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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43화 (43/221)

43화

막연한 침묵속.

쿠르르릉...

눈을 감고 있던 칼슨이 눈을 뜨며 자신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멀리 떨어져 자신을 원망과 불신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백수십의 사람들.

그 사이에 덤덤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트란, 그리고 카티.

자신의 아들딸조차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거늘 저 둘만이 덤덤하게 자신을 바라본다.

'좀더 마음편하게 결정을 내릴수 있겠군.'

속으로 중얼거린 칼슨이 입을 열었다.

저 너머에 있는 자신의 아들 딸을 향해.

"네일. 펠란. 내가 아까 말했지?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라도 기세에 한번 밀리면 끝이라고."

<뭐야 임마. 갑자기.>

갑자기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칼슨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펠이 기계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칼슨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때 기세에서 밀렸다. 그렇기에 멍청한 선택을 했지."

여기까지 말을 이은 칼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분명 멍청한 선택이었다.

집무를 보던 그날, 시청에 침입한 그펠녀석과 기계병기들을 본순간 자신은 패닉에 빠져버렸고.

그렇기에 그날 녀석의 제안에 따라 도시의 모든 경보를 해제하고 중요기능들에 락을 걸어버렸다.

그날도 시청에 와있던 자신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이후 자신덕분에 멸망할 도시에서 자신을 도울 몇몇 핵심인재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어진 것은 빠른 멸망.

더 싸울수 있는 이들조차 싸우지못하고 무너졌고 도망칠수 있는 이조차 도망치지 못하고 스러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본다면.

그날 자신이 그날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까?

눈앞의 네일과 펠란이 죽는것을 감수하고 전력을 다해 싸웠을까?

답은 정해져있었다.

같은 선택을 하는것.

그렇기에 자신도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펠. 너는... 인간을 너무 많이 닮았어."

<뭔...?>

기만, 오만, 유희.

거기에 약점까지.

당황하며 멈칫하는, 기계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하는 그펠을 보며 웃은 칼슨이 주머니의 버튼을 꾹 누른 순간.

!!!!!!!!!!!!!!!!!!!!!!!!!!!!!!!!!!!!!!!!!!!!!!!!!!!!!!!!!!!!!!!!!!!!!!!!!

그펠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의 악의와 폭력이 하늘에서 섬광처럼 내려꽃혀 그들이 선 자리를 관통했다.

**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내리 꽂힌 금빛 섬광이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배 후미에 정확히 직격한다.

어찌나 그 빛이 강렬한지 하늘에서 태풍을 만들어내던 폭격들도, 금발 소년이 뿌려내던 푸른 뇌전들도 단번에 관통당해 사방으로 흩어질 정도.

<무슨...!>

!!!!!!!

!!!!!

순식간에 내리꽃히는 수천발의 폭격을 보며 하늘에 떠있던 금발소년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폭격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자신과 연결되어있던 <그펠>의 존재가 단번에 소멸되며 연결이 끊긴것.

<우아... 우아아아! 이 한심한 것들! 시킨것도 제대로 못하고!>

콰르르르르릉!

후미 천장이 뻥 뚫렸음에도 여전히 맹렬하게 질주하며 도시를 벗어나려하고있는 배를 본 금발 소년이 괴성을 내질렀다.

**

쿠르르릉...

폭격은 강렬했지만 짧았다.

금빛 섬광이 스러진 자리에 드러난건 뻥 뚫려 푸른 태풍의 하늘을 비춰내고있는 천장과 지평선너머 은빛 물결을 온전히 드러내고있는 후면.

그리고... 놀랍게도 그 와중에 멀쩡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바닥과 의자.

물론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건 그 둘뿐.

치이이익...

철커덕.

뻥뚫린 공간속, 갑옷과 대도등을 들고 후폭풍을 막아선 강태석과 카티, 군파츠등의 뒤에 있던 사람들 주변으로 기계폭탄거미들이 키릭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그펠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의미.

"칼슨. 계산이... 정확했군. 그때도 지금도."

인질들에게는 한점 피해도 없는 범위를 정확히 직격한 폭격범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카티의 옆, 마찬가지로 씁쓸하게 폭격의 흔적이 남은 자리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창을 우득 쥐었다.

이제 거진 범위밖.

폭격은 거세어지고 있지만 점점더 하늘의 녀석에게 집중되고 있고.

오시리스는 싸움의 여파로 제법 피해를 보았지만 질주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조금만 더 벗어나면 탈출할수 있는 상황.

'저 멀리... 녀석들도 제대로 벗어나고 있는거같고.'

가늘게 눈을 뜬 강태석이 은빛 물결의 도시너머, 피어오르는 연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세피로트 타워에 살아남아있던 생존자들.

이벤트가 발생하면 해당지역의 모든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한다.

저들 역시 마찬가지.

아너스빌과 저곳을 떠나기전, 저들에게 타르늄 합금으로 웜즈씨를 넘을수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왔다.

방주정도는 아니지만 수많은 장갑차들과 플랜트의 충분한 연료를 고려한다면 웜즈씨를 건너 가장 가까운 구역으로 대피할수는 있을터.

기계병기들이 문제였겠지만 현재 도시의 모든 기계병기들이 자신들에게 쏠린 상태이니 탈출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자, 이렇게 해서 위의 녀석을 제대로 엿먹이는데는 성공했다.

이제 핵융합엔진은 자신들의 손에 넘어왔고 녀석의 손발도 잘라냈으며 이제 제물로 삼을만한 생존자들조차 모조리 도시에서 도망치고 있다.

예전 게임에서조차 이렇게 잘풀린 케이스는 몇없을 정도.

그러면 어떻게 될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문제점은 보통 하나다.

상대에게 너무 제대로 엿을 먹여버렸다는것.

"다들 준비해. 페이즈 2니까."

"?"

하늘을 바라보는 강태석의 말에 숙연해져있던 이들이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콰르르르릉...

<다 죽여주마.>

하늘에서 내려앉기 시작한 푸른빛의 천둥번개에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콰르르릉...

무표정한 두 소녀를 허공에 대동한채 내려앉던 금발 소년이 차가운 눈으로 달리는 배, 그 후미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하면 피해없이, 산채로 꿀꺽 삼킬수있기를 바랬다.

살아있을수록, 육신이 온전할수록 제물로서의 가치는 높으니.

하지만 이제는 그런것 가릴 때가 아니다.

설령 하나의 제물조차 건지지 못한다한들.

눈앞의 배가 통째로 가루가 되어 단 하나도 삼키지 못한다한들.

자신의 심장이 될 핵융합엔진만큼은 손에 넣어야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앞의 배를 가루로 만들고 발아래 모든 녀석들을 죽여서라도!

<이자리에서 몽땅 끝내주마.>

콰콰콰콰쾅!

콰쾅!

금발 소년이 아래로 내려앉자 하늘에서 내리쏟아지는 폭격들 또한 땅과 배를 향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대지, 기계병기, 배.

가리지 않고 모조리!

콰르르르릉!

그 속에서 푸른빛 번개를 휘감은 금발 소년이 그대로 후미에 선 벌레들을 향해 심판을 내리쏟으려던 그순간.

"잠시 진정하고. 대화 좀 해보자고."

<????>

어처구니없게도.

후미, 고풍스런 의자에 삐그덕 앉아 자신에게 말을 거는 녀석의 태도에 손을 들어올렸던 금발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끼익.

그펠이 앉아있던 고풍스런 금속제 의자.

뒤의 원형정원, 뻥뚫린 원형후미 한가운데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강태석의 모습에 카티와 사람들은 물론 군파츠마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야야. 뭐 어쩌려고.>

키잉...

행여나 스칠새라 바디슈트로 몸을 돌돌 감싼채 묻는 군파츠를 흘긋 본 강태석이 하늘에 뜬 금발 소년을 향해 외쳤다.

"너도 알거야.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

앉은채 창을 빙빙 돌리며 말하는 강태석의 말에 침묵을 지키는 허공의 소년을 향해 강태석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안하나 하지. 우리 그냥 보내줘. 그러면 물지는 않을테니까. 너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결과지?"

이에 하늘에 뜬 소년도, 주변에 선 이들조차도 어이없다는 눈으로 강태석을 바라보았다.

저걸 지금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애초에 저걸 받아들일거였으면 지금 이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

쿠르르릉...

<그래도 네가 한가지는 잘 알아서 다행이구나. 누가 쥐고 누가 고양이인지.>

금발 소년의 몸 주변을 감싸고있던 푸른 번개가 소년의 사나운 미소와 함께 미친듯이 번득이기 시작했고.

이를 본 주변 이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움켜쥐면서도 절망어린 표정을 지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지금 이 질주하는 거대한 배를 쉴새없이 뒤흔들고 있는 수많은 폭격들.

이를 단신으로 막아내던 금발 소년.

단순히 생각해도 금발 소년이 부리는 뇌전의 힘은 저 폭격들과 대등, 혹은 그이상.

이제 그런 힘들이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그때.

"고양이는 무슨... 이 개놈새끼 진짜. 네가 먼저 시비건거다."

<뭐?>

하늘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주먹을 꽈득 쥐었다.

이렇게까지 하고싶진 않았다.

아니, 지금이라도 그냥 배를 버리고 탈출하고 싶다.

지금 선택으로 정말 소중한걸 대가로 치뤄야하기에.

하지만...

'빛지는건 정말 싫지.'

죽어가는 와중에도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던 칼슨의 눈동자를 떠올린 강태석이 후미, 칼슨의 아들과 딸들을 흘긋 바라본뒤 의자의 팔걸이에 손바닥을 가져다대었다.

이어 머리에 퍼지는 낭랑한 오시리스의 기계음.

<접속 확인중... 오시리스 최고권한자.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레벨 8(88.74%)... 레벨이 크게 낮습니다. <급속충전>을 사용할시 큰 타격을 입을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키이이잉...

이어 통째로 푸른 광채로 빛나기 시작한 금속제의자에 앉은 강태석이 눈을 감았다.

이 배는 <귀족>을 위한 배.

그렇기에 그 흔한 무장도, 방어기제도 갖추지 않았다.

왜?

그들, 배의 주인이 될 귀족 자체가 이 배를 지키는 무적의 창이자 방패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을 위한 단 한가지 기능이 존재한다.

급속충전.

중앙대륙을 헤치고 나갈 귀족들을 위한 전투유지기능.

이름은 간단하지만 이 배의 핵심.

그게 타르늄장갑조차 종잇장처럼 뚫어버린 폭격에도 이곳이 멀쩡한 이유.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하늘의 번개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하부, 핵융합엔진으로부터 치솟아올라 의자를 휘감은 순간.

콰르르르르륵...

콰르르르르르르르륵...

강태석의 전신을 감싸고있던 전투강갑이 미친듯이 증식하며 육체뿐 아니라 칠채영창마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뭔...!!>

콰르릉!

콰지지지직!

이에 기겁한 금발소년이 반사적으로 푸른 번개의 폭풍을 내려친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기 20m의 거대한 은빛창이 번개구름을 꿰뚫어버리고 허공을 질주하여 그너머, 금발소년을 후려쳤다.

**

도시 외곽.

"빨리 빨리 움직여! 웜즈씨를 건넌다! 어서!"

세피로트 타워, 플랜트가 있던 곳.

타르늄장갑으로 바리바리 두른 장갑차의 위에 탄 리더 사내가 주변의 장갑차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시간이 없다.

왜 기계병기들이 모조리 북쪽으로 빠졌는지 몰라도 이때 도시를 벗어나야한다.

그만큼 저멀리, 도시 상공에서 휘몰아치고있는 푸른 뇌전의 폭풍은 살벌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때.

!!!!!!!!!!!!!!!!!!!!!!!!!!!!!!!!!!!!

"????!!"

십수키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천지를 뒤흔드는듯한 찢어지는 굉음에 리더사내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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