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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54화 (5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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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키우지 않는다면 언젠간 잡아먹힐수밖에 없다고.

붉은 구체가 말했다.

주변은 국가간 대립으로 인한 혼돈의 도가니라고.

그래,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해낼수있는건 자신밖에 없다.

기계들의 주인이자 이곳의 새로운 시장인 자신이.

**

콰르르르르르릉!

사람을 홀리는 강렬한 열기.

마치 등대처럼, 태양처럼.

지하로부터 뽑아져올라온 강렬한 에너지가 금속의 탑 포면을 타고 올라 상공 800m에 사방을 비추는 시뻘건 구체를 만들어낸다.

지상까지 그 열기가 전해질 지경.

우아아아아아아!

마치 숭배하듯 고함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위, 십자가에 매달린 강태석이 하늘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광자포.

고티어의 방어병기이자 공격병기.

이는 영토를 넘어오는 이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치는 천벌이자 국경너머, 수백키로미터 밖의 적들에게 쏘아보내지는 심판이 된다.

중앙플랜트를 기반으로 테크니컬이 만들어낼수 있는 걸작중 하나.

하지만...

'이상하다. 이건 10레벨 전후 테크니컬이 만들수있을만한 물건이 아닌데.'

강태석이 하늘의 번쩍거리는 구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테크니컬의 지성은 마치 하늘의 계시와도 같고 초능과도 같아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면 마치 마법과도 같이 도면과 정보가 머리속에 주르륵 입력된다.

자신, 기계사냥꾼이 별다른 노력없이도 EMP라는 기술을 익힐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광자포는 명백히 예외.

저건 자동으로 생성되는 스킬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확보해야하는 스킬에 가깝다.

자신에게 외부슬롯스킬이 생성된것처럼 말이다.

이런 도시에 갇힌 테크니컬이 알수있을만한 정보가 아니라는 얘기.

그런 강태석을 향해 몸돌린 시장, 오토른이 크게 웃었다.

"당신. 분명 저 너머에서 건너온 배에서도 중요한 인물이겠지요. 그러니 기회를 주겠습니다. 가서 항복을 전할 기회를."

비범한 이는 어디에서도 눈에 뜨이는 법.

단신으로 플랜트로 뛰어들어 전쟁을 뒤흔들려고 한 이가 평범한 자일리가 없다.

실제로도 대단한 모습을 보였고.

하지만 그렇기에 오토른은 더욱 여유가 넘쳤다.

이제 상황은 종료.

아직은 가동충전중이지만 곧있으면 자신의 손짓한번에 하늘의 구체가 지상에 내리꽃혀 불지옥을 만든다.

해안가에 정박해있는 배에 이게 내리꽃힌다면?

제법 대단해보이는 것이 한번정도는 버티겠지만 두번, 세번도 버틸까?

아니, 설령 배는 버틴다고 해도 안에 타고있는 이들과 물자가 그 고온을 견딜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을수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인 물건.

"거부해도 딱히 상관없어요. 당신들은 여기서 본보기로 삼고 저 배는 이 녀석의 본보기로 삼으면 되니까."

탑의 벽면을 어루만지며 오토른이 만족스레 웃던 그때.

"느낌이 영 안좋은데."

"...?"

"혹시 저거 어떻게 만들었지? 누가 도와줬나? 아니면 어디서..."

그런 십자가 앞 강태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

쿵...

쿠쿵...

쿠쿠쿠쿵...

그들이 선 대지, 북서쪽 저 멀리에서 뭔가 아련한 굉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3분전.

도시 카툰, 북서쪽.

쿠쿠쿠쿠쿠...

대지에 설치된 커다란 대공미사일 위에 선 사내 하나가 하품을 했다.

인상적인건 허리춤에 찬 칼 한자루.

<현재 기지 남동쪽, 140km 지점에서 파동 발생. <싹>이 자라났어요.>

"그렇게 말로 안해도... 선명하게 보인다고. 여기에선. 오늘은 구름이 많이 없어서."

쿠구구구...

저 은빛 바다의 수평선 너머, 희미하게 뿜어져나오는 아스라한 붉은 빛 쪽을 바라보던 사내가 귓가의 통신기로 말했다.

"이제 싹도 자랐으니 회수하러 가야겠지. 쏴. 나는 준비됬으니까."

그런 사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쿠구구구구구...

사내가 선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쏘아보내지기 시작했다.

남동쪽, 붉은 빛이 일출처럼 아스란히 퍼져나오고 있는 곳을 향해.

**

쿠구구구구...

어어? 설마?

미사일! 미사일이다!

설마 또...

북서쪽에서 날아드는 선명한 광원에 아래있는 이들이 놀라 웅성거리자 위에 선 오토른이 크게 소리질렀다.

<여러분! 안심합시다! 다들 며칠전의 사태로 놀란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위해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오토른이 매서운 눈으로 북서쪽에서 날아드는 미사일을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 붉은 구체의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설마 이렇게 멸망한 세계의 밖에서 그런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으랴 싶었으니까.

자신들 도시에선 생존자 코빼기도 보기 힘든데 그런 수준의 힘들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며칠전 벌어진, 오토른은 물론이고 함께 비웃던 생존자들조차 대경실색할 사건.

남쪽에서 터져나온 푸른 빛의 천둥번개.

그 강렬한 힘의 파장.

그리고 이에 질새라 사정없이 푸른 하늘을 가르며 쏘아지던 수백, 수천발의 미사일과 폭격들.

수십키로는 족히 떨어져있을 곳에서 벌어졌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폭발음과 하늘을 가르는 굉음이 끊임없이 그들이 선 하늘 위를 우렁우렁 후려치며 대지에 선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붉은 구체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뜻.

그나마 긴가민가하면서도 탑, 광자포의 완성을 꾸준히 진행해왔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힘은 굳이 국방뿐만 아니라 내치에도 필요했으니까.

덕분에 타이밍좋게 탑은 완성.

그리고 이제 그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여러분. 보십시오.>

키이이이이이이잉...

테크니컬, 오토른이 의념을 집중한 순간 탑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번쩍거리며 금속회로를 요란하게 쥐어짜기 시작했다.

이어 명멸하는 수백미터 상공의 붉은 구체.

붉은 구체의 스파크가 극에 달해 마치 번개가 용처럼 꿈틀거리던 그때.

쩡!

마른 하늘을 가르는 한줄기 벼락처럼.

붉은 구체에서 뻗어나간 한줄기 섬광이 단번에 저너머로 이어져 날아오는 광원에 닿았다.

요란한 궤적도, 귀를 찢을것같은 폭음도 없다.

다만 처음부터 존재했던것같은 붉은 번개의 선이 하늘 사이, 붉은 구체와 미사일 사이에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걸로 끝.

파스스...

와아...

우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스러져 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미사일에 오토른을 비롯한 아래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거력.

천벌과도 같다.

그들이 이제까지 감탄하며 부리던 기계병기들이나 기갑투창도 저기에 비하면 실로 하찮을 뿐.

하지만...

후우우웅...

"..."

비무장 직업, 테크니컬인 오토른이나 레벨이 낮은 다른 주민들과 달리 몇몇 레벨이 높은 이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가늘게 뜬채 북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미사일이 폭발하기 직전 무언가가 갈라져나와 그들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기 때문.

후우우우웅...

미사일의 커다란 광원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빛나지도 않기에 자세히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무언가.

얼핏 보면 검은 먼지처럼 보이는 형상이 미사일의 관성을 따라, 그들을 향해 천천히 내리꽃히고 있었다.

처음은 천천히,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더더 빠르고 강렬하게.

어어?

뭐야!

이어 오토른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이 그 검은색 무언가를 눈치챌수 있을만큼 가까워졌을 때쯤.

콰아아아아아아앙!

쿠구구구구구...

하늘에서 운석처럼 내리꽃힌 무언가가 금속의 탑과 앞에 모인 군중들, 그 사이로 떨어져내리며 길고 깊은 밭고랑을 그렸다.

금속재바닥이 녹아내릴 정도로!

슈우우욱...

사방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수증기에 사람들이 당황하던 그때.

치직...

아아. 도착.

회수작업 시작하겠다.

덤덤한 음성과 함께 연기구름 속에서 칼을 찬 한 사내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후웅...

손에 든 칼을 한번 기분좋게 휘둘러본 사내가 연기속에서 걸어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 높게 선 광자포.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황망히 자신을 바라보는 수천명의 군중들.

그리고 자신과 탑 사이, 높게 선 십자가 둘과 놀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중년사내까지.

"딱 봐도 저 치가 대장인건 알겠는데... 저건 제물? 무슨 종교단체야 뭐야. 이래서 촌동네들은 싫다니까.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변한거야."

마치 야만인을 보는듯 혐오스럽다는 눈길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던 사내는 이내 사람들을 무시하고 터벅터벅 걸어 코앞의 탑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순간.

키리리리릭...

키이이이이이이잉!

탑의 표면을 그득 메우던 금속회로의 붉은 빛이 순식간에 꺼져내리며 하늘로 솟구치던 에너지가 끊겼다.

허공에 떠있던 구체 또한 마찬가지.

쿠쿵..

쿠쿵...

쿠쿠쿠쿵...

태양처럼 떠있던 붉은 빛의 구체가 몇번의 점멸을 반복하더니 크기가 작아지며 이내 상공에서 씻은것처럼 사라졌다.

이제 남은건 식어버린 검은 탑.

그리고 당황하다 못해 얼굴이 굳어버린 시장, 오토른.

"너.... 너너너... 당신! 뭐야! 어떻게 탑을!"

오토른이 갑작스레 하늘에서 나타난 사내를 향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탑은 건축부터 수리, 통제까지 오롯히 자신만이 운영가능한 물건.

테크니컬이 아닌 이들은 도면을 이해할수조차 없을뿐더러 작동 가능한 모든 코드 역시 자신의 머리속에만 담겨있다.

한데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녀석이 도시를 밝혀줄 등대의 불을 훅 꺼버리다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꺼버린 것만이 아니다.

키이잉...

키이잉...

머리속, 탑과 자신의 뇌 사이에 존재하던 모든 연결들이 하나둘씩 차례대로 끊겨나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것이었던 물건을 강제로 빼앗기듯 말이다.

그런 오토른을 향한 사내의 하품섞인 한마디.

"뭐긴. 싹이 자랐으니까 회수하는거지. 그간 키워내느라 수고했어."

놀라다 못해 굳어버린 시장, 오토른을 흘긋 보며 사내가 길게 하품을 내뱉었다.

**

뻐꾸기 프로젝트.

이는 처음에 한 국가의 아이디어에서 발안되었다.

<파편화된 수많은 1, 2기 계획도시들에 어쩌면 사람들이 살아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거기서 끝.

사실 연방의 통제력이 무너지고 멸망 사이에서 힘을 키워가던 각 국가들은 그런 촌도시들까지 큰 관심은 없었다.

중앙플랜트라고 해봤자 제약이 너무 많아 원하는 물건들을 생산하기는 힘들고 핵심자원들 또한 없었으며.

무기고에는 자신들이 필요한 수준의 화력이 없고 생존자들 역시 원하는 수준의 무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사실 살아있건말건 큰 상관이 없었다는 의미다.

머리수 많아져봤자 먹여살리고 통제하기 힘들기만 하고.

하지만 누군가가 또 다른 작은 아이디어를 내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각국의 팽창에 의해 대립이 커져가던 사이, 그런 생존자와 도시를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계획.

<살아있는 이들에게 정보가 담긴 구체를 쏘아보내면 어떨까?>

<중앙플랜트나 무기고를 점령할수있는 전술정보와 적당한 하급 군용무기의 생산데이터>

<그리고 이를 활용할수 있는 테크니컬을 유혹할 파장발생장치>

<이런 테크니컬에게 건네줄 세뇌등의 테크스킬과 광자포, 혹은 미사일터렛의 데이터>

<이런게 있다면 생존자들도 힘을 모아 중앙플랜트를 점령하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중앙플랜트를 점령한 이들이 그 위에서 꾸물꾸물 번성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손해볼것 없다. 그저 구체만 씨를 뿌리듯 쏘아보내면 그만이니.>

<반면 정말로 녀석들이 성공하고 광자포나 터렛이 완성되면?>

<우리도 제법 만들어내고 설치하기 힘든 물건을 날로 먹을수 있지 않을까?>

계획은 성공적.

수많은 곳에서 자라난 빛의 꽃들이 자신들의 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되면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

쓸모없는 것들의 처리.

"어쩔까."

철그럭.

금속 칼을 쥔 사내가 자신을 노려보기 시작하는 수천의 이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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