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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45화 (45/221)

45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의 기억과 기록이 강태석을 향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기절한 강태석은 꿈을 꾸었다.

<....년 ...월 ...일>

절망적이다.

기계병기들이 나라의 내외에서 압박해오고있고 옆나라 놈들은 이런 와중에도 혹여 물어뜯을게 있나싶어 국경을 침범해온다.

신을 믿지 않은지 오래되었건만 신을 믿었어야만 했나?

... 하지만 신을 믿던 녀석들의 나라가 진즉 기계병기들에 멸망한걸 보니 그런것도 아닌듯 싶다.

<....년 ...월 ...일>

오오.

인생이란 정말 예측할수가 없구나.

더이상 슬퍼질수 없을줄 알았는데 그아래, 더 나락이 있다니.

이날 나는 처음 알았다.

국토와 국민의 절반을 잃었을때보다.

나의 두 딸을 잃었을때가 더욱 슬프다는 것을.

마땅히 전자가 더 슬퍼야하거늘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일까.

심장을 내찢는 통증이 밀려온다.

<....년 ...월 ...일>

... 주변국가 놈들에겐 더이상 실망할 것조차 없다.

그나마 눈치를 보던 시절이 고마울 지경.

이제는 거침없이 영토를 넘어와 유산과 유물, 각종 귀중한 자원과 인재들을 약탈해가고 있다.

하긴 녀석들도 급한거겠지.

아마 이 전쟁통속, <연방>으로부터 자주권을 찾을수 있으리라 여기는걸수도.

하지만 느낌이 온다.

이 이야기는 모두의 죽음으로 마무리될것이라는 걸.

...

아니, 어쩌면 내가 그걸 바라고 있는 걸수도.

<....년 ...월 ...일>

기계의 왕이라는 자들이 제안을 해왔다.

인간으로서의 지성을 얻은 것중 가장 강대한 녀석.

하지만 그뿐아닌가.

코웃음을 치는 자신에게 녀석이 보낸 사자는 덤덤히 말했다.

나라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키면 네 두 딸을 살려주겠다고.

그에 더해 네 국민들을 바친 대가로 자신의 군대를 지휘할 막대한 권한을 주리라고.

인간을 배신하고 나라를 버리라고?

이게 지금 한나라의 왕에게 할 소리인가?

단번에 거절하려했지만 사자의 입을 빌린 녀석의 비웃음이 지금도 기억난다.

[국민과 국토의 절반을 잃었을때가 슬펐는가? 아니면 네 두 쌍둥이 딸을 잃었을때가 슬펐는가?]

[네가 정답을 안다면 어떤 교환이 맞지? 나머지 절반이라도 지불할 가치가 있지 않나?]

그순간 기억났다.

그때의 감정이, 그때의 절망이.

더나아가 나는 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놈이었다는 것까지.

...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게 인간으로서 쓰는 나의 마지막 일기이리라.

<....년 ...월 ...일>

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죽는다.

국민을 모조리 바친 대가로.

기계들의 수장이 되어 주변국가를 분노로 물들인 대가로.

그토록 원했던 딸대신 겉만 닮은 인형쪼가리 둘만 가진채.

기계라는 놈들에게 속을 정도로 어리석었던 우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대초인>이라는 놈들에게 죽는다.

아아... 정말 원망스럽다.

저런 <힘>을 가졌으면서 왜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는가.

대체 ㅇ... ㅗ...ㅐ...

....

....

....

....

<....년 ...월 ...일>

... 다시 살아났다.

믿을수 없군.

그런데... 나는 누가 되살렸지?

그걸로 상념은 끝.

쿠르르릉...

정신이 깨어나고 귓가로 아스란히 상공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정신없이 눈앞으로 떠오르는 창.

<전투강갑(S)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1차 봉인해제...>

<전마강갑(D...B...C...A...S...??????), 기동 시작합니다.>

<대단합니다! 망국의 왕 : 라프텔을 처치했습니다.>

<특별보상으로 스킬 <황금순록의 왕관>(B)(UNIQUE)을 습득합니다.>

<해당스킬은 즉시 외부스킬슬롯에 추가등록이 가능합니다.>

<대답합니다! 이벤트보스(망국의 왕 : 라프텔)을 처치했습니다.>

<특수보상으로 스탯 <감염된 푸른 피>(C)(RARE)을 부여합니다.>

<해당스탯은 전직이후부터 <마력>을 대체하여 적용이 가능합니다.>

<레벨 9 달성!>

<추가스탯 3이 지불됩니다.>

<스킬강화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보유한 스킬에 강화를 시도할수 있습니다.>

<레벨 10 달성!>

<추가스탯 3이 지불됩니다.>

<스킬가챠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스킬의 랜덤가챠를 시도할수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가 아득한 와중에 전달되어왔지만 강태석은 거의 본능적으로 스탯부터 투자했다.

<스탯 투자... 근력1/반사신경1/체력2/기술2투자>

<강태석>

>레벨 : 10(45.64%)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약식 EMP(Active/Passive)(등급-E)//황금순록의 왕관(Active/Passive)(등급-B/UNIQUE)

>스탯 : 근력8/반사신경7/체력7/마력7(*)/기술7.

>무장 : 전마강갑(?)/여의(S-역량부족)/오시리스(C-수리필요)/칠채영창(B-내구회복중)

'아 그런데 나... 지금 설마 떨어지는 중인가...?'

조금더 정신을 차린 강태석이 눈을 꿈뻑이며 맹렬히 낙하중인 육신의 균형을 잡으려던 그때.

터어어어엉!

터엉!

터어어엉!

잡았다!

기계병기들을 밟고 뛰어오른 아린의 센티널이 그대로 허공에서 강태석을 안전하게 받아채며 소리쳤고 이어.

잡아!

촤르르르르르륵!

내던져진 군파츠, 바디슈트의 금속밧줄을 잡아챈 센티널이 이를 맹렬하게 되감으며 빠르게 오시리스의 후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멀리, 아주 머나먼 곳의 절벽 위.

황무지마냥 펼쳐진 도시와 은빛물결, 그너머 웜즈씨의 전경마저 모조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있던 한 사내가 믿기 힘들다는 시선으로 눈앞의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스러진 푸른 뇌전, 질주하는 금속배.

도시 사방으로 흩어지는 수많은 생존자들까지.

"...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다. 라프텔이 죽다니."

키이잉...

기괴하게 생긴 적빛, 길이 10m에 두께는 오리알마냥 두꺼워보이는 거대한 낚시대를 등뒤에 메고있던 사내가 턱을 매만졌다.

이런 촌구석에 <알>들을 심어둔건 연방에 들키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건 갓 태어난 녀석들이 위협없이 무럭무럭 주변 모든것을 집어삼키며 자라는걸 원했기 때문.

실제로 이곳의 환경은 갓태어난 녀석들에게도 위협이 될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

말하자면 플랑크톤 수조에 금붕어 새끼를 뿌려둔 꼴인데 죽어버리다니?

심지어 라프텔은 뿌려두었던 <알>들중에서도 제법 강한 녀석.

하지만 고민은 잠시.

"이런거에 집착하면 편집증에 걸리는 법이지."

후웅...

아래 절벽으로부터 고개를 뗀 사내가 낚싯대를 짊어진채 뒤쪽, 공중에 반쯤 떠있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하나 죽는다고 흐트러질거면 그걸 <계획>이라고 부를수도 없다.

이미 대세는 흘러가고 있는 상황.

이제 각지에서 일어난 녀석들이 착실하게 온 세상을 흔들어주리라.

'거기다 나는 신참이니까 뭐. 이런거 신경안써도 되지. 내잘못도 아니고.'

어깨를 으쓱한 사내가 오토바이에 올라타다 등뒤의 낚싯대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세피로트 타워 아래 있던 이녀석, <레드피셔>도 손에 넣었고 <전직>도 했고.

누가 고레벨 기계병기들을 우르르 몰아놨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레벨업을 했다.

이제 자신이 할건 다 한 상황.

"자자. 가자."

이윽고.

부우우우우우웅...!

사용자의 마력을 빨아들여 움직이는 반부양 오토바이가 거침없이 황무지의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쿠르르릉...

"끄응... 좋지도 않은 경험을 계속하는거 같은데."

진동하는 배의 안쪽.

한 객실의 철제프레임, 매트리스 위에서 일어난 강태석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싸울때마다 가진걸 모조리 끌어다쓰니 진력이 빠질 지경.

거기에...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털썩.

일어나려던 강태석이 다시 누웠다.

역시 이벤트보스는 잡으라고 있는 놈이 아니었기에.

적당히 쫓아내려고 했다가 말그대로 영혼까지 털릴뻔했다.

그나마 살아남을수 있었던건...

쿠르르릉...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하나."

강태석이 들어올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백색의 철갑대신 어둠이 혈관과 피부사이를 꿈틀거리며 흘러다닌다.

전마강갑.

전투강갑이 박살나자 그 안에서 터져나온 녀석.

그냥 좀더 강화된 무언가가 짠 하고 나타난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는... 말 그대로 전투강갑은 <이녀석>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속구같은 느낌.

지나치게 강건하고 지나치게 잘 만들어졌지만 바꿔말하면 그정도로 강력한 봉인이 필요했다는 의미.

그렇기에 조심해서 써야할것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누군가 이런것까지 만들어가며 봉인해두었던데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전마강갑은 뭐고... 전투강갑은 누가 만든건지."

강태석이 숨을 푸 내쉬었다.

오랜 기간, 끊임없이 진행되었던 업데이트.

자신이 플레이하던 지역에 업데이트된 신규아이템이나 인물, 이벤트들에는 빼곡했지만 자신이 지나간 뒤 업데이트된 내역들까지 일일히 확인할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사실 이게 온전히 게임이라고만도 볼수없으니 이 세계관속에 남아있던 무언가일지도.

하지만 확실한건 하나다.

싸움은 힘들었지만 얻은게 많다는것.

콰르르릉...

자신의 손 주변에서 피어나는 뇌전의 스파크를 보며 강태석이 웃었다.

황금순록의 왕관.

망국의 마지막 왕이었을 녀석, 라프텔에게 전해졌을 왕가의 비전.

녀석의 몸을 끊임없이 둘러싸던 뇌전의 구체와 발톱이 바로 그것이다.

전직 직전까지 도달한 레벨.

전마강갑.

거기에 초반부에는 얻기가 금보다도 힘들다는 유니크 스킬.

이에 전직 직후 곧바로 쓸수있는 <레어 스탯>까지.

그래,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쿠르르르릉...

질주하는 배, 오시리스.

지금쯤 열심히 배 곳곳을 수리하고 있을 달리안과 배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강태석이 배의 벽면을 어루만지던 그때.

벌컥.

"일어났어?"

"나좀 쉬면 안... 아니다. 뭔데."

한숨을 푸욱 내쉬고 일어난 강태석을 향해 싱글벙글거리며 들어온 군파츠가 복도 밖을 가리켰다.

"앞에 섬같은게 나타났어. 선장한테 얘기해야할것 같아서."

"..."

'선장이라.'

강태석이 낯선 단어에 입맛을 다셨다.

하긴 이 배가 자신의 권한에 의해 컨트롤되니 틀린 말도 아닌 상황.

그리고 말그대로 <섬>같은 것들이 나타난다면 제법 중요하다.

이 은빛 바다, 웜즈씨가 진짜 바다가 아니듯.

나타난 섬들도 진짜 마냥 섬들이 아닐테니까.

잠시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태석이 옆에 놓여져있던 칠채영창을 챙긴뒤 배의 앞, 갑판을 향했다.

**

쿠르르르릉...

갑판의 가장 앞에 선 강태석이 주변, 넓게 펼쳐진 은빛 바다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정말 넘실거리는 바다로 오해할 정도.

그렇게 펼쳐진 은빛 벌레들의 바다 위를 타르늄 합금으로 감싸진 거대한 배, 오시리스가 파랑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말그대로 수륙양용.

금속으로 만들어진 <배>는 육중하기 그지없었지만 사방의 지평선까지 뻗은, 은빛벌레들로 이루어진 금속바다의 밀도는 물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기에 오시리스는 은빛 바다속에 빠지지 않고 그위로 떠서 앞으로 나아갈수 있었다.

캐터필러와 육상구동계가 회전하며 추진하는 방식이기에 육상에서만큼 빠르게 나아갈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배의 앞.

은빛바다건너, 마치 해안선마냥 떡하니 자리잡은 육지의 경계가 보인다.

군파츠의 말대로 섬처럼 보이는 모양새.

그런 강태석을 향해 어느새 옆에 모여든 이들이 물었다.

"상륙할거야?"

센티널을 벗어제끼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밀집모자를 쓰고 있던 아린의 질문에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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