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콰아아앙...!
순간.
철그럭!
<쓸데없이 끼어들지 마라! 내려가서 내 주인을 지켜!>
"그건 이미 베티가 하고있고."
흙먼지속에서 들려나오는 고함성을 흘려낸 강태석이 손의 창을 쥔채 몸속의 어둠을 불러냈다.
상태가 심상찮은걸 느끼고 달리안과 베티는 지하 5층 위치쯤에 대기중.
쿠르르릉...
전마강갑을 불러내자 피속에 흐르던 어둠이 흘러나와 피부를 휘감는다.
순식간에 일렁이는 검은 갑옷에 휩싸인듯한 모습.
아니, 갑옷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경계조차 불분명한 검은 물결의 파도.
뭔...!
드르르르르르르륵!
주변의 이들이 기겁을 하면서도 거의 본능적으로 손에 들린 개인화기를 드르르륵 갈겨댔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파파파파팟...
스르릉...
티티티티팅...
일부는 튕겨나가고 일부는 관통해 뒤에 처박히고 일부는 그대로 어둠속에 삼켜져 어디갔는지 알수조차 없다.
그야말로 인지를 벗어나는 불가해의 물건.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처음 전마강갑을 불러낸 강태석마저 멈칫할 정도.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주변이들은 말할 것조차 없다.
"... ....!"
주변에서 화기를 갈겨대던 이들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손마저 멈춰선 그때.
이 머저리들이! 뭐하고있는거야! 비켜!
저멀리, 장갑차쪽에서 들려온 우렁찬 미성과 함께.
후욱...
콰아아아아아아앙!
공기를 찢는 굉음이 질주하며 내달리는 것을 본 강태석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다급하게 몸을 뒤로 날렸다.
군용 전투기갑창.
기계병기마저 갈아버리는 에너지장에 압도적인 운동에너지, 몸체의 화약에 의한 폭발력까지 모조리 갖춘 녀석.
저건 기계병기고 사람이고 맞으면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간다!
강태석이 땅을 박차 몸을 뒤로 뺀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타이밍에 날아들어 발밑에서 터진 전투기갑창의 화력이 강태석을 휩쓸었다.
사방으로 터져나오는 화염.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내장을 후려치는 폭압.
그것도 모자라 사방팔방으로 터져나가며 걸리는 모든걸 갈아버리는 내장파편재의 폭풍들까지.
후우우우욱...
마치 실끊어진 연처럼 폭발의 근원지에서 퉁겨나간 강태석이 허공에서 간신히 자세를 잡아 땅에 내려앉으며 주먹을 까득 쥐었다.
역시나.
전마강갑은 분명 사기적인 물건이었지만 이또한 전투강갑과 동일한 면이 있다.
결국은 사용자의 수준이 온전하지 않으면 그 위력을 모조리 끌어내지 못하는것.
그리고 지금 자신의 수준으로는 전마강갑 하나믿고 저런 고화력병기에 뻗대면 갈려나간다.
자신을 후려친 폭발의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직격을 피했음에도 몸을 감싸고 있던, 총알따위에는 미동도 없이 잔잔하던 어둠이 마치 태풍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일렁이고 있을 정도.
심지어 이제 시작.
분산해서 쏴! 둘 모두 놓치지 마!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사방팔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하는 전투기갑창들의 섬뜩한 붉은 선에 강태석이 혀를 차며 이리저리 뛰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이 무장수준, 이 화력.
이녀석들이 무기고를 털어간 장본인들이라는 걸!
이게 바로 개인화기 수준으로는 따라올수 없는. 도시방위를 위한 군용무장의 위력들.
거기에 문제는 자신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앙...
<크허어억...>
'궁합이 안좋아.'
저 반대쪽,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거구 기계인형의 이악문 신음성을 듣던 강태석이 손의 칠채영창을 움켜쥐었다.
원래대로라면 저렇게 당할 녀석이 아니다.
만약 여기가 아래, 무기고같이 한정된 공간이었다면 혼자서도 모조리 정리하고 남았을 녀석.
한데 이 광활한 대지에서 숙련된 녀석들을 만난 탓에 피하지도 못하고 사냥당하듯 사방에서 이리저리 두들겨맞고 있다.
아니, 사실 저걸 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것 자체가 녀석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
하지만 이대로라면 결국은 깡통이 되어 고철처리장으로 직행하게 될터.
혀를 차던 강태석은 그대로 손의 칠채영창에 힘을 불어넣었다.
사람한테 사용하긴 좀 찝찝했지만 어쩔수 없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몸을 감싼 어둠과 대비되는, 찬연히 주변을 밝히는 영롱한 일곱빛깔 무지개광채가 흙먼지를 넘어 사방에서 싸우는 이들 모두에게 흘러닿은 그순간.
쩌저저저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검폭의 힘을 그대로 담은 빛과 마력, 파편들의 폭풍이 단번에 퍼져나가 반경 50m를 모조리 휩쓸며 사방을 비명성으로 그득 채웠다.
어찌나 그 충격이 강렬했던지 방호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던 이들도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 정도.
이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손에 들린 돌을 던져 먼지너머, 간신히 여유를 찾은 크탄의 어깨죽지를 맞췄다.
"이리와!"
<...>
"주인 안지킬거야?"
못내 아쉽다는듯 크탄이 투구로 감싼 머리로 주변을 둘러보던것도 잠시.
쿵쿵...
쿵쿵쿵쿵...
달리기 시작한 크탄 옆, 어느새 달리안을 안아든채 나타난 베티가 강태석과 함께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
쿠우웅...
"후우. 일단 여기까지 쫓아오진 못하겠지."
강태석이 사방이 거대한 잔해파편들로 가득한 폐허무더기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건물이 무너져 만들어진, 높이가 족히 수백미터는 되어보이는 폐허무덤.
아까전같이 장갑차 끌고 투사체 펑펑 쏴대는 녀석들과는 이런 엄폐지형을 끼고 싸워야한다.
녀석들도 이안에서 크탄같은 기계인형을 상대하긴 부담스러울테니 여기까지 쫓아오진 않을터.
치리리리리링...
'그나저나 이거 괜찮네. 물건이야.'
마치 껍질을 둘러싼 유리파편이 터져나가며 안에 있는 철심이 드러나듯.
검폭에 표면이 가루가 되어 터져나가며 작아졌던 검은 심대 주변으로 다시 흘러 모여드는 유리파편들을 보며 강태석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구동계축에서 크탄에게 검폭을 쓸때는 힘조절을 하긴 했지만 수리하는데 한참은 걸릴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용했다.
검폭은 무기의 내구도를 팍팍 깎아먹는 기술이니까.
한데 예상외로 유리파편처럼 터져나갈때 첫번째로 놀랐고.
그렇게 터져나간 파편에 검폭의 위력이 급증한데 두번째로 놀랐으며.
그렇게 퍼져나갔던 유리파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허공을 타고 그러모여 재생하는데 세번째로 놀랐다.
이건 과학기술도, 뭐도 아니다.
어떤 종류의 마법이나 주술이 적용된 것.
후욱...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 먼지투성이가 된채 그제서야 한숨돌리는 강태석과 크탄을 걱정스럽다는듯 바라보던 달리안의 모습에 곁에 서있던 베티가 등의 철창을 꺼내들었다.
<제가 처리하고 올까요? 가면 삼십분 안걸릴텐데.>
치리릭...
네개의 철창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치링치링 돌리는 베티를 강태석이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상성이라는게 있다.
크탄이 매머드라면 베티는 검치호.
장갑차라고 하여 기계인형의 괴력에 의해 던져지는 저 철창을 버틸수 없다.
저걸 들고나가 폐허사이에서 하나씩 사냥하기 시작하면 이내 모조리 꼬치구이가 되리라.
하지만 그런 베티의 말에 달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희가 사람을 안 해쳤으면 좋겠어. 최대한."
<... 주인의 생각이 그러시다면야.>
"이기적인 생각인가요? 안 해치면 우리편이 다칠수도 있는데?"
키잉....
머리를 꾸벅 숙이고 한발 뒤로 물러서는 베티에게 고개돌려 묻는 달리안의 말에 강태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맘이지. 마음편한대로 하는거야. 강요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 말대로.
다친 누군가는 원망할수도 있겠지만 결국 결정하는건 달리안 본인.
원망받는것도, 후회하는것도 누가 대신할수없이 모두 본인이 짊어져야할 것들이다.
"자자 그나저나 이제 선택을 해야하는데."
박수를 탕탕 치며 분위기를 환기한 강태석이 폐허무덤 밖을 바라보았다.
아주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까전 녀석들이 전부고 단지 소수인원들이 무기고를 통째로 털어 부유한 상태라고 여길수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 희망적인 예측이다.
잠깐이었지만 애초에 상대의 편제나 무기 운용이 소수 세력이 할법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즉 최악의 경우는 도시 하나분의 무기고 병참을 통째로 가져간 거대세력과 충돌할 각오도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승산은...
'좋게 봐줘도 공멸이다.'
강태석이 고개를 들어 폐허천장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아니, 사실 공멸도 너무너무너무 좋게 봤다.
무기고의 확보 여부가 가르는것은 명확했으니까.
군대와 민간인.
군용화기와 개인화기.
연방차원에서도 무기고를 만들어 엄격히 사용을 통제하던 것과 개인방위를 위해 플랜트에서조차 찍어낼수 있었던 것.
사실 제대로 붙으면 현대시절, 군대와 민간인들이 싸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화력차이가 난다는 거다.
아마 오시리스의 외장 전체에 푹 패인 포탄자국들을 덕지덕지 새긴채 도망치기 바쁠터.
"방 빼야할수도 있겠는데."
<도망칠건가?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오 왠일?"
<전략적 후퇴는 무사에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양쪽다 붙어보니 알겠더군. 너희는 아직 전력이 모자라. 붙으면 몰살당할거다.>
크탄의 냉철한 말에 강태석이 웃었다.
맞는 말이다.
자신들은 이제 도시라는 알에서 갓 부화해 세상에 나온 병아리같은 신세니까.
하지만 또 이대로 곧바로 도망칠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섬에서 도망친다고 다음섬에서는 사정이 나을까?
일단 맞닥트렸다면 뭐라도 챙기고 삼키고 성장해야한다.
그렇지않다면 힘이 모자라 다음, 혹은 그다음에라도 언제든지 주저앉게될수 있을테니.
"달리안. 일단 너는 돌아가. 저기 크탄이랑."
<...>
"어쩔수 없어. 너는 눈에 너무 띄잖니."
왠지 시무룩해지는 크탄을 토닥거린 달리안이 강태석을 보며 물었다.
"카트란은 어쩌려구요?"
돌아가라는 말은 본인은 안가겠다는 말.
그 말에 강태석이 덤덤히 말했다.
"나온김에 한번 살펴는 봐야겠어.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아 그리고 이 친구 좀 같이 가도될까?"
<어머. 데이트신청?>
자신을 가리키는 강태석의 말에 베티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
후우우웅...
크탄과 달리안이 사라진 자리.
그들이 있던 수백미터 높이, 폐허무덤의 꼭대기까지 올라온 강태석을 옆의 베티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저 인간이 정찰을 위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줄 알았다.
확실히 이정도 높이라면 도시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올테니까.
하지만 지금 하고있는걸 보니 그런것도 아니다.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뭐긴. 제사 지낼 준비하지."
후우우웅...
높디높은 폐허 정상.
반경 2m 정도 될까말까한 좁디좁은 콘크리트 더미 위에 투박한 제단을 만든 강태석은 머리를 조아리듯 숙이고 두손을 모아 합장했다.
이 의식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스킬가챠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제바아아아알... 가즈아아아아아!"
<... ....>
옆에 서있던 베티가 그야말로 세상 한심한 눈으로 두손을 뒤흔들고 있는 강태석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