휘둘러내는 상대의 작달만한 신체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듯 중얼거리던 키 3m, 장신의 미녀 카티가 이내 손을 까딱거리며 웃었다.
<어찌 되었건 그날이랑 결과는 똑같게 되겠네요. 좀더 비참하겠지만.>
후우우우우웅!
자성을 이용해 튕겨나간 금속창을 회수해 다시 손아귀에 쥔 여인이 여유로이 분투하는 상대를 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날, 2년 전도 그랬다.
상대는 잘 싸웠지만 그게 한계.
끝도 없이 부릴수있는 기계군단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신은 최고의 궁합.
근거리 위주의 전투를 행해야하는 상대는 결코 자신을 이길수없다.
자신이 달려드는 상대에게 거리를 내줄 얼간이도 아니고 말이다.
꽈드드득...
꽈드득...
미소를 쥔채 네개의 철창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미녀의 양팔이 마치 스크류바처럼 비비 꼬여간다.
견갑골부터 시작하여 어깨, 양팔, 전완, 손목에 이어 손가락까지.
인간이라면 결코 보여줄수 없는 이형의 비기.
거기에 전신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섬유들이 배배 꼬이며 금방이라도 저장된 에너지를 터트려낼 준비를 마친다.
2년전 소년의 몸통에 구멍을 내고 도망가게 만들었던 자신의 비기.
아름답던 얼굴도 버리고 흥분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귀까지 쩌억 찢어올리며 웃은 카티가 손안의 철창을 내던지려던 그때.
"그날이랑은 좀 다르지. 누가 택배 수령을 해줬거든."
<????>
이해할수 없는 말에 멈칫한 카티를 향해.
후우우우우웅...!
붉은 빛과 푸른빛.
어느새 폭발적인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두 장갑을 낀 소년이 전신전력을 다해 손에 들린 철갑창을 내던졌다.
**
앞쪽, 갑판.
<후욱. 어느정도 된거같아요. 저는 지금 내려가볼...>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슨 교통사고라도 난것같은 소리가 그들이 선 갑판 위, 객실상부 너머에서 들려옴과 동시에.
<.... 아아아아아아악!>
터어어엉!
콰아아아아앙!
아득한 비명성을 내지른 무언가가 허공을 날아 그들이 선 갑판 위에 굉음을 내며 처박혔다.
허공에서 날아든 것의 정체는 거대한 <창>에 가슴이 통째로 꿰뚫린 금속의 미녀.
... 베티.
그날 중앙 플랜트를 함락시킨 <베티>다...
그날의 기억이 좀더 선명했던 몇몇 이들은 온 전신이 망가져 스파크를 내뿜고있는 미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런 그들의 곁으로.
후우우우웅!
터엉.
"후우. 해치웠나?"
<아하. 그런 말 하면 부활하는거 몰라요? 나는 예외라서 아쉽게 되었지만... 그나저나 제법 유명한거같아서 좋네요.>
뛰어내린 카티를 향해 간신히 미소지어보인 기계미녀, 베티가 주변이들의 시선을 즐기듯 작게 웃었다.
말은 간신히 하고있지만 이미 수명은 진즉 끝난 상태.
붉고 푸른 빛에 휘감긴 강렬한 창은 단번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주던 기계병기들과 네개의 철창을 짓이긴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슴부위를 박살내고 전신 유기신경계마저 터트려버렸다.
상상도 못할 위력.
<역시 내남자... 상으로 좋은 정보 하나 줄게요.>
"?"
<지하로 내려가봐요. 서두르면 우리 대장의 계획을 막을수 있을지도 모르니.>
이에 카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녀석들의 대장이라면 <그놈>이다.
그날 시청을 무너트리고 도시 전체가 붕괴되는데 핵심역할을 한 녀석.
잠시후.
"아린. 여길 부탁한다. 아래는 내가 다녀오지."
아직 싸움이 다 끝난건 아니다.
키리리릭...
갑판사방, 멈춰선 배를 맹렬하게 타고 오르기 시작한 기계병기들을 가리키는 카티의 말에 센티널 안, 아린이 동의하듯 키잉 고개를 끄덕인 순간.
쿠르르르릉...
쿠구구구구구구...
멈춰서있던 배가 다시 굉음을 내며 서서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
구동축.
쿠구구구...
잠시 멈춰섰던 구동계가 강태석의 명령에 따라 후진을 하자 반대로 돌며 열심히 씹어먹고 있던 갑주사내를 퉤하고 뱉어내듯 토해냈다.
갑주사내의 상태는 이미 처참한 상황.
키이이이이잉...
그런 갑주사내를 무시하고 다시 전진을 명령하자 무사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구동계를 본 강태석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구동계에의 이물질삽입에 강제에 가까운 급정거.
혹시나했는데 이정도로는 작동에 무리없는 모양.
"하긴. 이 거대한 배에 비하면 너정도 크기도 아마 작은 돌자갈 튀어들어간 느낌일테니 말이야. 안그래?"
<승자로서의 품격이 없는 녀석이로군.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패자는 할말이 없는 법이니.>
전신이 으스러진채 머리만 남아 움직이고있는 갑주사내를 보던 강태석은 잠시 고민하다 녀석의 머리통만 툭 떼어들어 등에 걸쳐맸다.
머리통이라고 해도 어지간한 성인 상반신보다 훨씬 더 큰 크기.
투구까지 걸쳐쓰고 있었기에 그 위압갑은 더욱 컸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할 상황.
쿠르르릉...
이 거대한 배를 작동시키고 있을 엔진부를 떠올린 강태석이 이내 굳은 표정으로 배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