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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콰앙...
철벽너머, 도시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웅장하게 솟은 플랜트의 군데군데에서 폭음과 함께 연기가 뭉게뭉게 치솟고 있었다.
치명적이어보이는건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문제가 생긴 상황.
이를 본순간 기계늑대를 부리던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플랜트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혹시나 어떤 섹터들이 예전처럼 분란을 일으킨게 아닌가 했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현재 그들의 시장이 힘을 쥐고 중앙플랜트를 복권한뒤 그럴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이놈들... 별동대같은걸 꾸린건가."
눈앞의 폐허를 바라보던 사내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약탈은 즐겁지만 자신들의 본진이 털린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그곳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그리고 당황한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뒤에서 불이...
대장! 어떻게 합니까!
금방이라도 폐허더미를 짓밟고 진격할거같던 발걸음이 멈춘다.
우왕좌왕하며 묻는 주변 수하들의 말에 사내조차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플랜트를 바라보았다.
**
플랜트, 무기고.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콰아아아앙!
도망치는 사람들 너머, 연쇄적으로 터져나오는 화염을 보며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그야말로 이 거대한 시설물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
그리고 이런 폭발을 만들어낼 정도의 화약과 폭탄들.
아쉽지 않다하면 거짓말이지만 아쉽다고 아낄때도 아니다.
일단 상대가 걸어온 싸움에 물러설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상대 동태 좀 어때?"
<확실히 진격이 멈췄네요. 고민하는 분대도 있고 돌아오는 녀석들도 있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빠지진 않지만.>
지이잉...
폭발로 시원하게 뚫린 외벽 밖, 탁 트인 시야너머로 오시리스쪽 평야를 살피며 말하는 베티의 말에 강태석이 손에 들린 창을 만지작거렸다.
좀더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놀래키긴 했지만 그정도로는 부족할수 있다.
아예 이곳의 재건에 한동안 매달려야할 정도로 핵심시설을 폭삭 박살내버리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
더 나아가 아예 이곳의 동력망중 일부를 끊어버린다면?
꺼져버린 전파방해기기, 짓쳐들어오는 기계병기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막기에 급급할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건 두가지.
첫번째. 그렇게 되면 또 너무 간다는 느낌이 든다는것.
지금까진 이쪽도 사상자가 거의 없지만 그쯤 되면 이곳 사람들도 천단위로 죽어나간다.
두번째, 그리고 더 중요한건...
저기있다!
갈겨! 어차피 더 터질것도 없어!
터져나오는 외침소리.
이어지는 묵직한 소음.
슈우우우우욱...
"씁."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근처에서 터진 기갑창에 기겁을 하며 발을 구른 강태석이 빠르게 저장고 한쪽, 폭발에 구겨진 또 다른 통로 입구로 몸을 날렸다.
그래, 이게 문제다.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눈뜨고 보고있겠냐는것.
위의 말한곳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방비가 삼엄하며 그게 아니더라도 난동을 피운지금, 실시간으로 더 많은 이들이 따라붙고 있다.
사실 지금도 조금 무리하고 있는 상황.
타타타타타타..
후우웅...
타탁.
뒤쪽에서 빗발치는 총알세례속, 이를 전마강갑으로 막아내며 내달리는 강태석의 곁으로 따라붙은 베티가 손가락으로 철창을 휘리릭 돌리며 말했다.
<빠질거에요? 이제 시간이 부족한데.>
이에 내달리며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 빠졌다가는 되려 위험해진다.
이곳의 방어는 방어대로 철저해지고 그뒤로 안심하고 더 거세게 밀어붙일터.
하지만 베티 말대로 시간이 부족한것도 사실.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은 눈을 감았다 떴다.
"흩어지자. 내가 플랜트 쪽으로 시선 끌테니까 지하로 가서 동력망 한군데만 끊어줘."
<위험할텐데요.>
"안 위험한 곳이 어딨다고."
손의 창을 치켜든 강태석이 숨을 골랐다.
욕심부리지 말고 딱 여기까지.
동력망 딱 한군데만 끊고 빠진다.
녀석들도 적당히 바쁘고 자신들도 피해없이 빠질수 있도록.
'아무것도 못 챙겨가는건 좀 아쉽지만... 이런 때도 있는거지.'
첫판부터 지뢰섬이라니.
하지만 인생이 이럴수도있는것 아니겠는가.
우드득...
손에 강하게 힘을 준 강태석이 바닥을 내리찍은 순간.
쩌어어어어어어어엉!
망할... 잡아!
얇은 금속복도 바닥에 구멍을 뚫고 슉 뛰어내려버린 둘을 보며 저 너머에서 마주달려오던 이들이 고함성을 내질렀다.
**
쿠르르릉...
쿠릉...
"바깥이 시끄럽네요."
"침입자가... 죄송합니다. 금방 해결하겠습니다."
중앙플랜트 뒤쪽.
길쭉하게 솟은 금속의 탑, 지하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던 한 중년 사내가 뒤쪽의 보고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공간, 사방으로 뻗은 푸른빛 회로들.
그 속에서 쪼그린채 회로들을 어루만지던 중년 사내가 못내 아쉽다는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뒤의 보좌를 향해 말했다.
"가지요."
"직접 나가신단 말입니까?"
이에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계가 코앞.
모든 바깥상황에 신경끄고 완성에 집중한 탓에 그 결실이 피어나기 직전에 이르렀다.
이제 슬슬 나가보아도 될터.
"그래. 관람객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
알수없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사내를 옆에 서있던 보좌가 이해할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
중앙플랜트, 최심부.
투타타타타타타!
퍼어어어억...!
빗발치는 화망을 피해 꺾인 통로 코너로 뛰어든 강태석이 저 너머로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시선을 끌려는 자신의 노력이 지나치게 성공한걸로 보였다.
이제는 사방팔방, 가는곳마다 적들을 마주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키이이이잉...
극도의 긴장속,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겨누는 수십정의 개인화기와 몇기의 레일건을 본 강태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개인화기는 그렇다쳐도 레일건은 복도에 구멍을 슝슝 내고 플랜트를 벌집으로 만들 위력을 지녔다.
그런걸 겨눌 정도라니 어지간히 열받은 모양.
강태석이 손, 끄트머리를 잡은 길이 2m의 칠채영창에 힘을 준 순간.
후우웅...
2m의 창이 마치 밧줄처럼 휘둘러지며 그 끝에서 한방울 눈물같은 유리방울을 토했다.
최근에 알게된 칠채영창의 기능중 하나.
그렇게 날아간 유리물방울이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을 뚫고 복도를 관통해 진을 친 이들 앞에 도달한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커헉...!
약식 EMP에 약한 검폭까지 걸린 칠채영창의 유리물방울이 터져나가며 모여있던 이들을 통째로 휩쓸었다.
위력을 조절했다고는 해도 검폭에 칠채영창에 EMP까지.
모여있던 이들을 모조리 퉁겨나가게 만들고 레일건을 무력화시키는것 정도는 충분한 파괴력.
스르르륵..
타탁...
으으...
쓰러진 이들을 뛰어넘으며 터져나간 칠채영창의 유리파편들을 그러모은 강태석이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는 천장의 조명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베티가 동력망을 끊는데 성공하지 못한상황.
조금은 더 시간을 끌어야한다.
'... 3분. 3분이 지나면 어쩔수없이 그냥 같이 빠져나간다.'
이를 지나면 정말 한계다.
그게 베티와 자신이 약속한 제한시간.
그때가 되면 그냥 오시리스에 합류에 어떻게든 싸우며 빠져나가는게 낫다.
물론 이런곳이 아닌 널찍한 전장에서 쏟아지는 기갑투창들과 레일건들을 상대해야한다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말이다.
치직...
손끝에 정전기를 만들며 내달리던 강태석이 복도너머로 빠져나온 순간.
우우우우웅...
쿠웅!
쿠웅!
쿠우우우웅!
높이 50m, 가로세로 넓이는 수백미터도 넘을 것처럼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멈춰서며 감탄성을 토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들과 작동하는 로봇팔들.
그 위에서 수많은 부품들이 뒤엉켜 조립되고 있는 각양각색의 물건들.
탄창, 개인화기, 특수배낭, 기타등등.
재료가 있고 생산이 허락된 물건들은 그야말로 종류와 양을 가리지 않고 이곳에 사는 이들을 위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일부만 작동하고 있다지만 전성기엔 도시 전체, 수십만을 책임지던 시설이기에 그 양 또한 상당하다.
특히 시선을 끈건 시설의 가운데, 여러개의 거대한 로봇팔들이 움직이고 있는 장소.
치직...
치지지지직...
직경 5m 가량되는 둥그런 구체를 둘러싼 로봇팔들이 분주히 움직일 때마다 구체의 표면에서 희미한 적색빛들이 깜빡이며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심상치않아보이는 물건.
이에 강태석이 눈을 갸름하게 뜨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려하던 그때.
콰아아아아앙!
벽면을 뚫고 나온 거대한 전갈 형태의 기계병기가 붉은 안광을 깜빡이며 강태석의 앞을 막아섰다.
레벨 10 기계병기, <스캔피드>.
크기 7m, 무게 11톤.
공수 균형이 잘잡히고 공격수단이 많아 10레벨 기계병기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녀석.
키이이잉!
키잉!
거대한 꼬리와 네개의 집게를 위협적으로 휘둘러 강태석을 물러서게한 스캔피드의 뒤로 수많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이 개자식. 드디어 잡았다. 어디 한번 또 도망가봐."
두마리의 스캔피드에 몇정의 레일건.
거기에 기갑투창과 개인화기를 움켜쥔 수십명의 무장병들.
'베티. 좀 서둘러주면 좋겠는데.'
남은 시간 1분 40초.
후우우욱...
남은 시간을 속으로 확인한 강태석이 몸 주변으로 전마강갑의 어둠을 거칠게 끌어올려 휘둘렀다.
**
중앙플랜트, 지하.
저벅.
<흐음. 두개정도만 끊으라고 했던가요.>
쿠우우우웅...
제법 너른 공간, 바닥으로부터 솟아나와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는 케이블들의 중심지에 선 베티가 손에 든 철창을 캉캉 부딫쳤다.
지열발전형태의 도시전력공급장치.
지하로부터 끌어올린 막대한 열기로 작동되는 이 장치는 세상이 반쯤 무너진 상태에서도 훌륭하게 이 거대한 중앙플랜트에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물론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지만.
<제가 알기로 도시들은 이제 섬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아직 멀쩡히 작동하는건지. 진짜 바닥 깊숙한 곳들이 용암으로 부글부글 끓고있기라도 한걸까요.>
베티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장신보다도 더욱 굵은 피복케이블을 쓰다듬었다.
지하로부터의 에너지흡수관이야 나름 멀쩡히 보존되었다쳐도 그 근원으로부터 뽑혀나왔을텐데 여전히 작동하는 플랜트라니.
대륙 지하가 모조리 들끓고있는게 아니고서야 말이다.
하지만 상념은 잠시.
<뭐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요.>
키링.
오다 주운 금속철판들을 손톱으로 쓰다듬어 날카롭게 날을 세운 베티가 이를 케이블에 박아넣을 준비를 했다.
철창으로도 못할건 없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귀여운 철창들이 망가지고 말것이다.
그정도로 안에 흐르는 전력의 양은 막대했으니.
<솔직히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키스라도 해줘야하는거 아닐까요? 돌아가면 한번 말해봐야지.>
중얼거린 베티가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철판들을 케이블에 휘두르려던 그때.
"거기 멈추시지요."
<...?>
뒤에서 들려온,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에 베티의 고개가 끼리릭 180도로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