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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46화 (46/221)

46화

북쪽, 109.5km 지점까지 도달.

항해 첫날.

**

쿠르르릉...

서서히 속도를 줄인 배, 오시리스가 해안선과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갑작스레 배가 멈추자 자연스레 갑판으로 나와보는 이들.

저건... 섬? 육지?

어디인거야 대체.

웅성이는 사람들을 보던 강태석은 자신의 왼손목에 차여진 투박한 팔찌를 이용해 허공에 반투명한 창을 띄워올렸다.

구세대 AR기기에 이 배의 구동시스템을 접속시켜 급조한 배의 통제장치.

세피로트의 메인컴퓨터에서 이 배의 설계도안과 더불어 이 배의 구동 AI 프로그램까지 가져왔기에 배의 자동화운영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 그와 별개로 직접조작은 급조한 구세대 기기로 하려니 영 불편하다.

뇌파조절장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섬세한 물품들은 도시가 박살나던 시절 거진 망가져버렸으니 당장은 구할수도 없는 상황.

'천천히 구해봐야지.'

티티티틱...

반투명한 패널을 조정하자 눈앞, 섬처럼 보이는 곳의 정보가 떠올랐고.

이를 읽어보는 강태석의 곁으로 다가온 카티와 페리트란들이 강태석을 향해 물었다.

"저기가 어디지? 대충 솔트라 시티 부근일거같긴 한데."

소년, 카티가 강태석을 향해 물었다.

나름 정확한 추측.

온 세계가 기계병기와 나노머신벌레의 바다에 뒤덮였다고 하여 기억과 감각마저 사라진건 아니었다.

카티의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은 이곳이 자신들이 있던 도시로부터 북쪽, 대략 100km 가량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주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곳은 세상이 멀쩡하던 시절 솔트라라는 지명이 붙어있던 도시.

하지만 강태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카툰입니다."

순간.

"말도 안돼. 거긴 서쪽으로 300km나 떨어진 곳인데..."

"저게 솔트라가 아니라 카툰이라고?"

카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티정도는 아니라지만 그들 모두가 감각이 민감한 초인들.

거기에 2년 전이라지만 벌써 주변의 지리를 잊었을리가 없다.

한데 서쪽으로 300km나 오차가 났다고?

그런 그들의 말에 강태석이 긴 숨을 내쉬었다.

저들의 생각이 맞다.

원래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도시는 솔트라여야한다.

하지만 크게 오차가 생겨난 이유는 두가지.

첫번째, 온 사방을 뒤덮은 이 나노머신들의 바다가 그 위를 지나는 모든 이들의 감각을 흐리고 있었기에.

감각뿐만이 아니다.

전파, 통신, 사념.

이 은빛의 뒤틀린 바다는 위를 지나는 모든 것들을 뒤틀어 지나는 이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세상을 조각조각 격리시킨다.

그리고 두번째.

실제로 <도시>들이 움직였기때문.

쿠르르르르...

강태석이 은빛 바다너머, 작게 떨어울리는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이 세계의 멸망은 착실하게 진행중.

저 머나먼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성분쇄용 기계병기들에 의해 대륙이 조각나고 맨틀이 뒤틀리고 있다.

당연히 지표면의 군데군데가 뒤틀려 그위의 도시들도 밀려 이동하는중.

한데 도시가 조각나지 않고 여진정도로 끝나는 것은 지금까지 <웜즈씨>에서 멀쩡히 살아남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강건한 타르늄합금 위에 지어진 계획도시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살아남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천천히 흐르는 지각의 강과 주변을 감싼 은빛바다위에 뜬 금속의 섬인 셈.

사실 강태석조차 지금수준으로는 이 은빛바다의 방해를 뚫고 현재 위치와 눈앞의 섬을 정확히 알아내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석이 눈앞, 도시의 정체를 정확히 알수있었던 이유는 도시의 바닥을 구성하는 타르늄금속 자체가 뿜어내는, 일련번호와 같은 자기장을 오시리스의 감지센서가 읽어낼수 있었기 때문.

<도시, 카툰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오시리스의 탑승객 여러분.>

<도시, 카툰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오시리스의 탑승객 여러분.>

<도시, 카툰에 오신것을...>

도시의 일련번호를 읽어 자동으로 흘러나오게 설계된 선내방송.

뭔가 에러가 났는지 녹음된 음성을 반복재생하고 있는 꼴이 자뭇 섬뜩하기까지 했다.

... 카툰이라고?

말도 안돼. 벌써 거기까지 갔을리가 없는데?

본인들의 감각과 선내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자뭇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사이, 정신을 빨리 차린 군파츠가 퉁명스레 물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성격이 빛을 발하는 순간.

"에이잇.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저게 어딘지 알아낸게 중요하지. 그나저나 어쩔거야? 지나쳐 말아? 사실 내리기는 영 찝찝한데."

군파츠의 말은 모든 이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간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몰락의 도시를 벗어났다.

하지만 막상 벗어나고 보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건 완전한 미지의 세계.

그들이 알던 세계는 없어지고 모든것이 뒤바뀐 세상만이 존재한다.

미지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본능.

그러니 눈앞, 갑작스레 나타난 섬같은 도시에 내리고싶지 않을수밖에.

저곳에 뭐가 있을지, 무엇이 튀어나와 갑작스레 자신들을 집어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군파츠의 말에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물자가 얼마나 남아있지 페리트란?"

"... 각 쉘터와 피난민들이 협조한 내용이 맞다면 제법 많긴하지. 각자 평균 107일치 정도. 물은 조금더 부족하고."

공업단지가 박살나고 급박하게 배에 올라타는 와중에 챙겨나온 것치고는 그 양이 상당하다.

이유는 강태석이 칼슨에게 캡슐의 권한을 넘겨줬을때 피난민과 각 쉘터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한다며 캡슐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파내 꺼내챙겼기 때문.

캡슐 안에 쌓여있었다면 반의 반의 반도 못들고 나왔겠지만 수천명의 생존자들이 나눠들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물자가 공업단지와 가라앉는 것은 막을수 있었고.

남의 것이라면 모를까, 일단 챙겨나온 것들은 확실한 자신들의 것이었기에 생존자들은 그 급박한 와중에도 착실히 그것들을 챙겨 배에 탈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여유있는 양은 아니네..."

"그렇지?"

중얼거리는 아린의 말에 강태석이 동조하듯 대답했다.

그렇다.

많다면 많지만 자신들은 지금 <항해>중.

얼마나 은빛바다를 헤메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천명을 싣고 있다.

그리고 일단 같은 배에 타긴 했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보면 여전히 수십개로 쪼개져 불안정한 상태.

공업단지와 상황이 다를게 없다.

벌써부터 이 드넓은 배에 수십개의 집단들이 암묵적으로 각자의 구역을 나누어 자리잡은 상태.

만약 이상태에서 서서히 물자가 동이 나기 시작한다면?

또다시 난리가 날것이며.

아직 강태석과 카티, 페리트란등은 이를 온전히 통제할수있는 힘이 없다.

그렇기에 나오는 결론.

"정말 위험해보이지 않는다면 내린다. 각자가 내려서 물자들을 챙겨야해."

"으... "

군파츠가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도시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도,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도 이미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배를 탔을뿐, 그들이 앞으로 해야하는 일은 지난 2년간 해왔던 것과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생존, 탐색, 보충.

이를 더 넓고 새로운 세상에서 해내야하는것 뿐이다.

남아 확실한 죽음을 맞는대신 생존을 위한 도박을 선택한 대가로.

잠시후.

쿠르르르릉...

강태석의 조작에 따라 그들이 탄 배가 천천히 안개가 낀 해안선 근처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

완전한 미지의 도시.

원래대로라면 차례대로 해안선을 훑으며 섬 전체를 살피고 탐사대를 보내는 식으로 진행해야한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목숨이 걸린 일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모자라지 않으니까.

하지만 강태석은 그런식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는 결국 몽땅 용암에 빠져 죽게될 미래를 알고 있다.

게다가 싸움을 피하고 피한다고?

언제까지 피한단 말인가.

망국의 왕, 라프텔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방주, 노아 근처로 가면 그정도 녀석들은 발에 채인다.

난데없이 하늘을 <뛰어> 건너가던 초인 하나의 발에 짓밟혀 배가 통째로 박살날수도 있는 노릇.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정석돌파.

배, 인원, 무장.

끊임없이 싸우고 모든것을 강화하며 중앙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그게 강태석이 도시 카툰의 해안선, 폐허가 된 도시 경계에 일단 배를 가져다댄 이유.

쿠르르르릉...

한때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살았을, 높이 50층정도의 복합거주동들 사이로 오시리스가 육중한 거체를 안착시켰다.

폐허긴 하지만 사방이 나름 높은 빌딩들로 둘러쌓인 곳.

사실 여기에 배를 댄다고 하여 완전히 숨길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기 좋으니 뭔일 생기면 잽싸게 배를 타고 도망갈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정도.

'겉으로는 이정도고...'

배를 안착시킨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이곳에 배를 댄 진짜 이유.

이곳이 도시, 카툰의 공략포인트 17번이기 때문.

게임, 그랜드크로스의 골수 매니아 플레이어들에 의해 개발되고 연구된 31개의 시작포인트중 하나.

도시의 핵심시설등에 대한 접근성, 물자확보의 용이성, 전략전술적 위치확보, 그외 기타등등.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선정된 시작포인트들 중에서도 17번은 가장 밸런스가 좋은 편에 속한다.

예전 게임하던 시절에 강태석 본인도 즐겨 사용하던 장소.

애초에 이 포인트를 개발한 골수 매니아 플레이어중 하나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말하면 역시나 또 미친놈 소리듣기 딱좋은 노릇.

!!!!!!!!

!!

배의 하부에 열린 폭 8m, 높이 6m의 여덟개 메인출입구를 통해 차례대로 쏟아져나오는 이들을 본 강태석이 갑판의 난간너머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각자행동.

도시의 지도를 공유했으니 이제부터는 각 쉘터들이 따로, 혹은 협력해서 탐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자신도 할일을 하면 된다.

키잉...

<아저씨. 우리 쉘터는 일단 진지구축부터 하려고. 이제 뭐할거야? 일단 좀 쉬고있을래? 몸상태도 좀 그럴텐데.>

어느새 센티널에 탑승해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마친 아린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전투강갑의 과도한 사용으로 정신을 잃은것 뿐이지 페널티 자체는 강갑이 모두 받아냈기에 몸상태는 멀쩡했다.

"일단 근처 무기고부터 가보려고."

'무장의 수준 자체를 일단 끌어올려야한다.'

키이잉...

강태석이 눈앞, 금속으로 전신을 두른채 온갖 화기를 짊어진 센티널을 바라보았다.

강태석 본인의 레벨이 10이 되었고 앞으로 향해갈 도시들의 수준은 더 높을 것이다.

그 말은?

에너지소드같은 냉병기 외에도 화기 자체의 수준을 끌어올려야한다.

<검기>를 사용할수 있는 녀석들이나 10레벨이 넘어가는 병기들에게는 지금 무기들 자체가 잘 먹히지 않으니까.

거기에 배를 강화할수 있는 전용무장도 구할수 있으면 더좋고.

귀족이 타고있다면 저급무장 따윈 디자인을 해치는 못생긴 장식에 불과하겠지만 귀족이 없는 지금 배에 무장을 하지 않겠다는건 배부른 소리에 가깝다.

마개조를 해서라도 배를 강화해야하는 상황.

그때.

"저기... 무기고로 갈거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

센티널 뒤에서 고개를 쏙 내민 달리안의 말에 강태석이 이채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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